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전투 태세
양천남과 이묘진은 백제성을 접수한 후에 군대를 이끌고 오성 병마사를 포위했다. 위로는 정6품 ‘지휘’부터 아래로는 하급 관리까지 모조리 전부 체포했다.
그런 뒤 장 순무는 백제성에 품계가 있는 모든 관원을 강제로 불러 모아 백의 술사에게 하나하나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송장보 역적 무리 34명에 오성 병마사 관원과 하급 관리 및 포로로 잡힌 병사들 총 408명을 적발했다.
장 순무는 후속 신문 없이 수감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역적 무리를 형벌대로 호송했다. 순무가 편리하게 일을 처리할 권한은 있지만, 부정 관리를 사사로이 참수하는 건 그 권한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비상시기인 만큼 그 이상의 행동은 사후에 역적을 말끔히 소탕하는 걸로 설명할 수 있다. 장 순무가 운주의 반란을 평정하기만 하면 조정에서는 그에게 포상을 내릴 것이다.
형벌대에는 죽은 사람의 머리가 굴러다니며 피바다를 이루었다.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율중에게 헤드샷 한 방 맞은 몽무의 말에 따르면 역적 무리의 계획은 먼저 순무를 죽이고 백제성을 빼앗은 후 산적과 힘을 합쳐 운주를 함락시키는 것이다.
장 순무는 이미 신사(信使)를 각 부 군현에 파견하여 현지 위소에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산적의 습격을 경계하도록 했다.
이묘진과 양천남은 성을 지키는 일에 만전을 기했다. 민병을 징발하고, 성을 지키는 데 필요한 무기를 운반하고 수리하면서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밤중이 되어도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파견한 척후병도 돌아와서 보고하지 않았다.
* * *
남문, 성벽 위에 세워진 옹성 안.
장 순무, 강율중, 양천남, 이묘진은 탁자에 앉아 공무를 논의했다. 강율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성방도(城防圖)를 주시하며 연구했다.
이묘진은 침잠한 표정을 한 채 침묵했다.
장 순무가 그들 둘을 힐끗 보고, 마지막으로는 양천남을 보더니 겸손하게 가르침을 청했다.
“도지휘사 대인, 군사 반란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산적이 거사를 취소한 거 아니오?”
그는 지식인이다. 비록 몇 년 동안 병법도 공부한 적이 있지만, 탁상공론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자리에 있는 두 무사와 도문의 제자 모두 경험이 풍부하고 용맹한 장군급 인물이다.
양천남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간혹 가슴에 통증이 밀려왔다.
다행히 그는 장군감이었다. 수련은 잠시 접었지만, 전쟁터에서 군대를 배치하는 능력은 개인적인 무력보다 더 중요했다.
‘필요할 땐 도지휘사 대인이라고 부르고 쓸모없을 땐 말끝마다 반역자라고 하고 말이야. 재수 없네.’
양천남은 속으로 장 순무를 비난했지만 겉으로는 점잖고 엄숙하게 말했다.
“여러 노선으로 전투하다 보면, 소식을 전달하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백제성을 침략한 군대가 소식을 들었다 해도 제각기 위치한 나머지 병력이 동시에 소식을 전달받기란 불가능하죠. 만약 정말 그 몽무가 말한 대로라면 본래는 현재 각 부 군현에서 이미 전쟁이 발발했어야 합니다. 한 시진만 더 기다리시죠. 만약 반란군이 백제성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저희가 출병하여 각 군현을 지원하겠습니다.”
양천남은 친분이 두터운 비연 여협객을 보며 말했다.
“묘진, 자네는 어떻게 보는가? 묘진, 묘진…….”
이묘진이 ‘아’하더니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반문했다.
“무슨 일을?”
양천남은 문제를 다시 한번 읊어주더니 배려하며 말했다.
“자네 왜 그러는가?”
“아무것도 아닐세.”
이묘진은 고개를 저었다. 머릿속에 또 그 젊은 동라가 떠올랐다. 그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정원 입구를 지키던 장면이 떠올랐다.
비장하고 처참했다.
하지만 이묘진이 진정으로 잊지 못하는 건 단순한 장면이 준 충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색을 밝히고 뻔뻔한 줄 알았던 그 남자가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모두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머지 동라들이 토납으로 상처를 치료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진정으로 나선 건 그 호색가였다.
엄청난 대비가 주는 충격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법이다.
이묘진은 그가 칼을 짚고 서 있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좀 불편했다. 어쩌면 그녀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오늘의 그 장면을 선명히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천환은?”
장 순무가 물었다.
“갔습니다. 그를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강율중이 말했다.
그는 양천남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부하 셋의 희생을 떠올리기만 하면, 강율중은 분노의 감정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증오하다 보니 양천환에게도 화가 옮겨 갔다.
비록 양천환이 간결하게 해명했지만 말이다.
자책과 후회는 그를 아주 오랫동안 따라다닐 터였다. 그는 세월이 흐르며 마음의 매듭이 풀려야만 자신과 ‘마주하고 웃으면서’ 과거를 던져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왜 운주에 온 것인가?”
장 순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강율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율중이 귓바퀴를 움직이더니 고개를 돌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장막을 바라보았다. 이묘진도 그를 따라 1초 늦게 고개를 돌렸다.
“왔습니다!”
강율중이 나지막이 말했다.
모든 이가 즉시 옹성을 뛰쳐나와 성벽에 이르러 멀리 내다보니,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불빛이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불빛은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우우우…… 둥둥둥…….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적막한 겨울밤에 동시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성가퀴에 기대어 졸던 병사들이 놀라서 깨어났다. 그들은 곁에 있는 창, 활, 방패 등의 무기를 쥐고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이묘진은 담 꼭대기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뜬 채 먼 곳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두려움에 떨며 소리쳤다.
“조심해!”
말을 마치자마자 은빛 한 줄기가 허공을 뚫고 날아왔다. 창끝이 공기와 마찰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4품 무사! 게다가 전봉의 4품 무사다!’
이묘진은 아연실색하여 경직됐다.
‘운주에 이런 품계의 고수가 있었다니? 산적에 이런 품계의 강자가 있던가?’
뒤이어 그녀를 놀라게 한 모습은 따로 있었다. 강율중은 자발적으로 마중 나가 여유롭게 손을 뻗어 은색 창을 받았다. 강적을 대응할 때 갖춰야 하는 엄숙함과 경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 의외라고 생각된 부분은 포악하기 그지없는 그 은색 창이 실질적으로는 아주 무력하게 자발적으로 강율중의 손으로 향했다는 것이었다.
이묘진이 눈여겨보니 이는 아주 무거운 은색 창이었다. 창은 은색 칠이 얼룩덜룩하여 세월의 풍파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창끝은 차갑고 매서웠으며 채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있었다.
그녀가 든 평범한 은색 창에 비하면 이 창은 진정한 전투병과도 같았다.
이묘진의 최애 무기는 비검이었다. 창을 쓰는 주된 이유는 입대한 후에 신분에 걸맞은 무기를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먼 곳에서 ‘쿵’하는 굉음과 함께 그림자 하나가 수백 미터 밖에서 뛰어올라 공중에서 호선을 높이 그리며 성벽의 말길을 때려 부쉈다.
이자는 가슴에 금라를 수놓은 검은색 야경꾼 차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차갑게 굳은 표정은 마치 조각한 듯했다.
“자네 어떻게 왔는가?”
강율중은 뜻밖의 출현에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은색 창을 내던졌다.
“의부님의 명령을 받들어 운주에 산적을 토벌하러 왔네.”
양연이 긴 창을 받으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장 순무는 어리둥절하더니 무언가를 파악한 듯 따져 물었다.
“위 공께서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하셨나?”
“의부님께서는 운주의 산적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니 제게 은밀히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양연이 말했다.
“저는 이미 수일 전에 운주 도처의 위소 병력을 은밀하게 장악했지요. 본래는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산적을 숙청할 계획이었으나 뜻밖에도 오늘 해 질 무렵 몇몇 산적 패거리가 사방에서 난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방금 대오를 이끌고 토벌했고, 백제성에 큰일이 났을 거라 짐작하여 바로 달려온 것이지요. 백제성 60리 밖에서 2천 명의 대군과 마주쳐 막 죽이고 오는 길입니다.”
이묘진은 창끝을 주시했다.
‘어쩐지 핏자국이 있더라니.’
장 순무는 한시름 내려놓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공개적인 장소에 둔 바둑알일 뿐, 위 공은 은밀하게 다른 인력을 배치했던 것이다.
양연은 모든 사람을 훑어보았다. 그는 군중 속을 한 번 더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허칠안은?”
장 순무의 안색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리고 강율중의 눈에 어린 놀라움과 기쁨은 점점 사라졌다.
양연은 가슴이 철렁했다. 원래도 안면 신경 마비인 얼굴이 점점 더 차갑게 굳어졌다.
“그는…….”
장 순무가 슬픔이 서린 눈으로 말했다.
“그는, 전사했네.”
이묘진은 고개를 살짝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철컥……. 양연 발밑에 있던 벽돌이 갑자기 갈라지면서 기기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이 금라가 감정을 다루지 못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의 눈동자는 칼처럼 날카로웠다. 일 년 내내 안면 신경 마비인 얼굴이 보기 드물게 일그러졌다. 그는 이 사이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떻게 죽었습니까?”
장 순무는 오늘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양연에게 알렸다. 마지막으로 허칠안이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버티며 물러서지 않았다고 말할 때 순무 대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몸에 31개의 화살을 맞았고, 자상은 60여 군데나 있었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서서 물러서지 않았네……. 천금과도 같은 약속이야, 천금과도 같은…….”
강율중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그는 장 순무가 슬피 통곡하는 모습을 보며 참지 못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제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양연은 손에 든 긴 창을 예고 없이 휘둘렀다. 그러자 창대가 구부러지며 강율중의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쳤다.
퍽!
하늘과 땅 사이에 큰 종소리와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강율중은 성가퀴에 부딪쳐 튕겨 나갔다.
양연은 한 발로 힘주어 성벽 꼭대기를 밟고 하늘로 솟구쳤다. 포효 소리가 아득히 울려 퍼졌다.
“강율중, 이 쓸모없는 자식. 이 몸이 오늘 너를 죽이고 말겠다!”
* * *
역참 안, 대청.
몸에 흰 천을 덮은 허칠안과 은라 셋 그리고 동라 한 명의 시체가 대청 정중앙에 안치되어 있었다.
허칠안의 몸에 박힌 화살은 이미 다 빼냈고, 피범벅 된 얼굴 역시 깨끗하게 씻겼다. 깊은 밤, 송정풍과 주광효는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약속이나 한 듯 내려와 의자 두 개를 가져와서 허칠안 양옆에 앉았다.
그들은 말없이 묵묵히 앉아서 함께했다.
남자의 슬픔은 침묵이다.
그러던 송정풍이 두 마디 말을 건넸다.
“자네 곁에서 수령(*守靈: 초상 중에 관 곁에서 밤새우는 일)하는 셈 치게. 다음 생에도 형제로 만나세.”
주광효도 한 마디 했다.
“마지막에는 결국 우리 두 사람뿐이네.”
촛불이 점점 끝까지 타 들어가고, 촛농이 한 방울씩 떨어지며 굳어졌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이렇게 슬픈 분위기 속에 더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역참 밖에서 낮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양연을 필두로 한 야경꾼들이 역참에 왔다. 양 금라는 방금 대전을 한 차례 치른 듯 몰골이 딱했다.
뒤로는 그를 따라 운주에 온 은라 몇몇이 있었는데 송정풍과 주광효도 모두 아는 자들이었다.
허칠안 역시 아는 사람들로 예를 들면 일찍이 함께 상백 사건을 조사했던 민산과 양봉, 또 예를 들자면…… 세 사람의 직속 상관인 이옥춘이 있었다.
이옥춘은 이때 정말 산송장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천천히 허칠안에게 걸어갔다. 고작 십여 걸음일 뿐이었지만 마치 가시덤불 위를 걷는 것처럼 한 발자국 뗄 때마다 가슴을 찌를 듯이 아팠다.
이옥춘은 손을 뻗어 흰 천을 들췄다.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