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소소의 이야기
‘같은 꿈, 우연인가?’
허칠안은 무신교가 떠올랐다. 무신교는 꿈에 들어가는 능력이 있다. 주광효와 송정풍의 꿈속에 침입한 건 기본적인 조작에 속한다.
이는 간단한 추리다.
다만 허칠안은 무신교 사람이 왜 꿈속에서 양진태의 행방을 캐물어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양진태가 설마 제당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제당이 무신교와 결탁한 게 아닌가? 그들이 한패가 아니라니.’
“자네 왜 그러는가?”
송정풍이 동료의 안색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친절하게 물었다.
“고수다.”
“무슨 뜻인가? 자네 부침개 먹으려고?”
주광효와 송정풍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만약 허칠안이 그렇다고 대답하면 역졸에게 야식을 준비하라고 시킬 참이었다.
허칠안은 대답 없이 방을 나가서 옆방 은라의 방문을 두드린 후 열었다.
“조 은라, 밤에 잘 주무시고 계십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은라 조 씨는 기분 나쁘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자네가 시끄럽게 하지만 않으면 좋겠네.”
“꿈 꿨습니까?”
“……자네가 어떻게 알았나?”
조 은라는 깜짝 놀랐다.
허칠안은 순간 낯빛이 굳어지면서 다그쳤다.
“무슨 꿈을 꿨습니까?”
“꿈에 교방사 아가씨들이 나왔네. 휴, 운주에 온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여인의 손조차 만져 본 적이 없으니. 견디기 힘들구먼.”
“죄송합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다시 동라와 호분위의 방문을 두드려 십여 명을 불러냈는데 그들은 꿈을 꾸지 않았다. 역참 전체를 통틀어 꿈속에서 심문당한 사람은 주광효와 송정풍뿐이었다.
‘정말 가엾다. 소소PTSD를 얻고, 심지어 꿈속에서 어두운 방에 갇혀 심문당하다니. 나쁜 일이 전부 그 두 사람에게 일어나네…….’
허칠안은 두 동료의 눈빛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연민에 사로잡혔다.
“나는 자네 눈빛이 너무 불편하네. 또다시 이렇게 나를 쳐다보면 우리 형제로 지낼 수 없네.”
송정풍이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 원래 부자(父子) 관계 아닌가.”
허칠안이 말을 마치자 송정풍이 의자를 들고 와서 그를 때리려 하길래 얼른 사과했다.
“잘못했네, 잘못했어. 자네 우선 좀 가 있게. 나 혼자 있고 싶네.”
“무슨 일인가?”
주광효가 물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좀 주게.”
허칠안이 손을 내저었다.
‘주광효와 송정풍만이 꿈속에서 심문을 당했다. 물은 건 양진태의 행방……. 우리가 암시장에 가서 양진태로부터 장부를 얻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내가 심문받지 않은 이유도 간단하다. 나는 쉬지 않고 도를 닦으니까! 안 돼, 안 돼. 머리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지쳐 간다. 나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할 수는 없다. 장 순무와 강율중을 잡아끌어 같이 머리를 써야 해.’
허칠안은 즉시 문을 나서 장 순무를 찾아갔다.
양천남을 수감한 방을 지날 때 이묘진이 마침 강율중과 함께 나왔고, 뒤로는 농염한 여자 귀신 소소가 따라 나왔다.
그녀는 방금 양천남을 ‘방문’했다.
“이 장군님, 이제 가십니까?”
허칠안이 맞이했다.
이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사건은 오리무중이었지만 순무가 이미 최선을 다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양천남에게는 아직 살아남을 기회가 있었다.
그녀가 이번에 역참에 온 이유가 바로 살아남을 기회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양천남과의 교류도 헛되지 않았다.
또한 그녀가 비연군을 성에 들이는 것도 담판 칩(chip)으로서 압력을 가하기 위함이었지, 진짜로 사생결단을 내리려던 건 아니었다.
“허, 아마 갈 수 없을 것입니다!”
허칠안이 한마디 까불댔다.
이묘진은 어리둥절해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펴봤다.
소소가 교태를 부리며 소리쳤다.
“주인님, 이 자식이 주인님께 해롭게 굴면 소소가 대신 때려 줄게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탄산수’를 뿜어 허칠안을 죽이려 했지만, 음기를 미처 내뱉기도 전에 이묘진에게 저지당했다.
“너 그냥 이 기회에 복수하고 싶은 거지?”
이묘진이 그녀를 쳐다보곤 돌아서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급히 가지 마십시오. 후반전이 시작됐습니다. 제가 방금 새로운 단서를 얻었어요.”
허칠안이 미간을 주물렀다.
강율중은 눈꼬리를 치켜올리더니 놀라서 물었다.
“자네 뭐가 떠올랐는가?”
* * *
세 사람은 함께 장 순무의 방으로 들어갔다. 장 순무는 곧 쉰이니 늙다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천감 술사의 존재로 이 세계의 사대부 계층은 수명이 비교적 길었다. 허칠안의 전생처럼 암 같은 장수병을 유쾌하게 누릴 수 있었다.
장 순무는 막 자려던 참이라 마지못해 일어나 옷을 입었다.
그제서야 심부름꾼에게 문을 열라 분부했다.
“한밤중이네. 자네들 무슨 일이든 내일 다시 얘기할 수는 없는 건가?”
장 순무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본관은 그저 보통 사람이네, 자네 무사들처럼 정력이 왕성하지 않아.”
이묘진이 무의식적으로 반박했다.
“저는 무사가 아닙니다만.”
허칠안과 강율중이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흘겨봤다.
장 순무가 손을 내저으며 성가시다는 어조로 말했다.
“할 말 있으면 하고 꺼지게.”
지식인은 양생(養生)을 매우 중시하여 쉬지 않고 밤샘 근무하는 행위를, 그야말로 생명에 대한 유린이라고 여긴다.
이묘진과 강율중이 동시에 허칠안을 쳐다봤다.
‘그렇지, 또 이 자식이지…….’
장 순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허칠안을 쳐다봤다.
“여러분께서 알고 계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허칠안은 세 사람의 주목을 받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송정풍과 주광효가 꿈속에서 고문 받은 일을 털어놓았다.
“맞네, 무신교의 수법이지.”
강율중이 확실한 답을 주었다.
이묘진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인 후 허칠안을 보며 말했다.
“자네가 심문을 받지 않은 이유는 연신경에 충격을 가하느라 잠을 자지 않아서군?”
“그렇습니다.”
“무신교도 양진태를 찾는 건가?”
장 순무는 이 소식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다가 순간 좀 막연해졌다.
“양진태는 제당 사람 아닌가?”
제당과 무신교는 한패니까.
이묘진이 촛대 위의 콩 같은 촛불을 바라보더니 잠시 멍해졌다.
“저희가 잘못 짚은 건 아닐까요? 양진태가 제당 사람이 아니고, 저희에게 장부를 넘긴 것도 양 대인을 모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강율중은 골치 아팠다. 정말 그렇다면 사건은 더 복잡해진다.
“양진태가 제당 사람이라는 정보는 이 장군님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지, 우리가 추측한 것이 아닙니다.”
허칠안이 그녀를 쳐다보며 또 말했다.
“게다가 만약 양진태가 제당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논리가 너무 많아집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가 제당 사람이라는 점에 더 치우쳐요. 저희가 전에 한 추리는 문제 없습니다.”
“그럼 자네는 무신교가 그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장군의 IQ도 보통 사람 수준이군. 물론 멍청하지는 않지만 아주 똑똑하다고 할 수도 없어. 회경이 이곳에 있다면 좋을 텐데. 내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들 거야. 사호도 괜찮다. 사호는 연상을 잘하는 자니까…….’
네 사람은 잠시 토론했으나 한동안 새로운 수확이 없었다. 장 순무는 몹시 피곤했다. 게다가 그는 내일 도지휘사사에 다녀와야 해서 밤을 새우기에 적당치 않았다. 강율중과 이묘진은 추리에 서툴러 허칠안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잠시 중단하고 다음에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순무 대인, 저 오늘 밤에 이곳에 묵겠습니다.”
이묘진이 요청했다.
장 순무는 흔쾌히 승낙했다. 역참은 총본부라 금라와 은라가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묘진이 현명치 못한 일을 할까 두렵지 않았다.
이묘진은 허칠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 * *
그가 방으로 돌아오니 송정풍과 주광효가 아직 있었다. 두 사람은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는 중이었다.
“자네 둘 왜 안 갔나?”
“자네 소식을 기다렸지.”
“별거 없으니 꺼지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연마하게. 저녁에 자지 말고.”
허칠안은 두 동료를 쫓아낸 뒤 나무 대야를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는 목욕탕에서 찬물에 몸을 담그니 순간 기분이 아주 상쾌해졌다.
그가 땀수건을 잡아끌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땀수건이 없어져 있었다.
“이거 찾고 있어요?”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한 손을 내밀고 있었는데, 널찍한 흰 소매에 희고 보드라운 팔이 드러나 있었다.
“소소 낭자, 남녀칠세부동석이거늘.”
허칠안은 땀수건을 받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는 좀 화가 났다.
목욕할 때 옆에서 지켜보는 여인이 있다는 게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종이 인형이 왜 자각 없이 하필 이 시기에 나타나야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
흰 치마의 소소 낭자가 목욕통 옆으로 옮겨왔다. 그녀는 창밖에 비치는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맑은 물을 바라보며 가혹하게 말했다.
“저 꼬꼬마는 눈에 안 차거든요.”
허칠안은 여자 귀신을 골려 줄 흥미가 떨어졌고,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
“할 말 있으면 하시지? 이 몸이 찬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가 감기 걸릴 것 같거든.”
“연기경 무사도 감기에 걸리나요?”
소소가 깔깔깔 웃더니 목욕통 가장자리에 대범하게 앉아 아양 떠는 눈빛을 보냈다.
“전에 한 말 사실이에요? 속인 게 아니라?”
허칠안은 그녀가 무슨 말하는 줄 알고, 대뜸 희망고문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모름지기 사내대장부라면 한 번 내뱉은 말은 지키는 법이야. 나와 사랑의 도피하기로 마음먹은 거야?”
“무슨 사랑의 도피예요. 듣기 거북해 죽겠네요.”
소소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그를 흘겨보더니 흥정하기 시작했다.
“제가 공자님 대신 세 가지 일을 처리해 드릴 테니 육신과 바꾸는 거 어때요?”
‘약해 빠진 귀신이 뭘 도와줄 수 있다는 거야? 나한테 무임승차하고 싶은 거겠지. 퉤!’
허칠안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안 돼.”
“제발 부탁이에요, 네?”
“설령 네가 나를 유혹하려 해도 나는 덫에 걸리지 않을 거야.”
“하, 우선은 해 보고 그 말을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좋아. 하지만 네가 세 가지 일 해주는 거 말고 요구사항을 바꾸겠어. 네게 새 육신이 생기면 몇 년간 내 첩 노릇을 해.”
이 말은 마구 지껄인 거다. 사실 송경은 이런 기술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녀에게 한 육신 얘기는 순전히 그녀를 경성으로 데려가고 싶어 속인 말이다.
“저는 아직 처녀의 몸이어요.”
소소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래. 네가 종이 인형으로 변할 때마다 처녀의 몸이잖니.”
허칠안이 말했다.
“제가 말하는 건 아직 죽기 전이라고요.”
그녀는 목욕통 가장자리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물속에 비친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제가 살았을 때는 대부호의 여식이었어요. 18살이 되던 그해, 아버지께서 제게 혼사를 말씀해 주셨죠. 미래의 부군은 지식인으로 용모가 준수하고 예절이 밝다고 했어요. 저는 규방에서 가슴 가득 기쁨을 안고 시집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죠.
하지만 누가 짐작했겠어요. 이듬해 초봄에 아버지께서 큰 사건에 휘말려 개 같은 황제에게 참수당했어요. 집안의 부녀자는 본래 교방사로 보내져야 했는데, 어머니께서는 저희가 살면서 모욕당하는 걸 원치 않으셨고, 비상을 섞은 닭고기 탕을 끓이셨어요…….
제 기억에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때 마침 타지에서 공부하고 있었기에 화를 면할 수 있었죠. 제가 죽은 후 집념이 사라지지 않아 난장강에서 수일을 배회하다가 곧 소멸하려던 찰나에 천종의 고수 한 분을 만났어요. 그분은 제가 극히 드문 매(魅)라고 말씀하시며, 저를 거두셨어요. 저는 천종에서 20여 년을 지내면서 주인님이 업힌 채 칭얼거리며 산을 오르고 조금씩 커 가는 모습을 봤지요.”
허칠안은 원래 아주 흥미진진하게 듣다가 갑자기 맹점을 발견하고,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뭐라고? 너 죽은 지 20년이 넘었다고?!”
소소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나이로 치면 제가 공자님 어머니뻘이에요.”
“어머니!”
“……사람이 참 염치없네요.”
소소는 좀 부끄러워했다. 그녀는 죽기 전에는 그래도 처녀였다. 귀신으로 변한 후에 양심 없는 주인이 자주 남자를 꼬시라고 지시했지만, 기껏해야 꼬리 치는 데 그칠 뿐이다. 어쨌거나 귀신은 실체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