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통쾌하다
한편, 이묘진은 깜짝 놀랐다. 그날 일호는 전편으로 허칠안이 사건 해결에 얼마나 뛰어난지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의 천부적인 자질 면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며칠 밤을 새웠는지 모르겠네.’
이묘진은 갑자기 이 문제에 호기심이 생겼다.
[오: 그럴 수 있지. 두 달에 한 품계를 깨는 것 아닌가.]
줄곧 참견하지 못했던 오호가 문자를 보내 평가했다.
[삼: 이미 아주 쉽지 않은 일일세.]
허칠안은 세컨 아이디로 허세를 부렸다.
[오: 음, 좋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네. 다만 나 역시 두 달에 한 품계 올라갔네. 내가 지금 명고(命蠱)를 배양하려 하는데 바로 6품경이네. 나는 8품에서 6품까지 넉 달 좀 넘게 걸렸지.]
?커다란 물음표가 모든 이의 머릿속에 생겨났다.
‘넉 달 만에 두 품계 올라갔다는 건 두 달에 한 품계 올라갔다는 것이니 허점은 없군.’
천지회 구성원들은 금련도사가 오호를 천지회에 가입시킨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묘진은 흥분한 나머지 침상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주먹을 쥐고 힘껏 휘둘렀다. 역시 천지회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청한 건 옳은 선택이었다.
의뭉스러운 일호, 경험이 풍부한 사호 그리고 아주 똑똑한 삼호. 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여 사건의 맥락을 이렇게 빨리, 명확하게 정리했다.
심지어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도 생각해 두었다.
* * *
이튿날, 허칠안은 새까만 다크서클을 이고 아침을 먹으러 대청에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 순무와 강율중 등도 내려왔다.
이묘진은 마지막으로 등장했는데 얇은 갑옷을 입고, 은색 창을 맸다. 그리고 허리에는 패검을 찬 채 높게 묶은 포니테일을 멋지게 흔들었다. 뒤로는 경국지색의 매(魅)가 따라왔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약속이나 한 듯 등을 돌리고 소소에게 뒤통수를 보였다.
이묘진은 곧장 장 순무와 강율중의 탁자로 갔다. 그녀는 먼저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날카로운 아래턱을 거만하게 치켜들고 말했다.
“저 이미 사건을 해결했습니다!”
장 순무는 강율중과 서로 쳐다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리 방에 가서 얘기하지. 칠안, 자네도 오게.”
* * *
이묘진은 방 안에서 ‘채팅 기록’을 아주 생생하게 전했고, 이를 들은 장 순무와 강율중은 매우 감탄했다.
강율중도 아주 탄복했다.
이묘진은 어색하게 웃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쳐다봤다.
“자네 마치 본 장군의 추리에 동조하지 않는 듯한데?”
‘헛소리. 우리는 채팅 친구인데 내 앞에서 무슨 허세야. 분명히 존재하는 물건을 굳이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하다니…….’
그러나 허칠안은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보이며 보조를 맞추고, 칭찬했다.
“이 장군님의 사건 처리와 추리 능력은 저보다 뛰어납니다. 허 모 씨가 고개 숙여 존경합니다.”
이묘진이 가볍게 웃었다.
“본 장군 역시 내 자신이 사건 해결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생각지 못했네.”
그녀는 고수 허칠안 앞에서 그를 압도하니 정말이지 너무 통쾌했다.
허칠안도 아주 통쾌했다. 앞으로 신분이 드러나면 사회적으로 체면을 잃을 사람이 그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단숨에 미래가 밝아진 듯하네.’
허칠안은 웃기 시작했다.
* * *
장 순무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도지휘사사에 다녀올 참이었는데 호분위가 들어와 보고했다.
“순무 대인, 송 포정사가 모든 관리를 이끌고 찾아왔습니다!”
장 순무는 바로 강율중을 포함한 세 사람과 소리 없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운주 관원들은 어젯밤 도지휘사 양천남이 체포된 일로 온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방금 나눈 대화로 그들은 다른 의견이 생겼다.
어쩌면 이 역시 탐색일 수 있다. 배후의 검은손으로부터의 탐색.
“아주 일찍 왔군.”
장 순무가 허허허 웃으며 한마디 건넨 뒤 강율중을 데리고 나섰다.
허칠안은 동행하지 않았다. 그는 무사와 같은 식탁에서 밥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방 안에 웅크려 아침 식사하는 백의 술사 셋을 불렀다.
“허 공자 오셨습니까?”
백의 술사 셋은 황급히 일어나 허칠안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공손히 청했다.
“자네들에게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허칠안은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자네 셋을 제외하고 우리 사천감에서 운주에 함께 온 사람이 더 있나?”
그는 동질감을 높이기 위해 특별히 ‘우리 사천감’이라고 말했다.
백의 셋은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없습니다. 저희 셋뿐입니다.”
허칠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 무시하는 건가?”
“……허 공자님 무슨 말씀입니까. 정말 저희 세 사람뿐입니다.”
백의 술사가 설명했다.
‘망기술로 술사를 보는 게 효과가 있을는지 모르겠군. 그자의 방법을 모방하여 그자를 박해한다라…….’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도 세 동생이 자신을 속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술사들은 자신의 기운을 차단하는 방법을 틀림없이 갖고 있을 터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전문가니까.
“지금 어느 관원이 장 순무님을 뵙길 청하니 자네 셋이 아래층에서 주시하며, 그들 운명의 변화를 지켜본 뒤 내게 답해 주게.”
허칠안은 당부를 마치고 백의 셋을 데리고 몸을 기울여 2층의 계단 모퉁이에 숨었다.
* * *
장 순무는 대청 안에서 백제성의 각급 관원들을 접견했다. 무릇 성에서 직급이 높은 자들은 대체로 이곳에 다 모여 있었다.
어젯밤에 그렇게 큰 움직임이 있었으니 장님과 귀머거리가 아니고선 모를 수가 없었다. 하물며 그들은 순무 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성안의 관원들 아닌가.
그들이 한 차례 인사말을 나눈 뒤, 붉은 피풍을 입은 송 포정사가 단도직입적으로 화제를 던졌다.
“오늘 아침에 병사들에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순무 대인께서 어젯밤에 도지휘사사로 직접 찾아가서 양 대인을 체포하셨다지요?”
광대뼈가 다소 튀어나온 송 포정사가 모기 눈으로 웃기 시작했다. 그는 이때 눈을 크게 뜨고 한순간도 장 순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른 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장 순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제당이 무신교와 결탁하여 군수물자를 수송했네. 본관은 그를 체포하고 역참으로 돌아와 현재 심문 중이네.”
“이…….”
관원들의 낯빛이 변했다.
송 포정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낮게 깔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순무 대인, 신중하게 하셔야 합니다. 신중하게.”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허리를 굽혀 장 순무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계속해서 말했다.
“양 대인은 도지휘사입니다. 대인께서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계신 거죠? 그렇지 않으면 저희를 납득시키기 어려우실 겁니다.”
설령 순무의 권위라 해도 버젓한 2품 도지휘사를 건드리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만 했다. 증거가 없이 사람을 체포하는 건 금기다.
우선 운주 관리 사회가 동의하지 않을 테고, 도지휘사사 관할의 위소에서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전자는 그래도 괜찮다. 기껏해야 입만 놀릴 테니. 하지만 후자는 쓰레기 군인 집단이다.
증거는 틀림없이 내놓아야 했다. 사정을 설명하지 않으면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장 순무는 서둘러 증거를 내놓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운주에서 여러 해 동안 벼슬을 지내면서 도지휘사 양천남이라는 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모든 관원은 이 질문을 듣자 제각각 다른 표정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허칠안이 계단 모퉁이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보게. 자세히 보게.”
잠시 후 그는 또 물었다.
“누가 거짓말하는가? 내 생각에 왼쪽에 도둑놈 상판을 한 자가 미심쩍은데. 뒷줄에 있는 두 번째도 딱 보면 좋은 사람이 아니지…….”
허칠안은 말을 마친 뒤 백의 술사 셋이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을 주시하는 모습을 보았다. 허칠안은 답답해하며 말했다.
“나를 봐서 뭐하는가. 말을 하게.”
백의 술사가 우물쭈물대며 말했다.
“진실을 말하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허칠안은 입을 벌리고, 그 순간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존나 진실한 세상이 따로 없네. 이게 바로 관리 사회다!’
소위 진실한 한마디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자리에 있는 관원들의 입에서 내뱉는 말이 속마음과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결코 그들이 ‘마피아’라고 할 수는 없다. 관리 사회의 표면적인 호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블라블라 열 마디 하면 한 마디는 거짓이다. 사천감의 망기술에 그건 거짓말이다.
망기술도 한계가 있어 물시계처럼 시간을 매우 정확하게 초까지 맞추지는 못한다.
이어 장 순무는 모든 관원에게 장부의 일을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공개적으로 내보이지는 않았다.
관원들이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순무 대오가 운주에 온 지 고작 얼마나 됐다고?’
사실 5일도 채 안 됐다. 그중 3일은 바깥에서 시찰까지 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고작 며칠 만에 양천남의 죄증을 들추어냈다니?’
한순간 관원들의 마음에 전율이 일었다. 3년이 흐르면 청렴한 지부도 은자 십만 냥을 횡령한다는데 누가 감히 스스로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장 순무가 만약 그들을 겨냥하고 나서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도망치지 못한다.
한 관원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순무 대인 수하에는 인재가 넘쳐 나는군요. 어느 대인께서 이 공로를 세우셨는지요?”
그는 말하는 동시에 주위에 있는 야경꾼들을 훑었다.
다른 관원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야경꾼을 주시하며 누구인지 추측했다.
송 포정사가 눈을 반짝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본관은 농사일에 정통한 그 동라가 그날 순무 시찰에 동행하지 않았던 거로 기억합니다만.”
이 발언은 모든 자를 일깨웠다. 직급이 낮지 않은 관원들이 문득 목적성을 가지고 허칠안의 모습을 구석구석 찾았다.
어떤 이가 장 순무를 쳐다봤다.
“맞네, 바로 그자일세!”
장 순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리에 있던 관원들의 지혜로는 설령 장 순무가 확신을 주지 않았어도 대다수는 짐작해낼 수 있었다. 역참에 남아 지키던 야경꾼이 많지 않았고, 하필 그 동라는 직급도 높지 않으면서 순무 대인의 옆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야경꾼과는 다른 패도를 회상해 보면 그가 여러모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자가 허칠안이라는 동라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난 그자는 이번 순무 대오의 중요 인물 중 하나다.
“콜록콜록!”
허칠안이 적당한 시기에 나타나 기침 소리를 낸 후 묵묵히 장 순무 옆에 섰다.
‘그때 그의 비범함을 알아채긴 했지만 버젓한 도지휘사가 일개 동라의 손에 곤두박질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많은 관원의 눈빛에 경계심과 경외심이 뒤섞였다.
* * *
이묘진은 2층 복도에서 양손으로 난간을 누른 채 아래쪽의 군중을 내려다보았다. 소소가 옆에서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거만하게 굴겠군요.”
그녀들의 각도에서는 마침 허칠안과 백의 술사가 숨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방금 송 포정사가 은연중에 사건을 해결한 공을 밝히고 장 순무가 인정한 후였다. 눈꼴 시린 남정네가 황급히 용모를 가다듬고 위풍당당하게 나왔다.
소소 역시 ‘허세 부린다’라는 단어를 몰라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그녀는 적재적소에 형용사를 잘 골라 얘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자는 죄다 명성을 좋아해요. 인지상정인가 봐요.”
이묘진은 지금 허칠안에 관한 생각이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여색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말고는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색을 밝히는 것을 제외하면 사람 됨됨이가 올바르고 말도 듣기 좋게 하며, 사건 해결에 능하고 능력이 뛰어나다.
“너 그자에게 선입견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정말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구나.”
이묘진이 곁눈질로 여자 귀신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 예전에는 남자를 전부 하찮게 여기더니 이제는 그와 원수진 것처럼 구네.”
소소는 인정하지 않고 서둘러 변명했다.
“저는 화가 났을 뿐이에요. 오히려 주인님이 그에게 호감이 많으신 것 같네요.”
이묘진이 당당하게 인정했다.
“허칠안 이자는 확실히 괜찮아.”
소소가 말했다.
“그가 어제 제게 육신을 다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조건을 하나 제시하더라고요.”
“무슨 조건?”
“몇 년 동안 그의 첩 노릇을 하래요.”
“허칠안 저자는 역시나 천성이 악랄하고 구제불능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