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심문 (2)
허칠안은 ‘허’하고 소리를 내더니 옥가락지를 빼서 탁자에 두었다.
“소소 낭자, 계속 노력하시오!”
옥가락지의 청기가 반짝였다.
여자 귀신은 의아해하며 옥가락지를 뜯어보았다.
“유가의 기운?”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여 확인시켜 주자 그녀는 단숨에 교태를 거두고 재빨리 허공에 섰다. 그녀는 높은 곳에서 허칠안을 내려다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이든 찢든 편할 대로 하거라.”
허칠안이 말했다.
“좋아! 가락지를 술주전자에 넣겠다.”
소소 낭자는 바로 공손해졌다.
“나리, 다시 의논하시죠.”
‘아주 처세에 능하군…….’
허칠안은 내친김에 옥가락지를 거두고 의자에 기대어 물었다.
“누가 너를 보냈느냐.”
소소 낭자는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추는 표정을 지었다.
“제 주인은 이묘진이라 합니다. 도문 천종의 성녀(聖女)로 방년 19살, 아직 혼사를 치르지 않았지요. 그녀가 제게 공자를 유혹하여 주민 사건과 관련된 단서를 얻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도지휘사 양천남에게 위협이 되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죠.”
허칠안은 문제점이 너무 많아 순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우선, 이 여자 귀신은 정말 이호가 지시해서 온 것이었다. 마주쳤을 때는 의심에 불과했지만, 찻집에서 그녀가 주민 사건의 정보를 물은 후에 허칠안은 그녀가 이호의 사람이란 걸 거의 단정 지었다.
‘이호는 실행력이 대단하군. 어젯밤에 미색으로 유혹한다고 말하고 오늘 바로 행동하다니. 역시 장부답다……. 이 여자 귀신이 <매(魅)>? 알고 보니 <매(魅)>가 여자 귀신을 가리켰나 보군? 그리고 이호가 뜻밖에도 천종의 성녀라고? 음, 합리적이긴 하다. 여러 체계 중, 귀신을 다스리고 부리는 데 능한 건 무신교를 제외하면 도문뿐이다.’
그는 요행 심리를 품고 그녀가 무신교에서 보내온 여자 귀신이길 바랐지만, 언제나 세상사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호가 귀신을 키우는 수준이 너무 형편없지 않은가? 이게 귀신을 키우는 건가? 밀고자를 키운 거 아니고? 내가 크게 압박하지도 않았는데 전부 자백하다니.’
“참 충성스럽구나.”
허칠안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저는 미인박명하여 젊은 나이에 죽어 귀신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목숨을 아껴야죠.”
소소는 탄식하더니 날렵한 눈동자를 굴리며 덧붙였다.
“노비는 죽을 때 처녀의 몸이었다고요.”
‘그래서? 남자의 맛을 보지 못해 원기가 흩어지지 않아 <매(魅)>가 되었다는 거야?’
허칠안이 또 물었다.
“천종의 성녀가 어째서 비연 여협객이 되었지? 어째서 운주에 와서 비적을 토벌하는 건가?”
“천종이 닦는 건 천도(天道)입니다. 높은 경지에 이르려면 감정에 움직이지 않아야 하죠. 세상에 나오려면 우선은 속세에 얽매여야 합니다. 속세의 덧없음을 깨닫기 위해 주인님께서는 스승의 명을 받들어 산에서 내려와 두루 돌아다니는 겁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의협심과 정의감에 불타 모든 사람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좋다고 말하는 비연 여협객이 된 건가? 천종의 어르신들이 이 사실을 안 뒤 화가 나서 피를 토하지는 않을까 궁금하군.’
“……풉!”
허칠안은 이번에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는 이호가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 귀신은 그를 불만 가득한 눈으로 보더니 물었다.
“나리, 더 묻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다 물으셨으면 빨리 저를 놓아주세요.”
“주민이 양천남의 손에 죽은 것인가?”
“저는 모릅니다.”
“이묘진은 이 일에 가담했는가?”
“이건 제가 알지요. 절대 아닙니다. 저는 늘 주인님 곁에 있거든요.”
소소의 말은 증거가 없지만, 허칠안은 믿기로 했다. 지서 단체 채팅방을 통해 얻은 피드백으로는 이호는 정의로운 동료이자 인품도 믿을 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지휘사 양천남이 흉악한 놈인지 선량한 사람인지는 검증이 필요했다.
“이묘진의 수련 품계.”
“5품입니다.”
‘도문 5품이 뭐였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너를 보내 나를 꼬신 후에는 어떻게 할 계획이었지? 음, 내가 말하는 건 그 방면이야. 내게도 환술을 써서 현혹하려 했나?”
소소는 갑자기 남자를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을 내보이며 히죽히죽 웃었다.
“공자님, 저는 육신이 이미 없어져 공자님을 모시고 재미를 볼 수 없어요. 하지만 여인의 몸에 빙의할 수는 있지요. 공자께서 만약 길거리에서 어느 집의 낭자를 눈여겨보셨다 칠게요. 명령만 내리시면 제가 그녀에게 빙의할 수 있답니다. 헤헤헤.”
“나는 그런 파렴치한이 아니네.”
허칠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와 양천남은 무슨 관계지?”
“몇 개월 전, 도지휘사와 주인님이 함께 비적을 토벌한 적이 있어 친분이 아주 두텁습니다.”
허칠안은 더는 관리 사회의 햇병아리가 아니었기에 양천남이 비적을 토벌한 진짜 의도를 바로 추측해 냈다. 경찰 맞춤용일 터였다.
“마지막 질문.”
“공자님 말씀하세요.”
“나를 따를 의향이 있나?”
허칠안이 말을 마치고 변명했다.
“재미를 보든 보지 않든 상관없네. 중요한 건 너의 빙의 능력이 괜찮아서야.”
농간을 잘 부리는 소소 낭자는 즉시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하라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저는 공자님을 따르길 원해요. 그러니 봉인을 풀어 주세요.”
“좋아!”
허칠안은 주전자 뚜껑을 들었다.
“앞으로는 나를 따르거라. 술주전자가 바로 네 집이다.”
“공자님 봉인을 풀어 주세요. 공자님, 공자님……. 썩을 놈, 조만간 너를 쥐어짜 말려 버리겠어!”
주전자 뚜껑이 닫히면서 소소의 목소리가 사라졌고, 방안의 음기도 흩어졌다.
* * *
청의를 입은 위연이 경성의 야경꾼 관아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책상 앞에 앉아 접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남궁천유와 장개태 등 금라 여섯 명은 고개를 숙이고 실내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연도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경성의 생활이 그래도 좀 편안해졌나 보군. 동북에서 온 밀서 12통을 무신교 놈들에게 가로채이고 말이야. 자네 금라들은 어떻게 부하를 훈련하는 건가? 경성에 있는 게 너무 한가하면 말하게. 변방에 마침 자네들이 필요하네.”
대환관은 몹시 화가 났을 때도 흐트러짐 없는 태도를 보였다. 마치 그가 예의를 잃게 할 사건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금라 여섯 명은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위연 앞에서 변명할 엄두도 말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타타타탁.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옷을 입은 하급 관리 하나가 두 손에 서신을 받치고 황급히 들어왔다. 탁자 앞에 멈춰서 몸을 굽히곤 말했다.
“위 공, 운주에서 온 긴급 밀서입니다.”
대봉은 역로가 발달하여 일반적인 말 외에도 화우수라 불리는 기이한 짐승이 운반을 맡고 있었다. 이 짐승은 남강에서 왔으며 요족에 속했고, 성격이 온순하고 달음질에 능했다.
이 짐승은 하루에 천 리를 아주 수월하게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번식 능력이 강하지 않아 키우자면 돈이 아주 많이 들었다. 그렇기에 보급할 수가 없어서 역로의 서신 전달용으로만 사용됐다.
위연은 종이 재단 칼로 서신을 뜯고 편지지를 펼쳐서 정신을 집중하여 읽었다.
밀서는 강율중이 보낸 것으로 순무 대오가 이미 운주 국경에 도착했다고 알렸다. 서신에 그들이 막 운주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로 주민의 첩 양앵앵을 구하고, 중요한 단서를 얻었다고도 언급했다.
그런 후 서신 말미에 한 가지 일을 알렸다.
“허칠안이 이미 연신경에 충격을 가하고 있어 승직할 날만 고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직, 그가 뜻밖에도 동시에 두 가지 관상도를 수행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중 하나는 관아의 것인데 혹시 위 공께서 주신 건지요? 다른 관상도는 불문의 사자후로 둘 다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했더군요.
소직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는데 위 공께서 의문을 풀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소직이 기억하기로 연기경의 무사가 연신경으로 승직하기 전에 한 가지 도(圖)를 관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힘겨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원신의 강도가 제한적이고, 둘째로 여러 종류의 도록(圖錄)을 함께 수련하면 뒤섞이게 되어 정신적인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소직 역시 그해 연신경에 이른지 아주 오랜 후에야 동시에 여러 종류의 도록을 관상했습니다. 관아의 다른 금라들 역시 마찬가지죠. 허나 왜 허칠안만 이렇게 독특한 것입니까? 연기경일 때 두 가지 도록을 관상할 수 있다니, 소직은 금시초문이라 믿기 어려워 이 일을 아직 모두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허칠안이 이미 연신경에 충격을 가하고 있군. 심지어 두 가지 도록을 관상하고 있어.’
눈앞에서 산이 무너져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을 위연의 눈빛이 갑자기 굳어졌다.
금라 여섯 명은 위연의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마치 강한 적을 맞닥뜨린 것처럼 마음에 두려움이 일었다.
‘이 밀서엔 아마 어떤 중대한 소식이 적혀 있을 거야. 그리고 좋은 일이 아니겠지. 그러지 않고선 위 공께서 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시겠나.’
이때 그들은 위연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위연은 탄식하는 듯 감탄하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두 달도 안 됐는데…….”
‘두 달도 안 됐다니?’
금라들은 소리 없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은연중에 추측해 보았다.
‘두 달도 안 됐다라!’
맥락은 분명했다. 어떤 시간적 제약이거나 시간을 뛰어넘는 척도가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두 달도 안 됐다’가 의미하는 게 무슨 일인지가 관건이었다.
금라들은 서로 눈짓을 보내며 상대방에게 물어보라고 부추겼지만, 그들 모두 위 공이 화가 난 상태임을 알았기에 감히 고배를 마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만약 아주 재수 없는 일이었다면 마침 위 공에게 화를 발설할 건수를 제공하는 셈이 아닌가?
‘공문서 한 장에 변방으로 옮겨 가면 편하고 한가롭겠지…….’
위연은 자신이 그해 무도를 닦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대봉 500년 이래로 일품에 이를 가능성이 가장 큰 천재라고 감정에게 칭송받았지만, 그런 그조차도 그해 3개월 반의 시간을 들여 연기경에서 연신경으로 뛰어넘었다.
두 달도 안 됐는데 이 큰 계획을 이룩하다니. 허칠안의 천부적인 재능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사실 예전에 위연이 그를 높이 샀던 이유는 그의 심성 때문이었다. 심성 역시 천부적인 재능의 일종이다.
허칠안의 수련 속도에 관해 말하자면 이러했다. 위연은 앞서 그가 기기를 중단전에 가득 채웠다는 얘기를 듣고 이미 허칠안을 괄목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년 봄 말에는 이 자식이 거의 연신경으로 승직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5개월 만에 한 품계를 승직하는 이 타고난 자질은 금라급이다.
게다가 그는 천성적으로 무사 체계에 걸맞은 심성이라 장차 3품 무사인 제2의 진북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칠안의 천부적인 자질이 그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다니, 누가 그런 걸 생각했겠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허칠안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해냈다는 점이었다.
연기경 쌍관상.
불문의 사자후는 절학이지만 관상도록과 상호 결합해야 했다. 이런 도록은 진정한 관상도록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금빛 사자 포효도는 ‘사자후’ 절학을 보조하는 역할일 뿐이었다.
절학의 조립 부문에 속한다.
하지만 설령 이렇다 해도 허칠안은 연기경일 때 이중 관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는 여전히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