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39화 (239/712)

239화. 허칠안의 희생 (3)

허칠안은 단번에 50명의 목을 벤 후 첫 번째 한계에 다다랐다. 체내의 기기가 고갈되어 두 눈이 핑 돌고 정신이 마치 마른 연못 같았다. 그는 곧 기절할 것 같았다.

그는 이 한계를 견뎌 낸 뒤 이상한 걸 발견했다. 마른 연못에 새 샘물이 솟구쳐 원신에 영양을 공급했다.

주변의 경물이 선명하게 변했다. 병사들의 흉악한 얼표정, 불룩 솟아오른 근육, 군도를 휘두르며 그은 흔적…….

이 모든 세세한 것들이 정확하게 포착되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게 바로 연신경? 주위의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다는 연신경인가? 아니, 아직 한계에 이르지 않았으니 계속해서 돌파할 수 있다. 향사이생(向死而生)!’

허칠안은 갑자기 신수 승려의 뜻을 이해했다.

계속해서 잠을 자지 않고 원신을 쥐어짜 내는 것 자체가 바로 향사이생(向死而生)이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원신을 철 분자에 비유하자면, 보통 무사가 연신경으로 승직하는 일은 쇠망치로 그 철 분자를 한 번 내리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반면 허칠안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원신을 반복해서 내리쳐 단련시키며 생사의 경계에서 한 번씩 한 번씩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다.

그는 100명의 목을 베었을 때 다시 한계에 부딪혔다. 그가 억지로 버텨 내니 새 샘이 콸콸 솟아올라 정신력이 다시금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안 되겠다, 더는 못 버티겠다……. 거지 같은 승려. 이 몸의 목숨을 네게 맡길 테니 나를 농락하지 마라……. 이 몸은 아직도 경성에 알아주는 사람들이 한 트럭 있거든…….”

단번에 200명의 목을 베어 죽인 후, 새 샘이 더는 솟아나지 않았다. 허칠안은 힘을 다 써 버려 죽었다.

원신의 비약적인 성장은 육신과 전혀 상관없었다. 그가 한 번씩 원신을 짜낼 때마다 사실은 한 번씩 육신을 짜낸 것과 같았다. 원신은 솟아날 새 샘이 있지만 육신은 없었다.

이 살신(殺神)이 드디어 칼부림을 멈추고 선 채로 멈췄다. 그러나 반란군은 계속해서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군도를 쥐고 흉악한 얼굴로 경계하며 죽임을 당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화살로 그를 쏴 보자.”

군중 속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펑……. 활시위가 진동하며 화살이 격렬하게 발사됐다. 체력을 다해서인지 정신적으로 긴장해서인지 모르겠으나 본래 미간을 겨냥한 화살이 빗나가면서 허칠안의 머리를 스치고 날아갔다.

하지만 반란군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가 죽었다, 그가 죽었어……. 하하하하, 이 개새끼 드디어 죽었군!”

“그를 잘게 다지자. 잘게 다져서 형제들의 복수를 해주자!”

반란군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때, 비검이 공중을 뚫고 날아와 둘러싼 무리를 그었고 가장 앞에 있던 병사 몇 명을 베었다.

이어 신마 같은 무사 넷이 담벼락을 부수더니 무장한 병사를 이끌고 돌격해왔다.

이때 반란군은 삼백여 명이 더 있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괴상한 군대를 상대하기엔 부추보다도 나을 게 없었다. 병사들은 목숨을 한 가닥씩 잃어가며 하나씩 쓰러져갔다. 짙은 피비린내가 역하게 번졌다.

비연군은 반란군을 완전히 제거한 뒤 한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정원 입구에 한 소년이 온몸에 화살이 꽂힌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 발밑에는 시체가 나뒹굴었는데, 그는 시체 더미 위에 서서 칼을 짚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을 잃었다.

이묘진은 선홍색 피풍을 걸친 채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은 좀 쓸쓸해 보였다.

이묘진은 본래 원한과 분노로 가득 차 허칠안을 다시 만나면 반드시 호되게 나무라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이 순간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린 듯했다.

이묘진이 탄식하며 말했다.

“미안하네, 늦었네.”

“묘진…….”

백부장 한 명이 걸어오다가 시선을 허칠안에게 보냈다.

그는 제 자리에 곧게 서서 비늘 갑옷을 부딪치며 허칠안을 향해 읍을 올렸다.

와르르르……. 비늘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가 한바탕 울리더니 사백여 명의 비연군이 동시에 일제히 읍을 올렸다.

그들은 정원 입구에 서 있는 이 소년이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순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들어가서 보거라.”

이묘진의 목소리는 다소 공허했다.

“네!”

백부장이 허칠안을 지나쳐 정원으로 내달렸다.

군중이 떠난 뒤 소소가 조용히 구석에 서서 얼이 빠진 모양으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바보예요……?”

* * *

쾅…….

백부장이 문을 열어젖히자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은 야경꾼들이 보였다. 그리고 다친 곳은 없지만 얼굴색이 창백한 장 순무도 보였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 절망한 기색이 드러났다.

백부장이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말했다.

“저 비연군의 백호 이호(李虎)입니다. 여러분을 구하러 왔습니다.”

‘비연군?!’

야경꾼들은 서로 쳐다봤다. 그들은 비연군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밖에서 들리던 살벌한 소리는 확실히 멈춘 듯했다.

그들은 구조되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후…….”

장 순무는 비틀거리며 팽팽하게 당긴 근육을 드디어 느슨하게 풀었다. 그는 넘어지지 않게 힘껏 탁자를 짚었다.

“칠안은…….”

장 순무가 물었다.

“밖에 그, 그 동라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야경꾼들이 일제히 쳐다봤다.

백호가 재빨리 물러났다. 그는 그들의 눈빛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희망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그는…… 전사했습니다.”

* * *

장 순무는 허겁지겁 대당을 뛰쳐나와 정원을 통과하여 허칠안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처참하게 훼손된 사람의 모습이었다. 허칠안은 온몸에 화살이 박혀 있었고, 자상이 가득해 어떠한 생명의 흔적도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의 귓가에 소년의 마지막 노래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소년의 의협심이 오도웅(五都雄)과 만났네. 간담이 서늘해지고 털이 곧추서네.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생사를 같이 하네. 천금과도 같은 약속 꼭 지키세.’

‘천금과도 같은 약속…….’

이 순간 순무 대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 * *

성 밖에서 수차례 상노(床弩)의 집중사격으로 활시위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화포가 발사되면서 나는 소리는 귀가 멀 정도로 웅장했다.

양천환의 발밑에는 진문이 여러 차례 빛났다. 기능이 각자 달랐는데 어떤 때는 광풍으로 화살을 에워싸서 관통력을 증가시키거나 운행 규칙을 바꿔 적을 추격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화염을 몰고 와 포탄의 폭발 위력을 증가시켰고, 어떤 때는 순전히 벼락을 몰고 와 적을 폭격하여 죽였다.

“나는 서른여섯 가지의 진법에 정통했지. 그중 스무 가지는 공격하여 죽이는 진술이야. 너 같은 개미를 죽이는 건 아주 짧은 시간이면 돼.”

양천환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하지만 네가 만약 그 말을 취소한다면…….”

“무슨 말?”

몽무는 이미 여러 차례 전혼을 소환한 터라 궁지에 몰렸다. 그의 전투력은 뛰어났지만, 진법 전송(傳送)을 터득한 양천환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네가 방금 말하길 네 손에서 사람을 구해내고 싶어도 아직 자격이 부족하다며. 남자여, 내 분노를 야기하는 데 성공했구나.”

“취소하면 어쩔 거고 취소하지 않으면 어쩔 테냐?”

“취소하면 네 시신을 남겨 두고, 취소하지 않으면 재로 만들어 버리겠다. 너희 주술사는 공격하여 죽이는 데 능하지 않으니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전쟁터야말로 주술사의 경기장이지. 여기만큼은 내 마음대로 한다.”

“너도 마찬가지로 막지 못할 것이다.”

몽무가 허공에 손바닥을 두고 치자 포탄이 터졌다. 그러면서 그는 광란의 충격파에 밀려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입가에서는 피가 스며져 나왔다.

“이제 장 순무와 강율중도 죽었으니 산속에서 대기하는 대군이 오면, 너 역시 기가 꺾여 경성으로 도망치는 길밖에는 없을 것이다.”

몽무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자 심장이 갑자기 뛰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고, 뒷걸음질 치며 손을 꼽아 운산(運算)했다.

괘사에게 있어 심장이 뛰는 건 저승의 전조를 의미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몽무는 실성하여 소리쳤다.

그는 위험을 점쳤다. 위험은 강율중에게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는 본래 죽었어야 했다. 그는 아무런 생명력이 없어야 했다.

그는 행동하기 전에 점을 쳤다. 점괘는 오늘 아주 순조로울 거라고 했다. 허나 지금 다시 점을 쳐 보니 모든 것이 이미 다르게 변해 있었다.

점괘는 대흉의 징조를 보였다.

‘누가 천기를 차단했는가?’

쾅쾅쾅…….

지평선 끝에서 한 줄기의 그림자가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는 방금 전까지 요원한 하늘가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눈앞에까지 다가왔다.

그는 얼굴이 흉악하고 두 눈이 시뻘건 강율중이었다.

난폭한 기기가 해조처럼 넘실거리며 주인의 끝없는 분노를 명백히 드러냈다.

* * *

역참, 대청.

송정풍과 주광효가 대청을 지켰으며, 위층에서는 동라 한 명만이 남아 범인을 감시했다.

두 사람의 패도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채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이미 반 시진 째 유지했다.

갑자기 두 사람의 귓바퀴가 일제히 움직였다. 곧 마차 바퀴가 덜커덩덜커덩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역참 입구에 마차가 멈췄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패도를 잡고 달려 나갔는데 뜰에서 장 순무를 보았다. 동라들과 이묘진도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칠안은요? 허칠안은요?”

송정풍이 무리를 두리번거렸으나 동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밖에 있네.”

한 동라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송정풍은 가슴이 ‘철렁’했고,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는 역참 밖 마차 안의 허칠안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도포가 덮여 있었다. 송정풍이 그가 칠안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남다른 칼 때문이었다.

송정풍은 떨리는 손을 내밀어 도포를 끌어당겼다.

반 시진 전까지만 해도 팔팔했던 동료가 지금은 표정이 사라졌다. 그의 표정은 영원히 사라졌다.

송정풍은 그곳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아마도 5~6초가 흐른 듯했다. 그가 갑자기 ‘아……’하고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했다.

“상심하지 말게…….”

눈물을 머금은 동라 한 명이 걸어왔다.

“꺼져!”

주광효는 괜히 그를 걷어차 날려 보냈다.

송정풍은 여전히 그곳에 서서 슬피 울부짖었다.

“미친, 너나 상심하지 마. 이 몸이 형제를 잃었는데 상심하지 말라니……. 내 형제를 돌려줘, 내 형제를 돌려달라고……. 엉엉엉…….”

* * *

허칠안은 희뿌연 세계에서 그 절과 다시 만났다. 절에는 미모가 수려한 젊은 승려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대사…….”

허칠안은 슬프고 분했다.

“저 죽은 것 같습니다. 저 대사 일가의 조상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데 괜찮으실는지요?”

허칠안은 매우 분노했다. 누구라도 이런 일을 맞닥뜨리면 분노할 것이다.

허칠안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지 못했더라면 진작에 앞으로 나서서 골칫거리를 만들었을 터였다. 그는 한 손으로 승려의 멱살을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손바닥을 휘둘러 내리치며 물었을 것이다.

“나를 구해주기로 얘기된 거 아니었어? 바보 같은 새끼. 내 목숨 돌려내! 이 쓰레기 같은 승려가 완전히 내 신임을 저버렸다고. 내가 너한테 몸을 바치면 네가 나를 도와 적을 죽이기로 얘기된 거 아니야? 비록 우리 둘이 구두로 협의했지만, 계약 정신 좀 챙길 수 없겠니?”

이때 허칠안은 아주 제격인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내 사랑을 팔았으니 넌 양심의 빚을 진 거야. 결국 진실을 알았으니 나는 눈물만 흐르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