247화. 위로금
허칠안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세은 사건 때 술사였다.
‘가짜 은자를 제련해낸 술사와 운주 사건의 술사가 같은 인물일 가능성은? 혹은 같은 세력? 만약 그렇다면 나를 도운 이 옵션은 배제할 수 있어……. 이 짐승 같은 놈들이 하마터면 이 몸을 천 리 밖으로 유배 보내고, 숙부를 참수당하게 할 뻔했지…….’
허칠안은 머리가 지끈거려 미간을 주물렀다.
사천감,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콜록콜록…….”
허칠안이 기침 소리를 냈다.
“양 사형에게 알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말하게.”
허칠안은 무명 술사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양천환에게 말한 뒤 물었다.
“저희 사천감에 무슨 비밀이 감춰져 있습니까?”
“저희 사천감?”
그를 등지고 있는 양천환이 반문했다.
“어쨌든 채미 낭자는 조만간 저랑 결혼할 거니까요.”
“허.”
양천환은 비웃더니 이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사천감은 확실히 비밀이 좀 있네. 예를 들면 스승님께서는 여태껏 사조(師祖)의 일을 말씀하지 않으셨지. 하지만 나는 스승님께서 스승을 시해한 사실을 알고 있네.”
‘스승을 시해했다라…….’
허칠안은 전문을 되짚어보며 상백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초대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떠올렸다.
초대 감정은 오백 년 전의 옛 황실을 지지하던 자로, 원래의 평해왕이자 나중의 무종 황제가 황위 찬탈을 한 후 감정이 현재 감정으로 바뀌었다.
초대 감정에 관한 정보는 역사에서 지워졌다.
아주 말끔하게 지워져서 회경공주처럼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공부벌레조차 조금의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오백 년 전 불문의 선교를 통해 간접적으로 돌파한 것이다.
‘알고 보니 감정이 정말 스승을 시해했군. 처음에는 그저 추측이었는데 지금은 결정적인 사실이군…….’
허칠안이 말했다.
“양 사형의 뜻은 운주에 나타난 그 술사가 초대 감정과 관련 있다는 겁니까?”
양천환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르네. 이렇게 많은 걸 묻지 말게. 자네는 술사 체계를 몰라. 나처럼 세상에 보기 드문 괴상한 남자도 1품과 2품 술사를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네.”
허칠안은 이제 더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신입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말하면 1품과 2품의 정보를 알면 술사 체계의 많은 비밀을 알 수 있게 되고, 이런 비밀은 외부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사형은 기운을 차단할 수 있는 술사가 몇 품인지 아십니까? 양 사형은 하실 수 있습니까?”
허칠안이 달갑지 않은 듯 떠봤다.
“이건 자네에게 알려줄 수 있네.”
양천환이 말했다.
“기운 차단은 일반적인 술사라면 모두 할 수 있네, 어렵지 않아. 타인의 기운을 차단할 수 있으려면 6품 이상이어야 하네. 하지만 정말 자네가 말한 대로 양진태가 4품 몽무의 점괘와 주살을 차단할 수 있었다면, 술사 중에서는 한 품계만이 이를 할 수 있네. 양진태가 차단당한 건 기운이 아니라 명수(命數)네. 천기 말일세.”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3품 술사, 천기사(天機師)네.”
‘……3품?! 운주 사건 때 그 술사가 3품이라고?!’
허칠안은 멍해졌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운주 사건에 3품 술사가 연루되다니! 만약 그렇다면 4품 진법사 양천환은 당연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얄밉군.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련다.’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3품 술사의 계획을 설령 간파하더라도 누설하면 안 된다.
쪼는 게 아니라 어른들의 사고방식이다.
서로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
“자네 밖에 소문내지 말고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하네. 특히 스승님이 스승을 시해한 일 말일세.”
양천환이 멈칫하더니 덧붙였다.
“나는 스승님이 무서운 게 아니네. 그도 이제 나이가 많은데 늘그막에 쌓아왔던 명예를 잃을 수는 없잖나. 인간으로서 체면은 좀 남겨줘야지.”
‘더 설명할수록 켕기는 거 티 나거든요……. 내가 감히 함부로 말하겠니. 감정은 손가락만으로도 나를 쥐어 죽일 수 있는데…….’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 역시 감정 대인의 체면을 좀 살려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천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역시 재미있는 남자야. 나와 같아.”
허칠안은 경성에 돌아간 후에 비밀리에 사천감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하는 김에 소소의 가정사에 관해서도 한번 알아볼 생각이었다.
꼬르륵꼬르륵…….
허칠안은 좀 배가 고파졌다. 그는 뒤이어 관에서 나왔다.
“저 먹을 것 좀 찾으러 갈게요.”
양천환이 물었다.
“그럼 자네 죽었다가 살아난 일을 어떻게 설명할 셈인가?”
허칠안이 갑자기 경직됐다. 그렇다. 죽었다가 살아난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경성의 우두머리들은 결코 속이기 쉽지 않다. 게다가 그는 지금 이미 그해의 장락현 쾌수가 아니다. 아, 올해도 쾌수였다.
다만 처음 그때의 그 쾌수가 아닐 뿐.
허칠안은 묵묵히 관속에 다시 누웠다.
“저 우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경성에 도착해서 저희 아빠에게 의견을 여쭤보겠습니다. 양 사형, 식사는 사형께 폐 좀 끼치겠습니다.”
양천환은 문제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의아해하며 물었다.
“자네 어릴 때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숙부 손에 자란 거 아니었나?”
“사실 저는 위연의 사생아입니다.”
“뭐라고?!”
양천환이 아연실색했다.
‘허칠안이 위연의 사생아라니. 위연에게 사생아가 있었다고?’
* * *
내성, 허부.
이튿날 아침, 남궁천유는 동라 둘을 데리고 허부의 대문을 두드렸다.
사실 옆문이 이미 열려 있었지만, 그는 금라의 신분이므로 당연히 정문으로 갔다.
문지기 장씨가 정문을 열고 야경꾼 셋을 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대인 어르신들, 무슨 용무가 있으십니까?”
허칠안이 야경꾼이라 그는 야경꾼의 등급, 차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 야경꾼의 가슴에는 금색 징이 수놓아져 있었다. 딱 봐도 대공자보다 지위가 높은 듯했다.
이때 날이 막 밝았고, 남궁천유는 장씨를 훑어보더니 저택 내부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어도위 백호 허평지, 저택에 계시는가?”
그는 의부의 명을 받들어 허칠안에게 유족 위로금으로 은괴 300냥을 전하러 왔다.
동라의 몸값이 이렇게 높다니, 규칙은 규칙이다.
하지만 남궁천유는 앞으로 허씨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순익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예를 들어 어도위 백호 관직이라면 위로 더 올라갈 수 있다.
곧 춘시에 참가할 운록서원의 지식인은 추후에 벼슬길에 나가면 외진 다른 현(縣)으로 발령받지 않을 것이다.
“계십니다, 계셔요. 나리와 부인께서는 지금 안채에서 식사하고 계십니다. 대인께서 먼저 바깥 대청에서 식사하고 계시면 소인이 나리를 모시고 오겠습니다.”
문지기 장씨는 공손하게 야경꾼 셋을 바깥 대청으로 데리고 가서 하인에게 따뜻한 차를 내오라고 분부했다.
동라 둘은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태도가 아주 친절했다.
남궁천유는 차를 받지 않고 말했다.
“시간 낭비할 필요 없네. 본관을 데리고 가게.”
마치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
‘큰 공자님의 동료인데 설마 큰 공자님과 관련된 일인가?’
문지기 장씨는 몸을 굽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 세 분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남궁천유는 일어나서 문지기 장씨의 인솔하에 바깥 대청을 가로질러 뒤뜰에 도착했다. 저 멀리 귀여운 아이가 작은 보따리를 맨 채 긴 치마 차림의 소녀에게 이끌려 밖으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아이는 입을 오므리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맹목적으로 따라갔다.
쌍방이 서로 마주치자 소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야경꾼 셋을 쳐다봤다.
“대인 세 분께서 나리를 만나 뵐 일이 있다고 합니다.”
문지기 장씨가 설명했다.
허영월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눈빛을 거둔 뒤 콩알이를 잡아끌어 옆으로 물러났다.
허영음의 한 손은 언니에게 잡힌 채 다른 한 손을 들어 굵고 짧은 손가락으로 남궁천유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엄청 예쁜 언니다. 어머니처럼 예뻐요.”
‘예쁜 언니?!’
남궁천유는 무표정했지만 하마터면 그 말에 모든 걸 망칠 뻔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허영음을 주시했다. 그의 눈꼬리가 자꾸만 경련을 일으켰다.
‘이 꼬마는 바보인가? 눈은 장식품이야?’
그는 고개를 살짝 들어 꼬마에게 자신의 목젖을 보여줬다. 하지만 멍청한 꼬마는 그의 뜻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한결같이 소리쳤다.
“언니랑 우리 어머니처럼 예뻐요!”
꼬마는 아마 그녀의 어머니처럼 예쁘다는 말이 높은 평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남궁천유는 옷소매를 뿌리쳤다. 다른 사람이 감히 그에게 여자라고 말했다면 죽이지는 않더라도 큰 대가를 치르게 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어엿한 금라였기에 아이와 똑같이 굴기 귀찮았을 뿐이었다.
허영월은 남궁천유 등 세 사람이 대청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봤다.
“언니 왜 안 가?”
허영음이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을 치켜올렸다.
“큰 오라버니의 동료야. 우리 숙당에 좀 늦게 가자.”
허영월이 상냥하게 말하며 여동생을 끌고 되돌아갔다.
* * *
허평지는 안채에서 식사를 마치자마자 황급히 일어나 마중 나갔다. 그는 궁금하면서도 놀란 마음에 읍을 올리며 말했다.
“금라 대인.”
허평지는 위풍당당한 금라가 허부에 강림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령 허칠안이 야경꾼 관아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잘 어울린다 해도, 금라처럼 고귀한 신분이 일개 동라의 누추한 집에 발걸음 할 리 만무했다.
아주 심각한 일이 아니고선.
‘이 금라의 용모는 타고났구먼. 멀리서 봤을 때는 여인인 줄 알았다. 여성스러운 신년의 외모에 뒤지지 않네.’
허평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예쁜 언니.”
콩알이가 허영월을 따라 돌아와서는 문지방에 서서 알랑알랑 불렀다.
‘이 꼬맹이 정말 얄밉네. 그러다 울어 봐야지…….’
남궁천유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허칠안의 죽음을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의 시선이 허평지를 스쳐 식탁 가장자리의 부인에게로 향했다. 꼬마가 한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녀는 확실히 곱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금라 대인께서 누추한 집에 왕림을 다 하시고,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허평지가 물었다.
남궁천유는 시선을 거두고 잠시 침묵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동라 허칠안이 운주에서 순직했습니다. 본관은 유족 위로금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가 말을 하면서 손바닥을 펼치자 뒤에 있던 동라가 조용히 은자를 건넸다.
남궁천유는 유족 위로금 이백 냥을 다시 허평지에게 건넸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그는 석각처럼 꼼짝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었다.
눈빛마저 굳어버렸다.
‘허칠안이 순직했습니다.’
남궁천유의 말을 듣자 허평지는 귓가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혼비백산하며 가슴이 찢어질 듯 슬픔이 밀려왔다.
그는 한순간 온 세상이 빛을 잃고 머릿속이 부고로 가득 차 모든 의욕을 상실한 듯했다.
허칠안은 그의 조카이자 형님이 남긴 아이였다. 그가 20년을 곁에서 키웠으니 친아들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그는 심지어 허칠안을 어떤 면에서 친아들보다 더 아꼈다.
허평지는 허칠안에게 늘 강렬한 책임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형님의 핏줄이자 유일한 존속이었다.
허평지는 그를 자랄 때까지 키웠다. 그리고 허평지는 허칠안이 장가가서 아이를 낳아 장남으로서 혈통을 잇는 걸 보는 게 평생에 걸친 가장 아름다운 소망이었다.
‘지금 이 조카가 죽었다고 한다. 죽었다고 말하면 죽는 건가?’
허평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뜻밖에 아내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