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32화 (232/712)

232화. 조정의 중범

장 순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는 조룡과 무슨 관계인가?”

조예가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

“조룡은 제 형님입니다. 그의 비보를 듣고 집안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죠. 순무 대인께서 저희 형님을 대신해 원수를 갚아주심에 매우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는 말을 마친 뒤에야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장 순무는 태연하게 절을 받았다. 그러고는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넨 뒤 듣기 좋게 인사치레하고 그들을 내보내려 했다.

뜻밖에도 조예가 일어나더니 말했다.

“제가 이곳에 온 건 순무 대인의 은혜에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 말고도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화물을 호송하러 왔습니다.”

‘화물 호송?!’

모든 이가 어리둥절하며 세 사람을 다시 훑어보았다. 다들 그제서야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평복이 아니라 표사의 복장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장 순무는 따져보며 물었다.

“무슨 말인가?”

조예가 읍을 올렸다.

“어젯밤, 신비스러운 손님 한 분이 표국에 와서 ‘물건’을 순무 대인께 부치겠다 했습니다. 손님은 또 그가 조정에서 지명 수배 내린 중범이니 제게 반드시 순무 대인께 직접 전하라 했습니다. 저는 이 일이 규율에 어긋난다는 걸 압니다. 지명 수배 내려진 중범이니 관아에 전해야겠죠. 하지만…… 그가 준 돈이 정말 너무 많았습니다.”

‘조정에서 지명 수배 내린 중범…….’

장 순무는 고개를 돌려 강율중과 허칠안을 쳐다봤다. 강율중의 눈빛에는 놀람과 기대가 공존해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허칠안의 눈빛은 탁했다. 그는 눈동자가 풀려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다.

‘칠안은 하필 이런 때에 연신경 승직을 선택하다니. 정말 지혜롭지 못해…….’

장 순무는 속으로 비아냥거리다가 이내 다시 보통 사람은 열흘이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으로라면 허칠안은 운주에 도착할 때 순조롭게 승직했어야 했다.

그가 이렇게 뛰어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가져오게!”

장 순무가 나지막이 말했다.

조예는 명을 받들어 두 동료를 데리고 역참을 나와 문 앞에 멈춰 둔 마차로 곧장 달려갔다. 마차 옆에는 십여 명의 청장년 표사가 지키고 있었다.

조예가 나오는 걸 본 청장년 표사들은 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마차에서 머리에 마대 자루를 씌운 남자를 끌어내어 역참으로 끌고 갔다.

남자는 다리에 상처를 입은 듯 절뚝거렸다. 그는 걷기 아주 불편해 보였다.

그들이 역참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머리에 마대 자루를 쓴 남자에게로 쏠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양진태의 내막을 아는 허칠안 등 몇 사람의 시선이 가장 뜨거웠다.

장 순무는 일어나서 마대 자루 남자를 가리키며 다소 촉박한 어조로 소리쳤다.

“어서, 어서 마대 자루를 벗기거라…….”

호분위가 나설 필요 없이 조예가 나서서 마대 자루를 잡아끌었다. 그러자 눈꼴 시린 남자의 참모습이 드러났다.

앙상한 얼굴, 거친 피부, 휙 둘러보는 옅은 갈색의 두 눈은 아주 날카로웠다.

양진태, 도지휘사사 경력사의 경력이었다.

그는 도주 중인 제당 사람으로 장부를 허칠안에게 건넨 놈이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찾을 수 없더니, 의식하고 있지 않으니 오히려 제 발로 굴러들어오는구나…….”

장 순무는 중얼거리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 분부했다.

“본인인지 확인하거라!”

한 동라가 앞으로 나아가 양진태의 얼굴을 쥐고 꼼꼼하게 살펴보더니 보고했다.

“본인입니다.”

일반적으로 강호를 떠도는 자들이 자주 쓰는 역용술(易容術)은 사람 껍데기의 가면을 쓰는 데 불과하다. 이런 가면은 매서운 눈초리를 가진 사람의 눈에 간파되기 쉽다.

뻣뻣하고 표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 수준이 높은 역용술은 고품 강자만이 할 수 있고, 한가한 사람은 하지 못한다.

‘후…….’

장 순무는 가볍게 숨을 내뱉더니 조예 일행을 쳐다보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자는 확실히 조정에서 지명 수배 내린 중범이네.”

그는 곁눈질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그는 바로 알아차리고선 쿵쿵쿵 위층으로 올라가 집돌이 술사 셋을 끌어왔다.

“자네들은 아래층의 표사 셋을 지켜보며 그들이 거짓말하는지 아닌지 확인하게.”

“알겠습니다, 허 공자님.”

* * *

아래층에서 장 순무가 물었다.

“그 신비스러운 손님은 어떤 신분인가?”

“저는 모릅니다.”

조예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망토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백의 술사들의 눈에 청광이 맴돌았다.

이 대답은 인정으로 보나 도리로 보나 맞는 말이었다. 상대가 어떤 목적이었든지, 표국에 들어갈 때는 분명 위장했을 것이다. 이 시대에도 택배를 보낼 때 신분증을 등록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표사는 당대의 택배 기사로서 4대 보험도 없고, 상업 보험도 없었다. 만약 그가 여전히 규칙을 모른다면 싫든 좋든 내뱉어야 한다.

<신분을 밝히고 등록하세요.>

그들을 맞이하는 건 작두일지도 몰랐다.

“조 표두(鏢頭)!”

허칠안이 위층에 있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아래층 대청 안의 모든 사람이 잇따라 고개를 들어 보았다.

허칠안은 따져보며 말했다.

“그 화물을 부친…… 신비스러운 손님이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는가?”

조예가 읍을 올리며 말했다.

“저희에게 이자를 역참으로 보내어 순무 대인께 전하라 했고, 그가 조정에서 지명 수배 내린 중범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은 없는가?”

허칠안이 상기시키며 말했다.

“예를 들자면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와 같은?”

조예는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없었습니다.”

“그럼 자네들을 등지고 있지는 않았는가?”

“아닙니다.”

조예는 약간 답답했다. 묻는 게 죄다 이상한 질문 아닌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허칠안은 이 모든 게 허세왕이 한 일이라 의심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비록 두 질문이 부결됐지만, 허세왕 양천환이 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양진태가 역참에 보내진 후, 분명히 변죽을 올리며 ‘발신인’의 신분을 캘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세왕은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바보는 아니다. 이렇게 분명한 허점을 남길 리 없다.

허칠안이 당혹스러운 건 허세왕이 왜 직접 나타나지 않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치대로라면 이렇게 위급한 국면을 되돌릴 기회는 허세왕이 가장 갈망할 터였다.

사건이 난관에 부딪혀 순무 등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에 그가 갑자기 튀어나와 거창하게 외친다고 생각해 봐라.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그는 모든 이를 등지고 발밑에는 양진태를 밟고 있는 것이다!

한순간에 폭등하는 거라고.

게임 전체 베스트, MVP!

그는 무슨 부득이한 고충이 있길래 나타나지 못하는 걸까?

장 순무는 몇 마디 더 변죽을 올리더니 호분위에게 손님을 배웅하라 일렀다.

“그자를 내 방으로 데리고 오게. 본관이 직접 심문할 것이니.”

장 순무는 두 손으로 뒷짐을 지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장 순무는 위층에서 허칠안을 지나칠 때 물었다.

“자네 무언가를 발견한 게지?”

“아닙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들은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장 순무가 ‘응’하고 대답하더니 말했다.

“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오게.”

* * *

허칠안은 백의 술사 셋을 데리고 장 순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강율중은 양진태를 들고 뒤따라 들어와 쓰레기 버리듯 절름발이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돌아서서 문을 닫았다.

양진태의 두 손은 줄에 묶여 있었다. 그도 일어서지 않고 단념한 듯 바닥에 앉아 있었다.

“네가 바로 양진태더냐?”

장 순무가 탁자에 앉은 후 위엄 있는 얼굴로 절름발이 경력을 주시했다.

“순무 대인께서는 소직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계신 듯하군요.”

양진태가 ‘여’하고 소리를 냈다.

“네가 황백가의 정15호 개고기 점포 사장을 살해하고 연락책으로 위장하여 장부를 우리에게 건넨 건 양천남에게 화살을 돌리기 위해서지. 네 배후에 또 누가 있는 게냐? 낱낱이 진술하거라.”

장 순무가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만일 진술하면 순무 대인께서는 제 목숨을 살려 주실 수 있습니까?”

양진태가 냉소를 지었다.

“죽을죄는 면하기 어렵지만 후련하게 죽을 수 있게는 해 주지.”

강율중이 옆에 앉아 손에 찻잔을 받치고 있었다. 그의 웃는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너도 야경꾼이 부정 관리를 괴롭히는 수법을 체험해볼 수 있겠구나.”

야경꾼 관아에서 고문을 주관하는 건 남궁천유다. 이놈의 트렌스젠더는 매우 악독해서 수백 가지의 극악무도한 고문 수법을 스스로 만들었고, 장인에게 명하여 만든 신형 고문 도구는 무려 백여 점에 이르렀다.

대봉의 고문 수법에 적은 힘이나 보탠 것이다.

그중에는 참형(站刑)이라는 게 있었다. 이는 큰 철타를 범인의 목에 걸어 놓는 방식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범인의 목이 조금씩 쑤시고 부어오르며 통증을 느껴 버틸 수 없을 지경이 이른다.

하지만 기어코 범인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고 강제로 서 있게 하니 죽고 싶다고 할 만하다. 범인은 이틀도 못 가 끝없는 고통 속에서 죽는다.

허칠안처럼 쉬지 않고 도를 닦는 형벌도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연신경 승직에서 얻은 영감이라고 한다. 허칠안은 이런 형벌이 충분히 고통스럽다는 데 격하게 공감했다.

그는 좌선과 명상에 의지하는데,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은 평범한 사람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남궁천유가 저술한 《형벌대전》 중에 무딘 칼로 살을 도려내는 형벌은 무려 100개가 넘는다.

강율중은 남궁천유처럼 108가지 자세에 정통한 심문광은 아니지만, 항상 보고 들어 익숙하기에 사람을 괴롭히는 가혹한 형벌이라면 잘 알고 있었다.

양진태는 말없이 강율중과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의 눈빛 모두 매처럼 날카로웠지만, 양진태는 별다른 수련 품계가 없는 터라 금세 꼬리를 내렸다.

그는 시선을 옮기고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제게 다른 선택은 없는 것 같군요.”

장 순무와 강율중 둘 다 입을 열지 않고 아무런 표정 없이 그를 주시했다. 이자를 기왕 손에 넣었으니 설령 돌멩이라도 입을 열게 할 수 있었다.

양진태는 허칠안을 보더니 자신의 절뚝거리는 다리를 치면서 여유롭게 말했다.

“저는 속이지 않았습니다. 이 다리는 정말 사람이 부러뜨린 것입니다. 다만 저를 구해준 그 사람이 주민이 아닐 뿐이죠. 저는 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기억하는 시절부터 운주 비적의 난이 심각하여 백성들이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의 꿈은 무술을 연마하여 칼을 쥐고 강호를 떠도는 협객이 되어 산적을 죽이는 것이었죠.

하지만 가난한 집은 학문을 연마하고 부유한 집은 무예를 연마한다고, 빈곤한 집안에서 태어난 저는 무예를 연마할 형편이 못 돼 학문에만 힘썼습니다. 과거를 두 번 치렀으나 합격하지 못하자 저는 붓을 내던지고 군대에 들어갔죠.”

‘꿈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현실에 패하다니……. 숙부가 매년 은자 이백 냥을 주어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나 역시 신년이처럼 학문에 힘썼겠지……. 숙모가 나를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허칠안은 내심 감탄했다.

허칠안의 자질로 학문을 연마한들 무슨 장래가 있겠는가? 그는 아마 허영음보다 나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어느 해, 저는 백제성에서 관료의 자제가 길거리에서 일반 백성의 아들을 능욕하는 걸 보고 화가 난 나머지 나섰다가 그의 수행원 때문에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관료의 자제는 흥이 깨졌다고 생각했는지 저를 놓아주길 원치 않았고, 사람을 시켜 저를 성 밖에 생매장하려 했습니다. 바로 이때……. 그 대인께서 나타났습니다. 수행하던 시위가 저를 구했고, 관료의 자제를 체포하여 정의를 실현해 주셨습니다.”

허칠안 및 몇몇은 그 대인이 양진태가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자 십중팔구 배후의 검은손임을 알아차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