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92화 (192/712)

192화. 허칠안의 서신 7통 (1)

허칠안은 역참으로 돌아온 뒤 찬물로 목욕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토납하며 법상도를 관상했다.

청주는 운주와 인접해 있어 이곳에서 출발하여 속도를 내면 빠르게 운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 순무의 몸이 약한 걸 고려했을 때도 일주일 정도면 청주 국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이 시간을 활용해서 연신경에 충격을 가할 수 있겠어. 기껏해야 열흘 동안 잠 안 자면 되잖아? 이 몸이 그해 보통 사람이었을 때 PC방에서 72시간 동안 밤새워서 게임했던 성과가 있거든…….’

* * *

이튿날, 포정사 양공이 석공을 불러 청주 각 관아 앞마당의 경계비에 백관을 경고하는 시 네 구절을 새겼다.

위로는 청주 지부부터 아래로는 일반 하급 관리까지 매일 관아를 드나들면서 이 시 네 구절을 볼 수 있었다.

“이 위에 뭐라고 쓰인 것인가?”

“이식이록, 민지민고, 하민역학, 상천난기.”

“좋은 시로구나. 이 몸이 학문을 익힌 적이 없어 한 마디밖에 할 줄 모르네. 세상에, 정말 잘 썼네. 우리 포정사 대인께서 쓰신 게지? 대인께서는 정말 청렴하고 공정한 관리셔.”

“포정사 대인이 아니라 허칠안이라는 자가 쓴 것이네. 음, 가장자리에 작은 글자로 ‘스승 양공’이라고 적혀 있구먼. 아아, 우리 포정사 대인의 학생인 게야.”

이 시는 허칠안이 지은 작품이었지만, 자양거사가 수작을 부려 허칠안 이름 왼편에 ‘스승 양공’이라는 글자를 새기게 했다.

운록서원의 대유 셋이 만일 이 자리에 있었다면 피를 토하며 포효했을 터였다.

‘후안무치한 영감 같으니라고. 여기에도 빈대를 붙는 것인가?’

많은 청렴한 관리들이 이 시를 보고 탁자를 치며 칭찬했다. 다들 허칠안이라는 인물을 묵묵히 가슴에 새겼다.

이렇게 허칠안의 명성은 청주 관리 사회에 빠르게 퍼졌다. 이후 많은 서생과 관리들이 이 비문에 적을 시를 선사한 인물이 200년간 대봉 문단 시사의 빛이라고 불릴 시 몇 수를 지은 재주꾼이라는 사실을 돌연 알게 되었다.

게다가 가장 놀랄 만한 일은 그가 지식인이 아니라 야경꾼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청주의 관원이든 서생이든 관계없이 허칠안에게 탄복하고 그의 시재를 흠모하였으며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기개를 더욱 우러러봤다.

교방사 낭자들 역시 이 소식을 접한 후 흥분과 감동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하나같이 향을 피우고 불상 앞에 절을 올리며 허 재주꾼이 그녀들을 찾아와 시구 한두 수를 남겨 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녀들은 설령 돈을 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마음속 깊이 그 작품을 원했다.

* * *

자양거사가 청주성 밖에서 청주의 고관들을 거느리고 친히 장 순무 대오를 배웅했다.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스승님, 몸조심하십시오.”

허칠안은 제자의 신분으로 인사했다.

자양거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탄식했다.

‘막 한 학생을 만나 가슴속의 뜨거움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떠나야 한다니.’

“이번에 운주에 가서 사건을 잘 처리하게. 조정에 충성을 다 하고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힘써야 함을 항상 명심하시게.”

양공이 나지막이 말했다.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힘을 쓴다라…….’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말없이 되뇌었다.

* * *

수일 후, 허칠안은 청주 국경의 역참에서 새벽 2시 즈음 토납과 관상을 마쳤다. 그가 잠을 자지 않은 지 이미 7일째였다. 그는 양초를 들고 방에서 걸어 나왔다.

밤이 깊어지니 역참 내부는 아주 고요했다. 그는 복도를 따라 끝까지 가서 계단을 따라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대청 계산대 옆에서 등불 하나가 조용히 타들어 갔다. 탁자에 엎드려 곤히 잠이 든 역졸의 입가에선 맑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역참은 24시간 열려 있었다. 일부 관원들이 긴급한 공무로 밤새 길을 서두르다 보면, 언제 역참에 투숙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톡톡…….

허칠안은 계산대를 두 번 가볍게 두드려 둔탁한 소리를 냈다.

역졸이 놀라서 깨더니 입가를 닦으며 몸을 일으킨 후 물었다.

“대인, 무슨 분부하실 일이라도?”

“내게 서신 봉투와 편지지 몇 장 주시게. 서신을 써야 하네.”

허칠안이 요청했다.

역졸은 즉시 서랍에서 편지지와 서신 봉투를 한 장 꺼냈고,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부족하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서신 봉투 7장, 편지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네.”

역졸은 한 번에 서신을 7통이나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는 소리 없이 뭐라고 투덜거렸지만 이내 서신 봉투와 편지지 7장을 순순히 건넸다.

허칠안은 서신 봉투와 편지지를 받자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 방으로 돌아갔다.

* * *

그는 서신 봉투를 책상 위에 놓고 옥석경에서 홍련 꽃잎을 꺼내 꽃잎 다섯 장을 5개의 서신 봉투 위에 누른 뒤 종이를 넓게 깔았다. 그런 다음 서진(*書鎭: 종이가 바람에 날리지 아니하도록 눌러두는 물건)으로 눌러 반질반질하게 하고 서신을 썼다.

첫 번째 서신은 다음과 같았다.

<회경공주: 이 서신을 쓸 때 저는 이미 청주 국경에 도착했을 테지요. 아마 곧 운주로 진입할 것입니다. 경성을 떠날 때 본래는 마마와 의논하고 마마의 고견을 듣고 싶었습니다. 허나 소직이 어느 부분에서 마마의 미움을 샀는지는 모르겠으나 마마께서 이렇게 모진 마음을 먹고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으실 줄 몰랐습니다.

우주를 지나치다가 소직이 횡령 사건을 하나 밝혀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무신교가 조정에 잠식한 지 이미 오래고, 암암리에 수많은 첩자를 양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소위 천 리 길 둑이 개미굴에 의해 무너진다고 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마께서 폐하께 심기일전하여 조정의 기강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 권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참, 청주에 홍련이라 불리는 꽃이 있는데 엄동설한의 계절에도 꽃이 핍니다. 홍련의 기개는 진흙에서 나오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로 씻어 내도 요염하지 않죠. 덩굴이나 가지를 뻗지 않아 그 모습이 반듯하고, 멀어질수록 향기가 더욱 짙고 맑아져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벼이 희롱할 수는 없지요.

이 꽃을 보며 소직은 마마가 떠올랐사옵니다. 죄송합니다, 소직의 이 말이 마마께 아주 무례하다는 것을 압니다. 허나 마마의 인품과 재능에 견줄 자가 없으니 전하지 않기 어려웠사옵니다. 평생에 겨우 한 번 볼까 말까 한 꽃이 어찌 귀하지 않겠습니까. 마마께서는 홍련처럼 진흙에서 나오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로 씻어 내도 요염하지 않습니다. 소직이 연꽃잎 하나를 따 서신과 함께 동봉하여 약소하나마 제 마음을 전하옵니다.>

두 번째 서신은 이러했다.

<임안공주: 밤은 길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마마의 웃는 모습과 목소리가 눈앞에 있는 듯 귓가에 울려 퍼지옵니다. 보름 동안 보지 못하여 마마가 무척 그립사옵니다. 운주행은 전혀 적막하지 않았습니다. 도중에 재미있고 기이한 일이 아주 많이 발생했지요. 알고 보니 운하에 물귀신이 있더군요. 가는 도중 한 호분위가 밤에 갑판에 올랐다가 별안간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물속으로 뛰어든 일이 있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물귀신이 그의 발목을 죽어라 잡아끌어 그를 강바닥으로 끌고 가려 했습니다. 다행히도 소직이 제때 알아차렸고, 물불 가리지 않고 강 속으로 뛰어들어 물귀신과 300차례의 결투를 벌여 파도가 어지러이 인 후에야 가엾은 호분위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청주에서 운주로 가는 길에 한 마을을 지나쳤는데 마을에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집의 아내가 죽은 후 강시가 되어 매일 밤낮 방 주변을 떠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음침한 하얀 이가 난, 시퍼런 손톱의 시체가 사람을 보면 물었다고 하더군요…….

다행히도 소직이 지나가다가 여인이 강시로 변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한눈에 보고 알았고, 철저히 조사한 후에 진상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편과 마을 어귀의 과부가 사통하여 아내를 내쫓고 장가를 들고자 했는데 아내가 원치 않자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원한을 품고 죽어 망령이 떠나지 못해 강시로 되어버린 것이죠.

참, 청주에 홍련이라고 하는 꽃이 있습니다. 불같이 요염한 모습이 소직으로 하여금 붉은색 치마를 입은 마마의 독보적인 자태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홍련은 공주마마처럼 곱사옵니다. 홍련은 바람처럼 맑고 화살처럼 유연합니다. 그리고 바람이 한차례 불어올 때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는데 이때 제 마음속에 한 구절이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고개를 숙일 때의 부드러움은 마치 한 송이의 연꽃이 찬바람을 이기지 못해 수줍어하는 모습과 같다.’

소직이 당돌하여 본의 아니게 공주마마께 실례를 범했사옵니다. 단지 공주마마께서는 소직이 여태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사옵니다.>

세 번째 서신은 이러했다.

<채미 소저: 하루를 못 보니 마치 3년을 떨어진 듯하오. 손꼽아 따져 보니 우리가 보름 동안 만나지 않았더군요. 치킨스톡 정제는 어떻게 되어 가오? 연금술사로 순조롭게 승직하실 수 있겠소? 우주에 결구배추 햄이라고 하는 맛있는 음식이 있더이다. 햄은 남방 특유의 음식으로 북방에서는 구하기 힘들지요.

조리법도 간단하오. 껍질을 벗겨 낸 햄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고기만 남겨 놓는 것이오. 먼저 닭고기 탕으로 껍질을 푹 삶고, 고기를 푹 삶은 뒤 결구배추심을 두고 뿌리째 약 2촌(寸) 정도의 길이로 토막토막 자릅니다. 거기에 꿀, 감주, 물을 넣고 반나절 정도 푹 삶소. 아주 맛이 좋아 입에 맞을 거요. 채소와 고기가 한데 어우러지고, 채소 뿌리와 채소심이 조금도 따로 놀지 않아요. 탕 역시 맛이 끝내 줍니다. 청주에 맛있는 음식이 수만 가지이니 하나하나 다 말씀드리게 해 주시오…….

참, 청주에 홍련이라는 꽃이 있소. 이 꽃은 아름답고 생기가 넘치며 바람을 안고 꽃을 피우지요. 바람에 흔들릴 때는 마치 매력적인 웃는 얼굴 같아 저도 모르게 채미 소저가 떠오르더오. 소저처럼 이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웃음을 주곤 합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고, 천진난만하고, 투명하고 빛나는 큰 눈을 지닌 소저를 보면 속세를 잊게 됩니다.”

네 번째 서신은 이러했다.

<부향 낭자: 보름 동안 보지 못해서 그대가 참 그립군. 그대의 웃음, 그대의 외투, 그대의 하얀 양말과 그대 몸의 향기 전부. 보름 동안 보지 못해서 그대가 참 그립구려. 나는 이미 청주 국경에 도착하여 내일이면 운주에 다다르겠지. 오는 동안 동료가 내게 교방사에 가자고 꼬드겼으나 거절했소. 그대가 없는 교방사는 무료하기 짝이 없거든.

나도 모르게 우리 둘의 끈끈하고 애틋한 과거가 떠오르더군. 우리만의 아름다운 시간이지. 운주행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시간과 체력을 잡아먹는군. 우리가 서로 만날 날이 아직 요원해. 그대가 나를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는 걸 아오. 그리운 마음을 참기 어려울 때 손톱 손질하는 걸 잊지 말고.

참, 청주에 홍련이라는 꽃이 있소. 이 꽃은 불처럼 밝게 빛나고, 마치 그대의 열정적인 마음처럼 이글대서 참으로 미련이 생기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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