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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94화 (194/712)

194화. 적을 무찌르다

오솔길 양 옆의 밀림에서 칠팔십 명의 사람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20여 명의 기병이 섬뜩한 칼과 창을 들고 갈림길에서 더 뚫고 나왔다. 그들은 모두 정예 군대였다.

조룡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매년 몇 번이나 이 길로 다녀 왔기 때문에 어디에 손을 써야 하는지, 어느 산채(*山寨: 산적들의 소굴)에 물건을 바쳐야 하는지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숲에 언제 이렇게 길을 막아서는 도적이 나타났지…….’

조룡은 휘하의 호송원들에게 조급하게 굴지 말라며 손짓했다. 그러고는 말을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 조룡, 친구들은 전에 어느 길에서 놀다가……!”

그는 가까이 다가간 순간 갑자기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 도적 떼는 허리에 군노(*軍弩: 군대의 화살)를 차고 있었고, 손에는 제식장도(制式長刀)를 쥐고 있었다. 모두 군 장비였다.

조룡도 일부 산채는 군수 물자가 부족하지 않을뿐더러 군도, 군노 심지어 화통까지 모두 다 갖추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최상위 토구 산채가 이곳에 나타나서는 안 됐다.

* * *

“칠안, 자네 마치 여인에게 몸을 빼앗긴 병자처럼 보이네.”

송정풍은 허칠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며, 이 기회에 재미 삼아 그를 골려 주었다.

허칠안은 그를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내게 친구가 있는데 양기를 북돋우고 신장을 보양하는 사천감의 환약이 있는지 없는지 묻더군.”

송정풍의 웃는 얼굴이 굳었다.

“내 그 친구가 바로 주광효이네. 광효, 자네는 약혼녀도 있는 몸인데 뭣 때문에 그렇게 애를 쓰는 것인가.”

송정풍이 주광효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주광효는 입을 꾹 닫고 그를 쳐다보더니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반박했다.

“나는 여색을 좋아하지만 자네 모습은 너무 못났어. 매일 아침마다 자네와 잠자리를 하는 낭자는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거야. 자네는 스스로 절제할 줄 몰라서 몸이 축난 걸세.”

무사는 체력과 정신력이 강하고 정력이 왕성했다. 하지만 설령 우마왕(牛魔王)이라고 할지라도 매일 저녁부터 아침까지 전념하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혈기도 축 날 터였다.

“이건 내가 대단한 걸세.”

송정풍이 굴복하지 않고 거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교방사의 낭자들이 내게 성심성의껏 협조하기만 한다면 그녀들일지라도 상대하기에 지칠 것이야.”

“정풍…….”

송정풍은 허칠안이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듣자 돌아서서 쳐다봤다.

“왜?”

“자네가 대단한 게 아니라 그녀들이 자네의 보잘것없는 그걸 참고 견딜 수 있는 거지.”

“꺼지시게.”

웃음과 욕설이 오가던 중, 대오를 이끄는 강율중이 나지막이 말했다.

“전방에 피비린내가 나니 전원 준비하시게.”

쟁……! 칼집에서 칼날을 꺼내는 소리가 획일적으로 들렸다. 이내 호분위 야경꾼들은 동시에 패도를 꺼내고 군노를 벗었다.

“돌진!”

강율중이 말의 배를 안고 돌진해 나갔다.

순무 대오는 순식간에 행군 태세에 돌입하여 아주 빠른 속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 * *

행군한 지 10분이 지나자 전방에 밀림이 나타났다. 그리고 짙은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그들이 밀림에 들어가는 찰나, 날카로운 화살이 양쪽에서 날아와 광분한 야경꾼과 호분위를 습격했다.

강율중이 손을 들어 아래로 내리누르자 보이지 않는 공기벽에 화살비가 부딪혀 힘없이 떨어졌다.

그는 손을 내젓고 말했다.

“호분군, 수풀에 들어가서 적을 죽인다.”

강율중은 말을 할 때 전방을 바라봤다. 관도 위에는 수백 구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선혈이 온 바닥에 물들어 있었다. 말은 마수 탓에 도망가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 상대가 운송하는 화물은 바닥에 한가득 흩어져 있었다.

그는 즉시 상황을 분석했다……. 그가 미리 피비린내를 맡고 대오에게 급습하라고 명령했다. 길을 막아선 이 토구떼가 말발굽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철수하기엔 늦었기 때문에 수풀 속에 매복했던 것이다.

밀림에서 격렬한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 호분위는 경성오위 중 하나로 금군처럼 용맹하고 싸움을 잘하지는 않았지만, 지방의 군대보다는 훨씬 나았다.

양측의 머릿수가 비슷했다. 화살과 칼날이 교차하며 서로 싸웠다.

강율중은 다소 뜻밖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칠안, 사람을 죽여 본 적 있는가?”

“한 명 죽여 봤고, 한 명에게 중상을 입혔지요.”

허칠안은 시체가 널브러진 상대를 바라보며 되는대로 전적을 보고했다.

강율중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

야경꾼들이 동시에 크게 웃었다.

허칠안은 야경꾼에 들어온 지 두 달도 안 된 풋내기였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많은 전쟁을 치른 무사였기에 사람을 죽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강율중이 수풀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거라. 연습해야지. 적어도 열 명은 죽이거라.”

허칠안은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군마가 두 발로 등자를 밟았다. 청주 군영에서 파견된 이 군마는 구슬피 울부짖으며 네 발을 땅에 꿇었다. 그리고 허칠안은 한 마리 새처럼 밀림으로 날아들었다.

흑금장도가 번쩍이며 사람 머리를 잘랐고 잘린 목에서 핏물이 내뿜어졌다.

‘보지 마, 보지 마…….’

허칠안은 머릿속으로 처참하게 죽어 간 상대를 떠올리며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러면서도 날렵하게 칼을 휘둘러 토구의 목숨을 하나하나 앗아갔다.

그는 절반 정도 연신경 수련 경지에 이르렀기에, 흉악한 도적 떼의 목을 마치 과일과 채소를 자르는 것처럼 베었다. 아주 날카롭고 예리한 흑금장도가 있는 이상 그를 한 차례라도 막을 수 있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윙윙!

타오를 듯 뜨거운 칼날이 몸 뒤에 꽂혀, 길가의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아주 반듯하게 잘리며 소리 없이 떨어졌다.

허칠안은 강한 정신력으로 미리 기습을 알아챘다. 그는 허리를 비틀고 몸을 돌려 흑금장도로 산산조각 내던 중 무쇠 칼을 휘두르는 한 사나이를 보았다.

그는 길을 가로막는 호분위를 단칼에 베어 버렸다. 그러고선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허칠안을 향해 달려왔다. 동시에 몹시 야윈 두 사나이가 제식군도(制式軍刀)를 쥐고 좌우 양옆에서 허칠안을 협공했다.

순간 허칠안은 좌우의 사나이에게 몰려 위험한 지경에 빠졌다.

강율중이 관도 위에서 시종일관 실눈을 뜨고 관전하다 이 상황을 본 후 ‘어이’하며 웃기 시작했다.

“저 토구 셋 몸놀림이 괜찮네. 하나는 연기경 전봉이고 둘은 기기가 다소 약하지만, 막 연기경에 이른 약자도 아니야.”

이 말을 들은 은라가 소리 내어 물었다.

“그를 도와줄까요?”

야경꾼들이 함께 강율중을 쳐다보며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들은 수련 경지가 그저 연기경에 머문 허칠안이 같은 경지에 놓인 고수들의 포위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아직 앳되지 않은가. 사람을 많이 죽이지도 않았고, 실전 경험도 부족했다.

전쟁터에서 때로는 실전 경험이 수련 경지보다 더 중요한 법이다.

주광효와 송정풍은 허칠안이 연신경에 자극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지친 상태에 놓여 전력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강율중은 살며시 검에 손가락을 얹고 겹겹이 포위된 허칠안을 주시하며 언제든지 나서서 도울 준비를 했다.

“좀 더 기다리게.”

‘연기경 셋……. 무쇠 칼을 쓰는 사나이는 기운이 강한 게 연기경 전봉이고…… 다른 둘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군……. 운주의 산적 수준이 이렇게 높은가?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경 셋과 맞닥뜨렸다고?’

허칠안은 냉정한 표정을 지은 채 칼을 쥐고 상대를 적극적으로 맞이했다. 그는 무쇠 칼을 쓰는 사나이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금색 수사자의 포효도(咆哮圖)를 관상했다.

“어흥!”

그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깊고 웅장한 포효가 산림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서로 싸우고 죽이던 쌍방이 잠시 굳었다.

무쇠 칼을 쓰는 사나이의 귓가에 마치 우렁찬 천둥이 친 듯했다. 그의 동공이 잠시 풀어지고 사고의 흐름이 멈췄다.

이렇게 짧디짧은 몇 초의 경직이 그의 생사를 결정지었다.

푹!

흑금장도가 날카로운 빛을 뿜자 무쇠 칼을 쓰는 사나이는 무참하게 절반으로 동강 났다. 산산이 부서진 장기들에 선혈이 섞여 땅바닥에 흥건하게 고였다.

허칠안은 한 놈을 베어 죽인 뒤 이 기세를 몰아 전혀 지체하지 않고 돌아서서 다시금 머릿속으로 거인도(巨人圖)를 관상했다. 순식간에 그는 마치 전투의 신이 된 듯 기기가 폭발했다.

띵…… 푹……

그중에 몹시 여윈 한 사나이가 칼을 휘둘러 막았으나 손쉽게 날이 부러졌다. 흑금장도가 그의 가슴을 갈랐다.

또 다른 여윈 사나이는 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되자 뒤돌아 도망치려 했으나 호분위의 집중 공격에 가로막혔다. 곧 허칠안이 쫓아와 다시금 금색 수사자 포효도를 관상하여 상대방의 정신을 뒤흔든 뒤 단칼에 베어서 죽였다.

모든 과정이 불과 십여 번의 호흡 안에 일어났다.

“아…….”

관전하던 야경꾼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낮고 힘 있는 기기가 평범한 연기 전봉을 완전히 뛰어넘었군. 설사 나라도 그보다 조금 강할 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어.”

한 은라가 놀라며 말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그가 어떻게 불문 관상법을 다룰 줄 아는가야. 저건 사자후네.”

한 은라가 덧붙였다.

“그리고 또 문제가 있어. 그는 두 가지 관상을 함께 수련하는 것 같네……. 게다가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 연신경에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정도야.”

“그가 야경꾼에 들어온 지 고작 2개월밖에 되지 않았잖나!”

은라들은 얘기를 나누다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동라의 반응은 더욱 과장스러웠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허칠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방금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연기경 세 명을 베어서 죽인 그 장면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같은 연기경이라도 사람에 따라 전력이 달랐다. 야경꾼 관아의 연기경은 보편적으로 일반 무사보다 강했다.

하지만 이렇게 과장된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허칠안은 짧은 시간 내에 강호의 무사 셋을 베어 죽일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는 건 자리에 있는 동라와 그가 일대일로 붙으면 열 수를 둘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였다. 여기에는 이미 법기 동라가 발휘하는 작용도 포함되었다.

평소에는 모두가 시시덕거리며 대등하게 지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네가 우리 열 사람을 무찌를 수 있었군?’

강율중은 더욱이 허칠안이 필살기 ‘천지일도참’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 * *

호분위는 이 토구 떼를 깨끗하게 청산한 후 밀림 속에서 오랏줄에 꽁꽁 묶인 평범한 백성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들은 총 25명으로, 심문한 뒤에 그들 상인의 신분을 알아냈다.

그중에 한 여자는 외모가 유달리 뛰어났다. 그녀는 소녀같이 섬세하고 얌전한 게 아니라 복숭아처럼 통통하고 매력적이었다. 연애 고수만이 이런 매력적인 여자의 미묘함을 알 수 있었다.

“여러 나리께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구조된 상인들이 거듭 감사하다고 말하며 무릎을 꿇고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장 순무는 상냥한 얼굴로 그들을 위로하면서 신분을 밝혔다. 그리고 그들을 운주의 중심인 백제성으로 돌려 보내 준다고 약속했다.

“이 시신들을 다 묻어버리고 화물을 정리하여 같이 챙긴다.”

장 순무가 말했다.

강율중이 고개를 끄덕이고 호분위에게 일을 하라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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