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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38화 (238/712)

238화. 허칠안의 희생 (2)

서성 문, 은빛 한 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성벽에 쾅 박혔다. 산산조각 난 벽돌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먼지가 일었다.

비늘 연갑옷에 높게 묶은 포니테일 그리고 몸에 걸친 선홍색의 피풍이 마구 휘날렸다. 이묘진은 창대 위에 서서 활시위에 화살을 건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이묘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성문을 왜 닫은 것이냐?”

‘삼호…… 허칠안 그 쌍놈의 말이 맞군.’

성문은 진짜 닫혀 있었다. 하지만 이묘진은 경솔하게 성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직접 가서 물었다.

“쨍…….”

한 장군이 칼을 뽑아 들고 이묘진을 가리켰다.

“살인은 용서를 구할 수 없는 법.”

‘변명하지 않고 바로 행동을 개시하다니. 그럼 더는 할 말이 없겠군.’

이묘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붕붕…… 활시위가 진동하면서 나는 맑은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화살이 이묘진에게 발사됐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가 비단 주머니를 탁 치니 음풍(陰風)이 뚫고 나와 화살을 휘감았고 화살의 비행 규칙을 변화시켰다.

화살은 이묘진을 스쳐 지나갔고, 궁수들은 한 발도 명중하지 못한 얼간이가 되었다.

쨍!

이묘진 허리춤의 비검(飛劍)이 칼집에서 나왔다. 비검은 은빛 번개가 되어 바람을 휙휙 가르며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목을 누볐고, 거리낌 없이 생명을 앗아갔다.

다그닥다그닥……. 빽빽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곧 비연군이 쏜살같이 달려와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동피철골경의 백부장(百夫長) 네 명이 연신경 십장(什長)을 이끌고 성벽 위로 돌진하였다. 그렇게 이묘진의 비검과 협력하여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주인님, 오랜만에 비검을 꺼내 드셨네요…….”

소소는 하늘하늘 창대 위로 내려와 뒤에서 이묘진의 허리를 안았다.

이 비검은 도문 천종이 이묘진에게 하사한 법기로 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칼자루에서 꺼낼 때마다 이묘진의 기분이 엉망임을 의미했다.

“나 너무 화가 나.”

이묘진이 말했다.

“순무 대인이 암살당한 것 때문이에요?”

“아니, 어떤 쌍놈 때문에.”

“…….”

소소는 예쁜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다 멈췄다.

‘자신이 천종의 성녀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천종의 주지(主旨)는 감정에 움직이지 않고,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아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온 요 몇 년간 이묘진은 점점 더 충동적으로 변했고, 갈수록 나쁜 놈을 증오했다.

그녀는 고집스럽게도 자신을 대중의 이익을 위해 열성을 다하고 의협심이 강한 비연 여협객으로 만들었다.

비연 여협객이란 칭호가 생긴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비검을 제비처럼 가뿐하게 다뤄 형태 없이 사람을 죽여서다. 그다음 이유는 그녀가 열정적이고 의협심이 강해 불공평한 일이 생기는 곳이면 어디든지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비연군은 다시 백전백승의 용맹한 전투력을 드러냈고 재빠르게 성벽 위의 수비를 제거했다. 이어 동피철골의 한 무사가 곧장 성문을 들이받아 열었다.

이묘진은 가볍게 뛰어올라 몸을 아래로 향한 뒤, 긴 창을 움켜쥐고 힘껏 뽑아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비연군은 그녀의 인솔하에 성안으로 돌격했다.

* * *

“지옥은 문이 없어도 스스로 찾아 들어가지.”

몽무가 잠시 허둥대더니 크게 웃기 시작했다.

찰카닥! 허칠안은 담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감정이 그에게 선물한 흑금장도를 쥐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지옥에 갈 인간은 바로 너야!”

“허칠안, 자네 뭐하러 왔는가?”

강율중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죽으려고 환장했나? 자네는 우리를 구하지 못해. 가, 어서 가게.”

‘내가 갈 수는 있는 거니……?’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그는 확실히 벗어날 수 없었다. 몽무가 그를 붙들어 놓고 서서히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의 검은 연기가 약간 뒤흔들리는 게 힘을 비축하는 듯했다.

“칠안, 자네…….”

장 순무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구태여 그래야겠는가.”

허칠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속으로 신수 승려와 소통했다.

“대사, 얼른 저를 도와 저자를 죽여 주십시오. 대사? 제기랄, 대사님 계시는 겁니까? 저 가지고 장난치지 마십시오. 대사 이 새끼가…….”

권강(拳罡)이 얼굴을 덮쳐왔고 귓가에서 거대한 힘이 울부짖었다.

그때, 탄식 소리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허칠안의 발밑에 진문이 밝아지더니 반투명한 보호벽이 솟아올랐다.

쾅!

기기가 보호벽 표면에서 폭발했다. 폭발음은 귀가 멀 정도로 컸다. 가장 먼저 지면에 깔린 푸른 벽돌이 위로 솟구쳐 올랐고 그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포정사사의 대당 반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긴 이명이 지나갔고, 허칠안은 강율중이 포효하는 소리를 들었다.

“양천환, 자네도 운주에 있었으면서 왜 수수방관한 겐가? 방금 왜 나서지 않은 건가?”

허칠안이 고개를 홱 돌리니 백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뒷짐을 지고 서서 그들을 등지고 있었다.

양천환의 등장에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 뒈질 놈, 드디어 왔구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허칠안은 진작에 양진태를 납치한 그 술사가 사천감의 어느 사형이라 의심했다. 또한 그가 양천환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 양 모 씨, 내 행동을 어째서 다른 이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양천환은 속으로 이 말을 떠올렸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한숨을 쉬더니 설명했다.

“나는 스승님의 명을 받들어 운주에 온 것이고 방금은 이곳에 있지 않았네.”

감정이 그에게 준 임무는 허칠안을 잘 보라는 것이었다.

허칠안이 있는 곳에 그가 있었다.

은라 몇 명이 해를 당할 때 그는 결코 현장에 있지 않았다.

“내가 자네들을 데리고 가겠네.”

양천환의 발밑에 진문이 퍼졌고, 허칠안과 장 순무 등의 사람들을 감쌌다.

“흥!”

몽무는 한 발로 진문을 밟아 깨트렸다.

“양천환. 본좌 손에서 구해 내고 싶어도 너는 아직 자격이 부족해.”

양천환이 대답했다.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시건방지군!”

몽무는 화가 난 듯 염소수염을 떨었다.

“갈 거야 말 거야?”

허칠안의 귓가에 양천환의 전음(傳音)이 울렸다.

“나는 자네만 데리고 갈 수 있네. 사람이 너무 많아. 진문이 형태를 갖출 수 없으면 깨질 것이야.”

허칠안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다른 방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저 자식을 데리고 가십시오.”

“밖에 반란군 수백 명이 있네.”

양천환이 경고했다.

“저도 압니다.”

허칠안이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양천환이 대답했다.

“알겠네.”

그는 있는 힘껏 발을 굴러 진문을 재빠르게 퍼트려 이번에는 몽무 한 사람만을 감쌌다. 그가 반응하자마자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 처리하십시오!”

허칠안은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 * *

허칠안은 두 은라의 시체를 대당으로 끌고 들어와 강율중 발끝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자네 오면 안 됐네.”

강율중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도 왔잖아…….’

허칠안은 드립을 치고 싶었지만, 입가에 맴돌던 말은 씁쓸한 웃음으로 변했다.

동라들은 서로 부축하며 내당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좌선하고 토납하며 부상을 치유했다.

강율중은 다행히 살아남은 동라들을 훑어봤다. 눈에는 기쁨과 안심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전투 소리가 이미 가까워졌고, 이로써 그는 모두가 위험 지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밖은 무슨 상황인가?”

장 순무는 대당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반란군이 사오백 명 더 있는 듯합니다. 제가 돌격해서 들어올 때 호분위는 이미 거의 전멸이었습니다.”

동라들이 눈을 떴다. 그들의 눈빛은 다 같았는데 모두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만하세, 그만…….”

장 순무는 쓴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재난을 빗겨 갈 수 없을 듯하네. 본관이 황은을 저버리고 위 공의 당부를 저버렸네.”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대인께서 저버린 건 죽은 이 은라 셋입니다.”

허칠안은 그를 쳐다봤고, 일어나서 문지방으로 걸어갔다.

“칠안, 자네 가게. 자네의 전투력이라면 후당(后堂)으로 나가면 벗어날 수 있을 걸세.”

강율중이 눈시울을 붉히며 재촉했다.

“꺼지게, 얼른. 이 몸은 오늘 부하와 함께 이곳에서 죽겠네. 자네는 위 공께서 중시하는 사람이니 여기서 죽는다면 위 공께서 내 무덤을 파헤칠 것이네.”

“희망이 있습니다. 버티기만 하면 지원군이 올 겁니다.”

허칠안의 시야에 이미 반란군의 모습이 보였다. 곧 그들이 쳐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장 순무를 향해 공수했다.

“순무 대인께서는 좋은 관리십니다. 비록 못된 심보도 갖고 계시지만, 속마음은 결국 백성을 가장 위하시지요. 저는 이 세계가 싫지만, 대인처럼 좋은 관리를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러니 대인께서 죽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는 이어 강율중을 향해 공수했다.

“강 금라는 좋은 상급자입니다. 교방사에서 기녀를 데리고 마시는 술에 정통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제가 다시 교방사에 모시고 가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기녀가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부향은 안 됩니다만.”

그는 은라 셋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이 생전에 어떠한 사람이었든 간에 적어도 죽을 때는 야경꾼이라는 세 글자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두 손을 맞잡아 머리끝까지 들었다.

“위 공께서 저를 대해 주심에 그 은혜가 태산과도 같습니다. 어느 방면으로든 특별 대우해주시죠. 복지를 누릴 도리가 없을 때는 가장 앞에서 나서 주시고, 위기를 맞닥뜨리면 또 뒤에서 움츠리게 해 주시니까요.”

그는 말을 마치고 대당의 문을 닫았다.

강율중은 감동 어린 표정을 지으며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칠안!”

한 동라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안 돼, 안 돼. 그는 연신경에 충격을 가하고 있어서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장 순무는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켰으나 약한 바람이 불어와 쓰러졌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일어나 허칠안의 뒷모습을 향해 깊이 읍하였다.

그들은 바깥의 상황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활이 발사되는 소리,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 요란하게 외치는 소리에 소년의 격앙된 노랫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소년의 의협심이 오도웅(五都雄)과 만났네. 간담이 서늘해지고 털이 곧추서네.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생사를 같이 하네. 천금과도 같은 약속 꼭 지키세.”

* * *

허칠안은 정원 입구를 지키며 날렵하게 칼을 휘둘렀다. 칼 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반란군이 한 명이 오면 한 명을 죽이고 둘이 오면 둘을 죽였다.

갑옷과 투구는 마치 종이로 붙인 것처럼 감정이 출품한 이 장도에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하물며 피와 살은 더했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그리고 그는 두 손이 피로 물드는 것에 두려움이 컸지만, 많이 죽이다 보니 무감각해졌다.

반란군은 보통 사람이 주였다. 이따금 연정경 고수가 몇 명 있기는 했다. 그러나 기기가 약하여 반쯤 연신경이 이른 허칠안에게는 사실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인해전술은 견디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상태는 정말 엉망이었다. 허칠안은 단번에 십여 명을 베어 죽인 후 점점 힘이 다해 갔다. 위가 뒤집어지고 손발이 저리고 의식을 잃어갔다.

가장 성가신 건 역시나 활이었다. 이 물건들로 빽빽하게 집중 사격하니 칼 한 자루로는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는 가슴에 법기 동라를 매고 있어 별거 아닌 칼과 창, 활에는 다치지 않았다. 허칠안은 가능한 한 갑자기 얼굴로 날아오는 화살은 쳐서 날려 버리고, 다른 부위는 놔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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