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42화 (242/712)

242화. 춘제일(春祭日)에 회생하다

“대장.”

송정풍과 주광효가 황급히 부축하러 갔다.

이옥춘은 고개를 숙이고 허칠안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칠안이 전사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구체적인 과정을 나는 모르네. 자네 둘이 내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송정풍과 주광효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대장이 너무 침착해서 좀 걱정스러웠다.

송정풍이 사건의 경과를 이옥춘에게 알렸다. 이옥춘은 조용히 다 듣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가 데리고 온 동라답군. 정말 장하다. 나를 망신시키지 않았어. 그는 무슨 일을 하든 늘 나와 뜻이 맞았네. 처음에 주씨 그 잡종을 벤 일처럼 말이야. 그는 여태껏 돈을 탐한 적이 없지. 이 점은 자네 둘보다 뛰어나니 자네들은 그에게 배워야 하네. 그의 유일한 단점은 수련을 너무 제멋대로 한다는 걸세. 또한, 길거리를 순찰할 때 자주 노래를 들으러 슬쩍슬쩍 기루에 간다는 거야. 아주 여러 번 나한테 와서 일러바치는 사람이 있었지.”

그는 자질구레한 일을 중얼거리며 예전의 사소한 것들을 회상했다.

그가 대체로 침착한 편이라 송정풍과 주광효는 한시름 놓았다. 그들은 대장이 허칠안을 아주 중시하고, 높이 산다는 걸 알았다. 당초에 은라를 칼로 벤 일 때문에 그는 사람들 앞에서 위 공의 체면을 깎은 적도 있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는 흰 천을 젖히고 허칠안의 옷을 검사할 때 갑자기 펄쩍 뛰며 노발대발했다.

“어떤 개새끼가 그에게 옷을 정돈해 줬는가? 어떤 개새끼가 그에게 옷을 정돈해 줬느냔 말이다. 옷섶이 대칭이 아니잖나. 옷섶이…….”

그는 너무 분노한 나머지 칼을 뽑아 사람을 벨 듯한 태도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렇게 해야만 다른 이들이 그의 눈에 넘쳐흐르는 눈물을 알아채지 못할 것 같았다.

“대장.”

송정풍이 소리쳤다.

“옷섶이 대칭이 아니네, 옷섶이 대칭이 아니야.”

이옥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깨가 쉴 새 없이 떨렸다, 쉴 새 없이…….

* * *

이묘진은 백제성 내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혼자 서재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손바닥에 옥석경을 놓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집어 들고 모두에게 삼호의 부고를 알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체면을 조금 살려두는 셈 치자…….’

이묘진은 한숨을 쉬며 옥석경을 들고 문자를 보냈다.

[이: 도사님, 저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밤중에 갑작스러운 문자 진동에 놀라서 깬 천지회 구성원들은 매우 분노했다. 그들은 이호의 전서 내용을 본 후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또 시작이네?’

[구: 이미 다른 사람을 차단했네.]

[이: 도사님, 운주의 일은 이미 수습됐습니다.]

[구: 좋은 일이구먼.]

[이: 저는 이미 삼호가 허칠안이라는 것도 압니다.]

금련 도사가 허허 웃었다.

[구: 좋은 일이구먼.]

[이: 허칠안이 전사했습니다.]

[구: ???]

[이: 제가 지서 파편을 가져올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년에 봄이 오면 운주를 떠나 경성에 한 번 가겠습니다.]

[구: 허칠안이 전사했다는 게 확실한가?]

[이: 그렇습니다.]

[구: 불가능하네.]

[이: 도사님께서는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구: 허칠안은 대복연(大福緣)이 있는 자이네. 절대로 단명할 자가 아니야.]

[이: 하지만 그는 정말 죽었습니다. 제가 직접 시체를 염습했습니다.]

금련 도사가 물었다.

[구: 허나 원신이 흩어졌는가?]

이묘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삼: 제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아직 연신경이 아니라서 원신이 강한 편이 아닙니다. 살기와 혈기의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흩어져 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그녀는 천종 성녀이거늘, 시체 한 구에 생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채지 못하겠는가?

금련 도사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몇 분 지난 뒤 문자를 보냈다.

[구: 알겠네. 지서 파편은 자네가 상관할 필요 없네. 허칠안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내가 직접 검증할 것이네.]

이묘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금련 도사가 그녀의 판단을 믿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반박하지도 않았다. 소식은 이미 전했으니 믿든 말든 그건 도사의 일이다.

하지만 지서 파편은 지종의 지보(至寶)다. 이묘진은 금련 도사의 처리 방식이 너무 제멋대로고 존중받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차단을 풀자 일호가 즉시 문자를 보냈다.

[일: 이호, 운주 사건이 끝났는가?]

이묘진이 대답했다.

[이: 구체적인 상황을 알고 싶으면 이에 상응하는 소식과 교환하면 되네.]

[일: 좋네. 문제없지.]

[이: 실제로 무신교와 결탁하여 산적을 키운 건 포정사 송장보였네. 죄악이 폭로되자 그는 백제성을 봉쇄하고 반란군을 모아 장 순무를 궁지에 몰아넣어 죽이려 했네. 실패했지만 야경꾼의 손해가 막심하네. 우리가 전서할 때 자주 언급했던 그 허칠안이 희생됐네.]

그녀는 결국 허칠안이 삼호라는 사실은 공표하지 않았다.

‘삼호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이묘진은 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고, 좀 괴로웠다.

‘허칠안이 희생됐다고?’

천지회 내부에서 반응이 가장 격렬한 건 육호 항원이었고, 그다음은 사호였다. 하지만 사호는 순전히 인재를 애석해할 뿐이었다.

항원 승려는 달랐다. 그는 사제 항혜가 죽었을 때만큼 또다시 비통해했다.

[이: 봄이 되면 나는 경성에 한 번 다녀오려 하네. 일호, 나는 인종 제자들 중, 젊은 세대인 모든 제자에 관한 정보를 알아야겠네.]

일호는 그녀에게 더는 답하지 않았다.

* * *

운주는 현재 난장판이다. 백제성의 관리 사회는 크게 요동쳤고, 민심은 흉흉하다.

장 순무는 조정에서 파견한 순무였으므로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운주 사건의 경과를 접본으로 써서 조정에 보고했다. 그런 뒤 운주에 남아 전반적인 정세를 주관하며 조정의 지령을 기다렸다. 그는 새로운 포정사가 운주에 도착하기를 기다린 후에야 경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강율중과 양연은 운주에 남아 비적을 토벌하고 장 순무의 안전을 호위했다.

하지만 허칠안 및 은라 셋과 동라 하나의 시신은 경성으로 운구해야 했다. 그들은 영웅이라 타향에 뼈를 묻으면 안 됐다. 엄동설한이라 시체가 당분간은 부패하지 않겠지만, 운주에 오래 남겨둘 수도 없었다.

네 사람의 시체를 호송하여 경성으로 돌아가는 임무는 민산, 민 은라에게 맡겨졌다.

이옥춘 세 사람은 운주에 남아 비적 토벌에 동참하여 어디에도 둘 곳 없는 슬픔과 번민을 털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동시에 내심 깊은 곳에서는 허칠안의 시체를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가족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장 순무는 희생한 다섯 명의 야경꾼을 위해 관을 마련했다. 그는 깊이 읍을 올리며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장 순무는 관을 닫을 때 경성에서 온 서신 네 통을 허칠안의 가슴에 두었다.

* * *

2월 2일, 춘제일.

이 세계에는 춘절이 없지만, 춘절과 비슷한 명절이 있었다. 이는 춘제일이라고 불렸다.

이날엔 황제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그러면서 황제가 올해 기후가 좋고 나라가 태평하여 백성이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대봉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이날은 집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양을 삶고 소를 잡았다.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춘제일에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살얼음이 떠다니는 운하에 관선이 천천히 북상하며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허칠안은 춘제일에 되살아났다.

* * *

‘너무 어둡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누구지?’

그는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우우우…….

둥둥둥…….

허칠안은 나팔 소리와 북 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점점 다른 소리도 들었다. 산과 바다를 뒤덮는 고함 소리, 묵직하면서도 난잡한 말발굽 소리 그리고 폭발음, 칼날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다양한 소리가 한데 뒤엉켜 허칠안의 머릿속에 선명한 장면을 그렸다.

‘전쟁터!’

그가 방금 이렇게 생각하자 눈앞의 어둠이 갈라지고 광명이 뚫고 들어왔다. 그의 시선에 들어오는 건 역시 전쟁터였다.

시커먼 대군이 빽빽한 개미처럼 돌격하였다. 고품 무사가 전쟁터에서 사람을 마구 죽이는 건 마치 인류가 개미굴을 밟는 것과 같았다.

이 전쟁터에는 인류만 있는 게 아니었다. 2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짐승도 있었으며, 몇십 미터 길이의 큰 뱀이 하늘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둘러쌌다…….

가부좌를 틀고 고공에서 경서를 읽는 고승, 산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세고 기개가 넘치는 만족(蠻族),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좀비 대군, 나란히 열을 이루는 화포군, 맹수에 올라탄 용맹한 기병…….

‘이게 무슨 전쟁터야?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죽은 사람이 너무 많잖아.’

허칠안은 실의에 빠졌다.

그의 시선이 전쟁터를 스치고, 좀비 대군을 스치고, 화포군을 스쳐 전쟁터 뒤쪽의 높은 하늘에 닿았다. 그곳에는 공중에 떠 있는 비수(飛獸)가 있었다.

그는 청의를 입고 짐승의 머리에 우뚝 서서 양손을 뒷짐 진 채 싸움이 한창인 전쟁터를 무관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위연?!”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하더니 갑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전쟁터 화면이 무너지고 허칠안은 끝없는 어둠으로 다시 돌아왔다.

눈을 뜬 허칠안이 보는 건 여전한 어둠이었다.

‘젠장, 너무 답답한데…….’

그는 바로 일어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여 찬찬히 감지했다. 뒤이어 그는 어두운 선실과 가지런히 정렬된 관 다섯 짝, 느리게 항해하는 관선, 물결이 출렁이는 운하를 ‘보았다.’

이는 그가 연신경에 들어선 후 얻은 신기한 힘이었다.

다른 연신경 무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허칠안의 정신력은 어느 정도 눈을 충당할 수 있었다.

언젠가 티타늄 합금으로 된 눈이 멀지라도 그는 조금도 겁이 나지 않았다.

‘내가 방금 본 건 꿈인가……? 아니, 분명히 단순한 꿈은 아니야. 어떤 꿈이 이렇게 선명하겠어? 무슨 좀비 대군, 불문 고승이야……. 이것들 모두 접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꿈에 나오는 거지? 꿈속에 왜 위연이 있는 거야? 꽤 젊어 보이던데…… 적어도 양쪽 구레나룻은 희끗희끗하지 않았어. 우리 아빠 젊을 때 정말 잘생겼었네, 나처럼…….”

허칠안은 관 속에 누워 꿈속에서 본 장면을 회상했다. 온 천지가 시커먼 대군으로 참전 인원의 규모가 방대했다.

여러 세력이 혼전을 거듭했다.

위연의 등장과 그의 행적을 결합해 보니 허칠안의 마음속에 즉시 산해관전역이라는 추측이 떠올랐다.

‘위연의 행적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산해관전역……. 각국의 혼전, 방대한 규모, 사서에 기록된 산해관전역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다만 내가 왜 산해관전역을 꿈꾼 거지? 약골 숙부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니. 분명 시체 더미에 엎드려 죽은 척했을 거야…….’

허칠안은 관 뚜껑을 밀어서 열었다.

그러자 신선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곤 몸을 뒤척이며 앉았다. 갑자기 어두컴컴한 선실 안에서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깼는가.”

허칠안은 흠칫 놀랐고, 그제서야 왼쪽 3미터 밖에 그를 등진 채 가부좌를 틀고 있는 백의 술사를 발견했다…….

‘됐어. 신분이 밝혀졌어, 양천환.’

이 자식은 허칠안이 뒷모습만 보고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남자다.

그는 바로 반응하는 대신 몇 초 동안 적절한 어휘를 생각하더니 말을 건넸다.

“저희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양천환의 경쾌한 어조는 그의 기분이 아주 좋음을 드러내 보였다.

“경성으로 돌아가는 길이네. 아, 아니지. 물 위일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