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암호
두 사람이 함께 주광효의 문을 두드려 연 뒤, 송정풍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 어떻게 된 일인가? 맥없이 축 늘어져서는.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네.”
주광효는 입을 벌리고 말을 하려다 멈추고선 허칠안을 쳐다봤다.
‘날 왜 쳐다보는 건데? 너도 존나 내가 썩어 문드러진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허칠안은 화가 나서 눈을 부라렸다.
* * *
세 사람은 함께 주민의 유품을 보관한 방에 와서 한참을 자세히 살폈고, 송정풍은 맥이 풀렸다.
“우리 이 유품들을 수도 없이 뒤적여 보지 않았는가.”
주광효가 허칠안을 보며 말했다.
“칠안 자네는 유품 속에 암호과 관련된 단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내가 수수께끼를 풀고 암호를 찾았을 때 사고의 흐름을 기억하는가?”
허칠안이 유품 옆에서 천천히 걸으며 세심하게 지식을 전수했다.
“역지사지는 추리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네. 주민 이 사건은 상백 사건과 달라. 상백은 적어도 나름의 단서가 있었기에 실마리를 좇아 진상을 규명하면 됐네. 하지만 이 사건은 다른 단서가 전혀 없잖나. 유일한 단서는 바로 주민이 남긴 암호를 푸는 것이네.”
송정풍과 주광효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는데, 생각에 잠긴 듯했다.
상백 사건을 겪고 나서 그들은 사건 해결에 조금은 깨달은 바가 생겼으나 여전히 단순히 모방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상백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다시 생긴다면 두 사람은 허칠안의 방식을 모방하여 사건 해결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사건의 착안점이 바뀌자 그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무협 소설로 놓고 보자면, 송정풍과 주광효는 여전히 검법을 연습하는 단계에 머물렀으나 허칠안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자신만의 검법을 소유한 상태였다.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자네들 의견을 얘기해보게.”
송정풍은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암호를 남긴 건 우리가 풀게 하기 위함인데 그렇다면 단서는 사실 아주 눈에 띄고 찾기 쉬운 곳에 있을 걸세.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어.”
“좋아. 리신(*lol 영웅 중 하나) 자네가 맹점을 발견했네.”
허칠안이 비웃었다.
이어 그는 종잇조각을 펼쳐 두 암호를 보며 말했다.
“이건 두 숫자 조합이고, 숫자는 암호의 형식이니 틀림없이 어느 암호장과 대응될 것이네. 암호장을 찾으면 우리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네.”
한 꾸러미든 여러 꾸러미든 단순한 숫자는 의미가 없다. 의미는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숫자가 가리키는 정보에 있다.
그중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건 암호장이다.
“묵(黙)자를 제외한 다른 건 전부 숫자네. 틀림없이 이미 써먹은 방법으로 단서를 감여도에 두지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어떤 장소에 대량의 숫자가 있겠나?”
주광효가 궁금해하며 말했다.
“숫자가 존재하는 단서는 너무 많아. 책에도 숫자가 있지 않은가?”
송정풍이 말했다.
“좋아. 아주 좋은 접근이야.”
허칠안은 눈을 반짝였다.
“이 두 숫자 조합이 어느 책에 존재할 거라 가정해 보세. 예전 사고의 맥락에 따라 우리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 무슨 책인가?”
송정풍은 자신의 제안이 채택된 것 같아 의지를 불태우며 분석했다.
“삼자경(三字經), 대봉회전(大奉會典), 운주지(云州志)?”
이것들 모두 운주에서 자유로이 구할 수 있는 서적이다. 삼자경은 계몽 도서에 속하고 대봉회전은 각 주 각 관아에 한 부씩 있고, 운주지는 운주의 ‘사서’라 마찬가지로 관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역참에도 있다.
세 사람은 먼저 역졸에게 이 책들을 찾아달라고 하였다. 다만 그들은 책을 바로 펼쳐서 찾지는 않았는데 또 다른 문제 하나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주광효가 물었다.
“그럼 글자와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어떻게 찾지?”
“남자는 이따금 머리가 일시적으로 잘 돌아가지 않아.”
허칠안은 그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때 쉬거나 보충해야 하네.”
“무슨 뜻인가?”
“내 말은 이 글자와 숫자가 쪽수를 의미하거나 몇 번째 글자인지 암시한다는 거네. 이는 가장 간단한 추리야.”
허칠안이 대답했다.
송정풍이 삼자경을 펼치며 말했다.
“삼자경이 그렇게 두껍지는 않으니 분명 쪽수는 아닐 걸세.”
그는 말을 하면서 삼자경을 뒤졌다.
“162번째 글자는 ‘의(義)’, 347번째 글자는 ‘정(情)’이네.
다른 암호도 해독한 결과 주민이 남긴 두 암호 조합을 연결해보면 ‘묵인정성인지(黙人情性人之)’…….”
“알겠네. 이건 틀렸군.”
송정풍이 해독에 실패하는 동시에 허칠안과 주광효도 다른 두 권을 해독하고 있었다.
주광효가 말했다.
“묵화심수동중(黙華深水東中)…… 됐어, 이것도 틀렸네.”
두 사람은 일제히 허칠안을 바라봤고, 그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묵요재백표료(黙要在白飄了).”
이어 그들은 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러 서적을 찾아 같은 방법으로 암호를 풀어 보았지만 전부 실패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약간 기운이 빠졌다. 송정풍이 눈을 바늘구멍처럼 가늘게 뜨고 말했다.
“칠안, 자네 갑자기 똑똑하지가 않아.”
그는 허칠안의 사고 활성도가 현저히 떨어져 예전만큼 그렇게 예리하지 않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었다.
허칠안이 고개를 들어 가로세로 얽힌 들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자네 친구가 몸이 좋지 않은 그 며칠 동안 아주 기운도 없지 않은가?”
“어, 어째서 또 내 친구의 일을 꺼내는가…….”
송정풍은 조금 난처했다.
“허허.”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내가 13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는데 머리가 얼마나 빠르게 돌아가길 기대하는 거야? 소소 그 쓸모없는 녀석은 정신을 끌어올리지도 못하는데 그녀를 키워서 어디다 쓴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매(魅)의 장점은 알맹이가 아니라 결합된 겉껍데기에 있었다.
매(魅) 하나를 키우는 건 어장을 키우는 것과 맞먹는다. 그가 회경, 임안, 부향, 채미 이 물고기들을 고생스럽게 기르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만족스럽다.
그때 가서 어장 주인 허칠안이 Y형 막대기를 손에 쥐고 마음에 드는 물고기가 있으면 빠르고 정확하게 찌르면 된다.
“좀 쉬는 게 낫겠네.”
송정풍이 제안했다.
“역졸에게 단 간식을 좀 가져오라고 하지.”
허칠안이 말했다.
뇌의 피로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당분을 섭취하는 일이다. 당분은 뇌가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대부분의 사람은 단 음식을 좋아한다. 사실 이는 단 음식이 아주 맛있어서라기보다는, 뇌가 몸에 당분을 섭취하라고 재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칠안은 현재 당분이 필요하다.
역졸이 그들에게 용안 계란탕, 건포도 떡, 행인(杏仁) 순두부를 만들어 주었다. 달다.
허칠안은 있는 것 중에 그나마 먹을만한 용안 계란탕을 골랐고, 행인 순두부는 모기 눈에게 밀어 주었다. 송정풍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웃으며 말했다.
“칠안, 자네 내가 행인 순두부 좋아하는 걸 어찌 알았는가.”
‘넌 딱 보면 이단이거든.’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형제잖나. 자네가 온종일 눈물로 지새는 걸 보니 마음이 안 좋아서 말이야. 순두부 먹고 마음을 좀 달달하게 만들어 보게.”
‘누가 온종일 눈물로 지샌다는 거야?’
송정풍이 눈을 부라렸다. 그는 허칠안이 넌지시 소소 낭자의 일을 언급한다는 걸 알았다.
‘그나저나 소소 낭자도 정말 묘하다. 나와 여러 번 할 수 있는 낭자는 보기 드문데…….’
송정풍은 찻집 별실에서 발생한, 혼을 뺏겼던 정사를 떠올렸다.
“자네는 모를 걸세. 자네는 탕아지만 나는 아니야.”
송정풍이 고개를 저으며 냉소를 지었다.
“전에 자네가 막 야경꾼에 합류했을 때 내가 자네에게 여 포두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권했지. 자네가 쭈뼛쭈뼛하며 동의하지 않더니 돌아서서 부향과 잘 됐을 때, 나는 자네가 같은 부류라는 걸 알았지. 여 포두가 만약 자네에게 시집갔다면 그건 바로 한 송이 꽃이 소똥에 꽂히는 셈일 테야.”
허칠안의 머릿속에 여청의 늠름하고 씩씩한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내 그는 언짢다는 듯 말했다.
“물론 여 포두가 부향보다 예쁘지는 않지만 그녀를 소똥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하지 않은가?”
“나는 그녀가 소똥이라고 말한 적 없네. 내가 말한 건 자네야.”
“그럼 자네 무슨 꽃이 소똥에 꽂힌다는 건가? 나?”
“…….”
간식을 다 먹은 후, 명탐정 허칠안의 상태가 좋지 않아 송정풍이 자발적으로 추리라는 중책을 맡기로 했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우리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자고. 만약 내가 주민이면 틀림없이 비밀번호를 순무 대인이 언제든지 찾을 수 있지만, 또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는 곳에 숨겼을 것이네.”
“응!”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민의 거처는 이미 검사해 봤으나 암묵적이고 의심할 만한 물건이 없었네. 그가 남긴 이 책들도 우리가 방금 비교 대조해 보았지.”
주광효가 말했다.
송정풍이 생각하더니 아래턱을 어루만졌다.
“……글쎄, 꼭 책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주민은 주도면밀하니 다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은 그도 틀림없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야. 우리는 다르게 접근해도 무방하네. 그렇다면 글자가 쓰여 있으나 책이 아닌 다른 물건일 가능성은? 칠안, 자네 생각에는 이 가능성이 있는가?”
“아주 좋아. 정풍, 자네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이 내 관심을 끌었네. 자네는 나에 의해 가려진 천재구먼.”
허칠안이 그를 추켜세우면서 물었다.
“그럼 자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책이 아니면서 주민의 유품에 있고, 상당한 두께가 있는……,”
허칠안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책력(*冊曆: 일 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 따위를 날의 순서에 따라 적은 책)?!”
주광효는 죽으라고 일에 매진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품을 들추어 두꺼운 책력 한 권을 정확하게 찾아 냈다.
“이건가?”
“바로 그거야!”
허칠안은 가슴 속의 탁한 공기를 다 내뱉었고, 눈빛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책이자 책이 아니고 눈에 띄면서도 평범하기 그지없다. 허칠안은 그동안 주민이라는 인물에 관한 추측과 분석에 근거했을 때 아주 큰 자신과 확신이 생겼다. 이게 바로 주민의 방식이다.
세 사람은 지체 없이 책력을 펼쳤고, 첫 번째 글자부터 시작했다. 실마리를 따라 162번째 글자를 헤아렸다.
‘일(日)!’
을묘일의 ‘일(日)’이다.
이어 347번째 글자, 4번째 글자, 첫 번째 글자, 두 번째 글자였다.
‘조합해 보니 묵일광정일오(黙日光丁壹伍)!’
이건 잘못된 게 분명했다.
이어 그들은 두 번째 방법을 이용했다. 글자 수 대신 쪽수로 계산했다.
쪽수로 계산하면 모든 숫자는 일력(日曆)의 어느 날과 대응한다. 조합하니 다음과 같았다.
묵, 4월 6일, 1월 15일, 1월 29일, 1월 25일, 1월 26일.
“날짜, 또 틀렸군.”
허칠안은 책력을 내던지더니 욕을 퍼부었다.
“이 방향도 맞지 않아. 다시 하세.”
“어쩌면 우리가 ‘묵(黙)’이라는 글자를 먼저 풀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유일한 글자인 데다가 맨 앞에 있지 않은가.”
주광효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선두의 의의는 아주 중요했다.
허칠안은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럼 자네는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가?”
주광효는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