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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36화 (236/712)

236화. 몽무가 나타나다

허칠안은 마지막으로 옥석경을 쳐다봤다. 이호는 비웃지도 비난하지도 매도하지도 않고, 종잡을 수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좀 의외였으나 예상한 대로였다.

“그녀는 아마 그날도 떠올렸을 것이다. 순간 마음이 들떠서 한 말일 텐데. 이게 바로 모두 함께 죽는 장점이지.”

허칠안이 개탄했다.

이어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가다듬은 후에 의식의 바다에서 신수 승려를 불렀다.

“대사, 대사…….”

“대사, 소생 위기에 빠졌습니다. 대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수 승려를 한참 동안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허칠안은 좀 당황했다. 그가 용감하게 앞장서서 현장에 달려간 건 저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수 승려가 바로 그의 저력이었다.

애초에 두 사람은 간단한 규정을 만들어 상부상조하기로 약속했다. 허칠안이 단수를 온양하게 몸을 내어 주는 대신 신수 승려는 위기의 순간에 나서기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외주 업체가 도망친 것 같다?

“향사이생(向死而生).”

그의 머릿속에서 신수 대사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향사이생? 무슨 뜻이야? 이 대답은 나를 구한다는 거야, 아니면 구하지 않겠다는 거야?’

허칠안은 머릿속에서 신수와 소통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개 같은 승려는 다시 깊은 잠에 빠진 탓에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 * *

포정사사, 뒤뜰에서 ‘와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분위가 증거를 수색하는 소리였다. 장 순무와 강율중은 마당에 서 있었고, 운주 지부는 공손하게 옆에서 대기했다.

장 순무는 은은한 꽃향기를 맡았다. 매화와는 다른, 그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꽃향기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아주 쉽게 그 꽃을 찾았다. 순백의 꽃 한 송이인데 보기에는 길가의 야생화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내뿜는 그윽한 향기는 짙고 강했다.

“엄동설한에 꽃이 있다니?”

장 순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지부 대인이 듣더니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그는 시선을 거둔 뒤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마 무슨 특수한 품종인가 봅니다. 소직도 모릅니다. 하지만 송 포정사는…… 송 도둑놈은 꽃을 좋아하죠.”

장 순무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호분위는 유용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했다.

“이상하군…….”

장 순무가 미간을 찌푸렸다.

송부와 포정사 관아는 너무 깨끗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정리한 듯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송장보는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자였다. 다른 근거지가 있을 수도 있으니 증거를 수집하지 못하는 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을 보내 불러낸 관원들이 포정사 관아에 모두 모였다.

* * *

대당에서 장 순무는 입구 처마에 뒷짐을 진 채로 서 있었다. 정원에는 고관 십여 명이 양옆으로 나뉘어 말없이 목례를 올렸다.

“여러분!”

장 순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우로 줄을 선 고관들을 훑어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송장보가 무신교와 결탁하여 군수물자를 독직하고, 화근을 길러 자신의 지위를 높였소. 운주 주변의 민생이 피폐해지고, 변란이 끊이지 않았소. 본관은 성왕의 뜻을 받들어 엄격하게 조사할 것이오. 발각된 후 송장보는 형벌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소. 오늘부터 운주의 모든 군정 업무는 본관이 책임지고 처리할 것이오. 무릇 반역자에게 빌붙은 자는 즉시 본관에게 와서 상황을 똑똑히 설명하시오. 사건의 경중을 가려 처분할 것이오.”

“대인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모든 관원이 머리를 숙였다.

이때 장 순무의 시선에 대당 입구에서 맹렬한 기세로 뛰어 들어오는 한 야경꾼 무리가 보였다. 그중 한 은라의 손에 사람이 들려 있었다.

당내의 관원들이 소리를 듣고 쳐다봤다.

“그들이 왜 온 거지?”

장 순무는 곁에 있는 강율중을 쳐다봤다.

강율중은 고개를 저었다.

“순무 대인, 큰일 났습니다. 심상치 않습니다.”

손에 사람을 든 은라는 도착하기 전에 큰소리로 외쳤다.

강율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은라 수중의 사람을 똑똑히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는 부아의 검시관이었다.

“어찌 된 일인가?”

장 순무의 시선이 검시관에게로 향했고,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은라는 손에 든 검시관을 곁에 있는 동라에게 건넨 다음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는 귀에 대고 소리를 낮춰 간곡하게 말했다.

* * *

야경꾼들은 허칠안의 분석을 들은 후 빠르게 속도를 내어 송 포정사의 저택에 도착했으나 결국에는 허탕 쳤다. 순무는 이미 떠난 뒤였다.

그들은 저택에 소식을 물은 뒤 순무가 포정사사로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험이 풍부한 은라들은 바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허칠안의 분석을 염두에 두고 송 포정사의 시체를 다시 검사했다.

그리고 그 피로 얼룩진 얼굴이 사실은 사람 얼굴을 한 가면이라는 걸 알아냈다.

죽은 자는 역시 송장보가 아니었다.

야경꾼들은 즉시 검시관을 붙잡아서 부랴부랴 포정사사로 달려왔다.

“그랬군!”

장 순무는 안색이 몇 차례 변했다. 그는 놀랐다가 마음이 무거워졌다가를 반복하다 지금은 감정을 가라앉힌 후의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모든 관원을 훑어본 후 검시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지시했느냐?”

검시관은 두려움에 안절부절못했고, 시선은 자꾸만 대각선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운주 지부가 서 있는 자리였다.

“순무 대인께 아뢰옵니다. 소직입니다.”

지부는 읍을 올리고 공수하더니 거리낌 없이 인정했다.

장 순무는 콧방귀를 끼더니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잡아…….”

그는 손을 다 흔들지 못했다. 간단하게 손을 흔드는 동작이었지만, 그는 마치 아주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처럼 힘들어했다.

이어 그는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곁에 있던 강율중이 무의식적으로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곧 비틀거렸다. 그러더니 뜻밖에도 버젓한 4품 무사까지 장 순무에게 이끌려 함께 넘어졌다.

“독이다…….”

강율중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강 금라, 순무 대인.”

야경꾼들은 아연실색하여 우르르 모여들었다.

정원 안의 관원들이 놀라서 불안에 떨었다. 이때, 운주 지부는 그들의 눈에 낯설기만 했다.

“비열한 새끼!”

한 동라가 패도를 뽑아 지부를 베려 했다.

지부는 무표정으로 손을 들어 결인(結印)했다.

“헉헉…….”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던 그 검시관이 갑자기 변이하기 시작했다. 그는 온몸의 근육이 팽창하고 두 눈이 빨개지더니, 목구멍에서 야수처럼 낮은 고함을 내뱉으며 칼을 뽑아 든 동라에게 머리를 박았다.

훅!

칼날이 어깨를 베어 검시관의 팔 전체를 절단해 버렸다. 그는 어느새 동라의 가슴팍에 단단히 부딪혔다.

모든 사람이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동라는 거꾸로 날아갔고, 손안의 패도가 ‘쾅’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야경꾼들은 남다른 눈썰미와 재빠른 동작으로 그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 동라의 눈빛이 급속도로 어두워지면서 생명의 불이 꺼졌다.

“몽무!”

강율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알고 보니 네가 무신교의 그 4품 몽무구나. 주민도 네가 죽인 건가?”

지부가 웃으며 말했다.

“바로 나다!”

“스윽…….”

모든 관원이 재빨리 뒷걸음질치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지부를 쳐다봤다.

‘신비하여 예측하기 어려운 그 몽무가 알고 보니 줄곧 곁에 숨어 있었다고? 그는 무슨 수법을 사용해서 사천감 백의의 망기술을 억제한 거지?’

검시관은 인간성을 저버린 채 흉악함만이 남은 붉은 눈동자를 빛냈다. 그는 잘린 팔을 묵묵히 주워 잘린 부위에 붙였다.

짙은 선홍색의 혈관이 반짝이더니 핏빛의 가는 선이 잘린 팔을 휘감았고, 팔이 다시 이어졌다.

혈영(血靈) 꼭두각시!

이는 9품 주술사가 장악한 비술로 산 사람을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었다. 타 버린 정혈(精血)를 대가로 하여 꼭두각시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투력이 어마어마한 사사(死士)로 바꾼다.

그렇기에 9품 주술사를 ‘혈영’이라고도 부른다.

물론, 9품 주술사의 꼭두각시는 전투력 증가폭이 제한적이다. 잘린 팔을 잇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한다.

“내가 무슨 독에 중독된 것이냐?”

강율중은 달갑지 않은 듯했다.

“이 독은 송화백충(松花白蟲)이라 한다. 백충의 시체를 태우면 무색무취의 독이 생기지. 이런 독은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나 길게는 열흘간 몸 안에 잠복해. 이 열흘 안에 중독자가 송화라는 꽃의 향기를 맡기만 하면, 몸이 힘없이 축 늘어지면서 파리 목숨이 되는 것이다.

이는 남강 고족 독부(毒部)의 독방(毒方)이다. 강율중, 너를 상대하기 위해 본좌가 정말 몹시 애를 썼다. 너는 고품 무사라 보통 독약은 효과가 없고 간파당하기 아주 쉽지. 유일하게 이런 조합식 독, 약성이 순한 독이어야만 네가 덫에 걸릴 수 있었어.”

지부 대인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장 순무가 가쁘게 숨을 헐떡였다.

“뒤뜰의 그 꽃인가.”

“맞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우리를 뒤뜰로 안내했군.”

“순무 대인의 총명함과 기지는 이미 한발 늦었습니다.”

지부가 비꼬았다.

“그럼 백충의 독은?”

“여러분이 매일 초를 켤 때마다 중독됐지요. 온갖 방어책을 마련했겠지만, 촛불에 독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겠죠. 순무 대인이 타지에 시찰하러 가셨을 때 역참의 초를 감쪽같이 몰래 바꿔치기 했습니다.”

항상 누군가 역참을 지킬 수는 없었다. 더욱이 타지에 시찰하러 간 기간에 초를 몰래 바꿔치기하는 건 막으려야 막을 수 없다.

장 순무가 힘겹게 버티며 물었다.

“송장보는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이 죽으면 그가 자연스레 운주 관리 사회를 인수할 것입니다.”

지부가 냉소를 지었다.

“백제성을 접수한 후에 각지에 쟁여둔 산적이 각 부 군현을 공격할 것입니다. 경찰이 있는 해 말에는 운주가 대봉에서 분리될 것입니다.”

이때, 난잡하면서도 우렁찬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대병력이 바싹 다가오고 있었다.

“독약은 양주향이 지나면 풀릴 테지만, 안타깝게도 여러분은 그때까지 살지 못할 겁니다.”

지부가 크게 웃었다.

전투 소리가 즉시 울려 퍼지더니 밖에서 지키고 있던 호분위와 오성 병마사의 반역자가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활시위 소리, 화통이 발사되는 소리, 무기가 충돌하는 소리…….

모든 이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먼 곳에는 반란군이 가까운 곳에는 몽무가 있었다. 정말 절망적인 상태라 할 만했다. 야경꾼들은 낯빛이 어두웠고,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모두 경험이 풍부한 야경꾼이라 피비린내와 격전을 수도 없이 겪어서 심지가 굳었다.

“강 금라와 순무 대인을 보호하여 내당으로 들어간다.”

조 은라가 크게 소리쳤다. 그는 뒤이어 칼을 뽑았다.

강율중은 상대방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으나, 그 은라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말을 가로챘다.

“대장, 압니다. 몽무는 근거리 몸싸움에 능하지 않으니 그놈이 머리털과 혈육을 얻지 못하게 주의하기만 하면, 주살술을 개시하지 못할 겁니다.”

동라들은 직속 상관이 이렇게 배짱이 있는 걸 보니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몽무의 수법은 괴이하고 불가사의했지만 정면으로 맞붙는 데는 능하지 않다. 그들도 이 점은 동라로서 조금 알 뿐이었다.

동라들의 예상과는 달리 강율중은 손을 놓지 않았다. 평소에는 마치 신과 같은 금라였지만, 지금은 이미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은라의 소매를 꽉 잡아당겼다.

“가거라!”

강율중이 말했다.

조 은라는 고개를 돌려 입을 삐죽였다.

“대장, 저희더러 순무 대인을 모시고 가라 말씀하신다면, 그건 안 됩니다.”

강율중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순무 대인을 모시고 가지 못해. 내 말은 너희가 가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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