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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23화 (223/712)

223화. 종잡을 수 없는 상황

그들은 내성을 나와 금세 황백가에 도착했다. 밝은 계열의 갑옷을 입은 호분위들이 암시장에 뛰어들었다. 행인들은 경계심과 적개심을 가지고 분분히 도망쳤다.

허칠안은 대오를 거느리고 정15호 점포에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안에서 등불을 밝히지 않아 문과 창문이 어두컴컴했다.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손을 흔들어 호분위에게 점포를 에워싸게 했다. 그는 그대로 난입할 계획이었다.

“잠시만!”

이묘진이 소리쳤다.

그녀가 요포(腰包)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열자 푸른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올라 창문 틈으로 파고들었다.

“완벽한 정탐원이군요.”

허칠안이 칭찬했다.

“그래.”

이묘진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도문은 참 재미있다. 무소불위라고 천지인 삼종(三宗)이 도를 닦는 길은 완전히 다르다. 지종은 공덕을 수련하고, 천종은 감정을 두지 않으려 수련하고, 인종은 정반대의 방법으로 수련하여 절세미인의 도사를 여우로 만들어 버린다.’

허칠안은 속으로 부정하는 동시에 한 가지가 문득 떠올랐다.

‘천인 양종(兩宗)은 물과 기름과도 같은데 설마 이 때문에 상반된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인가? 하지만 지종이 수련하는 건 공덕이니 양쪽 모두와 관계가 없다. 그래서 양종과의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은 것이다. 아무런 원한도 없고 만나면 예의상 몇 마디 나눌 수도 있는 사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천종 성녀 이묘진도 천지회에 들어올 수 없을 테니까. 도수 낙옥형 역시 금련도사에게 단약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능수능란해야 비로소 왕도(王道)에 이르는 법이다. 마치 내가 임안과 회경 사이에 껴서 양쪽으로 비위를 맞추는 것과 같다.

훗! 완벽해.’

이때 하늘하늘한 푸른 연기가 돌아왔다. 연기는 이묘진 귓가에 대고 잠시 소곤소곤 얘기하더니 비단 주머니로 파고들었다.

“점포에 사람도 없고, 매복도 없네.”

이묘진이 말했다.

허칠안은 즉시 손짓하여 은라 셋과 문을 부수고 들어가 위층, 아래층 전부 수색했다. 점포 안의 모든 진열품은 파손된 흔적 없이 그대로였다.

잠긴 서랍 속에는 심지어 은자 20냥이 있었다. 허칠안은 그 돈을 몰수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돈주머니에 넣었다.

‘……다툰 흔적도 없고 약탈한 흔적도 없다. 점포 주인이 잠깐 동안만 자리를 비운 것처럼…….’

허칠안의 수색은 성과가 없었다.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점포를 나와 구경하러 나온 옆 점포 사장에게 걸어갔다.

이 점포 역시 ‘개고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오시오. 본관이 물을 말이 있소.”

정16호 점포 사장은 순순히 걸어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대인.”

“정15호 점포 사장은 어디로 간 것이오?”

“며칠 동안 영업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점포에서 관리하는 아가씨들이 전부 저한테 달려와서 살 길을 찾더군요.”

16호 점포 사장은 꼬박꼬박 대답했지만 군말은 하지 않았다.

“언제 문을 닫았소?”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3일 전입니다.”

‘3일 전이라…… 제기랄, 내가 간 직후잖아?’

허칠안은 눈을 반짝이더니 계속해서 물었다.

“15호 점포 사장, 다리 저는 그자 맞소?”

“그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원래 사장이 아닙니다.”

‘……원래 사장이 아니라니.’

허칠안 마음속의 짐작이 증명됐다.

“원래 그 사장은? 절름발이 사장이 언제 점포를 인수한 것이오?”

“15호 점포 주인이 바뀐 건 대략 열흘 전입니다. 원래 사장이 어디로 갔는지 저는 모르지요.”

허칠안이 주변의 다른 점포 사장에게 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비슷했다. 주변의 점포 사장들 역시 15호 점포 주인이 갑자기 바뀐 일에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암시장에는 인정이 부족해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 * *

허칠안은 돌아오는 길에 천천히 걷는 말 위에서 몇 번이나 미간을 주물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묘진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정력이 다 빠진 것 같네.”

‘내가 색마가 아니란 걸 알게 하는 편이 좋겠군.’

허칠안이 말했다.

“이 장군님께서 제게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호색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 아니면 왜 소소 낭자를 보내 저를 유혹하게 했겠습니까?”

“아니라는 말인가?”

이묘진은 한마디도 제대로 섞지 않았는데 따지고 드는 허칠안의 행동을 보더니 강하게 나갔다.

“저 지금 연신경에 충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잠을 자지 않은 지 오래됐어요.”

허칠안이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며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연신경에 충격을 가한다고?’

이묘진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어느 정도는 오해했다는 걸 알았다. 다크서클이 짙은 허칠안을 보면 누구라도 상대의 욕구가 지나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처음부터 그가 연신경에 충격을 가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후, 천지회 내부에서 허칠안이 색마라 교방사에 빠졌다는 일호의 평을 듣고 나니 그가 호색가라는 이미지가 이때 굳혀진 것이다.

‘설령 이게 연신경에 충격을 가해 생긴 변화라 해도 네가 색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내가 너를 얼마나 아는지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이묘진은 남몰래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좀 궁금했다.

‘이 자식 얼마나 밤을 샌 거지?’

이묘진은 무사 체계를 많이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산에서 내려와 단련한 지 고작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연신경에 충격을 가하는 무사를 만난 적은 없었다.

양천남처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허칠안이 연신경에 충격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베테랑만이 가진 안목이었다.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최대 10일 동안 연신경에 충격을 가한다던데?”

“이 장군님은 무사 체계를 잘 알지 못하시는군요.”

“내가 왜 알아야 하는가?”

“무사를 그렇게 존중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이묘진은 아주 유머러스하게 대답했다.

“나 혼자만이 아니네.”

“…….”

허칠안은 마찬가지로 무사를 무시하는 거만한 백의 술사와 유가 지식인이 절로 떠올랐다. 이 세계의 차별 법칙은 이러하다. 어느 누구도 서로 인정하지 않지만, 모두가 단결하여 무사를 무시한다.

술사와 무사를 제외한 각 체계에는, 품계를 초월하는 존재나 품계를 초월했던 존재가 있다. 하지만 술사의 역할이 무사보다 월등히 높다. 때문에 술사가 더 존중받기 쉽다.

언제쯤 무사 체계에도 무신(武神)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치가 떨리는군.”

허칠안이 중얼거렸다.

* * *

허칠안이 역참으로 돌아오니 장 순무와 강율중은 이미 대청에 없었다. 감시하는 호분위 한 명만 남아 있었는데 그는 허칠안과 이묘진에게 순무 대인이 방에서 기다린다고 알렸다.

허칠안과 이묘진은 장 순무의 방문을 두드린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 장군이 그린 그자가 바로 주민 대신 증거를 보관한 암시장 점포의 사장입니다. 저는 주민이 남긴 암호를 풀고 그곳을 수색하여 장부를 얻었습니다.”

허칠안은 사건의 경과를 장 순무와 강율중에게 말했다.

다 들은 장 순무의 표정이 굳어졌다.

“원래 그 사장이 진짜로 장부를 보관한 사람이겠군?”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십중팔구 그러합니다. 제 추측이 맞다면 아마 멸구 당했을 겁니다. 나중에 제가 만난 점포 사장은 분장한 양진태인 거죠.”

강율중은 아래턱에 난 까칠까칠한 수염을 어루만지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럼 그대는 암시장을 어떻게 찾아간 것인가?”

“제가 사건을 분석할 때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강율중이 미간을 문질렀다.

“저희는 양앵앵이 가진 단서를 통해 암시장 정15호 점포를 알아 냈습니다. 하지만 이 단서는 저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청주 포정사 양 대인에게 주는 것이었죠. 다시 말해 주민이 본래 저희에게 남긴 단서는 사전에 누군가 풀었다는 겁니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이묘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이미 장부를 찾았다면 바로 없애 버리면 될 일인데 왜 남겨 두고 당신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장부를 넘겨 주었을까요?”

강율중은 놀라워했다.

“장부를 바꿔치기한 건가? 우리가 손에 넣은 건 가짜고?”

“아니네!”

장 순무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장부가 가짜다? 본관이 내일 도지휘사사에 가서 대조해보면 금세 허점을 찾아낼 수 있을 걸세. 그럼 그들이 가짜 장부를 주는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강율중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하지만 진짜 장부를 주는 건 더 상식에 어긋납니다. 실제로 접선한 개고기 점포 사장을 죽인 후 장부를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려 준다?”

“확실한 건 장부가 진짜든 가짜든 그 행동은 논리에 맞지 않다는 점입니다.”

허칠안은 미간을 문지르며 방 안을 서성거렸다.

“저희 이 사건을 제대로 되짚어 보시죠. 양천남이 은밀히 산적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주민이 알아내고 밀서를 써서 관아에 보고했습니다. 제당이 이를 안 후 즉시 야경꾼 관아에 반기를 들고 횡령 사건으로 꾸며 위 공의 타협을 강요하려 했죠. 그 후, 제 우연의 일치로 제당이 무신교와 결탁하여 암암리에 산적을 돕고 있다는 내막을 밝혀 냈습니다. 조정은 그제서야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저를…….”

장 순무가 크게 기침 소리를 냈다.

허칠안이 말을 바로잡았다.

“사건 조사를 위해 순무 대인을 운주로 파견했습니다.”

“방금 제가 암시장에서 물어보니 정15호의 원래 주인은 열흘 전에 해를 당했더군요. 그리고 이때 저희는 아직 청주 국경에 있었습니다. 이 장군님, 양천남이 경성에서 온 밀서를 언제 받았습니까?”

“서신은 6일 전쯤에 받았네. 양 대인의 친한 벗으로부터.”

이묘진이 말했다.

“그럼 맞습니다. 저희는 가장 빠른 노선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설사 제당이 저희보다 빠르다 해도 열흘을 뛰어넘기란 불가능하죠.”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민을 죽여 멸구한 것도 개고기 점포 사장을 죽인 것도 아마 경성의 제당과는 무관할 겁니다. 저희의 진정한 적은 운주에 있습니다.

이렇다면 이 사건은 두 가지 상황에 지나지 않습니다. 첫째, 모든 건 양천남이 지시한 고육지책입니다. 둘째, 배후의 검은손이 양천남을 내세워 속죄양으로 삼으려는 겁니다. 밀서가 경성에 전해질 때 계획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민을 죽이고 숨겨둔 증거를 찾아 양천남에게 누명을 씌우려 하는 거죠.

만약 장부가 진짜라면 첫 번째 상황일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이는 자발적으로 저희에게 칼을 건네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장부가 가짜라면 더 의미가 없습니다. 양천남은 혐의를 벗지도 못했고, 진정으로 죄를 뒤집어쓰지도 않았죠. 양진태가 자발적으로 저희에게 장부를 건네 오히려 의심을 샀고, 다른 형태로 양천남을 구한 셈입니다.”

이묘진이 논리적인 결함 하나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다시 말해서 장부는 반드시 진짜여야 하네. 자네의 추측대로라면 장부는 진짜고, 배후의 주모자가 양천남을 내세워 방패로 삼고 싶은 거지. 그럼 양진태가 개고기 점포 사장을 죽이고 직접 그대들에게 장부를 주는 행위는 합리적이지 않게 되네.”

그렇다. 장부가 진짜라는 전제하에 배후의 검은손이 순무 대오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면, 양천남은 입이 백 개라도 해명할 방법이 없어진다.

양진태의 행동은 부질없는 짓이다.

장 순무가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어쩌면 장부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네. 장부가 진짜이긴 하나 뭔가 문제가 있어. 이 문제가 진정한 배후의 검은손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줄 테지.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쥐어짜 장부를 찾아서 허점을 없앴어. 그러고 나서 개고기 점포 사장으로 가장해 우리가 방문하길 기다렸다가 장부를 넘겨 준 거야.”

강율중이 우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들이 장부에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이 장부는 주민이 작성한 것 아닙니까?”

장 순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민이 증거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도지휘사사의 경력이 있기 때문이지. 창고와 발신․수신을 관장하니 군비와 무기 모두 그의 손을 거쳐야 하네. 그리고 그 양진태 역시 경력이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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