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허칠안의 어쩔 수 없는 행동 (2)
허칠안은 말을 마친 뒤 역참을 걸어 나와 말을 끌고 송 포정사의 저택으로 향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백성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활동했으며 격변의 서막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본래 그들과 관계없는 일이었다. 운주의 주인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그들은 평소대로 생활할 테니까.
허칠안은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아당기고 한 손으로는 옥석 파편을 꺼냈다. 그는 이호에게 바로 문자를 보내는 대신 먼저 금련 도사를 불렀다.
[삼: 금련 도사님, 부상은 완쾌되셨는지요?]
그는 금련 도사의 상처가 아물 때가 됐다고 짐작했다. 지난번에 그 대신 낙옥형에게 약을 구하러 간 뒤로 한 달이 다 되어가니 만약 상처가 낫지 않았으면 그건 정말 난처한 일이다.
[구: 관심 고맙네. 이미 완쾌한 지 오래되었네.]
“후…….”
허칠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삼: 저 대신 다른 사람들을 차단해 주십시오. 저 이호와 의논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삼호가 무슨 일로 이호를 찾는 거지? 이렇게 은밀하게?’
각자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는 ‘천지회’ 구성원들은 거울의 전서를 주시하며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지서 파편에 어떠한 문자도 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걸 보고 지서 파편이 잠시 차단당해서 더는 어떠한 문자도 받지 못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지종의 도사만이 이런 비술을 장악하고 있다. 애초에 그 자련 도사가 같은 수법으로 그들 모두를 차단했다.
“이런 비술은 정말이지 열 받게 해.”
남강의 난폭한 소녀가 성을 내며 옥석경을 바닥으로 던졌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진동하면서 옥석경이 땅바닥에 박혔다.
[구: 삼호, 말해도 되네. 나와 이호를 제외하고 자네의 전서를 볼 수 있는 자는 없네.]
‘그들은 이미 인터넷이 끊긴 거야……? 도사, 사실 나는 너도 내 전서를 보지 않았으면 해. 물론 네가 줄곧 냉정한 눈으로 내 행동을 방관하겠지만,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때 현장에 한 명이라도 줄 수 있으면…….’
허칠안은 비아냥거리며, 말의 속도를 늦췄고 붓을 대신해 손가락으로 문자를 보냈다.
[삼: 이호, 보이는가?]
이묘진은 마침 기다리던 중이었으므로 그의 전서에 빠르게 답했다.
[이: 나와 상의할 일이 있는가?]
그녀는 문득 삼호가 곧 할 얘기가 그의 사촌 형 허칠안과 관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선 한 명은 경성 운록서원에 있고, 한 명은 운주 백제성이 있어 수만 리나 떨어져 있는데 상의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구: 내가 물러나야 하나?]
[삼: 좋습니다, 도사님. 감사합니다, 도사님.]
[구: 허, 아주 중요한 일인가 보군. 걱정하지 말게. 밖으로 떠벌리지 않을 걸세.]
‘……아오!’
허칠안의 얼굴이 굳었다.
‘도사, 너 고양이한테 꽂히는 습관 여전하지? 있다면 반드시 유지하도록 해라. 나중에 내가 반드시 폭로할 거니까…….’
허칠안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문자를 보냈다.
[삼: 이호, 내가 앞으로 할 얘기는 아주 중요하네. 자네는 어떠한 망설임과 질문도 없어야 하네. 내가 말을 마치면 바로 행동하게.]
‘나의 사회적 매장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허 모 씨는 체면을 차리면 안 된다.’
‘삼호의 말이 이상하다. 분명 경성에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마치 급박한 상황이 내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이묘진은 가늘고 정교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오늘 밤 사실 일이 있었다. 그녀는 낮에 병간이라는 풍파를 겪고 나서, 천종 수련자의 예리한 직감으로 장 순무의 웃는 모습 아래에 살의가 감춰졌음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녀는 해가 지기 전에 역참에 가서 시간을 좀 끌며 일을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삼호는 그녀가 아주 중시하는 인터넷 친구다. 그는 정직하고 용감하며, 총명하고 감탄하게 하는 지식인이다. 그녀는 삼호가 일이 있다는데 묵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막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옥석경 화면에 글 한 줄이 천천히 떠올랐다.
[삼: 운주 사건의 진정한 배후의 검은손은 송 포정사이네. 장 순무가 수수께끼를 풀어서 본래는 세찬 기세로 송장보를 체포하려 했지. 허나 송장보가 미리 위험을 감지하고 계책을 꾸몄네. 장 순무와 야경꾼의 판단력을 잃게 하고 암암리에 성문을 봉쇄했네. 현재 백제성 곳곳에 살기가 도사리니 순무 대오에게 큰일이 생길 것 같네. 이호, 자네가 빨리 군사를 파견해 구원하게.]
‘배후의 주모자가 송 포정사?!’
이묘진은 무거운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잠시 멍하니 있었다. 송장보가 배후의 검은손이라면, 무신교와 결탁한 제당이 송장보라는 뜻이 된다.
‘송장보가 제당 사람이라고?’
그녀는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만약 삼호의 말대로라면 백제성의 동란은 일촉즉발, 아니 이미 격전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장 순무에게 불상사가 생기면 운주 전체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터였다. 강율중은 4품 무사라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성안의 백성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는 단지 동란의 시작일 뿐이었다. 내년 봄이면 조정에서 대군을 파견해 운주를 침공할 테니, 백성들은 전쟁의 불길 속에서 도탄에 빠질 것이다.
이묘진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손에 이미 탁자 옆에 두었던 은색 창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그녀는 갑자기 굳어 버렸다.
그녀는 머릿속에 거대한 물음표가 연달아 스쳤다. 이내 그녀는 그 물음을 한마디로 응축시켰다.
‘삼호가 이 일을 어떻게 알았지? 삼호는 멀리 경성에 떨어져 있는데 운주에서 발생한 일을 어떻게 안 것일까?’
그녀는 속으로 어렴풋이 추측을 했는데 이 추측은 마음속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래도 충격의 정도가 송 포정사가 군사 정변을 일으킨 데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묘진은 잠시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문자를 보냈다.
[이: 자네 이 일을 어떻게 알았나?]
이묘진은 문자를 보냈지만, 한참 동안 그녀를 상대하는 이가 없었다.
이묘진은 눈꼬리를 치켜뜨고 고개를 돌려 침상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는 소소에게 말했다.
“비연군을 집결시키라는 내 명령을 전하렴.”
소소가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는 모습은 부드럽고 지적이며 교양이 넘치는 대갓집 규수 같았다. 그런 우아함은 뼛속에 새겨진 법이다.
만약 그녀가 보는 책이 춘화집이 아니라면 완벽했을 터였다.
“아!”
소소는 아쉬운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 손에 든 음란 서적을 내려놓고 천막 밖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좀 답답했다. 책 속의 남자 주인공들은 전부 준수한 서생으로 행동에 기품이 있었으며 학식이 풍부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중에 다시 육신을 얻으면, 허칠안 같은 색마 자식에게 첩 노릇을 해야 한다.
차이가 너무 크다.
이묘진은 군대를 동원하러 나가는 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성격이라 곧 침착한 얼굴을 하고 문자를 보내 위협했다.
[이: 자네 말하지 않으면 절대 병사를 보내지 않을 것이야.]
이는 당연히 위협일 뿐이었다. 이묘진은 지금이라도 날개를 달고 백제성으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삼: 사실 나는 서원의 임무를 받고 은밀히 운주에 왔네.]
[이: 나를 바보로 아는가?]
삼호가 운록서원의 학자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봄이 되면 온 세상의 지식인이 용이 될 수 있는 시기인 춘시가 시작된다. 사호는 전에 삼호가 춘시에 참가할 거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삼호 역시 부인하지 않았다.
운록서원과 운주는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데 삼호는 무슨 일 때문에 춘시를 준비해야 하는 귀중한 시간을 버리고 남하했단 말인가? 서원에 인재가 많은데 왜 하필 삼호여야 하는가?
운록서원의 서생이 스승의 명을 받들어 남하했어도 운주 사건을 훤히 꿰고 있는 것 역시 아무래도 아주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 그에게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이상……. 삼호가 그 사촌 동생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허칠안이 사촌 동생에게 비밀을 누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삼호가 거짓말을 했는지 검증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이는 바로 일호에게 묻는 것이다. 그 혹은 그녀에게 운록서원에 가서 알아보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면 시간을 너무 허비한다.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시간이 생명이다. 따라서 이호가 직접 물었다. 그녀는 삼호가 진실을 말하길 바랐다.
[삼: 좋아, 패를 까겠네. 나는 허칠안이고, 내가 바로 삼호네.]
‘삼호가 허칠안!?’
이묘진은 그 자리에서 딱딱한 돌처럼 굳었다. 그 얼굴은 돌에 새겨진 그림 같았다.
그녀는 마치 가슴속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우르르르 무너져서 와해됐다.
정직하고 선량하며 가슴속에 정의를 품고 있는 지식인 (×)
비열하고 뻔뻔하며 위선적이고 여색을 좋아하는 야경꾼 (O)
바로 그녀의 마음속에서 삼호의 이미지가 무너지고 재구성되는 과정이었다.
이묘진은 비보를 듣자 내심 분노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자신이 속았으며, 감정을 농락당하고 희롱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솔직히 말해서 삼호에게 호감이 많았다. 삼호는 일호처럼 생각만 깊어서 늘 염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사호처럼 부드러운 듯 보이면서 실질적으로는 거만하지도 않았다.
오호, 육호 그리고 구호 역시 그들 각각 특징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따져보자면 삼호보다 못했다.
하지만 모든 게 거짓이었다.
이 순간 이묘진은 머릿속으로 허칠안에 관한 삼호의 평가를 되짚어봤다.
“뻔뻔한 새끼, 정말 뻔뻔하다…….”
그녀는 은색 창을 꽉 쥐었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널을 뛰었다.
현대로 따지자면 이묘진은 오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셈이었다. 오늘의 소제목은《인터넷 친구에게 감정을 농락당한 18세》.
‘잠깐!’
이묘진은 화가 잔뜩 났다. 그녀는 갑자기 불쾌한 일들이 떠올랐다.
만약 삼호가 허칠안이라면. 그날 그녀는 간절한 얼굴로 지서 채팅방에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사건을 분석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튿날, 그녀는 장 순무와 허칠안 앞에서 자신이 사건을 해결했다고 다소 거만하게 과장해서 말했는데…….
이묘진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감정이 더욱 오르락내리락 널을 뛰기 시작했으며, 얼굴이 터질 듯 빨개졌다. 그녀는 검을 뽑아 스스로 베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때 허칠안은 속으로 자신을 비웃었을 터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쌍놈…….”
* * *
요원한 경성. 금련 도사가 지서 파편을 주시하며 한참을 기다렸으나 삼호와 이호는 더 이상 교류하지 않았다.
“밀담이 끝났다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금련 도사가 불평했다.
‘허칠안 이 자식은 평소에 사전 준비 없이 허풍을 떨더니. 이제 됐겠군. 신분이 밝혀졌으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겠지.’
하지만 이것도 별일 아니다. 금련 도사는 십수 년 동안 도를 닦으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다. 이런 작은 일로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쿠쿠쿵…….
몇 분 후, 황갈색 고양이가 마당의 담장 위로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는 경계하는 태도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주방에 잠입해 몰래 훔쳐 먹을 계획인 듯했다.
하지만 이때, 황갈색 고양이가 갑자기 굳었다. 고양이는 담 꼭대기에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몇 초 후, 고양이는 호박색의 눈동자를 다시 굴리더니 꼬리를 높이 치켜들고 즐겁게 걸어갔다.
방 안, 금련 도사는 점잖게 침상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