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내가 한 게 아니오
허 공자에게 의심을 받은 술사들은 약간 초조해하며 서둘러 말했다.
“저희는 7품 풍수사고, 이 도지휘사는 5품입니다. 이치대로라면 저희의 망기술은 실수할 리가 없지요. 하지만 결코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만약 양 대인이 원신을 고행(苦行)하여 의지가 확고하다면 그의 거짓말을 저희도 간파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허 공자께서 일단 연신경에 이르면 보통의 8품 술사가 공자를 꿰뚫어볼 수 없는 거죠. 같은 품계나 한 품계가 높은 술사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입니다. 물론, 양 대인은 이미 몸을 수색했으니 법기가 없죠.
마지막으로 무신교와 저희 술사 모두 기억을 고치는 법술을 갖고 있습니다. 양 대인이 만약 사전에 준비했다면…… 지금 그가 하는 말은 확실히 전부 진짜입니다.”
“기억을 고친다고?”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그는 기억을 고치는 조작법이 있다는 걸 처음 들었다.
“그건 고품 강자만이 정통할 수 있는 법술이지요.”
백의 술사들이 설명했다.
허칠안은 이 세상의 고품 강자와 저품 강자의 격차가 아주 크다는 걸 고려하니 이해가 됐다.
저품 고수는 저품 무사이고, 고품은 신마와 대등하다. 신수 승려가 바로 그 예다. 상백에 무려 오백 년이나 봉인되었으며, 팔이 잘렸는데도 여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참, 내 몸속에 신수 대사도 있지.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허칠안은 겸사겸사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이 승려는 오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기에 원기가 크게 상해 그의 몸을 빌려 온양 중이고 지금까지 자고 있다.
‘만약 기억을 고칠 수 있다면 이 사건은 처리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사건 수사 수법은 효과가 없겠지. 선협(仙俠)만이 선협을 무찌를 수 있다고. 진작 알았더라면 보잘것없는 풍수사 셋 말고 송경이나 허세왕에게 수행을 요청했을 텐데…….’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양천남은 허칠안을 응시하며 말했다.
“허 대인, 자네의 능력이라면 허 대인이라 부를 만한 자격이 충분하네. 본관이 하는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자네가 조사해 봐도 무방하네.”
“허,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제 차선책입니다.”
‘적으로 적을 무찌를까……?’
허칠안은 언짢아했다.
“제가 왜 당신을 도와야 합니까? 당신을 묶어 바로 경성으로 보내면 사건이 끝나는데요.”
허칠안은 냉소를 지었다.
“그래도 되네!”
양천남은 눈을 감았다.
* * *
역참은 오늘부터 3교대로 돌아가며 지키기 시작했다. 밤이든 낮이든 순무 대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역참을 벗어나거나 들어올 수 없었다.
호분위들은 활력이 넘쳤다. 사건의 원흉이 이미 체포되었으니 경성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는 걸 예견할 수 있었다.
남방은 정말 해괴한 곳이었다. 한랭하고 습하여 밤에 당직을 설 때 바람이 목 안으로 불어 들어가 절로 몸을 떨게 했다.
물론 북방이 남방보다 몇 배 더 춥지만, 북방 생활에 익숙해진 그들은 남방의 습하고 추운 날씨에 전혀 적응할 수 없었다.
“허 대인은 정말 비범해. 운주에 온 지 며칠 됐지? 5일 정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큰 사건을 해결하다니.”
“헤이, 조금도 이상할 거 없네. 우리가 경성에 있을 때 이미 그의 명성을 들었잖나. 상백 사건으로 난리가 났을 때도 그가 해결한 거 아닌가.”
“그러네. 이번에 경성에 돌아가면 또 풍운아가 되겠군. 우리 가는 길에 그와 많이 친해져 보자고. 앞으로 기댈 산인 셈 치고 말이야.”
호분위들은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당직 설 때 한데 모여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며 허 대인의 신과 같은 사건 해결 능력을 찬탄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들은 이미 허 대인에게 어떻게 빌붙을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아직 그가 동라일 때 친구가 되면, 나중에 이렇게 쌓아 온 정이 허 대인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 귀중해질 것이다.
너무 과한 우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상대가 이름을 기억하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 접으시게. 자네 같이 재물을 탐하는 자는 허 대인이 좋아하지 않을 걸세. 자네들에게 알려주지. 허 대인은 악한 행위를 증오하는 사람이네. 경성에 있을 때 상급자가 여인을 모욕하는 데에 불만을 품고 하마터면 상급을 단칼에 베어 죽일 뻔했네.”
“퉤, 설마 자네 같이 기루에 들락날락하는 자를 허 대인이 좋아하겠는가?”
마침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갑자기 역참 문어귀에 형체 하나가 나타났다.
“누구냐?”
당직을 서던 호분위가 칼자루를 누르고 나지막이 소리쳤다.
문 앞에는 이묘진이 은색 창을 들고 얇은 갑옷 차림으로 말총머리를 높게 묶은 채 서 있었다. 그녀는 갸름한 얼굴로 경건한 표정을 지었다. 추운 바람에 흔들거리는 그녀의 말총머리에서 세상을 적으로 둔 호탕함이 엿보였다.
“기마 유격병 장군 이묘진, 순무 대인을 만나 뵈러 왔소.”
이묘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들여보내게.”
강율중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분위들이 길을 내어주자 이묘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역참의 마당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녀는 몇 걸음 가더니 돌아서서 말했다.
“뭘 꾸물거려? 따라와.”
몇 초 후, 경국지색의 미인이 떨떠름하게 걸어와 몸을 비비 꼬며 말했다.
“주인님. 여기 전부 꼴 보기 싫은 무사들이에요. 혈기가 너무 왕성해서 온몸이 아플 정도로 뜨거워요.”
소소는 군영에 있을 때, 심지어 이묘진의 군막 안에 움츠리고 있을 때도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군영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역참은 그녀에게 있어 그야말로 화산과 다름없었다.
4품 무사의 혈기는 지나치게 왕성하여 귀신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묘진이 부적을 한 장 꺼내 손가락으로 한 번 튕기니 소소의 가슴에 붙었다.
그녀는 별안간 기뻐하며 마당으로 들어갔고, 펄쩍펄쩍 뛰었다. 들끓는 혈기가 더는 겁나지 않았다.
“주인님, 말하건대 여기에 있는 야경꾼 둘이 저한테 미련을 갖고 있어요.”
그녀는 재잘재잘 말했다.
* * *
이묘진은 마당을 지나 대청으로 가더니, 장 순무 및 강율중과 허칠안 세 사람을 보았다. 다른 야경꾼은 대청에 없었다.
이묘진은 몸을 꼿꼿하게 세우더니, 이어 대청에 서서 읍을 올리며 말했다.
“순무 대인, 대인께서 도지휘사 양천남을 체포했다 들었는데 증거가 있습니까?”
“이걸 말하는 것이오?”
강율중이 손에 쥐고 있던 장부를 높이 들어 휘둘렀다.
“증거가 확실하네.”
장 순무는 부드러운 태도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묘진은 순간 허칠안을 쳐다보며 착잡한 표정으로 사실 확인을 했다.
“자네가 한 건가?”
강율중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민심을 살피러 외출하여 근본적으로 사건을 수사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허칠안을 제외하고 또 누가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상황은 이묘진이 생각한 것과 달랐다. 그녀는 상황을 살피러 온 것이었다. 만약 장 순무가 증거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체포했다면 그녀는 압력을 가하여 군대를 연합해 장 순무에게 양천남을 풀어주라고 요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만약 상대방에게 정말 증거가 있다면 양천남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한 게 아니오.”
허칠안은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고, 이어 덧붙였다.
“하지만 내가 찾은 것이오.”
역시 ‘증거’는 허칠안이 찾았다.
이묘진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이 결과가 아주 뜻밖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곁에 있는 여자 귀신 소소를 차갑게 흘겨봤다.
소소는 이를 못 본 척하며 귀밑털 한 가닥으로 노는 데 열중했다.
여자 귀신 동지도 아주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게으름 피우지 않았다고 장담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동라가 그녀의 코앞에서 증거를 손에 넣은 것이다.
이묘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순무 대인, 이 사건에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습니다.”
장 순무는 손을 내저으며 그녀의 말을 끊고,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 장군, 그대는 단지 기마 유격병 장군일 뿐, 조정의 사람도 아니니 조정의 일에 개입할 권리가 없소. 그대의 비적을 토벌한 공이 높고, 본관이 그대의 행동에 감복하여 역참에 들였을 뿐이오.”
“콜록콜록!”
허칠안은 힘껏 기침 소리를 내어 자리에 있는 세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순무 대인, 이 장군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보아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는 이호가 양천남을 지지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맹목적이고 무지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장 순무와 강율중이 서로 쳐다보며 말했다.
“해 보시오!”
이묘진은 허칠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몇 초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저와 양천남이 안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저희는 손을 잡고 수차례 비적을 토벌하여 친분이 아주 두텁지요. 허나 저는 결코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며, 사람 마음이 사악하고 변하기 쉽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양천남을 믿는 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투하는 데서 비롯된 것뿐만이 아닙니다. 비밀 경로를 통해 조정에서 운주로 순무를 파견하여 양천남을 조사하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의 곁에 귀신을 붙여 감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양천남은 제당의 밀서를 받지 않았습니다.”
강율중은 귀신이 감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대는 본관이 양천남을 조사하러 운주에 오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소?”
장 순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보고 드립니다, 순무 대인. 저희 중에서도 반역자가 나왔습니다, 바로 저…….’
허칠안은 부끄러웠다.
지서 파편의 천 리 전서는 거의 지연되는 법이 없었다. 이묘진이 이 일을 양천남보다 더 일찍 아는 건 당연했다.
그녀는 삼호의 말을 들었기에 감시를 한 것이다.
이묘진은 거리낌 없이 솔직히 말했다.
“제 비밀입니다.”
“양천남은 5품 무사입니다. 이 장군의 귀신으로 감시하면 그를 속이지 못할 것 같은데요.”
허칠안은 제 발 저리는지 화제를 돌리면서 드디어 본인이 예상한 대로 일이 흘러간다는 점에 감개무량했다.
그가 사전에 이호에게 이 일을 알린 이유는 이호가 조사에 협조하길 바라서였다. 비록 이호와 양천남의 관계는 그의 예상을 벗어났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알면 또 어떤가?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귀신의 시야에 있기만 하면 내 목적을 달성하는 건데.”
이묘진이 말했다.
허칠안은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흡사 나의 전생 같다. 사람들은 모두 길가의 CCTV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돌로 깨부수지 않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양천남이 만약 돌로 ‘CCTV’를 깨부쉈다면 이묘진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를 지지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럼 양천남은 아내가 있나? 귀신은 영화를 무수히 많이 보지 않나? 신수 대사가 깊이 잠들어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나도 국내 카테고리에 있는 영상의 남자 주인공이 됐을 거야…….’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이게 끝이오?”
강율중이 따져 물었다.
“저는 천종의 제자입니다.”
이묘진이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양천남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야?’
허칠안은 생각에 잠겨 눈살을 찌푸리는 강율중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