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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96화 (196/712)

196화. 어리석은 임안도 쓸모가 있다니

허칠안은 냉정한 눈으로 방관하면서 양앵앵의 미세한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녀가 이번에 말할 때는 눈빛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은 구슬펐으며 감정이 넘쳤다.

그녀는 전혀 농간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또 양앵앵의 말에서 단서를 찾아냈다. 주민은 죽기 전까지도 그가 야경꾼 첩자 신분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설령 상대방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관포지교라고 해도 말이다. 이는 주민이 기준에 부합하는 첩자라는 걸 의미했다.

그가 만약 쉽사리 신분을 알렸다면 도리어 수상했을 터였다.

그가 청주에 가서 자양거사를 찾으라고 한 이유는 서로 인접한 주(州)여서가 아닌 듯했다. 허칠안이 판단하기에, 주민은 누구도 믿지 않았지만 운록서원의 대유만 믿었던 듯했다.

우선 일반 지식인에 비해 운록서원의 대유는 수련 체계 때문에 인품이 더 믿음직했다. 어쨌거나 썩은 인간은 유가 체계를 밟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록서원과 국자감 출신의 지식인들 사이엔 도학을 전하는 계통 간의 싸움이 있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원칙에 근거했을 때 자양거사를 찾아가는 건 옳은 선택이었다.

장 순무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대는 주 경력이 살해되었다고 의심하시오?”

양앵앵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이미 아주 명백하지 않습니까? 대인께서 제 부군을 위해 나서 주십시오.”

“이는…….”

장 순무는 잠시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좋소. 본관이 약속하리다. 주 경력이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남긴 물건을 꺼내보시오.”

양앵앵은 즉시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대인.”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그를 새삼 다시 보았다. 장 형의 이 꾀는 쓸 만했다. 역시 그는 관리 사회의 베테랑다웠다. 위연을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 아주 영악했다.

양앵앵은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그러고는 손을 품 안으로 넣어 옥패 반 조각을 더듬어 꺼내 두 손으로 받쳤다.

“이게 바로 주 대인께서 그날 밤 제게 주신 겁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옥패로 쏠렸다.

그건 반원 옥패로 투명한 녹색을 띠었다. 본래는 아마 원형 옥이었을 테지만 중간에 날카로운 도구에 잘려 둘로 갈라진 듯했다.

강율중이 옥패를 받아 장 순무에게 건넸고 장 순무는 손에 쥐고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보아하니 증표 같구먼?”

강율중이 나지막이 말한 뒤 허칠안을 쳐다보며 그의 의견을 구했다.

장 순무도 그를 돌아봤다.

‘나를 쳐다보면 뭐, 이 몸이 사건을 조사할 줄 아는 거지 점쟁이는 아니잖아……. 너희 둘이 나를 호구 취급하고 있다는 걸 조금도 숨기지 않고 말이야…….’

허칠안이 읊조렸다.

“우선 운주로 가시죠. 멋대로 추측해 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장 순무는 옥패를 잘 챙기고, 모든 장병에게 분부했다.

“계속 앞으로 간다. 운주로 갈 것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었다. 대오는 다행히 뺏기지 않은 행상과 화물을 함께 챙긴 뒤 계속해서 길을 나섰고, 관도를 따라 운주로 향했다.

* * *

모처럼 햇볕이 내리쬐고 온기가 넘치는 오전이었다. 회경은 검술 연마를 마친 뒤 궁녀를 불러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고 이르려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두 궁녀가 정자에 앉아 바둑을 두는 모습이 보였다.

회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궁녀가 바둑을 두어서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근본적으로 바둑을 둘 줄 몰랐다.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고 말없이 정자로 걸어가 두 궁녀가 바둑 두는 모습을 지켜봤다.

궁녀들은 완전히 자신을 잊은 채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몰입했다. 심지어 그녀들은 주인이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들이 두는 바둑은 아무런 절차가 없었다. 그녀들은 포석할 줄도 모르면서 탁탁탁 거의 생각을 거치지 않고 아주 빠르게 바둑돌을 내려놓았다.

회경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국수(國手)인 그녀는 이런 어린애 장난 같은 수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보더니 상황을 이해했다.

이 바둑은 간단했다. 누가 바둑돌 다섯 개를 먼저 배열하는지 겨루는 것으로 세로든 가로든 비스듬하든 전부 상관없었다. 먼저 오성을 일렬로 나열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었다.

회경은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이건 무슨 바둑이냐?”

두 궁녀가 깜짝 놀라 덜덜 떨더니 허둥지둥 일어나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목입니다.”

‘오목? 이게 뭐야?’

회경은 책을 많이 읽어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어리둥절했다.

다른 궁녀가 설명했다.

“임안공주마마께서 전파하신 것으로 지금 궁 안에 이미 다 퍼져서 모두가 놀고 있답니다.”

그녀가 말하는 ‘모두’는 궁 안의 환관과 궁녀들을 가리켰다.

“듣자하니 진 귀비마마조차도 재미있다고 하셨대요.”

또 다른 궁녀가 말했다.

‘임안? 그녀는 그저 멍청한 여자애일 뿐인데…….’

회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 공주는 목욕할 것이야. 숙수더러 점심 식사는 준비할 필요 없다고 하거라.”

원경제가 오늘 오전에 가연(家宴)을 벌일 것이니 황자와 황녀들은 건청궁(乾淸宮)으로 와서 식사하라는 초청을 보냈다.

* * *

회경공주는 목욕을 마치고 화원을 떠나 건청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웅장하고 화려한 아청(雅廳)에서 형제자매들을 만났다. 그녀가 없는 장소에서는 붉은색 치마와 화려하고 잡다한 장신구를 좋아하는 임안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황형, 황매들은 회경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만 한 뒤 계속해서 방금 얘기를 나누던 주제를 이어나갔다.

“임안이 새로운 유파를 형성했네. 오목의 규칙은 통속적이고 알기 쉬워 더 재미있더라고. 우리 궁 안의 하급 관리들조차도 손쉽게 시작해서 아주 재미있게 놀았다네.”

“우리 임안의 이름도 세상에 널리 알려지겠어.”

동글반반한 얼굴에 아름다운 도화안을 지닌 임안은 형제자매들이 치켜세우는 말을 매우 즐기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달콤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기어이 점잔을 빼며 겸손하게 몇 마디 내뱉었다.

그녀는 마치 자랑하고 싶어 죽겠는데 꾹 참는 거만한 암탉 같았다.

그녀는 회경이 들어오는 걸 보자 하얀 턱을 살짝 치켜들고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빨리 나를 질투해, 빨리 나를 질투하라고…….’

임안은 속으로 구시렁대며 곁눈질로 회경을 훑어봤다.

하지만 도도한 회경은 그저 앉아서 차를 몇 모금 마실 뿐, 멍청한 여동생을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

‘흥…… 회경은 역시 나를 질투하고 있어.’

회경공주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황녀였다. 그녀가 오만한 것도 있지만, 영리한 그녀의 생각을 황자와 황녀들이 가늠할 길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개 공주들의 이야기 주제는 예쁜 옷과 연지 물분인데 그녀가 관심 있는 건 사서오경이었다.

그렇다고 황자들과 수준이 맞는 것도 아니었다.

황자들이 시정(時政)과 대국(大局)을 논할 때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떻게 수재를 해결하고 어떻게 하급 관리를 다스리는가?>

황자들은 아주 곤란해했다.

‘이걸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논하는 주제는 대국관(大局觀)이고 거시적인 문제인데 이건 언쟁하자는 뜻 아닌가?’

오시가 다가오자 원경제 궁 안의 환관이 와서 황자와 황녀 몇몇을 모시고 갔다.

임안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태자 오라버니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가운데 문득 뒤에서 회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안.”

임안은 ‘하’하고 웃더니 자신의 표정을 전혀 감추지 못하고 오연하게 말했다.

“왜요!”

회경이 다른 황자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네게 오목을 가르쳐줬니?”

“제가 혼자 만든 건데요.”

임안은 사실 갈등했다. 이건 허칠안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것이니 양심을 속이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면 안 됐다. 하지만 그녀는 형제자매들의 말이 너무 듣기 좋아서 멈추려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허칠안에 내게 가르쳐 주었다 말하지 뭐…….’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 이따가 아바마마께서 물어보셔도 이렇게 말하는 편이 좋을 거야.”

회경이 밖을 향해 걸어가면서 차갑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아바마마께서는 그 자식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말을 하면서 머리를 굴릴 줄 알아야 할 거야.”

말을 마치고 회경은 또 한 마디 덧붙였다.

“만약 머리가 있다면 말이야.”

임안은 ‘왜’라는 글자를 억지로 삼켰다. 그녀는 마치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세운 어린 사자처럼 회경을 쫓으며 화를 냈다.

“언니야말로 머리 나쁘잖아, 언니야말로 나쁘다고! 내가 언니보다 예쁘고 똑똑하니까 봐 봐, 허칠안이 기꺼이 나에게 충성을 다하잖아. 언니에게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아 한다고!”

회경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임안을 매섭게 흘겨봤다.

임안은 씩씩하고 힘찬 고양이처럼 ‘쓱’하고 뒤로 뛰더니 자신이 또 너무 졸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구태여 도화안을 부릅떴다.

회경공주가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태자 오라버니, 회경이 저를 때리려고 해요.”

임안이 놀라서 외치며 도망갔다.

* * *

아니나 다를까, 원경제는 연회에서 이 일을 물었다.

‘회경은 아바마마가 물을지 어떻게 알았지…….’

임안은 속으로 깜짝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미워하는 회경을 쳐다봤다. 그녀의 청아하고 수려한 얼굴은 아무런 표정을 띠지 않았다. 그녀는 음식 먹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임안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히죽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임안이 아바마마의 딸이고, 아바마마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분이잖아요.”

원경제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아바마마는 역시나 궁중의 상황을 늘 주시하고 계셔. 마치 그가 말없이 조당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회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밥을 먹었다.

그녀는 궁 안에 자신의 측근을 키우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여태껏 황궁의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에 전해지는 오목조차도 몰랐다.

사실 그녀는 이를 알고 싶지 않았다.

회경공주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안, 이 여동생이 비록 매우 멍청하지만, 버려진 장작도 제 역할이 있듯 전적으로 상대가 그녀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달려 있었다.

적어도 아바마마의 환심을 사는 데 있어 황궁에서 임안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여기에는 총애를 받지 못하거나 일찍이 총애를 받았던 비(妃)들도 포함됐다.

* * *

순무 대오는 두 주(州)와 세 현(縣)을 지나 드디어 운주의 주성(主城)인 백제성에 도착했다.

백제성이란 이름의 유래는 역사적 관련이 있는데 전조(前朝) 때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 년 전, 운주는 큰 가뭄으로 온 땅이 황폐해졌다. 당시 백성들은 곡식 한 톨도 수확하지 못해 살 길이 없어졌다.

그해 기이한 짐승이 바다를 건너왔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사슴 같았으며 온몸은 새하얀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머리에는 뿔이 두 개 났으며, 말발굽에 뱀 꼬리가 있었다.

그것이 지나가는 곳마다 먹구름이 짙게 깔리며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이 짐승이 운주에서 달포가량 전전하니 도처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고, 메말랐던 강과 호수가 되살아나 가뭄 피해를 해결했더란다.

조정은 그것을 상서로운 짐승이라 여겨 백제에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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