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이호, 잘했네
“나한테 이런 얘기를 왜 하는 거지?”
“저는 두 가지 숙원이 있어요. 하나는 제 친동생을 다시 만나는 거예요. 완벽한 몸을 가진 상태에서 그를 만나고 싶어요. 둘째는 그해 아버지가 휘말렸던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는 거예요.”
달빛이 목욕통 안의 출렁이는 찬물에 굴절되어 그녀의 얼굴에 아른거렸다.
허칠안은 오래간만에 설렜다. 남자라면 절세미인을 봤을 때 누구나 설레기 마련이다.
“어떻게? 네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신 거야? 그럼 나를 따라와. 나를 따라오면 내가 너를 도와 사건을 조사해 주마. 세상에 나보다 더 사건 수사를 잘 아는 자가 있니?”
허칠안은 이 여자 귀신이 눈뜬장님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기억 안 나요.”
소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해 일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해요. 저는 가족이 왜 죽었는지조차도 몰라요.”
“어쨌든 20년이 넘었잖니.”
소소는 또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의 사부께서 주술사 체계의 고수를 모셔서 제게 점을 쳐 주셨지만, 아무것도 점치지 못했어요. 그 괘사(卦師)가 말하길 제가 사천감과 관련 있대요.”
이 말의 정보량이 너무 커서 허칠안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이묘진의 사부가 무신교 사람을 아는 건가? 음, 주술사 체계를 수련한다고 꼭 무신교 사람인 건 아니지. 수련을 그만뒀을 가능성도 있고……. 주술사 체계의 제6품이 점을 잘 치기 때문에 6품 주술사를 괘사라고도 하는군. 보잘것없는 귀신이 어째서 사천감과 관련된 거지? 잠깐, 괘사가 점을 잘 치면 양진태가 어디에 있는지 왜 점치지 못하고 되려 송정풍과 주광효의 꿈에 들어온 거지?’
“저기요!”
소소는 화가 나서 볼에 바람을 넣어 부풀렸다.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허칠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듣고 있잖아.”
소소는 입을 삐죽거렸다.
“어쨌든 그렇다는 거예요. 만약 공자님이 저를 위해 싱싱한 육신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공자님의 첩이 되어도 무방해요. 기분 좋으면 공자님께 통통한 사내아이도 낳아 드릴 수 있고요.”
“1+1이네. 고마워라.”
허칠안은 눈을 희번덕였다.
* * *
드디어 소소를 내쫓았다. 허칠안은 귀신을 속인 이 일에 조금은 죄책감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는 그녀가 헛된 꿈을 꾸게 했다.
하지만 그는 사건 수사 방면으로 소소를 커버해 주기로 결정했다. 그는 경성에 돌아간 후에 할 수 있는 한 조사해볼 것이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약한 남자야.”
허칠안은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관상과 토납으로 피로를 풀어 급사의 문턱에 있는 자신을 끌어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이때 갑자기 가슴에서 진동이 울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둘 뻔했다.
“…….”
허칠안은 상스러운 욕을 퍼부으며 베개 밑에서 옥석경을 더듬어 꺼냈다.
[이: 밤늦게 방해해서 미안하네. 내가 운주에서 어려움을 좀 겪고 있어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네.]
‘……이호가 아주 똑똑한 사람은 아니지만, 수중에 있는 자원을 이용할 줄 아는군. 지서 단체 채팅방에서 오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IQ가 다 좋은 편이니까. 고생이 심하고 원한이 깊은 항원 대사도 사실은 똑똑한 사람이지……. 내가 신분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운록서원의 서생은 운주 사건의 자세한 내막에 대해 알면 안 된다. 진즉에 지서 파편을 통해 천지회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허칠안은 ‘이호, 잘했네’라는 말만 하고 싶었다.
허칠안은 고개를 떨구고 거울을 응시했다. 그가 잠시 기다리니 남강의 난폭한 계집애 오호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오: 운주는 우리 쪽에서 아주 멀어 자네를 도와줄 수가 없네.]
‘그녀는 이호가 3차원에서 도움을 청한다고 생각하나? 오호는 잠이 덜 깬 거겠지? 그런데 이 IQ는 진심으로 허용이 안 된다.’
허칠안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이어 육호 항원 대사가 메시지를 보냈다.
[육: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허 대인은 운주에 잘 있는 건가?]
이묘진은 우선 모두 잘 있다고 대답했으나 사건을 급하게 공표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녀는 나를 기다리는 건가 아니면 일호나 사호를 기다리는 건가? 모두 다겠지……. 채팅방의 IQ 담당자들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녀가 사건의 경위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허칠안은 이호의 생각을 이해했고,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문자를 입력했다.
[삼: 운주의 사건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말해 보게.]
이묘진은 한숨 돌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만약 오호와 육호만 대답하면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즉각 사건 전체의 맥락을 지서 단체 채팅방에 상세하게 전달했다.
그녀는 정보량이 너무 많아 한 단락 한 단락 보냈고, 일각을 보내고 나서야 사건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 뒤 이묘진에게 돌아온 대답은 오랜 침묵이었다.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며 마음을 졸일 때 줄곧 염탐하기만을 좋아하던 일호가 이번에는 주동적으로 문자를 보냈다.
[일: 두 가지 가능성뿐이네. 첫째, 양진태는 사실 제당 사람이 아니네. 그가 허칠안에게 장부를 건넨 건 다른 의도한 바가 있네. 둘째, 양진태가 실종됐네.]
‘양진태가 실종됐다라…….’
이묘진은 일호의 말을 되새겼다. 그녀는 두 번째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확실히 하기 위해 문자를 보냈다.
[이: 양천남과 양진태가 한 패거리로 고육지책을 연기할 가능성은?]
[일: 가능성이 크지 않네. 관리 사회의 규칙에 따라 양천남은 이번에 어찌 됐든 책임을 져야 하네. 가볍냐 무겁냐, 그 차이만 있을 뿐. 만약 자네가 양천남이라면 스스로 무덤을 파서 뛰어들겠나? 양진태가 원래의 교섭 상대를 죽이고 장부 안의 문제 되는 부분을 없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추측에 동의하네. 그렇기에 그가 제당 신분이라는 가능성이 많은 거지.]
이때 사호가 발언했다.
[사: 그래서 일호는 무신교가 꿈속에 들어가 그 두 동라에게 양진태의 행방을 심문한 이유가, 양진태가 실종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이군.]
일호의 분석은 허칠안의 사고방식을 터 주었다.
‘양진태가 실종돼서 무신교 사람이 절박하게 그를 찾으려는 건가? 그가 만약 적의 손에 들어가면 자기편에게 불리한 소식이 아주 많이 드러날 것이다. 운주의 그 배후 주모자는 양진태가 우리에게 잡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무신교 사람을 보내 꿈속에서 심문했겠지…….
나와 송 형, 주 형이 양진태와 접촉한 적이 있기 때문에 양진태를 체포한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줄곧 잠을 자지 않아서 송정풍과 주광효의 꿈에 들어가 심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일 만에 심문하러 왔다고?’
이묘진은 옥석경을 쥐고 잠시 기다렸지만, 시종일관 삼호의 의견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초반에 한마디 물었을 뿐, 그 뒤로는 아무 말이 없어 이묘진을 좀 초조하게 했다.
삼호는 아주 똑똑한 자였다. 그의 의견과 생각은 표준 답안에 들어맞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깨달음까지 주었다.
[이: 삼호, 자네 또 잠든 겐가? 자네는 이 사건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나 앉아서 보고 있는데…….’
허칠안이 속으로 빈정댔다.
그는 천지회의 다른 구성원들도 그의 의견을 기다린다는 걸 알았기에 문자를 보냈다.
[삼: 나도 궁금한 게 있네. 6품 주술사가 점치는 능력이 있는데 왜 양진태의 행방은 점치지 못하는 건가? 또한, 주술사는 저주를 걸어 죽이는 능력도 있는데 만약 양진태가 상대방의 공범이라면 상대가 실종되어 비밀이 누설될 수도 있다는 걸 안 후에는 죽여서 멸구하는 게 가장 타당한 선택 아닌가?]
[사: 이 문제는 내가 답하겠네. 주술사의 주살술은 수련 품계가 자신보다 낮은 자만을 목표로 할 수 있네. 양진태의 수준에 제한을 두고 누군가 그를 비호했을 걸세.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네.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자는 많아. 점치는 능력에 관해서 말하자면, 각 체계에서 수련 품계가 높은 강자는 자신만을 겨냥한 점괘에 대응할 수단이 있네. 하지만 같은 체계 외에 타인을 비호할 수는 없지.]
사호는 말을 마친 뒤 잠시 머뭇거리더니 몇 초 있다가 말을 이어갔다.
[사: 사천감 술사.]
마치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번개가 친 듯했다.
‘사천감 술사?’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이: 사호, 자네 뜻은 양진태를 납치한 게 사천감 술사라는 말인가?]
[사: 허허, 이 모든 건 추측이네. 양진태가 실종됐을 거라는 전제하에.]
[일: 만약 양진태가 정말 사천감 술사에게 끌려갔다면 왜 장 순무가 모르는가? 아니면 고의로 이호에게 숨긴 건가?]
[이: 숨긴 것 같지는 않네. 그들은 정말 모르고 있을 걸세.]
[사: 그렇다면 더 곰곰이 새겨 볼 만하네. 하지만 자네들이 경계해야 할 한 가지가 있네.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건 무신교 사람들도 생각할 수 있네. 어쨌거나 술사는 괘술(卦術)과 주살을 자제하니까. 그렇기에 오늘 밤 꿈속에서 양진태가 야경꾼 손에 들어갔는지 아닌지 떠보려 심문하게 된 것이지. 이런 타진은 한두 번만에 끝나지 않을 것이야. 우리가 역공격하여 반대로 배후의 주모자를 특정할 수 있네. 자네가 이 일을 장 순무에게 알리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할 걸세.]
일호가 이어서 의견을 냈다.
[일: 또 한 가지, 상대가 떠보러 왔다는 건 양진태가 야경꾼 손에 들어갔을 거라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는 걸 의미하네. 적어도 그들의 눈에는 사천감 술사에게 넘어간 거나 야경꾼 손에 걸려든 거나 같은 성격이라고 볼 테니. 이렇다면 양쪽 모두 다칠 각오를 했다는 뜻이지.]
이 말을 들은 허칠안과 이묘진은 가슴속에 두려움이 생겨났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먼저 선수 쳐서 우두머리를 잡는 방법밖에 없겠군…….’
허칠안이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선 우선 배후의 검은손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적은 어둠 속에 있고 나는 밝은 데 있으니 해 볼 만한 가치가 없다.
이때, 일호가 물었다.
[일: 이 사건은 비록 성가시지만 허칠안의 능력이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듯하네.]
‘일호, 말을 잘 하면 좀 많이 얘기해. 안 되면 책으로 내도…….’
허칠안은 일호가 자신을 핥아 준 듯해서 기분이 꽤 좋았다.
이묘진이 대답했다.
[이: 그는 연신경에 충격을 가하느라 상태가 아주 나쁘네.]
[육: 허 대인이 이렇게 빨리 연신에 충격을 가한다고? 그가 경성을 떠나기 전에 연기경 전봉과의 거리가 좀 되길래 나는 그가 초봄에나 연신경으로 승직할 줄 알았네. 정말 그의 천부적인 자질이 놀랍구먼.]
원인은 허칠안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그가 연기경으로 승직한 이래로 신변에 문제가 한 더미씩 쌓여 있어 수련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는 운주로 향하는 길에 동료와 허풍 떨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료하여 수련할 수밖에 없었기에 빠르게 진전된 것이다.
[일: 아니, 이런 천부적인 자질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하네.]
원래는 모두가 전혀 개의치 않았다. 7품 연신경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천지회 구성원들은 저마다 인재였다. IQ도 높고 말도 듣기 좋게 한다. 연신경 무사는 어떤 파동도 일으킬 수 없었다.
하지만 일호와 육호가 이렇게 말하자, 허칠안과 3차원에서 접촉한 적 있는 이묘진을 포함한 모두가 잇따라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 자네 둘의 말투를 보아하니 이 동라가 아주 대단한 것 같네. 아니면 천재인가?]
항원 승려가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육: 그런 건 아니네. 다만 그가 경성을 떠날 때 나와 만났었네. 그때 그의 상태로 봤을 땐 초봄에나 연신경으로 승직할 줄 알았지, 이렇게 빠를 줄 몰랐네. 아마 일호가 그를 더 잘 알겠지.]
[일: 내가 지난번에 그의 배경을 얘기하면서 허칠안 이자가 야경꾼에 합류했을 때 고작 연정경이었다는 사실을 자네들에게 말하지 않았네. 지금까지 다 따져 봤자 두 달밖에 안 됐네.]
그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나 이 말에 담긴 엄청난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두 달에 한 품계씩 올라간다는 건 어떤 수련 체계든 어떤 세력이든 간에 최고 수준의 천재였다.
사호는 삼호가 허칠안의 사촌 동생이라고 의심하며 청기가 충천한 이유는 이 사촌 동생과 큰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지금 천부적인 자질이 이렇게 뛰어난 허칠안이 또 등장했으니, 경성의 허씨 집안이 머지않은 미래에 떠오르는 샛별이 될지도 모른다.
‘금련도사가 지서 파편을 그 사촌 동생에게 준 건 사실 형제가 독식할 거란 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