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확신
“저 이제 어떡해야 하나요? 저 살 수 있나요? 환생해야 하나요, 아니면 재생해야 하나요? 이 세계에 윤회가 있나요?”
허칠안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모든 감정을 억누른 채 예쁘고 좋은 말로 신수 승려와 상의했다.
일이 이미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얼굴을 붉혀봤자 소용없었다. 그는 망한 미래를 어떻게 직면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이건 쫀 게 아니라 어른들의 사고방식이다.
허칠안은 환생과 재생이라는 두 가지 선택 중에 후자에 더 기울었다. 환생은 필경 아주 긴 시간을 필요로 할 테니까.
한 성인의 영혼을 신생아의 몸에 묶어 두면, 몇 년 되지 않아 그는 너무 무료해서 미쳐 버릴 것이다.
허칠안이 끊임없이 상상을 할 때 신수 승려가 눈을 뜨고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 나를 탓하는 것 같군?”
‘아니, 널 탓하지 않아. 내가 사람을 잘못 믿은 걸 탓할 뿐이지…….’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자네 무사 체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신수 승려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허칠안은 생각해 보았다.
신수 대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시하고 태연하게 말했다.
“무사는 자신을 단련하여 인력으로 천지의 힘에 대항하네. 이 ‘신(身)’은 육신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라 정(精)․기(氣)․신(神) 삼자가 일체하는 것이네.”
허칠안은 문득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대사께서 상백에 오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지만, 원신이 여전히 소멸하지 않은 게 바로 이 이치군요?”
‘이래야 합리적이지 않은가. 만약 육신만 단련한다면 무사의 단점 역시 너무 분명하지 않은가. 도문처럼 원신만을 수련하는 체계가 언제든지 무사의 영혼을 빼앗을 수 있지 않겠는가? 무사는 비록 각 체계처럼 겉만 번지르르해도, 후반부에는 가장 안정적으로 보인다. 적어도 도문보다는 안정적이다. 도문 삼종이 모두 어떤 꼬락서니인지 좀 봐라. 뭘 하든 안 된다더니 일등을 무너뜨렸다.’
신수 승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3품 이하의 무사는 육신 단련과 연기 토납이 주네. 유일하게 7품 연신경만이 원신을 단련하지.”
허칠안은 여기까지 듣고는 갑자기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정(精)․기(氣)․신(神) 삼자의 비율이 서로 같은데 왜 7품 품계만이 원신을 단련하는 것인가?’
“자네 이제 연신경의 중요성을 알았겠지.”
신수 승려가 설명했다.
“평범한 무사의 연신은 단지 초보적으로 극한을 탐색하지. 이는 하등일세. 궁지에 몰렸을 때 끊임없이 한계를 돌파하는 건 상등이네. 자네가 이 단계에서 닦은 기초가 튼튼할수록 앞으로 고품에 이르렀을 때 자네의 내실이 더 단단해질 걸세.”
“대사, 7품 연신은 어느 품계를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겁니까?”
허칠안의 마음이 동요했다.
“2품 합도(合道)네.”
‘나한테는 너무 요원한 일이야. 내 평생 그 높이에 이를 수 있는지 아직 장담할 수도 없는데…….’
허칠안은 속으로 부정하며 말했다.
“이치가 이렇다 해도 하지만 저는 결국 죽었잖습니까.”
그는 허무맹랑한 2품의 기초를 닦기 위해 쓸데없이 목숨을 내놓는 건 너무 손해라고 생각했다.
“향사이생. 죽지 않는데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겠는가?”
신수 승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환생합니까 아니면 재생합니까?”
허칠안이 캐물은 뒤 나지막이 말했다.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재생하길 원합니다. 그리 큰 요구 조건은 없습니다. 음, 우선 외모가 아주 준수했으면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혁혁한 가문의 적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면 합니다. 물론, 수련 품계는 연기경이 가장 좋겠지요. 연정경은 절대 안 됩니다. 저는 예전처럼 손으로 가슴만 쓸어내리며 길게 탄식하는 고생스러운 나날을 다시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신수 승려는 그의 요구를 무시했다. 그는 만고불변의 인자함을 새긴 얼굴을 한 채 말했다.
“3품 무사는 사지를 절단하여 재생할 수 있어 죽이기 어렵고, 가장 높은 경지까지 수련하여 불사불멸이라 불리네. 빈승은 운이 좋게 이 경지에 이르렀지.”
허칠안은 마음이 동요하여 신수 승려의 말을 들었다.
“자네가 죽기 전에 내가 자네의 마지막 생명력을 빼앗아 보존하고, 내가 자네의 몸을 빌려 불완전한 몸을 온양하면 자네에게 되돌려줄 수 있네. 빈승이 자네에게 정혈을 한 방울 줄 테니 이걸 정제시키면 기사회생할 수 있을 걸세.”
‘그럼 한 줄기 생명력이 바로 지금의 나라는 말인가……? 그래서 내가 이곳에 나타난 건가?’
허칠안이 물었다.
“감사합니다, 대사. 그럼 저는 언제 되살아날 수 있나요?”
“이건 아주 긴 과정이네.”
신수 승려가 말했다.
‘이 세계에서 화장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숙부와 숙모가 헛되이 키웠다며 태평소 소리를 울렸겠지……. 어쩐지 신수 대사가 나서서 나를 구하지 않았다 했어. 알고 보니 향사이생이 이 뜻이었군……. 진작 말하지 그랬어? 내가 그때 구호를 몇 마디 더 외쳐서 확실하게 허세 부릴 수 있었는데…….’
허칠안은 자신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자 기분이 맑고 유쾌해졌다.
* * *
성 밖!
비열한 무사들이 정면에서 달려들자 몽무는 숨이 막혔다. 그는 마치 산사태와 해일을 직면한 것 같았다.
이때 당혹스러움과 뉘우침은 모두 쓸모없는 감정이었다. 적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그의 유일한 살길이었다.
몽무가 두 손으로 날인하고, 입으로 주문을 외자 그의 몸에서 눈을 자극하는 혈광(血光)이 솟구치며 기운이 점차 올라갔다.
혈령술(血靈術)은 정혈을 태우는 대가로 전투력을 일시적으로 향상시킨다.
강율중의 유일무이한 주먹이 나갔다.
몽무는 주먹으로 맞받아쳤다.
두 주먹이 한 데 부딪혔다. 맨 처음 그 순간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으나 몇 초 뒤 우렁찬 천둥이 쾅쾅 치는 것처럼 소리가 크게 울렸다.
두 사람 발밑의 지면이 동시에 가라앉았다. 먼지가 순식간에 일어나 원을 그리며 수백 미터를 뒤덮었다.
양천환은 재빨리 피해 아주 촉박하게 한 발로 땅을 디뎠다. 진문이 하나씩 빛나면서 보호벽이 되었지만, 바로 잇따라 산산이 조각났다.
허세왕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그는 등을 마차에 심하게 부딪혀서 고통스러움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참았다. 그런 행동은 그의 신분에 걸맞지 않았다.
퍽퍽……!
이후에 또 두 주먹이 날아왔다. 몽무는 혈광을 내뿜었고 머리 위로는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그는 마치 포탄처럼 거꾸로 날아갔다.
강율중은 이미 분노로 이성을 잃었다. 지금의 그는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무사의 심경과 일치했다. 그는 미친 듯이 싸우는 동안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갑자기 강율중의 머릿속에 강철 못을 박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칼로 심장을 두 덩이로 가른 듯했다. 그는 ‘와’하며 피를 토해냈다. 그는 갑자기 닥쳐온 이변 탓에 계속해서 추격할 수 없었다.
‘주살술!’
방금 그 순간 몽무는 그의 옷자락 한쪽을 훔쳐 갔다. 그가 휴대 물건으로 주살술을 부린 것이다.
만약 저품 무사라면 이미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고품 무사와의 대전 중에 이런 교란은 거의 승패를 좌지우지한다고 할 수 있었다. 승리할 기회는 바로 그 순간에 있다. 하지만 몽무는 상대가 무사이므로 이 기회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동피철골.
모든 체계는 무사를 아주 싫어한다. 다들 그들을 저속한 날것이라 생각한다. 무사는 수법이 단조롭거나 폭력을 행사할 줄밖에 모른다. 또 무사는 죽이기도 어렵다.
당신이 무사를 죽이지 못한다면 천천히 괴롭히는 방법밖에 없다.
게다가 당신이 한 번 실수하기만 해도 그들은 당신의 골을 빼낼 것이다.
그들은 아마 당신의 두정골을 열어젖혀 뇌를 한 번 보고 실망하여 가버릴 것이다.
‘퉤, 비열한 무사 같으니라고.’
주살술의 효력이 발생하자 몽무는 재빨리 물러나 먼 곳으로 달아나 숨었다.
펑!
그는 뒤이어 무형의 벽에 부딪혔다.
“양천환!”
몽무는 분노에 차 울부짖었다.
“내가 정통한 진법 중에 여섯 가지는 적을 묶어 두는 진술이야. 너 어서 진을 격파해야지. 아직 진법 다섯 개가 기다리고 있다고.”
양천환이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나 몽무를 등졌다.
뒷모습만 보면 누구라도 이 광경에 감탄할 법했다.
‘속세를 뛰어넘는 고수다!’
몽무가 진을 격파할 기회가 사라졌다. 강율중이 돌격하여 방금 날린 주먹 세 차례에 전혼이 무너졌고, 이때의 몽무는 더 이상 ‘무사’가 아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근거리 몸싸움을 논하자면 각 체계에서 무사 앞에 있는 건 부모뿐이다.
퍽! 강율중이 주먹으로 몽무의 얼굴을 때렸다. 그러자 머리가 터지면서 부서진 붉고 하얀 뼛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머리 없는 시체는 갑자기 뻣뻣해지더니 천천히 생기를 잃어 갔다.
“개새끼, 개새끼…….”
삿된 모습이 허공에 나타나 일그러진 얼굴로 강율중과 양천환을 내려다보았다.
그건 몽무의 원신이었다. 고품 무사는 죽은 후에 원신이 수일 동안 머무를 수 있다. 더군다나 원신의 영역에서 주술사는 도문에 버금간다.
“이 새끼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양천환이 물었다.
강율중이 고개를 저었다.
“원신은 어쩔 수 없네. 그를 죽여도 죽지 않을 걸세. 더욱이 그를 묶어 두지 못하지.”
만약 육신이라면 주먹 한 방으로 쳐 죽이겠지만, 원신은 특수한 편이라 주먹의 공격에 면역되어 있다. 기기를 뒤흔들면 확실히 원신에게 해를 입힐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이때 만약 주술사의 원신이 도망가려 한다면 강율중은 손 쓸 방법이 없다.
양천환은 거만하게 말했다.
“내가 그를 잡아둘 수 있네! 성안에 있는 한 소저가 천종의 사람일세. 그녀에게 이 귀신을 다룰 방법이 있을 걸세.”
말을 마치자 그는 느긋하게 말했다.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쿵!
원신의 힘이 제멋대로 솟구치더니 몽무가 자폭했다.
강율중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백의 술사를 주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가 자폭했네.”
“……지나치게 성미가 급하군.”
양천환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자네가 헛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시기를 놓친 게 문제의 핵심 아니겠나?”
“이만 물러가겠네!”
“양천환……!”
강율중이 크게 소리쳤지만 백의 술사는 이미 사라진 뒤라 그는 뒤의 말을 내뱉지 않았다.
허칠안이 희생됐다.
* * *
깊은 밤, 역참에는 비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밝은 촛불이 어둠을 몰아냈지만, 사람들 마음속 그늘은 비추지 못했다.
지금은 자시(子時) 삼각으로 중상을 입은 동라들이 남아 역참을 지켰다. 순무 대인은 자리에 없었다. 양천남 역시 없었는데 그는 풀려났기 때문이었다.
순무 대인이 직접 석방했다.
무표정이었던 장 순무가 아주 난처해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장 순무는 그의 앞에 이르러 공을 세워 죄를 면하길 원하냐고 물었다.
양천남은 즉시 응했다. 서둘러 죄를 벗으려는 게 아니었다. 이 순간 양 도지휘사는 이 지식인의 눈빛에서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폭풍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양천남은 이에 즉시 역참을 떠나 명령에 따라 위사 군대를 동원하여 입성했다. 그는 비연군과 협조하여 나머지 세 성문의 반란군을 토벌하였다.
주광효와 송정풍은 반란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몸소 앞장서서 거리낌 없이 마구 죽였다. 그들은 몸에 여러 발의 화살을 맞고선 어쩔 수 없이 역참으로 돌아와 상처를 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