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의중을 짐작하기 어렵다
“정숙!”
원경제 곁의 대태감이 연거푸 몇 번 소리친 뒤에야 군신들은 조용해졌다.
“모든 경은 들으시오.”
원경제가 말했다.
반백의 머리에 망포를 입은 대태감이 구석에 있는 환관을 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환관은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가 손에 든 문서를 펼치고 낭랑한 목소리로 읽었다.
“신 장항영, 아뢰옵니다. 운주 사건은 1월 24일 마무리되었습니다. 역적 송장보, 양유, 진명…… 서른네 명 모두 처형했습니다.”
일련의 이름 모두 품계가 있는 관원이었다.
“현재 운주는 안정을 되찾았고 사건은 종결됐습니다. 이는 조정 교화에 공이 있으며 폐하의 덕과 천지신명의 공입니다. 금라 강율중은 전 여정 내내 신을 신중하게 빈틈없이 보호하였습니다…….
금라 양연은 죽음을 무릅쓰고 군사를 이끌고 반란군을 통렬하게 격파하여 반란을 평정함에 그 공이 있습니다. 반란군이 불태우고 약탈하여 운주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지 못하게 함에 그 공이 위대합니다…….
은라 조빈, 당산호, 이운 세 사람은 소신을 보호하다가 무신교 몽무의 손에 죽었습니다. 죽었어도 후회하지 않는, 그 충성스러운 마음과 높은 기개에 소신은 애석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동라 송정풍, 주광효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공을 세웠습니다. 허칠안을 도와 증거를 찾고 보호하였으며 몸을 아끼지 않고 귀신을 상대하여 원기에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반역도당을 토벌하는 과정에 몸소 병사들의 앞에 서서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마음은 실로 감동적입니다…….”
장 순무는 금라부터 동라까지 하나하나 공적을 표창했다. 아주 상세하게 심혈을 기울여 썼다.
위연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대권신(大權臣)은 은라 셋이 순직했다는 말을 듣고도 내색하지 않고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라 허칠안은 남하하는 과정에서 철광 밀반입 사건을 간파하였습니다. 이 일은 전에 이미 아뢰었으므로 더는 소상히 서술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운주 사건 중에 허칠안이 일당백의 능력으로 각종 단서를 풀고 죄증을 찾아냈습니다……. 또한, 그가 송장보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사건을 반전시킨 덕분에 신이 현량하고 충성스러운 자를 오해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송장보는 죄악이 폭로된 후 궁지에 몰려 반란군을 모으고 성문을 닫았으며, 소신을 포정사 관아에 포위하여 죽이려 하였습니다. 신이 막다른 길에 놓였을 때 허칠안 혼자서 칼 한 자루를 쥐고 반란군 수백 명과 사투를 벌여 이백여 명을 베어 죽이고 결국, 힘을 다 써버려 죽었습니다.
소신은 감히 시호를 내려주시길 청하는 바입니다. 신은 운주에 있지만, 하루빨리 폐하를 뵙길 바랍니다. 소신, 장항영, 다시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환관은 다 읽은 뒤 긴 접본을 걷고 물러갔다.
원경제는 멈추지 않고 떠들썩하게 속닥거리는 군신들을 훑어보다가 마지막으로 시선을 위연에게 향했다.
전설을 어깨에 짊어진, 대봉 오백 년 동안 가장 강대한 국수(國手)라 불리는 환관, 산해관전역에서 승리하고 주변 각국을 힘으로 굴복시킨 오군 좌도독, 야경꾼을 통솔하고 문무백관을 감찰하는 평판 나쁜 위 내시…….
바로 이 순간 뜻밖에도 조회에서 정신이 나갔다.
“여러 경들은 장항영이 상주한 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오?”
원경제가 물었다.
“위연, 위연, 위연……!”
그는 연거푸 세 번을 점점 더 크게 소리쳤다.
위연은 깜짝 놀란 듯 몸서리쳤고 그제서야 반응을 보이며 가볍게 ‘네?’하고 소리냈다.
원경제가 입꼬리를 움직였다.
“위 경,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듯하오. 장항영이 운주 반란을 요람에 억누른 것 역시 경의 공인데. 설마 위 경, 기분 나쁜 건 아니겠지?”
예부 급사중, 좌도 급사중이 뛰어나와 큰 소리로 책망했다.
“위연, 폐하께서 자네에게 묻고 계시잖소!”
위연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만하시오!”
원경제는 기분이 좋기에 손을 내저었다. 그는 군신과 접본의 일을 상의하여 공적의 정도에 따라 야경꾼에게 알맞은 상을 내리기로 했다.
허칠안 차례가 됐을 때 시호를 내리는 일에 있어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 대신은 작위 부여에 찬성했지만 타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자가 더 많았다.
사실 타당하지 않은 건 아니다. 작위는 관직이 아니라 공을 세운 자에 대한 ‘표창’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기 위한 조정의 수법이다.
허칠안 같은 상황은 사후 작위 부여에 속하므로 뒤에 남겨진 명성에 불과하다.
하지만 허칠안은 위연의 심복이다. 위연과 맞부딪치는 건 문신들의 본능과도 같다. 또한, 세은 사건부터 상백 사건 그리고 평양군주 사건부터 운주 사건까지 허칠안이 만든 적이 너무 많다.
그로 인해 왕당의 호부시랑이 실각하고 양당이 폐지됐으며 왕당의 예부상서가 실각하고 제당의 공부상서는 구족이 죽었다…….
그를 증오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들은 설령 사후 영예라도 그에게 주기를 원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같은 제당의 대리사경과 예부시랑이 가장 흥분하며 격앙된 어조로 폐단을 명확하게 밝혔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렇다. 허칠안은 어울리지 않는다.
대리사경은 제당이지만 무신교와 결탁한 공부상서한테 대리사경 역시 무신교와 결탁했다는 사실을 명시하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연루되지 않을 수 있었다.
소위 당파는 정치적 맹우일 뿐 일가친척이 아니다.
예부시랑은 왕당 사람으로 직속 상관이 상백 사건 때 허칠안에 의해 망가졌다. 가장 원망스러운 건 신임 예부상서가 위연 사람이라는 것이다.
원경제는 군신의 태도에 다소 머뭇거렸다. 그의 시각에서 보면 항상 눈에 거슬리는 동라가 순직했으니 당연히 위풍당당한 천자를 감동시키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이 매우 편안했다.
그는 마치 윙윙거리는 파리를 쫓아낸 것 같았다.
하지만 원경제는 그에게 작위를 주는 일에 찬성했다. 허칠안은 확실히 큰 공을 세웠기에 작위를 부여하면 그의 상벌을 분명히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원경제는 죽은 자에게 가장 관대하다.
하지만 만약 대부분 신하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원경제 역시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원경제가 마침 얘기를 마무리 짓고 장항영의 건의를 기각한다고 공표하려 했을 때였다. 갑자기 대열에서 나오는 위연이 보였다.
대환관은 곧바로 예부시랑에게 걸어갔다. 그가 손을 들었는데 ‘퍽’하는 소리가 났다.
높고 맑은 따귀 소리가 어서방에 울려 퍼졌다. 이는 순식간에 군신들의 논쟁 소리를 가라앉혔고, 그들은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탁!
대리사경 역시 한 대 맞고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곧 그의 관이 벗겨지고 머리가 마구 헝클어졌다.
“와아…….”
의아한 시선이 왁자지껄한 소리로 바뀌었고, 어서방이 발칵 뒤집혔다.
대봉 역사상 성격이 거칠고 급한 대신들이 조당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경우는 적지 않다. 하물며 이곳은 어서방이다.
하지만 사람을 때린 건 위연이었다. 이는 확실히 황당하고 기괴한 일이었다.
위연은 군신의 마음속에 환관의 몸으로 야경꾼 관아, 도찰원을 장악하여 높은 자리에 슬그머니 앉은 자였다. 그에게 붙은 꼬리표는 음흉, 교활, 악독, 간사, 침착, 계략에 능한 등등 다양했다.
하지만 그 꼬리표 중 ‘충동적이고 경솔하다’는 없었다. 이러면 남에게 꼬투리 잡히기 십상이니 진작 희롱당해 죽었을 것이다.
‘위연이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고의인가?’
프로 불평러 급사중은 조당 제공들의 마음이 동요하는 사이에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육부의 ‘좌도급사’ 몇몇은 허겁지겁 달아나며 크게 소리쳤다.
“폐하, 위연이 조당에서 사람을 때렸습니다. 폐하도 안중에 두지 않고, 왕법도 안중에 없으니 폐하께서는 이놈의 목을 베라 명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급사중은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약점을 찾아내서 죽기 살기로 덤비면 그만이었다.
바로 여러 대신이 연이어 그의 발언을 지지했다.
위연은 신하들의 고발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읍을 올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폐하, 제당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공부상서가 비록 처리됐지만, 같은 당파 놈들이 여전히 조당에 잠복해있습니다. 상백 사건 때 예부상서가 요족과 결탁했는데 같은 당파 놈들 역시 아직 존재하지요. 마침 경찰 기간이니 소신, 시찰을 늦추고 모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후에 다시 결정하시길 제의 드리는 바입니다.”
‘뭔 소리야?’
신하들은 소름이 쫙 끼치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위연을 쳐다봤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 경찰을 늦추고 싶다는 의미였다.
‘아직도 일을 꾸미고 싶은 건가?!’
연초부터 경성의 관리 사회는 조그만 일에도 벌벌 떨면서 칩복했다. 그들은 매사 조심스럽게 관망했고 연중부터 연말까지는 서로 암투를 벌이며 두려움에 떠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설사 가장 호전적인 음모가라도 하루빨리 경찰을 끝내고 재정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정도였다.
‘위연 이 자식이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그, 그는 미친 건가?’
재상 왕정문조차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놀란 눈으로 위연을 주시했다. 위연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왕 재상은 명색이 오랜 적수로서 이때 자신이 위연의 의중을 짐작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때의 패기인가? 아니다. 위연이 어찌 감정에 좌지우지되겠는가? 게다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것인가?’
원경제는 위연을 주시하며 잠시 쳐다보다가 문득 그 허칠안이라는 동라가 위연의 마음속에 범상치 않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아래로 손짓하며 모든 신하가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고, 천천히 말했다.
“이렇게 이리저리 뒤엉켜 복잡하고 기이한 사건을 허칠안이 한 달 만에 해결하다니 정말 신통한 재주요. 이런 자가 순직하는 건 우리 조정의 손실이오. 장항영이 상주(上奏)한 대로 합시다. 위연이 조당에서 조정의 명관을 구타하고 법도를 무시하였으므로 1년 동안 감봉 처분하겠소. 경찰에 관한 일은 선조로부터 전해오는 제도에 따를 것이니 변경할 필요 없소.”
모든 대신은 원경제의 솜방망이 처벌이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속으로 실망했지만, 이런 일로 대환관을 타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폐하는 위연의 중요성 때문에 그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조정의 명관을 한두 번 때린 걸로 받는 처벌은 한계가 있다.
그들을 놀라게 한 일은 위연이 더는 경찰의 일에 연연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는 점이었다.
이로써 군신들은 소위 경찰을 늦추자는 건 단지 위연이 분풀이를 할 구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군신들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처벌보다도 위연이 추태를 부린 이유가 아주 신경이 쓰였다. 알고 보니 흠잡을 데 없는 위 내시를 신경 쓰게 하고 추태 부리게 하는 존재가 있다?
뒤이어 허칠안의 작위를 추봉하는 일에 관해 여러 측에서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한 차례 옥신각신한 끝에 허칠안의 작위가 정해졌다. 장락현자(長樂縣子).
자작(子爵)!
변치 않고 세습할 도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