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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16화 (216/712)

216화. 결자해지

곧 점포 주인이 돌아왔다. 그는 손에 반쪽짜리 옥패와 책자 한 권을 들고 있었다. 마침 허칠안이 꺼내 보인 그 반쪽짜리와 딱 맞았다.

“물건을 가져가려 오신 것이죠?”

점포 주인이 말하면서 책자를 받쳤다.

“이게 주민이 저한테 남긴 것입니다.”

“무슨 궁금한 거라도 있소?”

허칠안은 책자를 건들지 않고 그를 주시했다.

“말씀해 주실 것입니까?”

“아니오. 허나 주인장께서 너무 거리낌 없이 주니 말이오.”

점포 주인이 탄식했다.

“주민이 이 책자를 제게 맡길 때 당부했습니다. 옥패는 증표이니 옥패를 보이지 않으면 물건을 주지 말라고요. 설령 본인이라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신분을 알리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옥패만 알고 사람은 모릅니다.”

‘옥패만 알고 사람은 모른다라……. 증거를 찾으러 온 주민이 아닐 가능성도 있으니……. 노련한 첩자, 아주 치밀하다. 죽었다는 게 정말 안타까워…….’

허칠안은 그제서야 책자를 들고 집중하여 읽어 보았다. 책자는 장부였다. 도지휘사사에서 ‘까닭 없이’ 사라지는 군수물자에 관해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증거’가 생겼으니 직접 죄를 선고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장 순무가 2품 도지휘사를 체포하여 심문할 수 있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서로 쳐다봤고, 각자의 눈에 서려 있는 기쁨을 보았다. 증거를 손에 넣었으니 운주행은 거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주인장은 주민과 무슨 관계요? 그가 안심하고 장부를 넘기다니.”

허칠안은 장부를 잘 챙기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수다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저는 본래 강호의 협객이었습니다. 저와 무관한 일에 공공연히 관심을 가졌다가 금위 한 명의 미움을 샀고, 상대방에게 끌려가 구타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다리가 바로 그때 잘린 것이죠. 그자는 본래 저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 생매장하려고 했는데 주 대인께서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에게 목숨을 빚졌어요.”

점포 주인이 울적한 웃음을 지었다.

“다리를 절며 강호를 돌아다니니 웃음거리가 되었고, 그리하여 백제성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그가 제게 물건을 맡긴 그날, 그한테 무슨 일이 날 거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허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더군요.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갚지는 못하지만, 물건을 보관하는 건 언제나 할 수 있지요.”

“고맙소!”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원수를 갚는 일은 우리에게 맡기시오.’

점포 주인은 그들에게 고기 몇 근을 썰어 주었는데,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기어코 그에게 은자 다섯 냥을 주었다. 개고기 값이 아니라 송 공자의 점포 대관 비용이었다.

송정풍은 계속 뒤를 돌아보며 애석해했다.

“어쨌든 지금 돌아가지도 못하는데 뭐 하러 점포에 묵지 않는 건가? 돈도 냈는데…….”

“그러게. 점포에는 미인도 있고 말이야.”

허칠안이 화가 나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자네 돌아가게. 그녀들은 아직이니.”

“…….”

송정풍은 허칠안이란 자가 말을 참 저속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이묘진은 깊은 밤, 어느 대저택 안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했다. 풀어헤친 검고 고운 머리카락은 구릿빛 피부의 갸름한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의 수려한 미모에는 기개가 넘쳤다.

운주에 온 지 일 년이 넘었다. 사군(私軍)을 훈련시키거나 산에 들어가 비적을 토벌하다 보니 원래는 뽀얗던 얼굴이 타서 구릿빛이 되었다.

하지만 천종의 제자는 몸뚱이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의 이념은 이러하다.

<나, 감정을 얻지 않는다!>

감정이 없어도 되니 몸뚱이는 더욱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좌선이 끝나고 한참 동안 정신을 집중하여 보니 저택에 매(魅)의 기운이 없었다.

‘매(魅)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보잘것없는 세 동라는 매(魅)한테 식은 죽 먹기다. 하물며 그 허칠안은 주색에 기가 빨리는 방탕아이니 더더욱 무슨 문제가 생길 리 없었다.

‘이치대로라면 낮에 그들을 미혹하여 정신 팔리게 한 뒤 바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은 거지? 설마 매(魅)가 그녀의 명령을 어기고 그들의 몸을 탐한 건가?’

이묘진은 바로 이 추측을 배제했다. 매(魅)는 그녀의 곁에서 수년을 함께했다. 매(魅)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말을 잘 듣는 것이었다. 매(魅)는 생전에 양가 규수였고 병으로 죽어 원기도 거의 없어 선량한 편이다. 허칠안이 착취를 견디지 못하는 자인 걸 알기에 상대방의 정기를 빨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잠시 노는 데 정신이 팔렸을 수도 있겠지.’

이묘진은 솜이불을 젖히고 들어가 꿈나라에 빠졌다.

* * *

둘째 날, 이묘진은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했다. 태양이 높게 솟아오를 때까지도 매(魅)는 여전히 돌아와서 임무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드디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묘진은 즉시 뜰 안에 허술한 태극 팔괘진을 그리고, 무덤 흙, 시체 기름, 고양이 눈 등의 음물(陰物)을 특정한 위치에 두었다.

그리고 쭈글쭈글한 종이 인형을 더듬어 꺼내 태극어(太極魚) 위에 두고, 기기로 진법을 활성화했다.

보통 사람은 보이지 않을 시야였다. 쭈글쭈글한 종이 인형이 미친 듯이 날뛰며 음물 속에 담긴 음기를 빨아들였다. 삽시간에 손과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종이 인형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몇 초 동안 침묵한 후에 다시 엎드려 평범한 종이 인형으로 변했다.

이묘진은 안색이 갑자기 굳어졌다. 이 종이 인형은 매(魅)가 일찍이 빙의했던 물품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기운이 남아 있으므로, 본래는 그녀가 매(魅)를 찾도록 이끌어야 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데는 대략 세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째, 매(魅)에게 뜻밖의 일이 생겨 혼이 없어졌다. 둘째, 봉인되었다. 셋째, 백제성을 떠나 종이 인형이 감응하는 범위를 벗어났다.

세 가지 가능성 중에 무엇이든 매(魅)에게 일이 생겼음을 의미했다.

“결자해지!”

이묘진이 속으로 말했다.

* * *

역참.

“다 봤는가? 이 장부 진짜인가?”

방 안, 송정풍이 입안에 비파 사탕을 물고, 책상 앞에 앉아 장부를 검사하는 허칠안에게 물었다.

주광효는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며 연기를 토납했다.

“자네 장부 대조가 뭔지는 아나? 범인을 심문하려면 마주보고 대질해야 하네.”

허칠안이 언짢아하며 말했다.

“그럼 자네는 흥미진진하게 봤나?”

송정풍이 하품을 하며 물었다. 그는 어젯밤에 객잔에서 아주 잘 쉬지는 못했다. 사실 그는 환술의 후유증이 남은 참이었다.

송정풍은 지금 장 순무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는 임무를 인수인계한 후 부아에 가서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소소 낭자를 찾아 달라고 관아에 부탁할 계획이었다.

“적어도 대략 한 번 훑어볼 수는 있네. 나도 생각이 있어.”

허칠안이 대답했다.

“나는 뒷간에 다녀오겠네.”

송정풍은 그에게 따지고 들지 않았다.

모기 눈이 방을 나가자 허칠안이 고개를 기울여 토납하는 주광효를 쳐다봤다.

“자네 소소 낭자를 찾으려 하는가?”

주광효는 눈을 뜨고 그를 힐끗 쳐다본 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을 마치지 못했나?”

허칠안이 웃었다.

“응.”

허칠안은 책임감 없이 입을 열고 폭격했다.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자네와 소소 낭자는 실제로 부부고 고향의 그 여동생은 손도 만져 본 적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집은 뻔뻔하기 짝이 없이 자네에게 은자 백 냥을 달라고 했잖나. 돈에 미친 게지. 죽일 영감님은 자기 딸로……. 됐네. 그녀를 나쁘게 말하지 않겠어. 자네 내 숙모를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숙모 예쁘지 않은가? 뛰어난 미인이지. 우리 숙부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던 해에 예물이 이십 냥이었네. 자네 그 약혼녀는 뭘 믿고 그러는 겐가?”

은자 백 냥, 보통 사람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5년을 모아야 했다. 정상적이라면 10년을 모아야 했다.

한편으로는 형제, 한편으로는 약혼녀. 주광효는 침묵을 택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 소소 낭자의 가쁜 숨소리와 고혹적인 자태가 떠올랐다.

주광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데 아래층에서 송정풍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칠안, 손님이 왔네…….”

송정풍의 목소리가 좀 이상했다. 놀람 속에는 급박함이 서려 있었다. 굳이 형용하자면 대략 이랬다. ‘여보, 빨리 나와서 하느님을 봐!’ 이런 어조였다.

허칠안은 장부를 품에 넣고 앞장서서 문을 나섰고, 주광효도 재빨리 신발을 신고 따라 나왔다.

* * *

역참의 대청에 옅은 남색 옷을 입은 말끔한 차림의 소저가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몸에 딱 붙는 상의와 바지는 표범처럼 다부졌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머리는 여전히 높은 말총머리로 묶었다.

그녀는 부담스럽지 않은 스타일링으로 소탈함과 멋스러움을 돋보이게 했다.

‘확실히 늠름하고 씩씩한 미인 장군이다. 어딜 봐서 도문 천종의 성녀란 말인가……. 스승이 그녀에게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말라고 했거늘 결과적으로는 대중의 이익을 위해 열의를 다하는 한 시대의 협객이 되었다니…….’

허칠안은 속으로 괜히 비아냥거리면서 겉으로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 장군. 또 뵙습니다.”

‘이 자식 다크서클이 더 심해졌다. 정신 상태가 좋지 않군. 매(魅)에게 정기를 흡수당한 걸 테지.’

이묘진은 맑고 투명한 눈으로 그를 주시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허 대인.”

허칠안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고, 좌우로는 송정풍과 주광효가 앉았다. 역졸이 앞으로 다가와 차를 다 따르고, 다시 물러났다.

양측 모두 급하게 입을 여는 대신 각자만의 걱정거리를 생각하느라 바빴다.

‘매(魅) 때문에 왔겠지. 늦도록 매(魅)의 보고를 받지 못하니 문제가 생긴 걸 알았겠지.’

허칠안은 차를 마시고 속으로 읊조리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매(魅)를 그녀에게 돌려줘?’

아쉬웠다. 이렇게 예쁜 종이 인형은 보기만 해도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그는 경성에 데려가 영음에게 줄 생각도 하던 참이었다.

게다가 빙의 능력은 아주 유용하니 여러 상황, 여러 환경에 적용할 수 있었다.

“대인 여러분.”

이묘진이 찻잔을 어루만지며 어휘를 택해 말했다.

“어제 소소라는 낭자를 만난 적이 있지요?”

송정풍과 주광효가 갑자기 그녀를 쳐다봤다.

‘왔구나. 두 동생을 공개 처형할 때가 왔구나…….’

허칠안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본 적 있습니다. 그녀와 저희 두 동료는 얽히고설킨 인연을 맺었지요.”

여기까지 들은 세 사람의 표정은 각자 달랐다. 송정풍은 주광효를 보았다.

‘분명히 나와 얽히고설킨 인연을 맺었는데, 주광효 이 속을 알 수 없는 자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이묘진은 두 동료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좀 가여웠다. 허칠안의 말을 들으니 소소가 두 사람의 정기를 빨아들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더 매(魅)가 허칠안의 손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이런 말을 내뱉을 리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려 깊지 못했습니다. 대인께서 그녀를 제게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묘진이 간곡하게 말했다.

“조정의 명관을 곤경에 빠뜨리고, 기밀 정보를 빼내려 일을 꾸민 건 죽을죄입니다. 이 장군.”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

이묘진은 냉정하고 차분하게 그와 눈을 마주쳤고, 마치 대봉 율법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 변명하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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