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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06화 (206/712)

206화. 허, 여인

송정풍과 허칠안은 침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송정풍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에 운주에 온 목적이 바로 고질병을 철저히 제거하기 위함이잖나. 산적과 결탁한 도지휘사를 해결하면 운주 비적의 난도 한결 좋아질 걸세. 칠안 말이 맞아. 교방사에 빠져서는 안 돼. 대장부라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힘을 써야……. 와우, 대박 미인!”

그 말에 허칠안과 주광효도 그 방향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길거리 전방에 경국지색의 미인이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녀는 정교하고 화려한 비단 치마를 입고 당대 유행하는 머리 모양을 한 채 한 줌만 한 허리에는 푸른 옥이 박힌 비단 띠를 묶고 있었다.

희고 보드라운 피부, 옻칠을 한 듯한 눈동자, 새빨간 입술, 뾰족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은 더없이 곱고 아름다웠다.

‘나이스…….’

허칠안의 머릿속에 이 단어가 스쳤다.

갸름한 얼굴에 큰 눈동자를 지닌 수려한 미인은 허칠안이 특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여기에 요사스러움만 좀 더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가 만났던 가장 표준적인 갸름한 얼굴의 미인은 셋이다. 허영월, 회경, 이호.

하지만 그 세 여인은 각각 청아하고 수려한 소녀, 도도하고 고상한 여장부, 재기가 넘치는 협객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이 미인만이 요염하고 매혹적인 갸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에게서는 한눈에 방탕한 분위기까지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야말로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신과도 같았다.

“완벽하다. 내가 자나 깨나 꿈꾸던 미인이야…….”

허칠안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드디어 이 고독한 세계에서 사랑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미인은 많지만 그는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무슨 부향이고 회경이고 임안이고 국사고 모두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그는 오래지 않아 이상함을 감지했다. 먼 곳에 있는 그 여인이 아무리 예쁘다 해도 압도적으로 그 미인 요괴들을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그는 이 비논리적인 상황을 예리하게 포착했고, 차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어 왼쪽 엄지손가락이 조금 뜨거워졌다. 자양거사가 선물한 옥가락지에서 따뜻한 온기가 뿜어 나와 그의 정신을 온양했다.

허칠안이 다시 그 경국지색의 미인을 보자 눈동자가 수축했다. 그의 눈에 비친 건 절세미인이 아니라 정교하게 만든 종이 인형이었다.

종이 인형이 당대 유행하는 머리 모양을 하고 화려한 비단 치마를 입고 있었다. 옷차림새와 단장이 여우 미인과 똑같았다.

정교한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으며, 눈은 흐리멍덩하여 전혀 생기가 없었다.

‘씁…….’

허칠안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이런 기이한 일을 겪자 몸서리쳤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네……. 채미가 말한 적 있었지. 귀신이 세간에 오래 머물 수 있는데 내 새 저택 우물 아래의 여자 귀신처럼 지리적 은혜를 입든지…… 아니면 강자가 추락한 후에도 정신은 그대로인 경우지. 하지만 여전히 시간의 제약이 있어 계속해서 머물 수는 없어…….”

허칠안은 순간적으로 누군가 배후에서 이 여자 귀신을 키워서 부리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여자 귀신은 대단하군. 나조차도 미혹할 수 있다니…… 만약 유가의 호연정기에 사악함이 깃든다면 이번에 나는 사소한 부주의로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허칠안은 아무런 내색 없이 시선을 거두고 곁에 있는 두 동료를 쳐다봤다.

이때 그는 그들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다소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여자 귀신에 사로잡혀 버렸다. 어느 정도 이성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사실 매우 매혹되어 있었다.

‘나도 방금 이렇게 침을 질질 흘렸나?’

허칠안은 조금 수치스러웠다.

“광효, 칠안. 나는 다시 사랑을 믿기로 했네.”

송정풍이 미색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결혼하여 자립할 생각이네. 아들 이름도 생각해 두었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몸을 탐하는 거야. 아니지, 그녀는 몸이 없지.’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자네, 그건 그냥 여색을 좋아하는 거네.”

주광효가 한마디 비아냥거리며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을 내보였다. 죽마고우의 이웃집 여동생과 첫눈에 반한 여인 사이에 선택하기 어려운 듯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고민하는 건 그의 생각이 송정풍과 같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경국지색의 자태를 뽐내는 여인이 개미허리를 흔들며 사뿐사뿐 걸어왔다.

“공자 세 분께서도 놀러 나오셨나요?”

그녀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흔들리는 치맛자락을 바로 한 뒤 매혹적인 자태로 절을 했다.

“소녀가 의지할 곳 없는 홀몸이라 참으로 무료합니다. 공자 세 분과 동행해도 될는지요?”

‘우리를 노리고 왔나 보군.’

허칠안은 경계심이 생겨 일부러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눈살을 찌푸린 채, 주저하며 말했다.

“우리 마침 교방사를 가려던 참이라 안 되겠소.”

“누가 교방사를 간단 말인가? 자네 혼자라도 갈 거면 가시게. 송모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네.”

“칠안…… 에이, 저속하구먼.”

송정풍과 주광효가 말없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그와 선을 그었다.

‘흥, 이자는 역시 색마야. 대낮에 노골적으로 음란한 짓을 하면서 이렇게 공명정대하게 말하다니…….’

귀신은 속으로 침을 퉤 내뱉었으나 얼굴에 웃음기가 점점 더 번졌다.

‘뭐, 그런데 색마도 괜찮아. 이 몸이 가장 잘 하는 일이 색마를 다루는 거라고.’

‘자양거사의 옥가락지가 내 몸을 보호해 주니 귀신은 겁나지 않는다. 그녀가 만약 궤도를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내가 바로 습격하면 된다. 도리어 무방비 상태이니 승률이 아주 높다. 하지만 산증인으로 남겨 두어 저녁에 한 차례 심문하는 게 가장 좋겠어.’

허칠안의 눈이 반짝였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동행하시죠.”

그는 먼저 냉철하게 변화를 지켜볼 계획이었다.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대유들이 선물한 마법서 중에는 요괴 맞춤형인 도문의 법술이 있었다.

‘네가 나를 낚는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너를 낚고 있는 거야…….’

* * *

이묘진은 찻집의 창가에서 반쯤 몸을 기울이고 천에 가려져 먼 곳에 있는 세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귀신이 아주 손쉽게 적의 내부에 들어가는 걸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색은 아주 많은 수법 중에서도 항상 남자를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강율중이 장 순무를 따라 민심을 살피러 나갔고, 사천감의 백의 셋이 수행하니 오늘은 돌아오지 못할 거야. 게다가 역참에 주재하며 지키던 강율중과 술사의 망기술이 사라졌으니 귀신도 발각되지 않을 거야.

귀신은 비록 유혹과 환술(幻術)에 능하지만 어쨌거나 형체가 없으니 실제로 남자와 침상의 일을 행할 수는 없어. 장기적으로 허칠안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각되지 않으려면 교방사에 가서 여인 한 명을 데려와야 해. 일이 다 끝난 후에 그에게 양기를 북돋고 피를 보충하는 단환(丹丸) 몇 병을 선물해야겠어. 젊은 나이에 이렇게 허약한 모습이니 보양하지 않으면…… 허.”

* * *

네 사람은 백제성을 돌아다니며 현지의 풍토와 민심을 실컷 즐기고,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고루 먹었다.

여인은 자신을 소소(蘇蘇)라 칭했다.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견직물 상인이라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 치마를 입게 된 것이라 말했다.

그녀가 세 공자를 보니 모두 인물이 훌륭하고 용모가 범상치 않아 공경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이 생겨나 저도 모르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친구가 되겠다는 뜻인지 여자친구가 되겠다는 뜻인지……. 너 이거 확실히 얘기해야 한다…….’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중요한 건 송정풍과 주광효는 이렇게 수준 떨어지는 변명도 믿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말로 이 말을 믿었다.

음, 그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미 사고 능력이 떨어졌다.

송정풍은 한 찻집의 별실 안에서 간식을 소소의 앞으로 밀어주며 정성스레 말했다.

“소소 낭자는 왜 안 먹소?”

“저는 배가 고프지 않아요.”

“소소 낭자는 왜 차를 마시지 않소?”

“저는 목이 마르지 않아요.”

‘물을 마시면 흘러나올까 봐 그러겠지.’

허칠안은 찻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소소 낭자, 찻집에 들어와서 차를 마시지 않는 건 저희 세 형제를 무시하는 거 아니오?”

소소는 즉시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자님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칠안, 소소 낭자가 마시지 않고 싶다고 하니 강요하지 말게.”

주광효와 송정풍이 즉시 동료를 나무라며 마음에 둔 사람 대신 나섰다.

‘휴, 너희 둘은 자기 성이 뭔지도 까먹었니? 아래쪽의 머리가 이미 위쪽의 머리를 대체했군. 글렀다.’

허칠안은 물로 종이 인형을 적시게 하려던 생각을 바로 포기했다.

소소는 입을 오므렸고, 생각 없이 물었다.

“억양을 들으니 공자들께서는 운주 현지 사람이 아니시네요.”

송정풍이 턱을 치켜들고는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경성 사람이오.”

소소는 ‘아’하는 소리와 함께 조그만 입을 막고 놀라움과 공경을 담아 말했다.

“공자들께서는 경성 사람이셨군요. 소녀가 듣기로 경성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성이라지요. 수려한 땅에서 걸출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지요. 마음속으로 동경해 온 지 오래랍니다.”

허칠안은 인정해야 했다. 어떻게 남자의 마음을 움직이는지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내력을 모르는 이 여자 귀신이 그가 본 여인 중에 최고였다. 설령 부향이라도 한 수 뒤떨어진다.

그녀는 늘 남자 마음속의 가려운 부분을 도발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꼬드김이다. 저속한 유혹은 몸을 미끼로 하지만 ASMR이야말로 진정한 유혹이었다.

주광효는 조금 뽐내며 덧붙였다.

“우리는 야경꾼이오. 소소 낭자는 야경꾼 얘기를 들어 봤소?”

소소는 고개를 흔들며 아주 잘 받아 주었고, 사심 없이 맑고 투명한 눈을 깜박였다.

송정풍은 말을 가로채 야경꾼 관아에 관해 한차례 허풍을 떨었다. 그는 소소 낭자의 우러러보는 눈빛을 감지한 후 간들간들해져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

소소는 태연하게 화제를 이끌어 나갔다.

“그럼 공자들께서는…… 아, 아니. 대인께서는 순무를 따라 운주에 와서 무엇을 하십니까?”

“당연히 사건 수사요.”

“무슨 사건을 수사하시나요?”

송정풍은 말을 하려다가 탁자 밑에서 허칠안의 발에 걷어차였다. 그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소소 낭자, 이 일은 조정의 기밀이라 외부에 발설할 수 없소.”

소소는 어여삐 웃었다.

“소녀가 호의를 무시했사옵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조금의 부자연스러움도 없이 아주 대범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에 그녀가 점점 더 좋아졌다.

소소는 생각했다.

‘이 세 사람의 의지가 아주 확고해. 이 몸이 힘을 더 내야만 되겠어. 오늘 쓸 만한 정보를 가져가지 못하면 주인님이 화를 낼 거야. 주인님이 화가 나면 나한테 남자를 주지 않겠지……. 이 허칠안이라는 자의 의지가 가장 확고해. 수시로 내 몸을 훔쳐보기는 하지만 그의 머리가 가장 또렷해……. 음, 주인님이 내게 그를 꼬시라고 분부했으니 다른 두 사람은 무시해도 되겠어…….’

‘이 여자 귀신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군. 안 되겠다. 정풍과 광효가 곧 버티지 못할 테니 내가 일찌감치 손을 써야 해.’

허칠안과 소소는 각자 꿍꿍이속이 있었기에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이내 허칠안이 선수 치며 말했다.

“나는 뒷간에 다녀올 테니 정풍과 광효 자네 둘이 소소 낭자와 함께하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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