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사람 간의 신뢰
관원들은 협의가 끝난 후 장 순무를 수행하여 도지휘사사로 갔다. 장부를 조사하여 진위를 가릴 계획이다.
허칠안은 문외한이라, 장부 조사 같은 일을 구경하러 따라가지는 않았다. 그는 다른 야경꾼과 함께 양천남을 감시하게끔 역참에 배치되었다.
사람들이 다 떠나자 허칠안은 대청에 서서 고개를 들고 2층에 있는 두 미인을 바라보며 웃었다.
“두 분은 언제 갑니까? 강 금라가 없는 틈을 타 양천남을 납치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소소가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주인님은 천종의 성녀이자 비연 여협객이에요. 약속을 가장 잘 지킨다고요.”
허칠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 간의 신뢰는 사실 아주 나약하지. 한 번 찌르면 찢어지는 종이처럼 말이야.”
“마음이 비뚤어졌어!”
소소가 언쟁을 벌이며 큰소리로 반박했다.
“못 믿겠으면 내려와라. 내가 증명해 보일 테니.”
허칠안이 손짓했다.
소소는 난간에서 하늘하늘 대청으로 날아와 허칠안 앞에 섰다.
푹…….
허칠안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찌르니, 마치 찔려서 구멍 뚫린 종이 같았다.
“너, 거지 같은 놈. 이 몸이 죽여 버리겠어!”
소소는 미친 듯이 화가 났다.
“봐, 내 말이 맞지.”
소소는 음기를 마구 내뱉으며 허칠안을 공격했다. 하지만 무사는 한번 경계하기 시작하면 근거리 전투는 다른 체계보다 훨씬 강하기에 내뿜는 음기를 모두 민첩하게 피했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그녀의 몸에 계속해서 구멍을 하나씩 냈다. 가슴, 등허리, 배…….
소소의 몸은 아주 빠르게 망가졌다.
이묘진은 어쩔 수 없이 종이 인형을 다시 꺼내 소소의 빙의물로 삼았다. 귀신은 실체가 없어서 낮에 강렬한 햇볕을 오래 쬐면 가볍게는 원기가 상하고 무겁게는 소멸한다.
종이 인형에 도문의 주문을 그리면 귀신을 온양하고 음기를 봉인할 수 있다.
“아이구, 이 장군님 종이 인형도 휴대하고 계시나요? 어디에 숨기신 거예요?”
허칠안은 일부러 의심을 품었다.
“내게는 당연히 나만의 수법이 있네.”
이묘진이 말했다.
“무슨 수법입니까? 전설 속에 나오는 겨자씨에 수유산(須臾山) 담기입니까?”
허칠안은 세상 물정 모르는 촌뜨기처럼 눈을 크게 떴다.
‘겨자씨에 수유산 담기가 뭐람…….’
이묘진은 어리둥절하다가 허칠안에게 숭배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들어, 매우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사한 법술이라고 할 수 있네.”
“이 장군님은 역시 천종의 성녀답습니다.”
허칠안은 탄복했다.
이묘진은 어색하게 ‘응’하고 대답했다.
‘……척하네. 고작 지서 파편 아니야? 지금 척하는 일이 많을수록 앞으로 철저히 괴로워질 거다.’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 * *
허칠안은 오시에 식사하라고 두 미인을 불렀다. 짐작건대 장 순무도 곧 돌아올 것 같았다.
순무가 오기도 전에 성을 지키는 병사가 말을 빠르게 몰아 역참으로 돌진하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소직 중요한 일로 순무 대인을 뵙길 청합니다!”
호분위는 그를 가로막고 나무랐다.
“역참에 난입해서는 안 되네.”
성을 지키는 병사는 다급해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순무 대인, 소직 매우 화급한 일로 뵙길 청하옵니다.”
마당의 인기척에 역참 내의 야경꾼들이 놀랐다. 한 은라가 동라 둘을 데리고 나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순무 대인은 안 계시니 무슨 일인지 내게 말하게.”
성을 지키는 병사는 침을 삼키더니 급히 말했다.
“위사의 군대가 남성 밖에 집결하여 순무 대인이 그들을 만나러 나오지 않으면 성으로 쳐들어간다며 위협하고 있습니다.”
“운주에 이 허접한 군사들이 감히 반란을 일으키는 것인가?”
그 은라는 순간 미간을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성 밖은 현재 무슨 상황인가?”
병사가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왔다. 그는 찬바람에 입술이 얼어 시퍼렇게 갈라졌으며 입안도 바짝 말랐다. 그가 입을 벌려서 겨우 낸 쉰 목소리가 듣기에 거북했다.
“남성 성문은 이미 닫혔…….”
“서두르지 말고 우선 숨부터 고르게!”
허칠안은 소리를 듣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병사에게 찬물 한잔을 따라 주었다.
병사는 빠르게 받아 꿀꺽꿀꺽 마셨다. 그는 목구멍이 많이 편해지자 감격 어린 시선으로 허칠안을 바라봤고, 빠른 속도로 전했다.
“위사에서 3천 대군을 집켤시켜 남성 문밖에 있습니다. 우두머리인 위소지휘사 서호신(徐虎臣)이 떠벌리길 반 시진 내에 순무 대인이 도지휘사를 놓아주지 않고, 사정을 설명해 주지 않으면 입성한다고 했습니다!”
병간(*兵諫: 무력으로 협박하다)!
사서를 숙독한 뒤 허칠안의 머릿속에는 이 단어가 가장 먼저 스쳤다. 소위 병간은 군주나 손윗사람에게 무력으로 충고하여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먹으로 상대에게 복종하라고 다그치는 일이다.
병간과 정변의 목적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두 행위는 같다. 허칠안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두 번의 병간은 각각 마외파(馬嵬坡) 양옥환(楊玉環)의 죽음과 장학량(張學良)이 총을 꺼내 들어 장개석(蔣介石)을 탕탕탕하고 쏜 일이었다.
이 두 번의 병간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한 번은 당나라의 미래를, 한 번은 중국의 미래를 바꾸었다.
하지만 병간은 사간(死諫)이라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는 이가 없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당돌하구나!”
은라 몇몇이 달려와 지켜보다 뒤늦게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그 순간 그들은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일은 경성에서는 전혀 겪을 수 없었다. 그들은 언뜻 소식을 듣자 마음속의 놀라움과 분노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순무 대인께서 도지휘사사에 가셔서 반 시진 내에 남성에 도착하실 수 없네.”
한 은라가 칼자루를 누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남성의 방어군이 얼마나 되는가?”
“천 명이 안 됩니다.”
병사가 대답했다.
‘그 정도로는 버틸 수 없을 텐데…….’
“이렇게 하세. 우리 몇 명이 호분위를 이끌고 남성으로 달려가겠네. 그 허접한 군인들이 감히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 새끼들을 베어야겠어. 순무 대인과 지원군이 올 때까지 끌 수 있을 거라 믿네.”
한 은라가 제안했다.
호전적인 몇몇 야경꾼은 갑자기 가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호분위는 본래 여러 차례의 전투를 겪은 용맹한 병사다. 거기에 연기경 기반의 야경꾼이 성 방어군과 협력하면 한 치에 착오도 없을뿐더러 한동안 버티기에도 어렵지 않다.
“그럼 양천남은 어떡합니까? 그는 조정의 중범이니 내버려 두고 상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허칠안이 한껏 달아오른 야경꾼들을 일깨웠다.
“그를 데리고 가지.”
한 동라가 말했다.
“위사의 병사들이 현장에서 우리에게 죽기 살기로 덤빌 텐데?”
허칠안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들 병사가 성 아래까지 와서 싸우는 것이 바로 이 목적 때문 아닌가?”
그 동라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무력으로 핍박하면 순무 대인과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을 줄 아는가? 마침 운주의 야만스러운 병사들에게 누가 야경꾼인지 알게 해주면 되겠네.”
이는 야경꾼들이 가장 분노하는 부분이었다.
줄곧 그들만이 문무백관을 감독하고, 탐관오리를 처벌했거늘 언제 이렇게 감히 코앞에서 그들을 무시하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 게다가 순무에게 반 시진 내로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면 성안으로 쳐들어오겠다고 소리치다니.
이는 완전히 야경꾼을 안중에 두지 않고 그들의 체면을 짓밟는 일이다.
벼슬아치는 참을 수 있지만, 무사는 참지 못한다.
술사는 참을 수 있지만, 무사는 여전히 참지 못한다.
‘개 같은 놈들.’
허칠안은 형세가 심상치 않은 걸 보자 황급히 탁자를 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여러분, 침착하십시오. 무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가장 먼저 병사를 접견한 그 은라의 성미가 가장 거칠었다. 그는 허칠안을 보며 막말을 내뱉었다.
“어쨌든 이 몸은 참지 못하네. 강 금라가 없으니 지금은 은라의 말이 법이네. 형제들이여, 양천남을 데리고 나를 따라오게.”
이묘진은 한 편에 서서 냉철한 눈으로 방관하고 있었다.
쾅!
허칠안이 탁자를 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야경꾼들은 막 역참을 나서려다 아연실색하여 돌아왔다.
허칠안은 그 은라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몸은 네가 은라든 아니든 상관 안 해. 직급으로 날 제압하겠다? 제압할 수는 있고? 주씨에게 물어보러 가시지. 제압할 수 있는지 없는지! 갈등을 격화시켜서 순무 대인더러 어쩌란 말인가? 위사의 병사 3천 명을 모조리 죽이게? 한발 물러나서 얘기해볼까? 만약 지키지 못하면 그 불똥이 성안의 일반 백성에게 튈 텐데, 당신이 책임질 건가? 책임을 질 수는 있는가?”
그 은라는 목을 빳빳이 세우고 성내며 눈을 부라렸다.
“허칠안, 자네는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이 몸의 어깨가 너보단 짊어질 만하거든!”
허칠안이 소리쳤다.
그 순간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동라가 쓸데없이 허풍을 떨어 방 전체의 야경꾼들을 일제히 침묵하게 하다니…….’
여자 귀신 소소는 이 광경을 의아하게 지켜보았다. 그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러분 모두 이곳에 남아 양천남을 감시하십시오. 그는 조정의 중범이니 어떠한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외성의 수비군을 넘겨 주시면 제가 가서 시간을 끌겠습니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고집부리는 이가 없는 걸 보자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자네가?”
모든 이의 얼굴에 궁금증이 가득했다.
허칠안은 미간을 문지르더니 생각의 흐름을 바로잡으며 설명했다.
“위사의 군대가 성 아래까지 이르렀다는 건 그 목적이 성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순무 대인에게 양천남을 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돌이킬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몹시 초조해하며 양천남을 데리고 달려가면 도발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오히려 갈등을 격화시켜 서로 빠져나갈 구멍을 막는 일입니다. 물론, 저 혼자서는 분명 위사의 장병을 설득하지 못하겠지만 이 장군은 가능하지요.”
허칠안은 이묘진을 툭 밀치며 웃었다.
“틀림없이 이 장군님도 여러분이 이렇게 대립하며 양천남의 퇴로를 없애길 원치 않을 겁니다.”
양천남이 직접 가는 방법을 그는 고려하지 않았다. 첫째로 양씨가 협조적이지 않을 수 있고, 둘째로 바로 구해서 가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묘진은 이 결과를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숨을 내쉬더니 더는 차가운 시선으로 방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 장군이 최선을 다해 순무 대인께서 오실 때까지 버티겠네.”
* * *
이묘진과 허칠안은 준마를 이끌고 남성 문으로 내달았다. 종이 인형 소소는 이묘진의 허리를 끌어안고 뒤에 앉아 있었다.
“일개 동라가 능력이 아주 좋네요!”
소소는 고개를 기울여 나란히 가고 있는 허칠안을 훑어보았다.
“내가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관건은…….”
허칠안은 기침 소리를 내더니 비밀을 털어놓는 말투로 말했다.
“사실 내가 장 순무와 이복형제거든.”
소소가 바로 핵심을 잡았다.
“야, 허 공자님이 장 순무의 형제예요?”
“아니고선 나한테 그렇게 큰 발언권이 어찌 있겠니?”
“그랬구나…….”
소소는 문득 모든 걸 깨달았고, 자신이 큰 비밀을 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묘진은 입꼬리를 올렸는데, 자신의 하녀를 일깨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녀는 허칠안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문장 부호 하나도 믿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가 그렇게 큰 발언권이 있는 건 위연의 신임과 총애를 한몸에 받아 관아에서의 지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보들은 천지회 내부로부터 얻은 것이다. 이호가 아는 정보가 이묘진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