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10화 (210/712)

210화. 썩어 문드러진 놈

원경제는 위연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오?”

위연이 물었다.

“청주 포정사사에서 전해 온 접본에 이 시가 포정사 양공이 지은 것이라 확실히 명시되어 있습니까?”

‘……무슨 뜻이야?’

관리 사회의 처세가들이 추측에 나섰다.

원경제는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소?”

접본에는 양공이 지은 시라고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 표현은 이러했다.

<경계비를 세우고 경고하는 비문을 새길 것을 양공이 청주 백관에게 책임지고 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는 아주 총명한 어휘 선택이었다. 명확하게 단언하지도, 그렇다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원경제는 묵인하는 걸로 해석했다.

“이 시는 양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은 것입니다. 소신이 생각하기에 이 시가 일단 널리 퍼지면 천하에 이름이 날 것은 자명합니다. 한 사람에게 있어 이는 바란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명성을 떨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양공이 독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위연이 말했다.

“오? 청주에 언제 이런 인재가 나왔단 말인고?”

원경제는 웃었다. 그는 흥미가 생겨 위연을 응시하며 말했다.

“한데, 어떻게 안 것이오?”

‘양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었다니……. 청주에 확실히 인재가 많이 나는군. 역시 과거 시험의 주(州)야…….’

제공들은 속으로 생각하며 원경제의 물음에 따라 시선을 위연에게로 옮겼다.

모두가 이 시를 지은 사람이 양공이 아니라는 걸 위연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했다.

“청주 사람이 아닙니다.”

위연이 고개를 저었다.

원경제는 궁금해하는 어조로 ‘음’하고 소리를 냈다.

“게다가 소신은 이 시가 청주에서 쓰인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한 달여 전에 세상에 나왔는데 역시 청주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위연은 또 말했다.

그러자 모든 대신들도 따라서 궁금해하는 어조로 ‘음’하고 소리를 냈다. ‘이 시야말로 저희 대봉에 있어야 할 시입니다’라고 얘기했던 급사중이 말했다.

“위 공, 폐하 앞에서 뜸 들이지 마시오.”

악플러는 입만 열면 덤터기를 씌운다.

‘한 달여 전에 세상에 나왔고…… 청주 사람이 지은 게 아니다.’

날카로운 관원들은 속으로 동요하며 추측을 이어갔다.

순간 제공들의 얼굴빛이 이상해졌다.

위연은 얼굴빛이 갑자기 어두워진 원경제를 보더니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 시는 야경꾼 관아 동라 허칠안이 지은 것으로 원작이 여전히 관아에 놓여 있습니다. 허, 여러 대인께서 만약 감상하고 싶으시다면 본관이 빌려 드릴 수도 있지요.”

‘역시 그였군.’

관원들은 낮은 목소리로 다시 왈가왈부하기 시작했다.

“이자는 인재야. 학문을 익히지 않았다는 게 정말 안타깝네.”

“흥, 그 허평지가 저속한 무사라 식견이 좁아서 그렇네.”

“허칠안 이자가 만약 국자감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이쯤 되니 허칠안을 좋아하지 않는 조당의 제공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시재가 만약 국자감의 지식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설령 상대가 정적일지라도, 위연이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위연은 본래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었을뿐더러, 그가 이 일로 거짓말을 하여 공연히 체면을 구길 필요도 없었다.

그 급사중은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저자세를 유지했다.

원경제는 ‘허’하더니 말했다.

“자네가 이 일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인고?”

위연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부하가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돕기 위함입니다.”

원경제는 코웃음을 치더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허칠안을 좋아하지 않지만 명색이 제왕이니, 일개 동라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건 아니었다. 게다가 어차피 원경제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조당에도 많았다.

물론 동라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를 화나게 하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 * *

운안 한 마리가 먼 하늘에서 청운산의 운록서원으로 날아와 날갯짓을 하며 청운산으로 곧장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뜰과 다락방들을 지나쳐 벼랑가에 위치한 정교한 소각(小閣)의 2층 요망청에서 한 손에 의해 거뜬히 잡혔다.

청광이 일그러진 가운데, 운안이 정교하게 재단된 종이 기러기로 변했다. 마치 진짜 기러기 같았다.

“양공이 서신을 보내왔네.”

이모백이 웃으며 고개를 돌리곤 실내에서 바둑을 두던 두 대유, 두 풋내기 바둑꾼에게 알렸다.

장신과 진태(陳泰)는 마침 유쾌하게 싸우느라 고개도 들지 않고 아무렇게나 물었다.

“뭐라고 써 있나?”

이모백이 미소를 머금고 편지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얼굴에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면서 낯빛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파렴치하군, 정말로 파렴치해!”

이모백은 갑자기 편지지를 손으로 구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양공 영감태기, 후안무치한 자식, 지식인이라는 게 원통하다. 나 이모백, 그가 수치스럽구나, 수치스러워!”

장신과 진태 두 대유는 뜻밖의 포효에 깜짝 놀랐다.

“또 왜 그러는가? 양공의 서신 한 통이 자네를 이렇게 분노하게 할 수 있다고?”

장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비웃었다.

“이모백, 자네는 심성이 약하고 너무 쉽게 욱해서 그해 위연에게 진 것이야. 자네, 위연을 보게.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잖나.”

대유 진태가 고개를 저었다.

“이모백의 성미가 조급한 건 맞지. 서신 좀 줘보게.”

이모백은 이미 분노에서 벗어나 마음속이 노란색으로 가득 찼다. 그는 ‘흥’하며 편지지를 바둑판 위로 던졌다.

장신은 손을 뻗어 주웠고,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양공은 서신에 그가 청주에서 순무 대오를 접견하고 허칠안을 만났다고 했다.

양공은 허칠안이 대봉 오백 년 역사 중 첫 번째 시재라 칭하며 제멋대로 칭찬했다. 그가 계속해서 칭찬하자 장진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보아하니 약간 뽐내면서도 남의 호의를 받아 공정성을 잃은 듯했다.

그가 계속 읽다 보니 시 한 수가 있었다.

이식이록, 민지민고, 하민역학, 상천난기 -허칠안(스승 양공)

또한 서신에는 이 시가 비문에 탁본한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르르 쾅쾅!

절벽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자갈들이 굴러다니고, 각루에서 청기가 뿜어나와 사방을 뒤흔들었다. 장신과 진태의 포효 소리는 운록서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양공 영감탱이는 모범이 될 자격이 없어. 이 늙은이가 그 영감탱이를 운록서원에서 쫓아내라고 건의해야겠어.”

“송별시 한 수면 그만이지, 이 시마저도 그가 차지하겠다? 이 늙은이는 용납할 수 없어!!”

“화나 죽겠군, 화가 나 죽겠어. 그럼에도 자랑하는 서신을 쓰다니…….”

* * *

허칠안은 역참에서 운주 특색의 점심밥을 먹고 찬물로 목욕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가 흰색 내의를 입고 방으로 돌아와 주전자 뚜껑을 비틀어 열자, 푸른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올라 경국지색의 미인으로 변했다. 그녀는 볼에 바람을 넣고 말했다.

“썩을 놈!”

허칠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본래는 너를 놓아 주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이 바뀌었구나.”

소소는 즉시 태도를 바꾸고 애교를 부렸다.

“나리!”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나리, 뭘 보셔요.”

소소는 눈을 깜박이며,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하라는 듯 꼬시는 행동을 취했다.

“영채신(寧采臣)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허칠안은 조금도 꺼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영채신이 누구여요?”

“한 선비로 그 역시 귀신과 서로 사랑에 빠졌지.”

“그 귀신은 분명히 그의 정기를 탐내는 걸 거예요.”

“왜?”

“제가 바로 귀신이잖아요. 저는 남자의 정기를 탐하거든요.”

“너는 어떻게 탐하는데?”

허칠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지막이 말했다.

“솔직히 얘기하거라. 네 죄의 경중에 따라 너를 놓아줄지 말지 고려해 볼 것이니.”

“입으로 빨아들여요.”

소소는 소녀는 무고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제가 빨아들이는 건 전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산적이에요. 저는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어요.”

“어디를 빨아들이는데? 음, 나는 단지 귀신의 수법이 궁금할 뿐이야.”

“머리를 빨아들여요.”

“어느 머리?”

허칠안의 눈에서 세찬 정광(精光)이 뿜어져 나왔다.

소소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으나 하나하나 대답했다. 그러고는 섬세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찌르며 말했다.

“여기요.”

허칠안 눈의 정광이 소멸했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너의 악행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어 너를 쉽게 풀어줄 수 없겠구나. 돌아가라.”

펑!

그가 술주전자를 닫았다.

“시간을 낭비했군.”

허칠안은 중얼거리며 일어나 방에서 나와 송정풍의 방문을 두드렸다.

* * *

“무슨 일인가?”

송정풍은 본래 한숨 자고 정신을 가다듬으려 바지까지 다 벗은 참이었다. 그런데 허칠안이 와서 문을 두드렸다.

“순무 대인이 계시지 않지만 우리도 해이해질 수는 없지 않은가. 주민이 남긴 암호를 풀어볼 계획이네. 자네와 광효 모두 경험이 풍부한 야경꾼이니 자네들의 의견이 내 추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네.”

송정풍은 명탐정 허칠안이 이렇게 말을 하니 영광스러우면서도 부끄러웠다. 어쨌거나 편제된 야경꾼이건만,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추리가 아니라 역시나 폭력 행사였다.

“칠안, 나는 사건 해결 쪽으로는…… 사실 문외한이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허칠안이 진지하게 말했다.

송정풍이 고개를 저었다.

허칠안이 말했다.

“무심한 말들이 내 의혹을 풀어주고 엉뚱한 충동이 나로 하여금 계속 추적하게 만드네.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는 더욱더 조심하네.”

송정풍이 경계하며 말했다.

“자네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서 뭐 하는가? 자네 뭘 하고 싶은 겐가?”

“아니, 나오는 대로 지껄인 걸세…….”

허칠안이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참, 소소 낭자의 일로 무슨 느낀 바가 있는가?”

허칠안은 말하는 동시에 송정풍을 쳐다보면서, 그가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길 기대했다.

과연 송정풍은 소소 낭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 아파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 생에는 그녀를 찾을 수 없네. 이는 나 송 아무개 평생의 한이 될 것이야.”

‘그녀는 내 방에 있다고……. 이 자식 아직도 반응이 오지 않았다고? 말이 안 되는데. 주광효와 한 쌍이 되기만 하면 소소의 행동이 들통날 텐데……. 그들은 서로를 속이고 있는 건가? 왜지? 내가 더 믿을 만하기 때문인가?’

허칠안은 갑자기 좀 감동을 받았다.

“참, 소소의 일은 칠안 자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게. 광효에게도.”

송정풍이 경고하며 말했다.

“걱정 마시게. 내 입이 무겁잖나.”

허칠안은 눈부신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내친김에 하나 더 묻겠네. 광효보다 내가 더 믿을 만해서 그런 건가?”

“아니야. 자네 왜 그런 착각을 하는 건가?”

송정풍이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자네가 남녀의 일에서는 좀 더 비도덕적이니 자네가 알게 되는 게 두렵지 않아서야. 어쨌든 자네보다 더 썩어빠질 수는 없을 테니 말이야.”

“……모두 같이 간 교방사인데, 무슨 근거로 내가 더 비도덕적이라는 건가? 나는 부향 낭자와 즐기고, 자네는 용모가 그만저만한 여인과 즐겨서 그런 건가?”

허칠안은 오기가 생겼고, 속으로 말했다.

‘내가 소아성애자도 아니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아닌데 어째서 도덕적이지 않다는 거야?’

“매번 자네가 매일 밤 은자도 내지 않고 부향 낭자와 즐긴 얘기를 할 때면, 모두 같이 욕한다네. 이, 썩어 문드러진 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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