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01화 (201/712)

201화. 저녁 연회

황백가에는 단서가 없으니 이제 허칠안 쪽의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들도 발견하지 못했으면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제발 수확이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정말 미궁에 빠진 사건이 돼 버린다고…….”

장 순무가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리는 소리는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은라 몇몇과 강율중의 귀에 들어갔다.

“그들이 돌아왔습니다.”

입구 쪽에 있던 동라가 기뻐하며 말했다.

한 무리가 획일적인 동작으로 고개를 돌리고 문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허칠안이 두 동료를 데리고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떤가?”

강율중이 황급히 물었다.

장 순무는 피풍 소매 아래에 주먹을 쥐고, 기대감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눈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허칠안이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자 순식간에 십여 명이 양손을 뻗었다.

탁!

강율중이 손바닥으로 모든 발톱을 쳐내고 재빨리 뺏어왔다. 그가 종이를 펼치고 보더니 미간을 또 찌푸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쓴 것인가?”

‘좋아. 야경꾼 관아의 암호가 아니군.’

허칠안은 판단을 내렸다.

“내가 보겠다!”

장 순무는 빠르게 달려와 날쌔게 종이를 빼앗았다. 종이에는 두 개의 숫자 조합이 쓰여 있었다.

묵일백육습이(黙壹伯陸拾貳)

삼백사습칠사일이(參伯肆拾柒肆壹貳)

장 순무는 아주 오랫동안 정지 상태에 빠졌다. 머릿속에는 읽었던 경전이 한 권씩 스쳐 갔고, 뒤이어 책에 나오는 고사(故事)와 호응한다는 선택지는 배제했다.

‘이건 <시집간 문(文) 낭자>처럼 사람을 기만하는 문제다…….’

장 순무가 한참 고민에 빠져 있는데 아무 말 없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허칠안의 모습이 보였다.

“칠안, 자네 뭐하러 가는가?”

허칠안은 계단에서 고개를 돌리고 풀이 죽은 채로 대답했다.

“방으로 돌아가서 관상하려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언제든지 급사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요. 음, 저 12일 동안 잠을 자지 않았거든요.”

“!”

강율중의 눈썹이 사정없이 떨렸다. 그는 이미 허칠안이 연신경에 충격을 가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운하에서 허칠안이 유사한 문제를 물은 적이 있었다.

‘연신경에 어떻게 충격을 가합니까?’

강율중은 요 며칠 그의 다크서클이 나날이 깊어지는 걸 보면서 이 자식이 연신경에게 충격을 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 다만 그가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는 일은 몰랐다.

‘12일이라, 12일인데 아직 한계를 돌파하지 못했다니. 중간에 한 차례 싸우기도 했는데…….’

이는 허칠안 원신의 잠재력이 아주 크다는 의미였다. 그가 연신경에 들어선다면 원신은 질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강율중은 당초 연신경으로 승직할 때 16일을 버텼고, 다른 금라들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자식 꼴을 보아하니 12일이 한계가 아닌 게 확실해. 그가 한 번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강율중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 *

“잠들지 말아야 해.”

허칠안은 방으로 돌아온 뒤 신발을 벗고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연기를 토납하면서 거인도를 관상했다. 때로는 금색 사자의 포효도로 전환하기도 했다.

그가 점점 재미를 보기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입니까?”

그가 눈을 떴다.

“칠안, 상태는 좀 괜찮아졌는가?”

장 순무의 목소리가 문어귀에서 들려왔다. 허칠안의 긍정적인 답을 들은 후 그는 즉시 얘기했다.

“나를 따라 저녁 연회에 참석하게. 운주의 관리들이 다 모일 걸세.”

‘저녁 연회? 음, 순무 대인이 성에 들어온 지 이렇게 오래 지났다면 운주 관리 사회에서 이를 모를 수는 없겠지…….’

허칠안은 정신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어쨌든 잠을 잘 수도 없고 역참에 가만히 있기에도 재미가 없고 해서 말했다.

“좋습니다. 대인,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장화를 신은 다음 침상 머리맡에 둔 동라를 가슴에 매고, 흑금장도를 등허리에 건 후 방문을 열었다.

장 순무는 문밖에 서 있었다. 붉은색 관복을 입고 있는 그는 자세가 꼿꼿하고 기개가 뛰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대당에서 잠시 기다리니 강율중이 마당에서 걸어 들어 와 말했다.

“인원 점검을 마쳤으니 가시죠.”

호화스러운 마차가 역참 밖에 정차해 있었다. 수행하는 호위병은 호분위 30명과 야경꾼 7명이었다. 이번에 저녁 연회 장소는 강에 인접한 대원(大院)이었다.

포정사사에서 특별히 관원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푸는 용도의 저택을 안배했다. 사방에서 드나들 수 있을 만큼 호화로운 저택이었다.

오늘 밤은 달이 밝고 별은 드문드문하며 바람이 없었다. 비록 엄동설한이었지만 뒷마당 화원에서 연회를 베풀기에는 적합했다. 장 순무는 본 저녁 연회의 핵심 손님으로서 일부러 15분 늦게 도착했다.

이는 관위(官威)를 부리는 동시에 주인이 준비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행동이기도 했다.

* * *

곧 그가 저택 문 앞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이미 각양각색의 마차와 가마로 꽉 차 있었다. 어떤 건 화려하고 어떤 건 남루했는데 이는 관직이 다 다른 마님들이라는 걸 의미했다.

장 순무 일행은 시종의 안내에 따라 바깥 대청에 도착했다. 그러자 각색의 관포를 입은 운주 관원들이 보였다. 그 수가 아주 많았는데 족히 백여 명은 돼 보였다.

그중에는 허칠안이 오늘 만난 운주 지부도 있었다.

“순무 대인.”

해맑은 웃음에 붉은색 피풍을 입고 긴 수염을 기른 관원이 맞이했다.

“포정사 대인.”

장 순무는 웃으며 두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포정사라…… 성장(省長)에 해당되는군…….’

허칠안은 운주 포정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광대뼈가 다소 튀어나왔으며, 눈은 가늘고 길어서 웃을 때 실눈이 되어 교활한 시정아치 같은 느낌을 주었다.

‘설마 헤어진 지 여러 해 된 송정풍의 아버지인가? 맞다,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이 포정사의 성도 송(宋)이다…….’

허칠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송 포정사는 장 순무를 안내하며 하나하나 소개했다. 허칠안은 그를 뒤쫓아 따르면서 자리에 있는 관원들을 머릿속에 확실히 새겨 넣었다.

“이 분은 저희 운주의 도지휘사 양 대인입니다.”

송 포정사는 선비의 풍모를 지닌 장수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 앞에 이르렀다.

주변의 목소리가 단숨에 작아지면서 시선이 장 순무와 양천남에게로 쏠렸다.

조정의 두 고관은 서로 잠시 쳐다보더니 일제히 크게 웃었다.

“장 순무,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도지휘사 대인,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갑자기 가벼워지면서 관원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어째 일촉즉발의 위기가 있었다는 착각이 들지?’

그 순간 허칠안은 아무 말 없이 멈춰 있거나 서로 괴상야릇하게 몇 마디 비꼬며 속에 꿍꿍이를 숨기는 모습이야말로, 관리 사회에 몸담는 음흉한 인간의 이미지와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결론은 이렇게 화목하다니?’

“순무 대인, 저녁 연회는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저희와 함께 뒤뜰로 가시겠습니까?”

포정사가 바로 말했다.

한 주(州)에서 등급이 가장 높은 관아 셋은 각각 도지휘사사, 포정사사, 제형안찰사사였다.

그중 제형안찰사사는 도찰원에 예속되었다. 때문에 제형안찰사는 장 순무 앞에서 가장 충견처럼 굴었다.

* * *

그들이 뒤뜰에 오니 모든 관리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중심 쪽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두 개 생겼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랬다.

장 순무가 손짓하며 말했다.

“칠안, 본관 옆으로 오시게.”

중심 탁자는 총 10개의 자리가 있었는데 자리가 다 정해져 있었다. 어떤 사람이 앉아야 하며 어떤 사람이 앉을 수 있는지 관리 사회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별안간 ‘칠안’이라 불린 젊은이를 쳐다봤다. 그는 검은색 제복에 짧은 피풍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는 암문(暗紋)이 새겨진 동라를 묶었으며, 허리에는 제식패도와는 다른 특이하고 가느다란 대검을 맸다.

눈빛이 매서운 사람은 이 대검을 보기만 해도 이 동라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디에 있든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적지 않은 관원이 허칠안을 남몰래 눈여겨봤다.

두 번째 에피소드.

도지휘사 양천남이 자리에 앉아 있는 관원을 가로막고 자기 곁의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친구가 앉을 것이네.”

그 관원은 어리둥절하더니 무언가 생각났는지 문득 모든 걸 깨우쳤다는 듯이 머리를 탁 쳤다. 그러고는 아무런 불평 없이 다른 탁자로 갔다.

‘……친구라. 어느 대인이 아니라 친구라고?’

허칠안은 옷깃을 바로 하고 단정하게 앉았다.

“칠안, 오늘 말한 그 수수께끼는…….”

그때 장 순무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순무 대인!”

허칠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사실 간단합니다. 발상을 전환하기만 하면 됩니다.”

“무슨 말인가?”

“대인께서는 너무 착실하십니다.”

독찰어사(督察御史) 신분의 장 순무는 경성 관리 사회에서 직위는 높으나 실권을 쥐지 않은 관리에 속했다. 언관(言官)이야 당연히 고결하지 않은가. 먹고 마시고 오입질하고 도박에 정통한 관리 사회의 무뢰한이라면 진작에 깨달았을 것이다.

장 순무가 뭐라 말하려는 참이었다. 그가 문득 곁눈질로 힐끗 보니 갑옷을 입은 꽃다운 나이의 여장군이 들어왔다. 그녀는 키가 크고 늘씬하여 그 비율이 완벽하다고 할 만했으며, 포니테일을 높게 묶고 있었다.

‘예쁘면서도 멋진 전사군…….’

허칠안의 눈이 별안간 반짝였다.

‘그런데 운주에 이렇게 자태가 일품인 미인 전사가 있었나?’

이 치장은 간호사, 스튜어디스보다도 훨씬 매력적이었다. 애초에 급이 달랐다.

미인 전사는 곧장 중심 탁자로 가서 도지휘사 양천남 옆에 앉았다.

장 순무는 여전사를 쳐다보며 머릿속에 운주 관리 사회의 인물 명단을 쭉 되뇌었지만 들어맞는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분은…….”

그는 궁금해하며 말했다.

양천남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께서는 비연 여협객의 명성을 들어본 적이 없으실 겁니다. 그녀는 이묘진이라 합니다. 본관이 초빙한 기동 기병 장군이지요. 일 년 넘게 사방팔방의 비적을 토벌하여 여러 번 공을 세웠습니다. 만약 논공행상하자면 본관의 이 도지휘사 자리를 순순히 내어 줘야 할 겁니다.”

모든 관원이 그의 말을 듣자 이 장군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 순무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양천남이 초빙한 기동 기병 장군이라…… 다시 말하면 편제되지 않았고, 조정의 정규 군관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

허칠안은 이 협객을 주시했다.

‘이호 역시 운주에 있으며 비적 토벌과 원경제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잖아……? 자신이 조정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일찍이 그녀가 의리 있고 의협심이 강하다고 칭찬한 적이 있었는데 이 멋진 누님도 비연 여협객이라 불린다니……. 풉, 비연 여협객……. 운하에서 채팅할 때 이호가 양천남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그와 관계가 돈독함을 드러냈지. 설마 그녀가 2호는 아니겠지?’

허칠안은 아무런 내색 없이 차를 마셨다.

‘급하지 않다. 기회를 봐서 천천히 알아보자. 현재 지서 단체 채팅방의 오호와 이호가 여자임을 확신할 수 있다. 이호는 강하고 꽤 매력적이다. 오호는 어떤지 모르겠군. 남강의 난폭한 계집애.’

무희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어깨를 드러낸 채 두 열로 입장하여 악사의 반주에 맞춰 나풀나풀 춤을 췄다.

운주에는 자양거사가 없으니 모두가 허칠안을 밀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화제는 경성과 장 순무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퉤, 관리 사회의 접대는 정말로 무료하고 시간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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