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허칠안의 어쩔 수 없는 행동 (1)
역참.
“뭐? 송 포정사가 죽었다고?!”
허칠안은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순무 대인께서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시네.”
말을 전한 동라는 건성건성 탁자에 앉아 발로 의자를 밟은 채, 손에 찻잔을 쥐고 한 모금 마신 뒤 한담하기 시작했다.
“송씨가 그래도 약삭빠르더군. 우리가 문을 부수고 들어서는 소리를 듣자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형벌이 무서워 자살했네. 순무 대인이 내게 돌아가 자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라 하셨고.”
‘원방,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허칠안의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이 떠올랐다.
그는 송정보가 형벌이 무서워 자살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적어도 양진태와 송정보를 관아에 넘길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허칠안은 정신이 몹시 피폐해졌다. 그는 사건을 따져보려면 하나씩 생각해야만 했다.
‘순무 대인의 병귀신속 책략이 영향을 미친 건가? 송정보는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생각하고 자살을 택한 것인가? 하지만 정상적이라면 최후의 결과를 보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지 않는가……? 이게 무슨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좀 밀린다 싶으니까 꼬리를 내리다니……. 죽는 건 너무 충동적이었다. 음, 시종일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몽무가 죽여 멸구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야. 몽무가 사람을 죽이고 멸구한다는 전제는 죄악이 폭로됐을 때만인데…… 그럼 그가 일이 이미 발각된지 어떻게 알았지?’
순간 그는 머릿속에 번개가 친 것 같았다.
“송장보의 밀정이 역참 근처에서 시시각각 이쪽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 4품 몽무일지도 모른다. 복순표국의 표사가 양진태를 끌고 들어왔을 때 마대 자루를 쓰고 있었지만, 절름발이의 걸음걸이는 특징이 뚜렷하다. 양진태가 이미 포박당한 걸 송장보가 진작에 알았다면…….”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판단을 내렸다. 그는 드디어 어디가 잘못됐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역참에서 양진태를 30분 넘게 심문했다. 그 후에 순무가 대오를 거느리고 포정사 저택으로 들이닥쳤다. 호분위의 질주 속도로는 역참에서 포정사 저택까지 짧게 잡아도 40분은 걸린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송장보는 집에 앉아 죽기를 기다렸겠는가? 하지만 송장보는 확실히 죽었고, 검시관이 이미 신분을 확인했다. 제기랄!’
“큰일났다. 계략에 빠졌다!”
허칠안은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죽은 자가 송 포정사일 수는 없었다. 그는 도망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그가 집에 앉아 죽음을 기다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몽무가 죽여 멸구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아직 멸구해야 할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뿐더러, 철수할 시간도 충분히 있었다. 극단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럼 왜 형벌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가장해야 했을까?
허칠안은 두 가지로 추측해 보았다.
첫째, 송 포정사 역시 속죄양이다. 그를 죽여 멸구하는 건 단서를 끊어 버리는 일과 다름없다. 동시에 형벌이 두려워 자살한 것처럼 꾸며 장 순무를 미혹하려 했을지 모른다.
둘째, 송 포정사가 시간을 끌고 있다.
허칠안과 장 순무 등은 이전에 사건에 관해 협상할 때 의견이 일치했다. 일단 상대방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으면, 피비린내 나는 바람이 한바탕 불어닥치는 건 자명한 일이라고.
그래서 장 순무는 두 번 다 규칙에 따르지 않고 급습했다. 그는 상대에게 반응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상대방이 한발 앞선 듯했다.
“만약 시간을 끌기 위함이라면 송 포정사의 시체는 가짜다. 경험이 풍부한 검시관이 어떻게 변신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지? 검시관이 마피아가 아닌 이상…….”
이 추측에 의하면 순무 대인은 위험한 상태다.
이때 장 순무 곁에는 호분위와 강율중만 있었고, 야경꾼은 대부분 역참에 남아 지키는 중이었다. 강율중은 물론 뛰어나지만, 맞은편에도 4품 몽무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강율중이 몽무에게 얽매인다면 호분위만으로 순무 대인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
전력이 뛰어난 은라, 동라야말로 이번 호위대의 튼튼한 기둥이다.
‘송 포정사는 백제성에서 여러 해 동안 경영했고, 양천남은 지금 죄인이 되었다. 독식하던 그에게 더는 송 포정사를 저지할 본토 세력이 없다……. 물론 위소 군대를 동원할 수는 없지만, 성안의 오성 병마사는 포정사사의 명령을 듣는다…….’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즉시 역참 내의 모든 야경꾼을 불러 자신의 추측을 그들에게 알렸다.
야경꾼들은 이 말을 듣자마자 더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반신반의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순무의 안위에 관한 일이라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편이 나았다.
“네 명은 역참에 남아 지키고, 다른 자들은 나를 따라오게.”
한 은라가 소리쳤다.
그는 허칠안을 보며 말했다.
“허칠안, 자네는 역참을 지키게.”
허칠안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고강도 전투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는 가도 출중한 전력을 발휘하지 못할 터였다.
십여 명의 야경꾼들은 말을 이끌고 채찍질에 박차를 가해 송장보의 저택으로 내달았다.
* * *
“칠안, 일이 왜 이렇게 변, 변한 거지?”
송정풍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눈에는 불안함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그의 동라 신분으로는 사건 기밀에 접근할 수 없었다. 송정풍 및 다른 야경꾼이 보기에는 사건이 상상 이상으로 끊긴 셈이었다.
그들이 나가서 시찰하고 돌아오니 허칠안이 수수께끼를 푼 뒤였다. 그리고 장 순무는 도지휘사 양천남을 체포했다.
이묘진이 역참에 방문한 후 사건에 반전이 생긴 듯했으나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선 그들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표사 한 무리가 절름발이를 데려왔다. 순무 대인은 그를 은밀하게 심문했는데 알고 보니 송 포정사가 배후의 검은손이었다.
방금 허칠안이 사건의 대략적인 경위를 모든 야경꾼에게 알린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확연히 깨달았다.
송정풍은 이미 사건의 진척과 현재 닥친 상황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뜻밖의 소식을 들은 탓에 받아들일 시간이 좀 필요했다.
“전쟁터는 시시각각으로 변한다는 말이 있네. 사건 수사도 마찬가지지. 적은 자네가 한 걸음 한 걸음 증거를 모아 적당히 준비한 후에 꼼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네.”
허칠안은 그래도 침착한 편이었다. 어쨌거나 고품 무사 강율중과 수련을 탄탄히 한 야경꾼들이 있었다.
“정풍, 자네 지금 즉시 성을 나가서 이묘진에게 가게. 성안에서 발생한 일을 그녀에게 알려주게.”
허칠안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비연군의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이묘진의 사군은 아주 강대했다. 전투력이 막강한 전국 각지 강호의 고수가 한데 모여 있었다.
“알겠네!”
송정풍은 일어나서 밖으로 걸어갔다가 다시 빠르게 되돌아오더니 쾅쾅쾅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는 몇 분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똑똑해…….’
허칠안은 남몰래 칭찬하는 동시에 반성했다.
‘내가 뜻밖에도 그에게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라고 주의를 주지 않았다니. 이성이 이렇게나 떨어졌다고?’
* * *
송정풍은 막힐 일 없는 말을 타고 다그닥다그닥 갔다.
하지만 30분 뒤 그는 다시 말을 빠르게 몰아 돌아왔다. 그는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성큼성큼 역참으로 뛰어들었다.
“칠안, 성문이 닫혔네.”
허칠안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고 가슴이 갑자기 철렁했다.
“큰일 난 것 같네.”
허칠안은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대청 안을 왔다 갔다 했다.
“무슨 일이 생길 수 있겠는가? 강 금라는 4품 무사네. 강호에 버려놔도 잘 살아남을 거야. 게다가 다른 동료도 갔잖나.”
송정풍이 달랬다.
그는 마찬가지로 자신을 위로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현재 대봉의 국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진북왕만이 3품 무사다. 4품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강호에서 우쭐대도 무방하다. 허칠안은 경성에서 4품 고수를 많이 봐서 익숙했다. 하지만 그곳은 대봉의 핵심, 경성이다.
물론 강호는 그 깊이가 깊으니 천년 묵은 고수가 하나둘쯤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성문 세 군데도 분명히 닫혔을 걸세. 송 포정사…… 아니면 그 배후의 무신교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놓고 족치려는 수작이 분명하네.”
허칠안은 왔다 갔다 서성거렸다.
“자네 생각해 봤나? 당연히 강 금라가 4품인 걸 알면서도 감히 이렇게 한다는 건 충분한 준비를 마쳤다는 걸 의미하네. 그들이 꿈속에 들어가 자네와 광효를 심문할 때 이미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네. 우리가 송 포정사의 꼬리를 잡지 않았으니 그들은 참으며 기회를 엿볼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일단 우리가 송 포정사가 배후의 검은손이라는 걸 알아내면, 그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판을 뒤엎을 걸세.”
“그래서?”
송정풍은 목소리가 다소 떨렸다.
“순무 대인을 죽인다 치세. 그들은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할까 두렵지 않은 건가? 제당과 무신교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도모해 온 일이 바로 이거 아닌가?”
허칠안은 그를 쳐다봤다.
“반역을 꾀할 게 아닌데 그렇게 구질구질한 일을 많이 벌여서 뭐하겠는가?”
송정풍은 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도 어쨌든 자질이 풍부한 야경꾼으로서 풍파도 많이 겪어봤기에 넋이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정보를 흘려 위소의 군대를 동원할 방법을 반드시 생각해야겠군.”
그가 말했다.
“순무 대인이 본래 오늘 밤 강 금라를 보내 서호신 등 장군 무리를 죽일 계획이었는데 그들 목숨이 질긴 셈 쳐야겠군. 이번에 화를 면했어.”
허칠안은 한 마디 대꾸하더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보를 흘려야겠다고 한 송 형의 말은 아주 옳다. 운주는 결국 송 씨의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고선 제당과 무신교가 이렇게 몰래 움직일 필요가 없다. 각 군현은 잠시 제쳐두더라도 이 백제성에서 적어도 양천남이 통솔하는 위사는 송 포정사와 팔씨름을 할 수 있다. 송 포정사가 양천남을 모함하는 게 꼭 이색분자를 솎아낼 생각이 없다는 건 아니다. 화와 복은 서로 맞닿아 있지 않은가…….’
허칠안은 자기도 모르게 이 가능성이 떠올랐다.
하지만 양천남은 현재 감금된 죄인이라 자신의 혐의도 아직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허칠안이 그를 쓰고 싶어 한들, 중상을 입은 양 형 역시 성 밖으로 나가기란 불가능했다.
“성 밖으로 돌격하는 건 어떤가?”
주광효가 옆에서 한참을 침묵하다 조용히 말했다.
이 길은 위험하지만 그는 이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 역참에는 동라 넷뿐인데 맞서야 하는 건 수백 명의 성 방어군 혹은 더 많겠지……. 무리일세.”
송정풍이 고개를 저으며 그 제안을 부결했다.
성 방어군은 오합지졸이 아니다. 장비가 훌륭하여 활도 있고 화통도 있다. 그중에는 분명히 명수도 몇 있을 터였다. 그들 네 사람만으로, 설사 성 밖으로 돌격할 수 있다 해도, 시간을 꽤나 허비해야 한다.
군영에 도착해서 비연군에게 통지하고 다시 돌아오면…… 백제성 내의 동란은 이미 끝났을 것이다.
다른 방법이 있다!
허칠안은 품속의 옥석경을 더듬어 꺼냈고, 속으로 감탄했다.
‘나 정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싶지 않다고.’
“비연군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네.”
허칠안이 말을 마치고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자네들 더는 묻지 말게. 정풍, 광효. 자네 둘이 역참에 남아 양천남과 양진태를 감시하게. 만약 그 둘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바로 참수하게!”
“자네 무슨 말인가?”
송정풍은 어리둥절했다.
“나는 순무 대인께 가봐야 할 것 같네……. 왠지 모르게 좋지 않은 예감이 드네.”
허칠안은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