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사건 경위 분석 (1)
허칠안이 부아에 들어가 신분을 밝히자, 청포를 입은 정7품 관원이 나와 맞이하며 자신을 부 경력(經曆)이라 칭했다.
“하인이 재물을 훔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주 경력의 모든 물품은 부아의 창고 안에 두었습니다.”
이 경력은 접수, 발송, 출납까지 창고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허칠안 일행을 창고로 데리고 갔다. 그는 손에 무거운 열쇠 꾸러미를 들고 아주 숙련되게 맞는 열쇠를 찾아내 창고의 철문을 열었다.
주민의 유품에는 서화, 옷가지, 골동품, 문방사우 등등이 있었다. 허칠안은 대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씩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고작 은자 30냥만 남은 걸 본 후 나지막이 말했다.
“경력 대인,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주 경력은 어엿한 정6품입니다. 관아에 몸담은 20여 년 동안 1년에 1냥씩만 모았어도 이렇게 적지는 않을 듯한데요.”
“대인, 그럼 20냥이지요.”
‘네가 감히 나랑 장난을 쳐?’
허칠안은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조정 명관의 유산을 횡령하면 재물의 귀중한 정도에 따라 가볍게는 곤장 50대, 무겁게는 곤장을 치고 파면하고 벌금을 부과합니다.”
주민은 야경꾼의 첩자로 순직했으니 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은 아직 비보를 모른다. 허칠안도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건 어쩔 방법이 없었지만, 상대방의 유물을 잘 보존하여 가능한 한 가족들에게 돌려주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야 했다.
‘뜻밖에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군…….’
부 경력은 처세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손을 펴 보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아마 그 주 경력이 미색이 현혹됐거나 다른 소일거리가 있어 물 흐르듯 돈을 썼을 겁니다. 어쨌든 가산은 이뿐입니다.”
그는 믿는 구석이 있는 태도로 얼굴에 익살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부아에서 유산을 먼저 취급하니, 거기서 얼마가 있다고 얘기하면 얼마 있다는 게 된다? 그래서 불복하겠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능력이라도 있나 보지?’
허칠안은 자신의 요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운주의 관원은 야경꾼을 모르나 봅니다?”
부 경력이 ‘허’하더니 말했다.
“야경꾼은 문무백관을 감찰하지 않습니까? 본관도 당연히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럼 들어보기만 했고 겪어 보진 않았다는 거지. 너는 야경꾼의 매질이 부족하다.’
허칠안은 발을 들어 부 경력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쿵…….
부 경력의 뚱뚱한 몸이 거꾸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고, 벽이 흔들리면서 먼지가 ‘스스슥’하고 떨어졌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새우처럼 움츠렸다. 그의 이목구비가 얼기설기 뒤엉켜 한 덩어리가 됐다. 몇 초 후에야 그는 신음 소리를 냈다.
허칠안은 칼을 뽑아 그의 목덜미에 걸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본관은 순무 대인을 따라 운주에 사건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형편에 맞추어 일을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요. 설령 당신을 죽인다 해도 순무께서 책임져 주실 겁니다. 믿든 말든 당신 자유입니다.”
부 경력은 거친 숨을 몇 번 내쉬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강조해서 말했다.
“이곳은 부아입니다.”
‘부아? 부아인데 어쩌라고? 형부 관아 입구에서도 사람을 죽인 몸이 보잘것없는 7품 경력 하나 죽이는 게 어렵겠니?’
허칠안이 손을 누르자 날카로운 흑금장도가 순식간에 이 경력 대인의 목덜미를 베어 상처를 냈다. 부 경력은 목덜미에서 통증이 전해지면서 자신의 따뜻한 선혈이 흘러나오는 걸 분명히 느꼈다.
‘정말 감히 나를 죽이려 하다니…….’
부 경력은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그는 당황한 눈으로 다른 야경꾼들을 쳐다보며 그들이 이 극악무도한 동료를 말려 주길 바라는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송정풍의 태도는 부 경력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그는 지극히 냉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수수방관했다. 사실 부 경력은 진작에 아주 오만방자한 야경꾼의 악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야경꾼이 감히 관아에서 조정의 명관을 살해한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송정풍은 상대의 눈빛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경력 대인, 조정 명관의 유산을 착복하셨지요. 그러니 설령 지금 대인을 죽이지 않는다 해도 후에 감옥에 가두고 지금처럼 괴롭혀 죽일 방법은 많습니다.”
은라가 덧붙였다.
“그것이야말로 저희 야경꾼이 자주 쓰는 수법이지요. 그때 가면 물어서 알아 내는 것이 유산처럼 간단하지는 않을 겁니다.”
“소직이…… 잘못했습니다.”
부 경력은 침을 삼키고,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운명을 단념했다.
허칠안은 그제서야 칼을 거두고 부 경력을 발로 차며 말했다.
“가시죠. 은자를 받은 사람들 모두 대당으로 불러들이십시오. 본관이 하나하나 죄를 물을 것입니다.”
부 경력은 선혈이 흐르는 목덜미를 막고, 비틀거리며 떠났다.
허칠안은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시선을 거두고 계속해서 유품을 검사했다.
“단서가 될 만한 유품을 슬그머니 삼켜서 사건을 밝히지 못할까 봐 그러는 건가요?”
당 은라가 어휘를 잘 선택하여 말했다.
“만약 주민이 정말 유품에 단서를 남겼다면 귀중한 물건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요.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손쉽게 끌어 낼 물건이요.”
허칠안은 말하면서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저는 단지 주민의 물건을 되찾아 사건이 끝난 후 그의 가족에게 전해주고 싶을 뿐입니다.”
“자네의 인품과 덕은 높이 살 만한 가치가 있군그래.”
당 은라는 감탄하며 말했고, 한마디 덧붙였다.
“비록 자네가 여색을 아주 좋아하긴 하지만 말이야.”
‘아니, 이건 가장 기본적인 도덕인데…… 죽은 사람의 재물조차 가만두지 않는 놈이 썩어 문드러진 쓰레기지.’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남자의 일을 가지고 여색을 밝힌다고 할 수 있는가? 요조숙녀는 명백히 군자의 좋은 배필이거늘.’
허칠안은 예전에 봤던 유머가 떠올랐다.
<비록 내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문신을 하고 클럽에서 죽치고 있지만, 나는 내가 좋은 사람임을 안다.>
‘비록 내가 색마에 색마에 또 색마지만, 나는 내가 좋은 남자임을 안다고…….’
잠시 후 관원이 흰 꿩이 수놓인 청포 차림을 한 채 창고로 들어왔다. 뒤에는 목덜미 상처를 간단히 싸맨 부 경력과 마찬가지로 백로가 수놓인 청포를 입은 관원이 따라 들어왔다.
관리 사회에서는 관복만 봐도 상대가 몇 품인지 확인하여 신분을 추측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흰 꿩이 수놓인 청포의 관원은 6품이었다. 그리고 부아에서는 오직 지부만이 정6품이었다.
옷은 알아보면서 사람은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은, 애초에 관리 사회에서 흘러나온 문구였다.
얼굴이 동글반반하고 신수가 훤한 중년의 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허칠안 일행 근처까지 오자 몹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본관이 부끄럽소. 본관이 부하를 엄히 다스리지 못해 이렇게 창피한 일을 벌이게 했소이다.”
그는 자기반성을 하며 팽팽하게 부푼 무거운 보따리를 꺼냈다.
“여기 주 경력의 유산인 150냥이오. 본관이 이미 대신 돌려받았소.”
이런 작은 일에는 망기술을 시전할 필요도 없었다. 주(州) 지부를 이 정도까지 뒤로 물러나게 하는 일은 사실 전적으로 순무의 몫이다. 허칠안은 바로 이 점을 예상했기에 믿는 구석이 있어 두렵지 않았다.
지부가 만약 굴복하지 않으면 그는 장 순무에게 찾아가 고발할 참이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그는 주(州) 지부에게 이 정도 지능은 있을 거라 믿었다.
허칠안은 손을 뻗어 받았다. 그런 뒤 손으로 몇 번 무게를 헤아리더니 죽기 살기로 따지지 않았다.
“지부 대인, 마차를 준비해 주십시오. 본관이 주 경력의 유물을 가지고 역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지부는 먼저 가슴에 수놓아진 은라를 보았다. 이 은라가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모습을 보자 속으로 계산이 섰다. 이 현장은 자신과 말을 나눈 동라가 좌지우지한다.
“준비하겠소.”
허칠안은 호분위 두 명을 남기고 부아의 아역과 협력하여 주민의 유품을 역참으로 운송했다. 그들은 말을 탄 채 성을 나섰고, 부아의 쾌반 포수 한 명도 동행했다.
그는 쾌수라고도 불렸다.
* * *
주민의 시체는 성 30리 밖에 있는 난장강(亂葬崗)에 묻혀 있었다. 이 시대의 난장강은 전생의 공동묘지와 흡사하여 무덤이 즐비했다.
난장강에 묻힌 사람들은 모두 빈곤한 집의 망자들이었다. 가정 형편이 좀 부유한 사람은 풍수쟁이에게 청해 묘지를 골랐다.
“대인 어르신들, 주 경력의 묘가 바로 여기입니다.”
쾌수는 버드나무 한 그루를 가리켰다. 버드나무 아래에는 아주 작은 봉분이 있었다.
호분위 몇몇이 갈고리에 걸린 삽을 떼어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봉분을 파내니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리고 이내 ‘쿵’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삽이 관에 부딪혔다.
호분위들이 관 표면의 흙을 걷어 냈다. 얇은 관을 비틀어 열자 맡기 힘든 악취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일제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무사는 후각이 예민하여 더욱이 이런 악취를 참아 내기 힘들었다.
허칠안은 도자기 병을 꺼내 안에 든 작은 환약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먹였다. 이는 사천감 술사가 준 것으로 방역하고 소독하는 환약이었다.
이어 그는 코를 막은 채 관 옆으로 걸어갔다.
흰옷을 입은 남성 시신 한 구가 가만히 누워 있었고, 검푸른 얼굴은 하늘을 향했다.
그의 피부는 검푸른 색이 되어 울퉁불퉁한 사후 반점으로 가득했다. 얼굴은 썩어 문드러져 구멍 몇 개가 나 있었으며, 구더기가 그 안에서 꿈틀거렸다.
몸은 약간 부어오른 상태였다. 사후에 피부 조직이 썩은 기체로 가득 차서 붓는 현상을 초래한 듯했다. 이때의 피부는 가볍게 찌르기만 해도 갈라지며, 비리고 퀴퀴한 핏물이 사방으로 튄다.
허칠안은 전에 이 정보를 익힌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일은 처음이었다.
‘……세상에, 멘붕이다.’
허칠안은 넘어오는 위액을 억지로 참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옷을 벗기게.”
호분위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그를 쳐다봤다.
“네…….”
30분 뒤, 허칠안은 시체를 다 살펴본 후에 우선은 외력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시체에서 치명상을 찾지 못했다.
주민의 무덤을 다시 잘 묻고, 부아의 하급 관리는 그들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시냇가에서 깨끗하게 씻은 후 백제성으로 돌아갔다.
‘사인은 얼추 확인됐다. 무신교 사람이 한 짓이다. 꿈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4품 주술사의 수법……. 그럼 그자가 우리를 죽이는 것도 식은 죽 먹기 아닌가? 현재 유일한 단서는 반쪽짜리 옥패인데 단순한 옥패일 뿐 더 이상의 정보가 없다면 밝혀낼 방법이 없다.’
* * *
그는 오후 2시 반에 역참에 돌아왔다. 장 순무는 동라, 은라들을 데리고 주민의 유품을 뒤적이며 단서를 찾았다.
“한 시진을 뒤졌구나. 뭐 좀 발견했는가?”
장 순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야경꾼들은 고개를 저었다.
“주민은 야경꾼의 첩자 아닌가? 자네 야경꾼들은 연락 암호도 없는가?”
장 순무는 매섭게 질문했다.
“전혀 맞지 않습니다.”
한 은라가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작에 살인범이 가져갔거나 훼손한 게 아닐까요? 저희에게 남긴 건 쓸모없는 폐물들뿐입니다.”
다른 은라가 추측하며 말했다.
“이미 보름이 지났으니 어떤 단서라도 다 사라지지 않았겠습니까? 어떻게 훼손하겠습니까? 아무도 훼손할 수 없습니다.”
한 동라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