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개고기 점포
황혼 전, 허영월이 콩알이를 데리고 숙당(塾堂)에서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건장한 사내종 둘이 뒤따라 들어왔다.
숙모는 진한 붉은색의 비단옷에 하얀 치마를 입은 채, 마침 가위를 쥐고 분재를 다듬는 중이었다.
한 집의 마님이 되는 건 무료했다. 아이들이 막 다 커서 아직은 장가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와 싸울 못된 며느리가 없었다.
게다가 허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호사스러운 그런 집들처럼 안팎으로 사람이 가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택을 관리하는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녀는 대개 밥을 먹고, 꽃에 물을 주고 내친김에 저택의 사내종을 데리고 거리 구경하러 나갔다.
내성에 관해 말하자면 외성보다 더 번화하고 안전했다. 그녀는 거리를 걸을 때 악질분자를 마주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성에는 순찰하는 야경꾼이 있고, 경성 오위도 있고, 부아의 포졸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이를 먹었음에도 거리를 나서면 남자들이 넋을 놓고 쳐다볼 정도의 미모였으니, 정말 성가셨다.
* * *
허영월이 대청으로 들어가니 허리를 굽히고 분재를 다듬는 모친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저 왔어요…….”
허영음은 목에 작은 보따리를 걸고 있었는데 그녀가 빠르게 달리자 보따리도 흔들렸다.
그녀는 똑바로 걷지 못하고 흔들거리다가 어머니에게 머리를 부딪쳤다.
“호들갑은.”
숙모는 돌아서서 욕을 퍼부었다.
그녀는 어린 딸을 꾸짖은 뒤 장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영음이 숙당에서 어땠니?”
콩알이가 학교에 들어갔다. 이건 지난번에 허신년이 집에 돌아왔을 때 정한 요구 사항이었다. 절대로 불만을 토로하는 뜻은 없었고, 순수하게 어린 여동생이 학업을 소홀히 하는 걸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허평지가 지인에게 부탁해 내성에서 이름난 숙당을 찾았다. 선생은 학식이 매우 뛰어난 수재였다. 거인(*擧人: 향시에 급제한 사람)은 아이에게 계몽을 교육하지 않았다.
설령 수재라 해도 아이에게 계몽을 교육하는 건 견문발검이지만 방법이 없었다. 학부모들이 준 게 너무 많았다.
허영음과 같이 공부하는 아이들은 전부 보통 집안의 아이가 아니었다.
허영월이 생각 없는 여동생을 보더니 한숨을 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말씀이 책을 읽을 때 항상 가장 큰 소리로 열심히 한다고 해요.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잊어버려요. 오늘 드디어 삼자경 세 구절을 외웠어요……. 선생님께서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숙모는 창피해하며 손가락으로 어린 딸의 이마를 찌르고는 말했다.
“바보, 책을 읽을 때는 머리를 써야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안 돼.”
“저 바보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허영음이 큰소리로 항의했다.
“너 바보야.”
“어머니야말로 바보예요. 어머니가 저 낳으신 거잖아요.”
콩알이가 그녀에게 대들었다.
“…….”
숙모는 말문이 막혀 그녀를 들쳐 안고 엉덩이를 몇 대 탁탁 때렸다. 강인한 허영음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바보가 아님을 기필코 증명하고자 했다.
숙모는 한숨을 내쉬며 어린 딸과 입씨름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를 화나게 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네 큰 오라버니가 보낸 서신 몇 통을 탁자 위에 두었구나. 영월이 네가 가서 좀 보렴.”
숙모는 글자를 잘 알지 못했다.
허영월은 반짝이는 눈으로 흥분하여 탁자로 걸어갔다. 서신을 들어 한 번 훑어보니 서신 세 통이 있었다. 각각 자신, 아버지, 어머니에게 부친 것이었다.
“어머니, 큰 오라버니가 어머니께도 보냈어요.”
숙모는 어리둥절해하며 촉촉한 눈동자에 놀라움과 기쁨을 내비쳤다.
‘이 재수 없는 조카가 그래도 내 생각을 하고 있군.’
“내가 읽을래, 내가…….”
콩알이는 숙당을 며칠 다니더니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서신을 읽는 책임은 그녀가 져야 했다.
허영월이 가소로워하며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아버지에게 온 서신을 건넸다. 그리고 자신에게 보낸 서신을 뜯었다.
콩알이가 서신을 받더니 갑자기 미간을 치켜올렸다.
“정말 대단해요. 이렇게 많은 글자를 쓸 줄 알다니. 큰 오라버니가 나보다 글씨를 더 잘 써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읽을 거야 말 거야?”
숙모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인지초, 성본선, 성상근(人之初, 性本善, 性相近)…….”
그녀는 다 읽었다.
“이게 서신이니? 이게 네 큰 오라버니가 쓴 서신이야?”
숙모는 화가 났다.
“이게 서신이에요, 제가 다 읽었잖아요.”
콩알이가 두 팔을 날개처럼 털며 설득력을 높였다.
“이 세 구절밖에 읽지 못하는 거겠지.”
이때 허영월은 큰오라버니가 쓴 서신을 다 읽었다. 그녀는 바싹 말라 쪼글쪼글한 꽃잎을 챙겨 향낭 안에 넣으려 했다.
허영월은 정교하고 갸름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숙모에게 보낸 서신을 뜯었다.
“어머니, 큰 오라버니가 보낸 서신을 읽어 드릴게요.”
숙모는 즉시 해이했던 자세를 바꾸더니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렴.”
“영음을 잘 보살펴 주세요, 끝!”
허영월이 좀 난처해하며 억지로 웃었다.
“큰 오라버니가 간결하게 요점을 잘 간추려서 썼네요…….”
“걔는 나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서신을 쓴 게야!”
숙모가 소리치더니, 화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
* * *
허칠안과 송정풍, 주광효는 변복하고 패도만 찼다. 그들은 야간 통행 금지 전에 역참에서 나와 황백가 근처에 도착했다.
그들은 길가에 있는 작은 주루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술을 마시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허칠안은 입에 젓가락을 물고 손에 술잔을 쥔 채로 행인들이 점점 줄어드는 거리 위와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색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석양 볕이 서쪽으로 사라지자 그는 술잔을 탁자에 두고 말했다.
“종업원, 계산이오.”
송정풍은 그가 내민 부스러기 은자를 본 뒤 주루를 나와 황백가로 걸어가면서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
“칠안, 어디서 이렇게 많은 은자가 났나? 자네가 엽전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네.”
‘엽전이라는 화폐 단위는 나 같은 운명의 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지.’
허칠안이 말했다.
“간섭하는 건가?”
“아니, 방금 자네의 그 부스러기 은자가 좀 익숙하단 생각이 들었네. 한 전이 모자라……. 내가 어제 은자 3돈을 잃어버렸어. 한 전이 모자라는 거지. 근데 마치 내 은자 같은데?”
송정풍이 다소 불확실하게 말했다.
“좀 자신을 가지게. ‘마치’를 빼버리면 바로 자네 은자 아닌가.”
허칠안이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내가 자네 방문 앞에서 주운 것이네.”
“개자식……. 어서 은자를 돌려주게.”
송정풍이 그를 쫓아가며 때렸다.
* * *
이내 그들은 백제성에서 유명한 암시장 중 하나인 황백가에 도착했다. 거리 밖과는 다르게 이곳은 전혀 썰렁하지 않고 인파로 북적였다.
하지만 모두 모자나 얼굴 가리개를 쓰고 진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 사람은 검은 도포를 걸치고 모자를 썼다. 패도는 도포 속에 감추고 황백가로 진입했다.
짙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양쪽 점포에서 일률적으로 개고기를 팔았다. 조리된 익은 고기도 있고, 생고기도 있었다.
“개고기를 안 먹은 지 여러 해 됐네…….”
허칠안은 좀 의욕이 생겼다.
일을 다 처리하면 고기 몇 근을 사서 역참에 돌아갈 것이다. 엄동설한에 신선로에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 건 인생의 큰 즐거움이다.
이내 그들은 점포 번지수를 따라 정15호 점포를 찾았다. 밖에서 보기엔 이곳 역시 생 개고기를 파는 점포 같았다. 하지만 귀가 밝은 세 사람이 동시에 귓바퀴를 움직이니, 점포 안에서 들려오는 여인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확실히 개고기를 파는 점포였다.
이곳은 2층짜리 작은 건물로 푸른 벽돌과 목재로 결합되어 있고, 벽체에는 오랜 세월 풍상을 겪어 생긴 낡음이 엿보였다.
말라빠진 중년의 점포 주인은 자신의 점포 입구에 선 손님 셋을 예리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손님, 개고기 몇 근 드릴까요?”
점포 주인이 떠보았다.
송정풍이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밖에 있는 개고기는 어떻게 파오? 또 안에 있는 개고기는 어떻게 파오?”
점포 주인이 듣더니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오입쟁이다.
“밖에 있는 개고기는 한 근에 은자 1돈이고, 안에 있는 건 은자 3돈입니다.”
이런 사창가에서 은자 3돈을 부르다니. 솔직히 말하자면 값이 경성보다 많이 싸지 않았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업계 시정잡배로서 연거푸 고개를 저었다.
허칠안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업계에 들어온 이래로 업계의 최고층에서만 놀기 때문이었다. 다도회 한 번에도 은자 10냥이 필요한데 은자 3돈이야 새발의 피였다.
‘뭐라고? 내가 색마라고? 오, 그럼 더더욱 상관없지.’
* * *
점포 주인은 몸을 일으켜 세 사람을 점포 안으로 안내했다. 이때 허칠안은 점포 주인이 한쪽 다리를 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니 형용할 수 없는 소리가 점점 뚜렷해졌다. 방음 효과가 매우 떨어져 소란스러운 소리가 난잡하고 무질서했다.
‘춘 형이 만약 여기에 있다면, 분명히 말하겠지. 내 구호를 듣고 행동해. 121, 121,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라…….’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점포 주인이 ‘어이’하고 불렀다.
“점포 안의 아가씨가 모두 한가하지 않네요. 손님들께서 좀 기다리시는 게 어떠실지요? 제가 여러분에게 익힌 고기를 한 근 썰어 드리겠습니다.”
‘날이 막 어두워지니 점포 안의 낭자들이 질서정연하군. 암시장의 개고기 장사도 아주 괜찮네…….’
허칠안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에 기다릴 계획이 없었다.
허칠안이 발로 차서 방문을 열자 안에 있던 낭자들이 놀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는 모든 방의 문을 하나씩 걷어찼고, 분노 가득한 원망 소리를 야기했다.
몇몇 남자는 옷도 입지 않고 뛰어나와 허칠안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했다.
허칠안이 하나씩 차례대로 대여섯 명을 상대하고 나니 남자들이 더는 덤비지 못했다. 그는 그제서야 단전에서 기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정15호는 내가 전세 냈으니 얼른 꺼지시게들. 오늘 밤 비용은 송 공자가 대신 낼 것이네.”
오입쟁이들은 그 말을 듣더니 마음속의 분노가 반쯤 가라앉았다. 상대방이 돈을 대신 내주겠다니 재수 없다고 치면 그만이었다. 어쨌든 개고기를 파는 점포는 암시장 도처에 널렸으니까.
이때 점포 주인은 이미 도마 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곳에는 고기를 잘게 다지는 칼이 있었고, 그는 손으로 칼자루를 누른 채 실눈을 가늘게 뜨며 나지막이 말했다.
“여러분께서는 고기를 사러 온 게 아니라 깨부수러 오셨나요?”
“점주,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조금 이따가 설명할 것이오.”
허칠안이 한마디 한 뒤, 움직여 여인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소리쳤다.
“머리를 감싸 안고 꿇으시오!”
용모가 각기 다른 여인들이 막연히 하라는 대로 했다.
“제 허락 없이는 누구도 이 방을 나갈 수 없소.”
그녀들이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끄덕이자 허칠안은 문을 닫고 1층으로 돌아갔다.
점포 주인은 아직 송정풍과 주광효와 대치 중이었다.
허칠안은 점포 문을 다시 닫고, 탁자에 앉아 반쪽짜리 옥패를 꺼낸 뒤 나지막이 물었다.
“주인장, 이 물건을 알아보겠소?”
절름발이 점포 주인의 눈길이 옥패로 향했다. 촛불에 비친 반들반들한 옥패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날카로운 물건에 두 동강 난 옥패는 깨진 면이 아주 골랐다.
허칠안은 점포 주인의 눈동자가 수축하는 걸 분명히 보았다.
주인장이 말했다.
“여러분은 주민과 무슨 관계입니까?”
“알 필요 없소. 나만 물을 것이오. 이 옥패를 아오 모르오?”
점포 주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는 절뚝거리는 발로 동쪽에 있는 방에 들어갔다. 한쪽 다리를 저는 그는 평소에 1층에서 생활했다.
2층의 방은 전부 손님들이 일을 보는 데 쓰였다.
상대가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허칠안은 주광효에게 점포 주인을 따라가라는 눈빛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