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12화 (212/712)

212화. 수수께끼

허칠안이 또 물었다.

“묵(黙)이라는 글자가 우리 관아에서 특별한 의미가 없지?”

송정풍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순무 대인과 강 금라가 이미 암호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지 않은가. 만약 ‘묵(黙)’ 글자가 가리키는 게 관아의 어떤 암호라면 강 대인과 순무 대인이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

“순무 대인이 뭘 알아차릴 수 있단 말인가? 수수께끼 맞히기나 잘하는 것뿐인데.”

허칠안이 입을 삐죽거리다가 순간 멍해졌다.

성스러운 빛이 고갈된 머릿속에서 뿜어져 나와 전광석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는 경찰학교를 다닐 때 범죄 심리학을 연구하는 교수님 한 분이 한 사람의 행위와 그의 습관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목표 인물을 분석하고 프로파일링할 때는 우선 가능한 한 상대방의 자료를 수집하여 상대방의 습관을 이해해야 한다.

아무리 교활한 범죄자라도 행동 패턴을 어떤 측면으로부터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바로 그 사람의 습관이다.

그리고 주민의 습관이 무엇인가?

수수께끼다!

‘양앵앵이 말한 적 있지. 주민은 술을 마실 때 그녀와 수수께끼 맞히고 노는 걸 좋아한다고……. 그래서 주민이 어떻게 증거를 숨기고 단서를 남겨놓을지 생각할 때 그는 습관적으로 수수께끼 방향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렇게 추론하면 두 암호 조합에서 유일한 글자 하나 역시 수수께끼인 것이다.’

허칠안은 생각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송정풍과 주광효가 서로 쳐다보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유지했다. 방금 순간적으로 허칠안의 상태가 돌아왔다. 그는 마치 처음에 상백 사건을 파헤치던 때처럼 냉철하게 몰입했다.

‘묵(黙), 뜯어보면 흑(黑)과 견(犬)…….’

허칠안은 미간을 문지르며 물었다.

“황백가에 갔던 동료가 그곳은 개 시장이라고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송정풍이 ‘응’하며 물었다.

“개 시장이네. 왜 묻는가?”

허칠안이 말했다.

“묵(黙) 자를 뜯어 보면 각각 ‘흑(黑)’과 ‘견(犬)’이네. 황백가라는 정보는 주민이 지난 수수께끼 놀이에서 남겨놓은 단서이고. 이제 맞춰볼 수 있을 것 같네.”

“자네, 암호가 가리키는 것이 개 시장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송정풍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이 흑(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단지 견(犬) 자로만 암호가 가리키는 것이 개 시장이라고 판단하는 건 너무 독단적이지 않나?”

“내게 생각이 있네.”

허칠안이 말을 잇지 않고 나가서 역졸을 불렀다.

“대인 어르신들, 분부가 있으십니까?”

역졸이 말했다.

“자네 황백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허칠안이 물었다.

“황백가는 말이죠, 아주 혼란스러운 곳입니다. 낮에는 조용해서 그래도 괜찮죠. 허나 밤이 되면 아주 복잡해집니다. 별별 사람이 다 있어요. 좀도둑, 강호 유랑자, 심지어 외지의 산적까지도 이 거리로 몰려옵니다.”

역졸이 대답했다.

‘그곳에서 파는 게 개고기인 건지 아니면 다른 고기인 건지.’

허칠안은 속으로 비방하더니 사색에 잠겼다.

“산적과 떠돌이가 개고기 한 입 먹으러 그곳까지 가는 건 아닐 테지?”

“당연히 아니죠. 황백가는 표면적으로 개고기를 팔지만, 사실은 암시장입니다. 떳떳하지 않은 물건을 팔고 떳떳하지 않은 거래를 합니다.”

역졸이 말했다.

“자네 암시장에 가 본 적이 있는가?”

허칠안이 물었다.

역졸은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물쭈물 말했다.

“가서 개고기를 산 적이 있습니다.”

‘개고기를 샀는데 어찌 손으로 그 짓을 하다가 들켰을 때의 어색한 표정을 짓는 거지?’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대로 얘기하게.”

역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신6호 점포에서 사창(私娼)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개고기를 산다는 게 바로 그런 뜻입니다.”

‘참나. 사창(私娼)을 찾는 것도 이렇게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말하지 못하다니…….’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신6호?”

허칠안이 물었다.

“암시장의 점포는 천간지지(天干地支)로 명명돼 있습니다.”

젊은 역졸은 자신이 공개 처형되는 기분에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 먼저 내려가게.”

역졸이 문을 닫고 떠났다. 이내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허칠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상황이 아주 뻔하군. 흑견(黑犬)이 가리키는 건 개고기가 걸린 암시장이네.”

백제성에 왜 이런 곳이 있는지, 관아 코앞에서 왜 떳떳지 못한 거래를 하는지는 이상할 것도 없었다.

세상에 모범이 되는 도시조차도 암시장이 많이 있다.

황백가는 역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지만, 외성에 속해 밤에 야간 통행금지가 없었다.

“그럼 다른 암호가 가리키는 건 무엇인가?”

송정풍이 자문자답했다.

“아마도 우리에게 암시장에 가서 누굴 찾아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려 주는 거겠지.”

“답은 책력에 있네.”

허칠안은 아주 확신하는 말투였다.

“방금 우리가 이미 검증해보지 않았나.”

주광효가 그를 쳐다봤다.

“책력에 있다는 생각은 틀림없네. 하지만 주민이 중요한 단서를 어떻게 유품에 남긴 것일까?”

허칠안이 말했다.

“옛날 책력이네. 올해 책력이 아니라.”

“어느 해?”

주광효가 나지막이 말했다.

“광효, 오늘의 자네의 기지가 확실히 정풍만 못 하는군. 옛날이 그렇게 많은데 대봉이 나라를 세운 지 600년일세. 정확한 책력을 찾으려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이 모래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지. 주민이 그렇게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아.

올해 책력이 아닌 이상 그 책력은 그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 짐작되네. 물론 책력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리 없지만, 연도는 있을 수 있지. 예를 들어 출생년월, 혼례를 올린 날 등등이 있겠지.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그건 아마도 14년 전의 책력일 걸세. 주민이 운주로 발령받은 해거든.”

14년 전의 오래된 책력은 역참에도 없었다. 관아와 서국(書局)에서만 보존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송정풍은 관아에서 찾지 않고 서국(書局)에 갔다.

그는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말을 타고 오래된 책력을 가지고 돌아왔다.

허칠안은 종이와 붓을 구해 탁자에 펼쳐 놓았다. 자신의 글자는 알아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주광효에게 도필리(刀筆吏)를 맡으라고 떠밀었다.

그들은 이전의 방법을 이용했다. ‘몇 번째 글자’인지 따져보는 방법으로 해독하니 여전히 틀렸다. 베껴 쓴 글자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어 ‘쪽수법’을 사용하니 162쪽은 5월 12일로 영업 개시, 혼사, 입주, 외출하기에 적합했다. 복 기원, 창고 개방, 우물 파기는 금하라고 나왔다.

“영업 개시!”

허칠안은 핵심 정보를 포착해냈다.

“아마도 우리더러 밤에 영업 개시한 후에 암시장에 가라는 듯하네.”

그의 주장은 송정풍의 동의를 얻었다.

이어 두 번째 암호 조합이었다. 삼백사십칠사일이.

허칠안이 347쪽을 펼치니 이 쪽의 날짜는 1월 15일이었다. 그는 그날의 책력을 훑어보더니 마침내 모든 걸 깨닫고선 말했다.

“나 알겠네!”

“162와 347이 가리키는 건 쪽수고 4, 1, 2가 가리키는 건 글자수네. 이 쪽의 4번째, 첫 번째, 두 번째 글자를 연결하면 무엇인지 아는가?”

송정풍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읽었다.

“정15…….”

그는 방금 역졸이 말한 정보가 떠올랐고, 무의식중에 말을 던졌다.

“암시장 점포, 정15호?”

수수께끼가 드디어 풀렸다.

허칠안과 송정풍은 홀가분하게 의자에 기대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주광효도 붓을 내려놓자 온몸에 가뿐해진 듯했다.

허칠안은 탁자 가장자리로 걸어가 자세히 보더니 아주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광효, 자네 글씨가 참 못생겼군.”

송정풍이 뛰어와 끼어들며 덩달아 야단법석을 떨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구먼, 눈에…….”

주광효는 굴하지 않았다.

“자네들 글씨는 보기 좋은가?”

송정풍이 건방지게 말했다.

“내 서예 솜씨는 지식인 못지않네. 어릴 적에 글씨를 연습하려고 아껴 먹고 아껴 써서 종이와 먹을 샀었지.”

허칠안이 말했다.

“어릴 적에 집이 가난해서 글씨를 연습하기 위해 나는 물을 묻힌 붓으로 마당에서 글자를 연습했네. 연습하다 보니 어느덧 20년이 흘렀군.”

주광효가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을 훑어보더니 붓을 건넸다.

“그럼 자네들 몇 글자 써서 내게 보여 주게.”

허칠안과 송정풍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돌아서서 어깨동무했다.

“가세. 방에 돌아가 쉬자고. 서예는 뽐내려고 하는 게 아닐세.”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주광효는 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붓글씨를 보았다. 그는 앞으로 서예를 열심히 연습해야겠다고 남몰래 마음먹었다. 이 작은 단체에서 그들에게 뒤처질 수는 없다.

* * *

허칠안은 방으로 돌아온 뒤, 신발을 벗어던지고 침상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었다. 저녁에 암시장에 갈 때 그는 양호한 컨디션을 확보해야 했다.

그는 어쩌면 머리가 지나치게 피로한 탓인지 아주 오랫동안 탄력받지 않았다.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흩어져 수습하기 어려웠다.

‘……시간을 계산해 보자. 회경과 임안 그녀들은 곧 내 서신을 받겠지. 그 서신이 회경의 화를 기쁨으로 바꾸어 줄 수 있길 바란다. 내가 무슨 일로 그녀의 미움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임안, 그 바보는 분명히 감동하겠지. 그녀가 아직 남녀상열지사를 모르는 저채미 그 식충이보다 더 꼬시기는 쉽지.’.

허칠안은 두 공주가 사적으로 서신을 주고받거나 그녀들 외에 다른 사람이 서신을 엿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첫째로 회경과 임안은 사이가 좋지 않으니 서신을 교류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쓴 서신은 좀 썸 타는 분위기였다. 이 시대의 소저는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서신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가능성이 없었다.

둘째로 회경과 임안 모두 성숙한 공주다. 두 사람은 이미 시집갈 수 있을 정도까지 성숙했고, 서신을 주고받을 자유와 권리가 있으므로 황제나 비빈들이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감히 공주의 서신을 사사로이 뜯어보지 못할 것이다.

허 동라가 두 공주에게 썸 타는 서신을 쓴 일은 폭로될 가능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서서히 관상 상태로 접어들었다.

* * *

태자가 경성의 동궁에서 잔치를 베풀어 황실의 형제자매를 초청했다. 임안은 명색이 친여동생이라, 일찍이 도착해 의자에 앉아서 치마 아래에서 발가락을 흔들었다.

그녀는 오늘 붉은색 치마를 입지 않았다. 대신 자주색 바탕에 금빛 선을 두른 화려한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홍옥 산호관을 썼다. 산호를 뼈대로 하여, 생동감 있는 금색 봉황이 가운데에서 홍옥을 수호했으며, 진주로 꿴 술 여섯 가닥이 드리웠다.

또한, 금보요와 비취, 비녀 등의 장신구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치장했다.

자색은 궁중의 후궁이 자주 사용하는 옷감으로 성숙한 여인의 우아함과 고귀함을 돋보이게 하는 용도였다. 때문에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응석받이 소녀 임안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치장한 인형 같았다.

여기에 동글반반한 얼굴, 어여쁜 도화안이 더해지니 고우면서도 요사스럽고 교만하면서도 순수해 보였다. 여러 가지 기질이 한 데 섞여 있음에도 아주 잘 어우러졌다.

점심까지는 반 시진이 남았다. 황자와 황녀들이 잇따라 동궁에 도착했다. 모두가 임안의 화려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에 익숙했다.

네 공주 중에 그녀만이 이런 치장에 어울렸다. 아마 다른 공주라면 지나치게 화려한 치장을 감당하지 못할 터였다.

회경에게 자색은 충분했으나, 그녀는 기질이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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