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꿈나라
허칠안이 갑자기 말했다.
“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응?”
이묘진이 쳐다봤다.
“왜 저희에게 장부를 넘기는 일을 책임진 자가 양진태인가요?”
허칠안이 세 사람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양진태는 이미 까발려졌습니다. 저희가 일단 양천남을 잡아 고문하기만 하면 그는 스스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틀림없이 변명할 것이고, 아는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저희가 양진태의 초상화를 대조하기만 하면…… 보십시오, 지금 이렇게 회의하고 있잖습니까.”
이묘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양진태만이 장부 속의 문제를 찾을 수 있어서?”
강율중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장부 속에 숨겨진 문제를 찾을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그때 가서 사람을 바꿔 변장하기만 하면 되지, 양진태가 계속해서 그곳에 있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만약 칠안이 이 장군의 초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는 개고기 점포 사장이 가짜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다시 말해 그자가 양진태가 아니면 저희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겁니다. 보아하니 주동적으로 허점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변신술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러했다. 허칠안 및 다른 이들의 감별력이라면, 근거리에서 접촉했을 때 상대가 위장임을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
주광효는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깼다. 그는 방광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어서 뒷간에 가려고 밤에 일어났다.
그가 방을 나와 복도에 이르러 문득 대청을 보았는데 탁자에 흰 치마를 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새까맣고 고운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이 각도에서 주광효는 흰 소복을 입은 여인의 옆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옆모습마저 아름다운 그녀는 인간 세계의 평범한 인물 같지 않아 보는 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소, 소소 낭자……. 아니, 그 여자 귀신이다!!’
주광효는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주광효는 이 여인을 보더니 화가 나 부들부들 떨었다. 한겨울에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손발이 시렸다. 이 세계는 이렇듯 사악하고, 남자에 대한 압박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내 감정을 농락하고 나의 존엄을 다치게 했다. 지금 또 거들먹거리며 내 앞에 나타나다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주광효는 주먹질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소변도 참은 채로 돌아서서 송정풍의 방문을 열었다.
송정풍은 피풍을 걸치고 있었는데 방금 깬 듯했다. 그가 문을 여니 한마디 나무랐다.
“무슨 일인가? 한밤중에 오고 난리인가!”
“자네 와 보게. 쉿, 소리 좀 낮추고…….”
* * *
주광효는 볼썽사나운 얼굴로 송정풍을 잡아끌어 살금살금 문을 나섰다. 그는 복도에 이르러 아래층 대청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게!”
송정풍은 보더니 화가 나 온몸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손발이 시렸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권법에 정통한 두 사람은 두 눈이 빨개져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송정풍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역참에 찾아올 염치가 있다니. 우리 야경꾼이 만만한가 보지?”
주광효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쩌지?”
이 일은 절대 뽀록나면 안 됐다. 아니면 그들은 치욕의 기둥에 못 박혀 영원히 회생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관아에서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하겠는가?
“차라리 우리 그녀를 끌고 가는 건 어떤가. 끝장을 보는 거지.”
송정풍이 아래로 꺾는 손짓을 했다.
“안 되네.”
주광효가 말수가 적은 건 사실이었으나, 그는 사람이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는 분석하며 말했다.
“그녀가 이곳에 왔다는 건 그 기마 유격병 장군도 왔다는 걸 의미하니 건드리면 안 되네. 건드리면 까발려질 테고 순무 대인에게 문책받을 걸세.”
“그럼 어떡하나?”
“칠안과 의논해 보면 어떤가?”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그 새끼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바로 이때 아래층에 있던 소소가 무언가 감지했는지 별안간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그녀는 두 사람을 보더니 갑자기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여러분.”
송정풍과 주광효의 얼굴이 굳었다.
* * *
“지금 엉터리로 추측해 봤자 소용없네. 내 제안은 내일 우선 도지휘사사에 가서 대조해보고 장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자는 걸세. 그런 뒤 각 주에 양진태를 지명 수배하세.”
장 순무가 의견을 냈다.
허칠안은 이묘진을 보자 마음이 아주 무거워졌다. 이묘진의 인맥과 관계로도 여전히 양진태를 잡지 못했다는 건 상대의 배후에 후원자가 있다는 의미다.
각 주에 지명 수배를 내리는 일이 꼭 믿을 만한 건 아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양진태에게 있다.
“좋은 생각입니다!”
강율중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장 순무의 제안에 찬성했다. 그는 아래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만약 양진태를 잡을 수 없다면 저희 도지휘사 양천남으로 보고 올리죠.”
이번에는 이묘진이 치를 떨 차례였다.
그러니까 이게 만약 양천남의 고육지책이라면 그야말로 죽을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장 순무도 그렇고 강율중도 그렇고 모두 관리 사회의 시정잡배 아닌가.
조당에 몸담는 사람은 포부가 있다. 하지만 그들을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정의로운 동반자라고 말하는 건 너무 유치하다.
머릿속에 정의가 넘치는 사람이 관리 사회에 몸담으면서 재물을 취할 수 있겠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장 순무는 진범을 색출하여 정의를 수호하려 시도하겠지만, 소용 없다면 그 역시 아무 망설임 없이 양천남을 내세워서 공적을 챙길 터였다.
양천남이 무고한 건 아니다. 우선 그는 감독을 소홀히 한 죄를 면치 못한다. 또한, 그 자체가 제당 사람인데 지금 제당은 실각했으니 관리 사회의 규칙대로 면직이다!
“강 금라, 너무 경솔하십니다.”
허칠안은 졸음에 저항하기 위해 그의 매력적인 눈을 애써 크게 뜨며 옳은 말만 늘어놓았다.
“주민이 왜 멸구 당했고, 배후에서 누가 양천남을 모함하는지 이 모든 건 결국 인성의 왜곡 아니면 도덕의 상실입니다. 황명을 짊어진 이상, 저희는 응당 최선을 다하여 무고한 자를 바른 길로 이끌고 운주 관리 사회에 태평성대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강율중과 장 순무는 이상하게 여기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 자식은 허울 좋은 빈말을 좋아하는 자가 아니다.
“말 참 잘했네!”
이묘진은 큰소리로 칭찬하며 늠름한 얼굴을 치켜들었다. 허칠안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망울에 인정과 긍정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이묘진의 칭찬을 듣자 생각에 잠긴 듯했고, 무언가를 추측해낸 것 같았다.
“그럼 칠안, 이 사건은 자네가 계속 수고해 줘야겠네.”
장 순무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반드시 진상을 밝혀내야 하네.”
‘순무 대인을 절개하면 분명 까맣겠지. 그 앞에서 잔꾀를 부린 내가 정말 어리석다.’
허칠안은 문득 돌을 옮기다가 제 발을 찍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이묘진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눈동자에 기대를 담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직도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칠안도 더는 머리에 피 끓는 젊은이가 아니라서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18살이던 그해의 슬로건은 ‘내 운명은 하늘이 아니라 내가 정한다.’였다.
그리고 그가 35살이던 그해의 슬로건은 ‘하느님, 제발 더는 저를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가 되었다.
이때, 문 밖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강력한 기기 파동이 전해졌다.
강율중이 앞장서서 문을 밀치고 나가 예리한 매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송정풍과 주광효가 한 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한 손으로는 주먹을 쥔 채 기기를 뒤흔들며 되는대로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외쳤다.
“오지 마!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 맞은편에는 절세미인 소소 낭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은 무고하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오해입니다, 오해…….”
허칠안이 뛰쳐나가 두 팔을 벌리고 두 동료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는 동료들을 반은 끌고 반은 떠받친 채로 방으로 데려왔다.
“자네 둘 어찌 된 일인가?”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여자 귀신이 무슨 일인가?”
두 사람은 아주 흥분한 모습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를 뻔히 알면서…… 그녀를 역참으로 오게 했나? 그 일이 새어나가면 우리가 사람 구실을 하겠는가?”
“그녀는 주인을 모시고 양천남 사건을 상의하러 온 것이네.”
허칠안이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이 일을 자네들이 스스로 들추지 않는데 누가 함부로 얘기하겠는가? 그 귀신은 길을 달린 경력이 오래된 마차일세. 어떤 남자라고 꼬시지 않았겠는가. 자네 둘은 단지 동생일 뿐이야.”
송정풍은 그제서야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알 바 아니네. 그녀를 보니 온몸이 괴롭고, 치욕스러운 마음에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어 죽겠네. 나는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아.”
주광효가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의 눈빛은 이내 연민으로 가득 찼다. ‘소소PTSD’라는 병이다.
쌍놈에게 위로받은 뒤 송정풍이 물었다.
“양천남이 사실대로 불었는가? 그 기마 유격병 장군은 귀찮게 하러 온 것이고?”
“이 사건 쉽지 않네…….”
허칠안은 손에 담배가 없는 걸 아쉬워하며 탄식했다.
“우리가 개고기 점포에서 만난 그 사장, 진짜 정체가 뭔지 아는가? 그는 도지휘사사의 경력이네.”
그는 사건을 간단하게 얘기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적막한 방에서 매우 놀라 서로를 쳐다봤고,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그들은 본인들이 5층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는 6층에 있었다.
“만약 그때 그를 역참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주광효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자네 어째서 내게 주의를 주지 않았는가?”
허칠안이 미간을 문질렀다. 최근에 그는 시시때때로 현기증이 나고 하늘이 노래지기도 했으며 가벼운 환각도 동반됐다.
“사람이 가짜일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주광효가 나지막이 말했다.
“당시 순무 대인과 강율중이 시찰을 나갔을 때 나는 그들이 돌아오면 진척을 보고하고, 필요하다면 명령을 받들어 사람을 데려가면 된다고 생각했네. 게다가 증거를 손에 넣었으니 사람은 가치가 없어지지 않는가.”
“맞네. 그가 만약 가짜가 아니라면 우리가 다시 가서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네.”
“뒷북칠 줄만 아는군.”
허칠안은 언짢아하며 말했다.
“참, 방금 자네가 말한 그 이름, 좀 익숙한 것 같은데…….”
주광효는 미간을 찌푸리며 깊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가 이상한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누군가 나를 어두운 방에 가뒀네.”
허칠안이 웃으며 물었다.
“그 어두운 방을 404라고 하지 않던가?”
“뭐가 404라는 건가?”
주광효는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했다.
“누군가 나를 어두운 방에 가두고 시종일관 나에게 캐물었네. ‘양 뭐시기 어디 있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네.”
송정풍이 눈을 부릅떴다.
“양진태?”
주광효가 의아하게 여기며 말했다.
“맞네, 바로 그 이름이야. 자네 어떻게 아는가?”
“……나도 그 꿈을 꿨네.”
허칠안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그는 마치 아주 무서운 얘기를 들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