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18화 (218/712)

218화. 귀로

“후…….”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보니 환각이라니.’

송정풍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웃기 시작했다.

“환각이었군. 그럼 별일 아니군그래. 나는 단지 현혹되어 정신을 잃은 것뿐이야.”

허칠안은 그들을 가엾게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잃은 게 아니라, 자네들은 환술에 걸린 걸세.”

“정신을 잃은 게 아니라고?”

주광효와 송정풍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칠안이 기둥 쪽으로 가서 나지막이 말했다.

“정풍, 자네는 당시에 이렇게 했네…….”

그는 기둥을 껴안고 광분하며 부딪쳤다. 추했다.

“…….”

“광효 자네는 이렇게 했지.”

그는 탁자로 가서 두 손으로 탁자 가장자리를 누르고 허리 힘을 과시했다.

“…….”

“잉? 자네 둘 왜 책상 밑으로 파고드는 건가?”

허칠안이 흉내를 마치자 주광효와 송정풍이 책상 밑으로 파고들어 나오려 하지 않았다.

“허칠안 자네 꺼지게……. 가게. 제발 부탁이니 빨리 가게. 나는 오늘 자네를 보고 싶지 않네.”

송정풍이 책상 밑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쌌다.

“하하하하하…….”

‘마음이 편해졌군.’

허칠안은 상쾌한 기분으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두 동료에게 조용히 있을 시간을 주었다.

“너희가 얼마나 달콤한지 봐 버렸어……. 큭큭큭, 하하하!”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면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허칠안, 저 난도질당할 놈!”

뒤에서 송정풍과 주광효의 수치와 분노의 포효가 들려왔다.

그 후 며칠 동안 허칠안은 우정의 배가 뒤집히는 후유증을 겪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그에게 정신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듣지도 묻지도 않으며 그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허칠안은 먼저 자발적으로 찾아가서 말을 걸었지만, 그들은 못 들은 척하며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마음이 무너진다. 나랑 얘기할 면목이 없는 건가 아니면 나에게 화풀이하는 건가? 분명 전자일 거야…….’

허칠안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허칠안은 점심을 먹을 때 주동적으로 말을 걸었다.

“나는 이미 찻집에서의 일을 잊었네. 다시는 자네들을 비웃지 않겠어.”

“뭐라고?”

송정풍과 주광효는 미친 듯이 화가 났다.

‘소소 낭자는 우리의 감정을 가지고 놀고, 너는 우리의 우정을 가지고 놀고. 도대체 누가 피해자란 말인가?’

“자네 둘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 매(魅)의 환술에 걸렸으면서 나를 탓하는 건가?”

허칠안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그들을 쳐다봤다.

“내가 왜 자네들을 속이려 했겠는가? 자네들 뻔뻔하게 묻는군. 내가 만약 현장에서 까발렸으면 자네 둘은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않았겠는가? 보게. 이묘진이 오지 않았다면 이 일을 잘 숨기지 않았겠는가? 자네들 누구도 난처해하지 말게. 광효는 정풍이 그의 동생을 기둥에 일각 동안 들이받았다는 걸 모르네. 정풍 자네도 광효가 탁자를 괼 때 허리 힘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지 않는가.”

“그, 그만 말하게…….”

송정풍과 주광효가 얼굴을 가렸다.

사실 그가 만약 현장에서 까발렸으면 송 씨와 주 씨는 기껏해야 잠시 어색했을 뿐, 절대 지금처럼 이러지 않을 터였다. 그들은 수치스러움에 바닥을 뒹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며, 사람 도리를 할 면목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허칠안 앞에서 했던 말, 표현한 감정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무슨 그녀에게 장가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둥, 평생의 한이라는 둥……. 송정풍과 주광효는 자살해서 이 어두컴컴한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송정풍이 고개를 돌리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자네 같은 친구 없네. 그날부터 우리의 인연은 끊어진 걸세.”

주광효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 역시 그렇네.”

“장난 말게. 우리 셋의 우정을 어찌 보잘것없는 귀신이 흔들 수 있겠는가.”

허칠안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냉정한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보고선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경성에 돌아가서 자네들에게 교방사에서 한턱 쏘면 될 것 아닌가.”

송정풍이 경시하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기껏 교방사로 나와 광효를 회유하겠다?”

허칠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두 번.”

송정풍이 소리쳤다.

“꺼지게. 나에게 말 걸지 말게!”

허칠안은 속이 쓰리지만 말했다.

“세 번.”

“허.”

허칠안이 이를 악 물고 말했다.

“다섯 번!”

송정풍이 그의 소매를 꽉 붙잡고 말했다.

“그럼 자네 증서를 쓰게.”

우정이란 배가 뒤집어진 지 3일 뒤, 드디어 우정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 그들은 형제 아닌가. 어찌 아주 작은 갈등으로 정말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단 말인가. 교방사를 쏘는 건 단지 서로에게 체면을 세워 주는 것뿐이었다. 주된 이유는 그래도 우정이 충분히 진실해서였다. 송정풍이 한 말이었다.

허칠안은 매우 찬성하는바였다.

“그럼 교방사 일은 관두게.”

송정풍과 주광효가 일제히 소리쳤다.

“절교하겠네!”

그들은 말하면서 손에 쥔 증서를 휘둘렀다.

“그리고 하나 더…….”

주광효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소소…… 그 여자 귀신의 일을 누설하면 안 되네.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돼.”

“자네 앞으로 이 일로 우리를 놀려서도 안 되네.”

송정풍이 덧붙였다.

“알겠네. 나는 절대, 절대로 큭큭…….”

허칠안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렸고, 몇 초 후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절대 자네들을 놀리지 않을 것이야.”

“방금 왜 웃은 건가?”

“웃지 않았네.”

“웃었잖아.”

“정말 웃지 않았어. 나는 엄격한 훈련을 받아서 아무리 웃겨도 웃지 않을 수 있네.”

* * *

이묘진이 백제성 밖, 군영에서 군막 안에 앉아 소소의 보고를 들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대부분의 시간을 역참에서 보내고 이따금 역참의 밥이 물리면 주루에 갑니다. 그들 둘이 짝이고 허칠안은 거기에 참여하지 않아요. 그는 혼자 행동하는데 매번 외출할 때마다 기루에 갑니다. 거의 매일을 기루에서 한 시진 정도 머무른 뒤 역참으로 돌아와요. 그동안 어느 관아에 간 적도 없고 주민의 사건을 조사한 적도 없습니다. 음, 주민의 무덤을 건드린 흔적이 있는데 시간으로 미뤄볼 때 순무 대오가 백제성에 도착한 그날인 듯합니다.”

요 며칠 소소는 비밀 초소 임무를 수행하며 역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허칠안 3인조가 나오기만 하면 그녀는 몰래 미행했다.

무사는 음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더더욱이나 영혼을 보지 못하니 거리만 잘 두면 소소는 들키지 않았다.

“또 다른 이상한 건?”

이묘진이 물었다.

‘이상? 허칠안이 매일 은자를 줍는 건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소소는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그녀는 이묘진이 주민과 관련된 사건을 물었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들은 순무가 돌아와 다시 주민의 사건을 조사하길 기다리는 것 같아요.”

제당은 위연이 운주 도지휘사 양천남을 탄핵하는 일에 관해서는, 진작 서신을 전해 알렸다. 순무 대오가 왜 왔는지 운주 관리 사회의 모든 이가 확실히 꿰고 있었다.

이묘진은 도자기 병의 병마개를 뽑아 병 안에 사는 귀신을 불러냈다. 호리호리한 몸의 중년 선비였다.

“내가 말할 테니 너는 써라!”

“네, 주인님.”

이묘진은 천지회 내부를 통해 얻은 정보로 허칠안 이자에 관해 아주 직관적인 인식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건 수사에 능하며 경험이 풍부하다고.

만약 그에게 정말 어떤 단서나 정확한 방향이 있다면, 역참에서 그렇게 며칠 내내 허송세월하지 않았을 터였다. 어쨌거나 사건의 진척이 늦어질수록 단서가 더욱 적어질 것이다.

이는 허칠안도 속수무책이라는 의미다.

이묘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신 한 통을 다 쓰고, 서신을 소소에게 전했다.

“서신을 양천남에게 보내라.”

“알겠습니다!”

소소가 서신을 감싸 안고 군막을 나섰다.

그런데 소소가 두꺼운 발 앞에서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돌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할 말 있으면 해.”

이묘진이 불쾌해하며 말했다.

“주인님은 저 대신 복수하지 않으실 건가요? 그놈 자식이 저를 모욕했다고요.”

소소가 서러운 마음에 고자질했다.

“너를 하루 가두었을 뿐이잖아.”

이묘진이 손을 저으며 여자 귀신 부하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녀는 사소한 원한을 복수하는 것보다 큰 사발로 술을 마시고 큰 입으로 고기를 뜯으며, 군대를 이끌고 비적을 토벌하는 전투 생활이 더 좋았다. 은혜가 있으면 은혜를 갚고 원수가 있으면 원수를 갚았다. 까놓고 말하면…… 그녀는 터프한 스타일이었다.

“흥.”

소소는 울컥해서 갔다.

* * *

백제성 주변의 청병현(淸屛縣), 현에서 가장 큰 주루.

일행은 오늘 주루를 통째로 빌려 이번 순례의 종착지로 삼았다. 점심 식사가 아주 풍성하게 준비되었다.

점심 식사 후 장 순무, 양천남, 송장보 세 우두머리를 대표로 하여 십여 명의 운주 고관이 함께 자리했다. 그들은 주루의 별실에서 순례 후의 소감에 대해 교류했다.

장 순무는 이 기회에 격노하여 관원 전부가 직책을 다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며 큰소리로 호되게 꾸짖었다. 비적의 난이 계속해서 격화되도록 내버려 두어 운주의 유랑민이 증가하고 민생이 피폐해지게 했다고 질책했다.

“순무 대인의 말씀에 본관 실로 부끄럽습니다.”

송 포정사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밀고에 따르면 운주 비적의 난을 암암리에 도우며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자가 있다지요.”

장 순무는 뜻하는 바를 전했다.

“어떤 자들이 나랏님의 녹봉을 먹으며 나라를 찬탈하는 일을 꾸미고 있다고요.”

모든 관원이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도지휘사 양천남을 은근히 쳐다봤다. 그를 위해 발언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철저한 조사를 지지한다며 장 순무에게 의사를 표명했다.

양천남도 태도를 표명하지 않고 아무런 미동 없이 앉아서 사람들이 괴상한 말을 늘어놓도록 내버려 두었다.

운주 관리 사회 전체가 양천남을 고립시키고 억압하는 기풍이. 순례 기간을 거치며 형체를 갖추었다.

이때 한 군관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그는 양천남의 심복으로서 모든 관원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밀서 한 통을 양천남에게 건네고 돌아서서 물러났다.

편지지를 펼쳐서 다 본 양천남의 엄숙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가 서신을 잘 챙기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본관 역시 순무 대인을 지지합니다. 반드시 엄중히 조사하고,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순무 대인의 휘하에 재능 있는 자들이 많으니 틀림없이 빠른 시일 내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장 순무는 미간을 찌푸리고, 양천남 손 안의 밀서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관원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서신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길래 양천남의 배짱이 갑자기 두둑해졌는지 추측하기에 바빴다.

* * *

장 순무는 백제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을 젖히고 힘껏 기침을 했다.

강율중이 앞에 있다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말의 속도를 늦추며 마차와 나란히 걸었다.

“갑자기 좋지 않은 예감이 드네…….”

장 순무가 사건 수사에는 거의 공을 세우지 못한 이 금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양천남이 갑자기 방자하게 굴어서 그러십니까?”

강율중이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 순무가 ‘응’하고 대답했다. 그는 이번 순례에 한 차례 초석을 깔고 상대방의 반응을 타진했다. 목표는 양천남을 운주 관리 사회에서 분리시키고, 체포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만일 운주 관리 사회가 한통속이라면, 그는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만약 한통속이 아니라면 그는 양천남을 고립시키고 운주 관리 사회의 지지를 얻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사실 장 순무는 매우 자신 있었다. 그가 처음 운주에 도착했을 때 그 저녁 연회에서 송 포정사가 이미 어떤 정보를 은밀히 흘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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