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이호의 질문
한쪽에서는 도지휘사 양천남이 마차에 올라 막 발을 내렸다. 그러자 누군가 바로 다시 발을 젖히더니, 위풍당당하고 기개 넘치게 올라왔다. 이묘진이었다.
“많은 눈이 부릅뜨고 주시하는데 감히 내 마차에 들어오다니. 명예에 해가 갈까 두렵지 않은가?”
양천남이 미간을 찌푸렸다.
“강호의 아들딸은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
이묘진이 손을 저었다.
“나는 그대의 상황을 물으러 온 거야. 그 순무는 그래도 예의가 바른 것 같더군. 아마도 건성으로 해치울 듯해. 은자를 좀 먹여서 손을 쓰던가?”
그녀는 대봉 관리 사회의 규칙을 알고 있었다. 은자만 있으면 친구였다. 반면 은자가 없으면 친형제라도 정에 얽매이지 않았다.
“어사에게 은자를 선물하면 빨리 죽지 않아 싫으려나?”
양천남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들을 모조리 운주에서 베어 죽이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겠어.”
이묘진이 눈을 부라렸다.
“그대 생각에 순무 대인은 어떤 것 같아?”
“평범하네.”
양천남이 평가했다.
“그럼 됐어. 그가 무능할수록 그쪽은 안전하니까.”
이묘진이 웃으며 말했다.
“평범한 게 그저 그렇다는 건 아니야.”
양천남이 고개를 저었다.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자가 가장 위험한 법이지. 아마도 이미 내게 먹일 치명타를 은밀히 축적하고 있을 것이야.”
잠시 머뭇거리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그 동라를 주의할 필요가 있네.”
이묘진은 진작에 허칠안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깨달아 수려한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대가 뭘 봤는데?”
바퀴가 덜커덩거렸다. 양천남은 흔들리는 발을 젖히고 바깥의 야경을 보더니 사색에 잠겼다.
“그의 패도는 다른 야경꾼과 달랐네. 같은 칼이지만 다른 무기가 아니지. 내가 알기로 야경꾼의 패도는 사천감에서 온 것으로 반(半) 법기의 범주에 속하네. 그자가 찬 칼이 법기라는 설명만 가능하지.”
이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법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신분이 보통이 아니거나 사천감과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는 거야. 기개도 남달랐어. 내가 그를 관찰해 봤는데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점잖고 고지식해 보이나 사실 장 순무한테도 그렇고 송장보한테도 그렇고 존경하는 마음이 크게 없더군. 이는 무사의 오만함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고작 연기경에 이런 오만함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워.”
4품 금라 강율중에 관해서라면 딱히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꺼리는 게 당연했다.
* * *
허칠안은 역참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도를 닦아야 헀다. 그는 주민이 남긴 암호 두 가지를 선지에 적었다.
‘결국은 나 혼자서 모든 걸 외웠군……. 내가 살던 그 시대였다면 연신경의 이 승직 방식은 분명히 큰 인기를 끌었을 거야……. 집돌이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머리카락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여자친구의 마음에 트라우마가 생길 때까지 게임했을 거야……. 아, 그들은 여자친구가 없으니 그건 괜찮겠군.
강 형이 말한 적 있지. 무사는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을 끌어올려 나중에는 신마(神魔)처럼 두려운 존재가 되는 체계라고 했다……. 연정경과 연기경은 내가 전생에서 본 무협 영화에 나오는 저급 무사와 더 닮았다……. 하지만 연신경 이후에는 등급이 높아진다……. 연기경은 그래도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는데 연신경이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의심스럽다……. 이건 비인간적이야.’
허칠안의 추론은 일리가 있었다. 연정경은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여 무사가 고강도 전투에 임할 수 있게 한다. 연신경은 원신을 단련하고, 승직하는 방식은 신체와 정신을 소모하여 밤을 새운다.
일단 순조롭게 연신경으로 승직하면 육신과 원신은 오랜 시간 동안 고강도로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계속해서 잠을 자지 않을 수 있다.
무사 체계를 포함한 각 수련 체계 모두 순환하며 발전한다. 모든 품계는 다음 품계를 위해 기초를 닦는 일이다.
예를 들어 술사 체계에서 의자(醫者)라는 품계는 망기술을 위해 포석을 까는 셈이었다. 그리고 망기술은 풍수사를 위해 기초를 닦는 것이며 풍수사가 강해진 버전이 진법사이다.
매우 논리적이기에 이상적이거나 환상적이지 않았다. 오직 착실하게 승직하는 느낌만을 주었다.
그의 사고의 흐름이 사건으로 다시 돌아왔다.
“암호는 야경꾼 관아의 것이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만든 것일 테지…….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누가 알아맞힌다는 말이야! 난이도가 흡사 내가 남긴 암호 같다.
<고엽추귤리사박, 낙화만천해익수(*枯葉雛橘梨紗薄, 落花漫天海翼隨)> 시선을 구주로 멀리 두어도 맞힐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수 없을 테지. 오늘은 프로파일링이 너무 잦아 뇌세포 소모가 극심한데 잘 수는 없으니 무료하군……. 부향이 있다면 심신에 유익한 운동을 즐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녀의 새하얀 피부 위에서 급사할지도 몰라…….”
이때 그의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려 하마터면 급사할 뻔했다.
그는 얼른 심호흡한 후 베개 밑에서 지서 파편을 더듬어 꺼냈다. 어떤 멍청한 놈이 한밤중에 잠도 안 자고 채팅방을 활성화하는지 분노에 가득 차 욕을 내뱉을 준비를 한 채 눈여겨 보았다.
[이: 삼호,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조건을 내걸고 교환해도 좋네.]
‘이호, 그 여장부? 마침 떠볼 기회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허칠안은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문자를 입력했다.
[삼: 허, 우선 자네의 질문을 좀 들어보고 싶네.]
[이: 순무 대오가 오늘 운주에 도착했네. 나는 강율중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어. 그의 ‘의(義)’, 그의 성격, 그의 약점 등을 말이야.]
‘뭐야…….’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이호가 강 형을 가상의 적으로 삼았나? 아니다. 진정한 적이기에 정보를 수집하고 전투를 준비하는 것인가? 우선 강 형과 내 친분이 두텁다는 걸 말하지 않아야겠다. 설령 친분이 없다 해도 내가 그의 약점을 너한테 말할 수는 없지. 어쨌거나 나 역시 순무 대오에 있으니까.’
[삼: 미안하네. 나는 자네에게 순무 대오의 어떤 정보도 털어놓을 수 없네.]
허칠안은 회신한 후에 생각이 분산되면서 더 많은 것들이 연상되었다.
‘이호가 강율중의 정보를 수집한다는 건 명백히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충돌을 준비한다는 뜻이지. 이건 이호 스스로의 결정인가 아니면 양천남의 지지를 받은 일인가? 만약 후자라면 죄악이 폭로됐을 때 양천남은 과격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채팅방은 얼어붙었다.
이렇게 딱딱하며 어색한 분위기 속에, 과거 지식인이었으나 현재는 검객인 4호가 돌연히 나타났다.
[사: 이호, 양천남이 산적과 결탁해 군수물자를 수송한 혐의는 반역에 가깝네. 삼호는 지식인인데 어찌 자네를 도와 악행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우리 지식인은 사리의 옳고 그름, 사소한 일과 대의(大義)를 잘 안다네.]
‘맞아. 우리 지식인은 이렇게 원대한 포부를 지녔지…….’
허칠안은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했다.
[이: 미안하네. 내가 무례했어. 내가 결코 순무 대오에 불리한 생각을 가지려던 건 아니네.]
[삼: 하지만 자네가 이 말을 물었을 때 이미 전쟁에 대비할 준비를 마쳤네. 음, 이호. 자네가 조정에 대한 편견이 아주 깊은 건 알고 있지만, 자네는 너무 감정에 치우쳐 일을 처리하네. 양천남이 억울한지 아닌지는 조사를 해야 알겠지.]
[오: 맞네. 내 생각에도 이호가 너무 극단적이네. 방금 자네들이 나눈 이야기를 들어보니 순무 대오가 운주에 막 도착했더군. 그쪽은 아직 조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자네는 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오호, 네가 이 말을 할 자격이 가장 없잖아!’
모든 이들이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이호는 다시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좀 화가 난 것 같았다. 천지회 구성원들이 모두 그녀를 나무라고 지지하지 않았다. 삼호는 그녀에게 줄곧 호감을 품어 왔음에도 지금은 아주 분명하게 태도를 드러냈다.
지금 허칠안은 그 협객이 이호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는 상대방의 늠름하고 멋진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문자를 입력했다.
[삼: 강율중은 4품 금라로 권법에 능하네. 성격은 별다른 큰 특징이 없기에 눈에 확 띄는 단점도 존재하지 않네.]
이 정보들은 모두 표면적인 것으로 기밀과 관련되지 않았다.
성격에는 확실히 별다른 큰 단점이 없다. 허칠안이 아는 금라들은 기질이 유순한 남궁천유, 안면 신경 마비 양연, 차갑고 거만하며 예리한 장개태…… 등이었다. 그리고 이들과 비교했을 때 강율중의 성격은 더 평범하고 뚜렷한 특징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그에게 비교적 큰 허점이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 고맙네. 그리고 안심하시게. 나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을 걸세. 더군다나 조정의 순무를 아무 이유 없이 해치지도 않을 것이야. 음…… 또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허칠안이라는 자를 알아보고 싶네. 삼호 자네가 일찍이 이자를 언급한 적이 있었지.]
‘나까지 알아보려고? 날 어떻게 해 보려고?’
허칠안은 순간 경계하면서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거절하려던 참에 묵묵히 염탐하던 일호가 뜻밖에 나타났다.
[일: 내가 자네에게 그자에 관한 모든 정보를 줄 수 있네. 하지만 등가교환을 해야 해.]
‘난데없이 나타나서 등에 비수를 꽂다니……. 아니다. 네가 나의 정보를 파는 데 내 허락은 받았니? 내가 동의했니? 이렇게 공명정대하게 팔아넘기겠다니…….’
허칠안은 손가락으로 거울 표면을 건드렸다가 다시 거두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막지? 일호를 막으면 그(그녀)가 복종할까? 일호는 염탐하는 걸 좋아하고 신비로운 편이다. 설령 대략적인 범위를 정했다고 해도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을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들 중에 그는 모든 사람을 대응할 수 있다.
게다가 무슨 이유로 막는단 말인가? 허칠안의 일이 나 삼호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삼호인 내가 무슨 근거로 막는단 말인가? 신분을 스스로 까발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전에 그렇게 동라 허칠안을 격찬했는데 지금 적나라하게 폭로하기란…… 너무 치욕스러운 나머지 그 자리에서 폭발해 버릴 것이다.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허칠안은 고민 끝에 조용히 변화를 관찰하기로 했다. 우선 일호가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이호의 태도를 살필 생각이었다.
만약 이호가 간단한 정보만을 원하거나, 일호가 표면적인 정보만 드러낸다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 자네는 무엇을 원하는가?]
[일: 빚을 져도 되네.]
[이: 좋네. 말해 보게. 자네가 제공하는 정보에 따라 가치를 판단할 것이네.]
[일: 허칠안 이자는 본래 경성의 부곽현 장락현아의 쾌수였네. 지위가 낮고 언행이 가볍고 별다른 특별한 점이 없었지. 3개월 전에 그의 숙부가 세은을 호송하던 중에 부주의하여 세은을 잃어버렸고, 이에 참수를 판결받았네. 폐하께서는 분노가 가시지 않아 허가 삼족을 연좌하여 변방에 유배 보내려 하셨지. 허나 아무도 생각지 못하게 세은 사건이 발생한 3일째 사건이 해결됐고, 허칠안은 무죄 석방되었네.]
오호는 남강의 난폭한 계집애라, 여기까지 듣자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
[오: 운이 정말 좋은데?]
그녀가 막 말을 마치자 일호가 반박했다.
[일: 아니, 세은 사건은 그가 푼 것이네. 감옥에 갇힌 채 권종에만 의거하여 부아, 사천감 및 야경꾼들의 골칫덩어리인 세은 사건을 해결했지.]
‘인재군…….’
천지회 구성원들의 마음속에는 이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랬군. 어쩐지 그래서 그가 장 순무 곁에 앉을 수 있었고, 한마디 말로 씨 없는 비파의 비법을 까발릴 수 있었던 거구나……. 이자가 설령 여색을 좋아할지라도 사건 해결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겠네……. 그가 양천남 및 운주에서 야경꾼 첩자가 죽은 사건을 파헤치려고 왔겠구나…….’
이호는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