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부검
양진태는 고개를 쳐들고 장 순무의 시선을 받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운주 포정사 송장보입니다.”
“…….”
방안에 적막이 흘렀다.
장 순무의 표정은 아주 기괴했다. 그는 놀라면서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 어쨌거나 백제성 안에 4품 이상의 관원 모두 배후의 검은손일 가능성이 있었다.
순무 대인은 진작 마음의 준비를 해 ‘깜짝 놀랐다’는 반응은 아니었다.
“그였군…….”
하지만 장 순무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도지휘사 양천남이 이미 사건에 연루됐건만 지금 포정사가 하나 더 늘었다.
운주 관리 사회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썩었다.
“누가 너를 잡은 것이냐?”
허칠안이 빈틈을 비집고 한마디 물었다.
“저도 모릅니다.”
양진태가 고개를 저으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 여러분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는 점포 안의 사창들을 몰아내고 문을 잠그고 떠났습니다. 황백가로 막 나섰는데 누군가에게 맞아 기절했고요. 깨어나니 저는 이미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있었고, 머리에는 마대 자루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죠……. 먹고 자고 싸는 모든 일을 작고 어두운 방에서 해결했고, 누군가 제게 정시에 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표국으로 운반되었고, 여러분이 계신 곳에 보내진 것입니다.”
“그자의 생김새를 제대로 보지 못했나?”
허칠안이 캐물었다.
양진태가 고개를 저었다.
‘……양진태는 우리가 떠난 후에 실종됐다. 그리고 3일 뒤에 무신교의 사람이 꿈에 들어와 양진태가 야경꾼에게 걸려들었는지 떠보려 심문했다. 이 3일 사이에 송 포정사는 장 순무와 함께 타지로 시찰하러 갔기 때문에 양진태의 실종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백제성에 돌아온 후에야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딱 들어맞는다.’
허칠안은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
장 순무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계속 얘기하거라.”
“그날 후로 저는 송 포정사를 따랐습니다. 그때 그는 아직 한 주(州)의 포정사가 아니었습니다.”
양진태가 지난 일을 얘기하며 눈에 무심코 추억을 내비쳤다.
“송장보의 관(官)이 점점 커지자 절름발이인 저도 단번에 출세하여 지금의 경력사 경력이 됐고, 정6품에 이르렀습니다. 역시 송장보의 추천으로 저는 제당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신분은 빛을 보이지 않기에 주민이 야경꾼 관아의 첩자라면 저는 제당의 첩자였습니다. 제당이 산적에게 군수물자를 수송하려면 반드시 경력사라는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 요 몇 년간 저는 줄곧 송 포정사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했습니다. 장부를 몰래 바꾸고 군수물자를 착복했지요…….”
“전에는 대협객이 되어 산적을 모조리 죽이는 것이 꿈이라고 말끝마다 외고 다니더니 지금은 도리어 나쁜 놈을 도와 나쁜 짓을 하는 악인이 되었군.”
허칠안이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
양진태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허칠안이 비웃자 양진태는 침묵을 택했다.
장 순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럼 양천남은 어찌 된 일이냐? 그 역시 제당인데 왜 너희는 그를 해하려 하는가?”
양진태가 고개를 저었다.
“이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단지 그와 제당이 그렇게 가깝지 않다는 것만 압니다. 송 포정사가 넌지시 얘기한 적이 있는데 양천남은 본래 제당에서 표면상 놓은 바둑알로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죄를 뒤집어썼군…….’
허칠안은 속으로 양천남에게 정의를 내렸다.
“만약 주민이 없었다면 운주의 밀모회(密謀會)는 계속 됐을 것입니다.”
양진태는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어쩌면 못된 짓을 한 놈은 결코 벌을 면치 못하는 걸지도 모르죠. 말하자면 저와 주민은 사이가 좋았습니다. 숙직을 끝내고 퇴근한 후에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 다만 그가 야경꾼의 첩자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제당의 첩자이고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겠습니까.”
양진태는 라디오를 켠 것처럼 장 순무가 심문할 필요도 없이, 아는 일을 스스로 툭 터놓고 토해 냈다.
“주민은 똑똑한 자였습니다. 숫자에 아주 민감했죠. 그가 장부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챈 사실을 저희 쪽에서 알아챈 후에 제가 포섭에 나섰고 약속을 했는데…….”
강율중이 편안하게 의자에 기댄 채 물었다.
“그가 거절했나?”
“아니요.”
양진태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한 번에 승낙했습니다. 한패가 되어 나쁜 짓을 하길 원했어요. 다만 포섭은 눈속임일 뿐, 실질적으로는 그가 무얼 발견했는지 떠보기 위함이라는 걸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주민 역시 마찬가지로 시간을 벌기 위한 계책일 뿐이었죠. 그는 돌아서자마자 밀서를 써서 전부 까발려 버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IQ가 뛰어난 첩자의 행동이다. 드라마 속 패턴이라면 주민은 틀림없이 정당하게 거절했겠지…….’
허칠안은 빈정대면서 자신의 대뇌를 활성화했다. 그러고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사실 그는 이미 너희가 죽여서 멸구할 거란 걸 예감했다.”
“똑똑한 사람은 당연히 똑똑한 사람만의 자각이 있지요. 그는 본래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도망치지는 못했지만.”
양진태가 아래턱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는 이 말을 마치 그 스스로에게 하는 것 같았다. 총명한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순간 도망칠 수 없는 곳에서 도망치는 것을 금세 포기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 역시 이미 도망칠 생각을 놓은 뒤였다.
“송 포정사는 죄악이 들통난 후에 미리 세운 계획대로 양천남을 내세워 죄를 이게 했습니다. 암암리에 구상하면서 순무 대인이 오기를 기다렸지요.”
장 순무는 여기까지 듣더니 질문을 던졌다.
“그럼 왜 네가 직접 정15호 개고기 점포에 남아있던 것이냐? 장부에 송 포정사에게 불리한 증거가 있는 것 아니냐.”
“맞습니다. 장부 안에 포정사사에서 도지휘사사로 재운반한 군수물자 몇 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명령이 그러했기에 정15호에 남아 있었던 겁니다.”
양진태가 대답했다.
‘……말이 맞지 않아!’
허칠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백의 술사 셋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는가?”
백의 술사 셋이 고개를 저었다.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그의 기운이 가려져 있어 망기술로 염탐할 수가 없습니다.”
‘망기술로 염탐할 수 없다라…….’
허칠안은 놀랐다가 뒤이어 깨달았다. 양진태 몸에 누군가가 수작을 부려 그 대신 기운을 가린 것이다.
사호가 술사는 주술사를 억제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 적 있다. 이런 차단 때문에 양진태가 주술과 점괘를 피한 것이다.
“칠안,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허칠안의 지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장 순무는 그래도 그의 의견을 좀 들어보고 싶었다.
“양진태에게 개고기 점포에서 기다리라고 한 건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송 포정사의 용의주도하여 이렇게 저급한 잘못을 저지를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지요.”
허칠안은 당당하면서도 차분하게 말했다.
“물론, 도발일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어쨌거나 만약 신비스러운 고수가 도중에 양진태를 낚아채지 않았다면 저희는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었을 테죠. 결국에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양천남을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가 보고할 수밖에 없었겠죠.”
도발이든 다른 이유든 직접 마주하고 송장보와 대질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확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허칠안은 그 신비스러운 고수에 관해 의심 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허세왕 양천환이었다. 우선, 그가 아는 고품 술사가 그뿐이다. 둘째로 바깥에 수련을 그만둔 술사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기운을 차단할 수 있으면서 강율중의 감지를 속일 수 있는 실력은 보통 산수(散修)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전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 과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고학력의 인재일 터였다. 독학해서 재능을 갖춘 야생 학사는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허칠안이 아는 사람 중 조건에 맞는 이는 양천환뿐이었다.
‘음, 이 추측에 확인이 필요한데…….’
“이유를 알고 싶으나 간단하지 않겠지.”
장 순무는 냉소를 지었다.
“즉각 명령을 전하거라. 전원 출동하여 포정사 송장보를 체포해라. 병귀신속, 명심하거라!”
장 순무가 양천남을 다루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지만, 이는 여전히 잘 먹히는 수였다. 돌격 행동은 적이 미처 기세를 막아낼 수 없게 한다. 또한 적의 대응도 늦출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분위 전원이 출동했으며, 장 순무는 강율중과 야경꾼 몇 명만 거느렸다. 다른 은라, 동라는 역참에 남아 지키며 양천남을 감시하기로 했다.
허칠안 역시 원기회복 차원에서 역참에 남기로 했다.
그는 방금 성 밖에서 정면으로 맞선지라 몸이 허약해져 움직이기 편치 않았다.
* * *
쿵!
포정사 저택의 대문이 부숴졌다. 강율중은 호분위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진하며 반항하는 부위를 차례대로 제압했다.
의외로 송 포정사는 양천남처럼 나타나지 않았으며, 대신 호분위가 침실에서 그를 찾았다. 그는 이미 죽은 뒤였다.
송 포정사는 땅에 쓰러져 있었는데, 가슴에는 비수가 꽂혀 있었다. 선혈이 바닥에 흥건하여 옷과 얼굴 반쪽을 물들였다.
“순무 대인, 그가 죽었습니다.”
호분위는 검사를 마친 후 공손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형벌이 두려워 자살한 것인가?”
장 순무는 시체 옆으로 걸어갔는데 얼굴이 굳어졌다.
‘송정보가 이렇게 죽었다고?’
그는 잠시 읊조리더니 분부했다.
“부아에 사람을 보내 경험이 풍부한 검시관을 불러와 부검하게 하거라.”
* * *
검시관은 아주 빠르게 도착했고, 운주 지부도 함께 왔다. 지부 대인은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그는 침실에서 송 포정사의 시체를 본 후에는 너무 놀란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순무 대인, 이, 이게…….”
지부는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온전한 말 한마디를 내뱉지 못했다.
“뭘 당황하는가?”
장 순무는 송장보의 시체를 보더니 어쩔 수 없이 우선 지부를 침실에서 데리고 나갔다. 그는 서재로 가서 사건의 반전을 진술했다.
‘알고 보니 송 포정사가 무신교와 결탁하고 산적에게 군수물자를 수송한 장본인이라고?’
지부는 멍한 눈빛이 되었다. 그는 한참 동안 이 놀라운 소식을 소화하지 못했다.
“이 일은 운주 관리 사회가 동요하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공표해야 하네.”
위치가 생각을 결정한다. 장 순무는 이때 어떻게 관원들을 달래고 안정을 유지할 것인지 생각했다.
허칠안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는 우선 시체와 사건에 대해 놓치는 부분이 없는지 꼬치꼬치 찾아낼 것이다.
마침 그들이 얘기하는 중에 호분위가 들어와 보고했다.
“대인, 검시관이 이미 부검을 마쳤습니다.”
“들어오라 이르게.”
장 순무가 말했다.
검시관은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검시관은 그제서야 말했다.
“죽은 자는 송장보로 올해 45세이며, 신장은 6촌 1척입니다. 시체의 두부와 발부, 뼈 모두 손상되지 않았고, 흉부 자상 외에 사지와 몸에도 다른 상처는 없습니다. 구강과 인후에서 다른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걸로 보아 중독되어 죽은 것도 아닙니다. 검증을 거친 결과 사인은 흉부 자상으로, 자살입니다.”
장 순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체를 잘 보존하게.”
그러곤 고개를 돌려 지부에게 말했다.
“백제성의 6품 이상 관원들을 포정사사 관아로 불러모으게. 본관이 할 말이 있네.”
장 순무는 안배를 마친 뒤,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동라 하나를 불러와 분부했다.
“역참으로 서둘러 돌아가 이곳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허칠안에게 알린 뒤, 그의 의견을 듣고 본관에게 돌아와서 보고하게. 참, 검시관의 부검 결과도 포함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