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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02화 (202/712)

202화. 비파나무

이묘진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야경꾼 무리를 훑어봤다. 그녀의 시선이 강율중에서 멈췄다. 그녀는 그가 4품 무사 금라임을 알았다.

하지만 무엇을 잘하고 성격이 어떠한지는 전혀 몰랐다.

‘나이가 적지 않지만 혈기는 거의 전봉에 이른 듯해……. 무슨 무기를 잘 다루는지 어떤 의(義)를 함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음, 연회가 끝나면 삼호에게 물어봐야겠다.’

이묘진은 고개를 숙이고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바로 허칠안을 주시하였다.

‘그는 기운이 함축되어 있고, 기기의 깊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피철골경 무사의 신체는 이따금 빛이 번쩍이곤 하는데 이자는 그런 게 없으니 기껏해야 연신경……. 두 눈의 피로를 감추지 못하고 눈두덩이가 부은 걸 보니 술과 여색에 기가 빨린 색마의 모습이군.

쯧. 이자는 야경꾼 관아 어느 거물의 친척이거나 장 순무의 친척일 것이다. 양천남의 말로는 위연이 도찰원을 관리한다고 하니 장 순무가 자신의 친척을 야경꾼에 배치했다는 게 합당하겠군.’

저녁 연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끝을 향해 달려갔다. 하인들은 빛깔 좋은 비파를 한 쟁반씩 들고 왔다. 열매가 옹골졌다.

‘이 계절에 비파가 있다고?’

허칠안은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비파 한 알을 비틀어 껍질을 벗기고 맛을 보았다. 시고 달아서 맛이 꽤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씨가 없었다.

“순무 대인 드셔 보십시오. 저희 운주의 비파는 일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늦봄 초여름에 익기 때문에 경성에서는 이렇게 깨끗한 비파를 먹을 수 없지요. 비파가 익으면 쭉 빙고(氷庫)에 보관합니다. 열흘마다 한 번씩 변질된 열매를 솎아내므로 지금은 남은 게 많지 않습니다.”

송장보(宋長輔), 송 포정사는 친절하게 몇 알을 쥐어 장 순무 앞에 두었다.

장 순무는 한 알 먹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크게 떴다.

“씨가 없네요?”

송 포정사는 말 없이 웃었고, 다른 관원들도 웃기 시작했다.

장 순무는 아주 이상히 여겼다. 그는 씨가 없는 비파를 처음 먹어 보았는데 그 식감이 그리 너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믿기 어려운 듯 말했다.

“세상에 씨가 없는 비파가 있다니, 묘합니다, 묘해.”

‘이게 뭐라고. 씨 없는 수박을 먹으면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겠는데?’

허칠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씨 없는 비파는 운주의 특수 품종입니까? 본관은 왜 전에 들어본 적이 없지요?”

장 순무가 말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비파나무가 백제묘 향불의 기운을 받아 씨 없는 비파가 열린 것이지요.”

송 포정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요. 이는 정말 저희 운주의 길조입니다.”

“운주는 본래 천혜의 땅이고 백제의 보살핌을 받아 날씨가 매우 좋지요.”

모든 관원이 즉시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장 순무에게 ‘운주는 상서로운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단결했다.

장 순무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는 맛을 음미해 봤지만 씨 없는 비파의 심오함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맞히지 못했다. 그는 신중을 기하며 반박하지 않았다.

송 포정사는 비파 한 알을 또 까서 건네주었고, 웃으며 물었다.

“순무 대인, 그렇지 않습니까?”

장 순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송 대인의 말씀이…….”

“송 대인의 말씀이 틀렸습니다.”

별안간 허칠안이 입을 열어 말을 끊었다.

중심 탁자 및 다른 탁자의 관원들이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묘진은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먹으면서 속으로 그를 아주 우습게 여겼다. 그녀는 원인을 알았지만, 현재는 운주 관리 사회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송 포정사를 달리 헐뜯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언행이 불손한 허칠안을 주시하며 그가 뭐라고 말할지 들으려 했다.

송 포정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신이 소홀히 한 동라를 쳐다봤다. 그는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대인께서는 어떤 가르침이 있으신지요?”

허칠안이 술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입안의 음식을 씹은 뒤 삼켰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비파 한 알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사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비파가 꽃 피는 시기에 꽃술 한가운데를 뽑아 버리기만 하면 열매 맺는 비파에 씨가 없어지지요. 포정사 대인, 소직의 말이 맞습니까?”

좌중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주위의 운주 관원들은 굳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송 포정사 역시 낯빛이 갑자기 굳어졌다.

이 시대에 씨 없는 비파 열매를 맺게 하는 방법은 틀림없이 비술이라고 불릴 만했다.

하지만 허칠안은 중학교 생물학 지식을 제대로 공부했으니 그에게 이는 기본이었다. 그는 심지어 가엾은 식물이 종족 번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웃집 왕인 꿀벌을 불러와 씨를 받아 달라고 도움을 청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분위기가 단숨에 경직됐다. 허칠안의 이 말은 확실히 모든 관원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믿을 수 없게 했다. 그들은 애초에 비파의 씨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았을 때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기막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한낱 동라가 그 원리를 콕 집어 얘기할 거라고 짐작했겠는가!

이묘진은 눈을 크게 뜨고 동라를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동라는 술과 여색에 기가 빨린 색마기는 해도,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자일지도 몰랐다.

‘……장 순무가 중심 탁자에 배치한 걸 보면 꽤 능력이 있나 보군.’

이묘진은 무시했던 마음을 거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무시한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른 은라, 동라들은 다른 탁자에 배치됐는데 왜 이 자식만 장 순무 옆에 앉을 수 있지? 이는 단순하게 꽤 능력이 있다는 걸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른 은라와 동라는 인재가 아니란 말인가?’

“허, 제 발등 제가 찍는군.”

이묘진은 불난 데 부채질하며 냉소를 지었는데, 실은 송 포정사가 곤경에 처해 기뻤다.

송 포정사는 관리 사회에서 최고의 경지에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부끄러움이 여전히 끊임없이 꿈틀댔다. 그는 앞서 너스레를 떨며 백제를 비호하고, 향불의 기운을 받았다 말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사람 앞에서. 더군다나 순무 앞에서 그 속내가 낱낱이 들통 났다.

“칠안, 이런 중요치 않은 수는 송 포정사께서 자연스레 본관에게 설명할 텐데 자네가 뭐하러 나서는가?”

장 순무가 꾸짖으며 말했다.

그는 겉으로 허칠안을 꾸짖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악랄하게 송 포정사를 비웃었다.

“……이 대인의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순무 대인이 말을 가로채자 포정사 대인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안색의 변화 없이 물었다.

“소직 성은 허, 이름은 칠안, 자는 칠안입니다.”

허칠안이 대답했다.

“이자의 재주가 아주 뛰어납니다.”

장 순무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허칠안을 치켜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관원이 잠깐 거두었던 시선을 다시 그에게 옮겼다. 그런 뒤 그들은 이 동라의 신분과 순무 대오 안에서의 지위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자의 이름이 허칠안이군. 어? 이 이름 아주 귀에 익는데.’

이묘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허칠안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삼호가 일찍이 이자를 언급하며 칭찬이 자자했던 기억이 났다.

‘그였군. 삼호가 그렇게 중시했는데 역시 비범하네.’

송 포정사는 강제로 어색함을 풀었다. 그는 말끝마다 운주의 풍토와 인심을 소개하면서 비파의 일은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는 그가 여전히 매우 신경 쓰고 있음을 의미했다.

장 순무가 알딸딸하게 마셨을 때쯤 저녁 연회가 끝이 났다. 의지할 데 없이 취하지도 않았고 교방사에 가서 놀라고 무심하게 제안하지도 않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송정풍은 아주 기뻐했을 터였다.

이런 격조의 저녁 연회에서는 오히려 너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았다. 마치 조당의 제공들이 거의 교방사에 가지 않는 것처럼.

사람이 일정한 위치에 다다르면 신분에게 떠밀려 이미지를 챙겨야 하게 마련이다. 설령 그가 거대한 탐욕가일지라도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이미지는 공명정대해야 한다.

허칠안만 해도, 그는 현재 마음껏 여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는 젊고 신분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언젠가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이 세지면 대가를 치러야 할 터였다.

* * *

장 순무와 모든 관원은 저택을 나선 뒤 밖에서 읍하고 헤어졌다. 그런 뒤 그들은 마차에 올라 훌쩍 떠났다.

그는 마차가 일정한 거리를 벗어나자 차창의 발을 젖혀 칭찬했다.

“칠안, 잘했네.”

허칠안은 그가 씨 없는 비파 일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고 대답했다.

“별일 아닙니다.”

장 순무는 쯧쯧 거렸다. 이내 그는 이야기를 나눌 때의 말투가 점점 편안해지더니 벼슬아치의 허세가 사라졌다.

“자네는 농업과 관련된 일에도 정통했는가?”

앞에 있던 강율중은 허칠안이 대답하기도 전에 웃으면서 참견했다.

“그는 심지어 연금술에도 정통했습니다. 사천감의 백의에게 뒤떨어지지 않아요.”

‘나 대신 허세를 부리면 나는 뭘로 부리니?’

허칠안이 정정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사천감 백의는 저를 ‘반만 스승’이라고 부릅니다.”

세 사람은 하하하 웃었다.

허칠안은 내친김에 물었다.

“대인께서는 오늘 왜 이렇게 상냥하십니까?”

장 순무는 고개를 돌려 이미 보이지 않는 저택을 바라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이 운주는 송 포정사가 주축이네. 그는 양천남과 맞지 않아.”

허칠안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좀 냉대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양천남은 누구에게나 차갑던데요.”

장 순무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는 운주 관리 사회의 대부분이 송 씨 사람이라는 의미지.”

“대인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삼사(司) 중, 도지휘사사의 권력이 가장 크지만 방금 본관을 영접한 건 송 포정사네. 물론 포정사가 이런 장소에 얼굴을 내비치는 게 당연하지만 말이야. 허나 자네 잘 생각해 보게. 그가 제일 먼저 본관에게 소개한 사람은 도지휘사가 아니라 제형안찰사였어. 이로써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 수 있지. 본관이 연회에서 관심을 두었던 부분은 양천남이 대부분 침묵을 지켰다는 점이네. 포정사야말로 주인 노인장 같았지. 허, 이는 관리 사회에서 중시하는 것이야. 월권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

장 순무는 웃으며 말했다.

“칠안, 좀 배우시게.”

“무사가 이런 걸 배워서 뭐합니까.”

허칠안은 남몰래 새겼다.

“그리고 나는 지금 참뜻을 깨달았네.”

장 순무가 말했다.

“왜 송 씨가 연회에 비파를 내왔는지 아는가?”

‘허세 부리는 거지 뭐…….’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무릇 호기심이 생기면 따져 묻기 마련이지. 그가 대답하지 않는 건 초장부터 내게 본때를 보여주려던 셈이네.”

장 순무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또 내게 한 사람을 제거하면 운주는 안녕하다는 암시네. 마치 그 비파처럼.”

누구를 제거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너희 벼슬아치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매일 서로 옥신각신할 줄만 알고 말이야…….’

허칠안은 머리가 아파와 미간을 문질렀다.

‘위 공이 한 말이 맞다. 나는 역시나 관리 사회에 적합하지 않아. 사람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반은 부향에게 주고 반은 수련하는 데 남겨 둬야겠어. 관리 사회에 섞여 살아갈 에너지는 더 이상 없다.’

장 순무는 골치 아파하는 허칠안의 모습을 보더니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의 마음 상태는 단숨에 균형이 잡혔다.

“순무 대인, 차라리 저희 수수께끼를 다시 맞혀 볼까요?”

허칠안은 웃는 듯 마는 듯 했다.

장 순무는 무심결에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존엄에 흠집이 나는 듯한 기분에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말하게.”

“아이를 낳은 여인입니다. 네 글자로 맞혀 주십시오.”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 지었다.

장 순무는 얼굴빛이 점점 굳더니 차츰 실의에 빠졌다. 그는 무능함에 점점 격분하다가…… 차창의 발을 내렸다.

“하하하!”

강율중과 허칠안이 일제히 크게 웃었다.

“흥!”

마차 안에서 순무 대인의 콧방귀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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