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95화 (195/712)

195화. 미망인

“잠시만요!”

허칠안이 현장을 살펴보다 돌아와 호분위에게 멈추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장 순무와 강율중은 질문하는 눈빛을 던졌다. 그러자 허칠안은 두 사람 곁으로 걸어가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이 좀 잘못 되었습니다.”

“응?”

강율중이 사방을 둘러봤고, 잠시 정신을 집중하더니 말했다.

“주위에 매복은 없네.”

이는 단지 단순히 산적이 길을 가로막고 약탈한 사건이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운주에서 매일 벌어졌다.

“매복이 아닙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현장을 조사해 봤는데 죽은 자의 대부분이 호송원이었습니다. 이 행상과 평범한 백성들은 도리어 무탈하고, 화물 역시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떼강도가 방수포를 찢지도 않은 채 점검했어요. 두 대인께서 보시기엔 이상하지 않습니까? 토구가 길을 막아섰는데 값어치 있는 화물들은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치고 상관하지 않다니요.”

장 순무가 읊조리며 말했다.

“어쩌면 정리할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허칠안이 물었다.

“그럼 사람을 묶을 시간은 어디 있었나요? 만약 제가 떼강도라면 저는 틀림없이 재물을 탐했을 것입니다. 이 여러 대의 화물차야말로 제 목표인 것이죠. 저는 저 평범한 백성들도 같이 죽였을 겁니다. 뭐하러 필요 이상의 행동을 하여 그들을 묶어둔단 말입니까. 아니면…….”

강율중과 장 순무가 서로 쳐다봤고, 강율중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들의 목표가 화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여전히 겁에 질린 사람들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물어보면 알겠죠.”

그는 손짓을 하여 한 중년의 행상을 불러와 물었다.

“자네는 어디 사람인가?”

“소인은 백제성 관내의 견직물 상인으로 비단 이천 필을 가지고 청주에 장사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여정이 멀어 산적을 마주칠까 두려워 조 나리의 상대를 따라 함께 청주에 가는데…… 아, 조룡입니다. 이 자는 아주 능력이 좋고, 관리 사회와 백성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고루 갖추어 여태까지는 그의 상대가 가장 안전했습니다. 그와 여러 차례 함께 일했었는데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이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나 봅니다. 이 조룡은 그래도 신용을 지키는 인물이었는데 안타깝습니다.”

허칠안은 잠시 시체투성이가 된 상대를 바라봤다. 그 조 나리도 그 안에 있었다.

한 명씩 차례로 물어본 후, 그들이 모두 상인이고 한 패거리임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매력적인 부인만 남았다.

그녀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허칠안이 살던 그 시대에는 젊고 성숙한 여자라 할 수 있었다.

“그대는?”

허칠안이 그녀를 주시하며 물었다.

“연약한 여인이 홀몸으로 왜 청주에 가려고 했소?”

양앵앵은 좀 주저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서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몇 년 전, 제 남편이 청주에 생계를 도모하러 갔고, 얼마 전에 청주에서 장사가 아주 잘 되고 있다는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본래는 직접 돌아와 저를 데리고 청주에 가서 정착할 작정이었습니다만, 장사가 고되어 시간을 낼 수가 없기에 저에게 믿을 만한 상대를 따라 청주에 같이 오라고 했습니다.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 조 나리의 상대가 안전하면서도 믿음직해서 가장 좋다고 들었지요.”

그녀의 말은 아주 일리가 있어 언뜻 보기에는 허점이 하나도 없었다.

‘표정이 아주 침착하군……. 평범한 민가의 여인으로서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을 보았으면 안색이 창백해져서 사람을 보자마자 훌쩍훌쩍 흐느껴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말을 할 때 마치 대사를 외우는 듯 시선이 줄곧 땅을 향해 있는데 이는 자신이 없다는 표현이야…….’

허칠안은 말했다.

“본관이 그대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겠소.”

양앵앵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떨구고 연약한 어조로 말했다.

“대인께서는 물으시지요.”

“그대 남편의 이름은 무엇이오?”

양앵앵은 생각에 잠겼다.

“그대의 집은 어디에 있소?”

“…….”

“그대 남편의 생김새는 어떤 특징이 있소?”

“…….”

“그대 남편의 키가 몇 자요?”

“…….”

“그대 남편이 서신에 뭐라고 썼는지 내게 몇 마디 복창해 주시오. 그대의 남편은 무슨 장사를 하오?”

양앵앵은 그곳에 멍하니 서서 망연하고 무기력하게 한참을 침묵했다. 그런 뒤에야 그녀는 겨우 회복한 뒤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제 남편은…….”

“됐소, 그만 말하시오.”

허칠안은 호분위를 손짓하여 불렀다.

“그녀의 몸을 수색하게.”

양앵앵은 실의에 빠진 모습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를 쳐다봤다. 이 대인의 모든 행동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한 발 뒤로 물러섰고, 두 팔로 가슴을 둘러싸고 입술을 깨물며 수치심과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다.

“너무 오래 생각했소.”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부인을 바라봤다.

“만약 아내가 남편의 이름, 특징마저 한참을 생각해야만 말할 수 있다면, 다른 이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몇 마디 지어낸다고 사람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몸을 수색당하고 싶지 않으면 솔직하게 대답하시오. 그 산적들이 왜 그대를 저지하려 했소?”

위협을 가하자 여인의 표정이 점점 창백해졌다. 허칠안은 다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우리 대인께서는 조정에서 파견한 순무오. 이 운주에 어느 관리도 그보다 더 높을 수는 없으니 무슨 일이 있는지 얼마든지 얘기해도 되오.”

양앵앵은 장 순무를 쳐다봤다. 그러자 장 순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관은 황명을 받들어 운주를 순찰하러 왔네. 한낱 민가의 부인이 본관을 기만할 가치가 있지는 않겠지.”

양앵앵은 고개를 숙인 채 여러 번 저울질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음을 깨닫더니 문득 하얀 이를 악물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저 양앵앵, 이번에 청주에 가는 건 화를 피하는 동시에 청주 포정사 양 대인을 찾아가 제 부군을 위해 정의를 주장하고 원수를 갚기 위함입니다.”

장 순무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대의 부군이 누구인가? 무슨 일로 양 대인을 찾아가 정의를 주장하려고 하는 건가?”

양앵앵이 울면서 말했다.

“제 부군은 주민입니다.”

장 순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뭣이라?!”

허칠안과 강율중은 고개를 홱 돌려 양앵앵을 쳐다봤다.

주민, 그는 운주에서 죽은 야경꾼의 첩자였다. 그리고 그는 운주 도지휘사 양천남이 산적과 결탁하여 군수 물자를 수송하여 이익을 도모하고 화근을 길러 자신의 지위를 높인다는 사실을 폭로한 자였다.

밀서가 경성에 전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소리 소문 없이 죽었다.

‘주민의 미망인?’

허칠안은 이 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급 관리를 제외한 대봉 각지의 관원들은 위로는 주(州) 포정사부터 아래로는 현령까지 모두 외지인이었다.

도지휘사사 소속 경력사의 경력인 주민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경력은 그의 표면적인 관직일 뿐, 본래의 신분은 야경꾼 첩자였다.

‘위연이 첩자에게 아내를 곁에 데리고 오게 했다고? 이건 언제든지 앞잡이 노릇을 하라는 뜻 아닌가?’

“주민?”

장 순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에게 무슨 억울한 일이 있는가?”

그는 ‘주민이 누구인지 본관은 모른다’는 태도였다.

양앵앵은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집 부군은 본래 운주 도지휘사사의 경력입니다.”

장 순무는 깜짝 놀라며 태도가 돌변하더니 허리를 굽혔다. 그는 무릎을 꿇은 양앵앵을 부축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주 경력의 부인이시군요. 주 경력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부인께서는 어째서 먼 길을 돌아 청주까지 가서 고발하려 하십니까? 청주와 운주는 같은 급의 주(州)이고, 양 포정사가 이 사건을 맡을 거란 보장도 없습니다. 음, 본관은 운주 순무로 운주의 삼 사(司) 모두 제 명령을 듣지요. 부인께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으신지 얘기하셔도 무방합니다.”

‘알고 보니 여인만 타고난 연극배우가 아니었네. 벼슬아치의 연기도 뛰어나구먼…….’

허칠안은 말없이 방관하며 장 형의 독백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양앵앵은 잠시 망설이더니 장 순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대인, 제가 대인의 임명장을 좀 볼 수 있을까요? 혹은 관인(官印)도 괜찮습니다.”

그녀가 이 말을 꺼내자 장 순무와 야경꾼들은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동라와 은라들 역시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누르고 양앵앵을 주시했다.

이는 그녀가 설령 경력의 부인이라 해도 평범한 민가의 여인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아주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군…….’

허칠안도 칼자루를 누르고 엄숙한 얼굴로 양앵앵을 주시했다. 이 여인의 몸에서는 기기의 파동이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그가 눈대중으로 체지방 점유율을 보았을 때, 무예를 연마한 사람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무사임을 배제할 수만 있을 뿐이었다. 다른 체계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수법이 너무 많아 방심할 수 없었다.

장 순무는 아무런 내색 없이 두 걸음 물러선 뒤 말했다.

“수고스럽겠지만 강 금라가 본관의 임명장과 관인을 가져오게.”

‘찌질한 놈…….’

강율중은 그를 흘겨보더니 임명장과 관인을 가져왔다.

장 순무는 이를 받지 않았다. 그는 강율중의 의사를 무시한 채 양앵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가 경력의 부인이니 한 번 보는 것을 허가해 드리겠습니다.”

강율중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서서 임명장과 관인을 보여주었다.

양앵앵은 한참 동안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그녀도 임명장을 보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운주’, ‘순무’ 두 글자를 찾고 아주 붉은 인장을 보자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상대방이 연약한 여자와 이렇게 오랫동안 애를 쓴다는 것도 사실은 일종의 성의이자 가식적인 태도였다.

양앵앵은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 양앵앵은 본래 운주 교방사의 여인이었지요. 수년 전에 주 대인과 알게 됐고 사랑에 빠져 천민 신분에서 벗어나 여태껏 대인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보니 그랬군’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알고 보니 교방사 여인이었군. 어쩐지 평범한 부인에 비해 견문이 넓고 공문서와 관인도 볼 줄 알았다 했다.’

허칠안은 문득 크게 깨달았다.

이 시대에 교방사의 여인들은 여인 중에서도 높은 학식과 소양을 갖춘 집단이었다. 그들은 거문고, 바둑, 글, 그림, 운문 모든 것에 정통했다.

양앵앵은 간단한 몇 마디로 주민과의 지난 일을 얘기했다. 그녀는 자신이 바깥에 숨겨 둔 여인이라 주민과는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 만났다고 거리낌 없이 얘기했다.

“얼마 전 주 대인께서 갑자기 저를 찾아와 물건 하나를 제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는 요즘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것 같으니 만약 정말로 뜻하지 않은 변을 당할 경우 바로 숨었다가 운주를 떠날 방법을 생각한 후에 이 물건을 청주의 포정사 양 대인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주 대인의 별세 소식을 접하게 됐지요…….”

양앵앵은 눈물을 뚝뚝 흘렸고, 흐느껴 우느라 말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저는 슬프고 두려운 나머지 계속해서 머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자매 집에 숨어서 그녀에게 소식을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한동안 숨어 있었는데 그 자매가 제게 알려주더군요. 조 나리의 상대가 조만간 청주에 갈 예정이라고. 저는 그녀에게 은자 이십 냥을 빌려 말을 사서 상대를 따라 운주를 떠났습니다…….”

이후의 일은 모두가 아는 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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