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시 한 수로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다
청주 지부는 얼추 다 관전한 뒤 술잔을 들고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공교롭구려. 포정사 대인께서 마침 관아 앞마당에 경계비를 세우려 하시는데 비문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네. 허 대인께서 한 수 지어주실 수 있겠는가?”
그가 이 말을 꺼내자 모든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허칠안을 쳐다봤다.
자양거사는 맞장구치지도 저지하지도 않았고, 말없이 웃으며 동라를 쳐다봤다.
‘술 한 잔으로 내 시를 얻으려 하다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허칠안은 탄식했다.
“소직 순무 대인을 따라 운주에 사건을 조사하러 가는 길입니다. 앞길을 예측할 수 없어 걱정이 태산인데 시를 지을 정신과 마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대인 어르신들.”
청주의 관원들은 순간 실망을 감출 길이 없었다. 청주 지부는 조급해하며 말했다.
“허 대인의 시적 재능은 정말 놀랍소. 겸손해하지 마시오.”
허칠안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자양거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엄지손가락에 낀 옥 가락지를 빼며 나지막이 말했다.
“운주 비적의 난이 심각하니 이번 여정은 정말 위험하네. 칠안, 이 옥 가락지를 가져가시게. 본관이 여러 해 동안 패용(佩用)하던 것이야. 굳세고 올바른 기기의 온양으로 사악한 것을 물리칠 수 있다네.”
순간 허칠안의 시선이 가락지로 향했다. 청기가 반짝하더니 사라지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저채미가 일찍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법기가 있다. 하나는 사천감 진법사가 정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연(機緣)이 우연히 일치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고품 무사의 기운을 머금고 날이 거듭될수록 일정한 신이(神異)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 옥 가락지는 세 번째에 해당했다.
‘대부님, 오늘 저녁에는 저를 사람 취급하지 마십시오…….’
허칠안은 황급히 받아 신중히 품속에 넣었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으나 갑자기 영감이 솟구쳐 올라 우연히 시 한 수를 얻었습니다.”
‘시를 쓸 기분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니?’
모든 관원들은 망연히 그를 쳐다보다가 몇 초 후 서서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상한 눈빛을 띠면서도 이 상황을 암묵적으로 이해하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자양거사의 웃음 띤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본관은 귀담아 듣겠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음속에서 이미 선택을 마친 후였다. 이는 그가 애초에 자질 테스트를 준비할 때 양심을 묻는 관문에 사용했던 시 네 구절이었다.
이 시만큼 이곳에 쓰기에 더 적합한 시는 없었다. 그가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이 시는《계석명(戒石銘)》이라는 시로 마침 문무백관을 경고할 때 쓰이는 시였다.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자 머릿속에 그 시가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양심을 묻는 관문을 넘길 때의 장대한 포부가 다시 느껴지는 듯했다.
그가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킨 후 우선 자양거사 양공을 바라보며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식이록(*爾食爾禄: 그대들의 먹을 것과 녹봉은).”
그는 다시 장 순무를 바라봤다.
“민지민고(*民脂民膏: 백성들의 피땀이니라).”
이어 그는 자리에 있는 관원들을 천천히 훑었고, 목소리가 갑자기 매서워졌다.
“하민이학(*下民易虐: 하층 백성들은 괴롭히기 쉽지만).”
마지막으로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흥분한 듯 큰소리로 외쳤다.
“상천난기(*上天難欺: 하늘은 속이지 못하느니라)!”
어느덧 그의 목소리에 불문의 사자후가 녹아들어 모든 관원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마치 사찰에서 울리는 북과 종소리가 귀를 진동시키는 듯했다.
적지 않은 관원이 켕기거나 부끄러운 표정으로 품계가 없는 동라를 마주했다. 엄한 상급자를 마주쳐 숨도 마음껏 쉴 엄두가 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 소수만이 격분한 상태로 허리를 곧게 폈다.
“좋은 시다, 좋은 시야!”
자양거사가 탁자를 치며 일어났다. 이 대유는 감정이 다소 절제되지 않은 상태로, 지금은 노련하고 유능한 고관이 아니라 관리 사회에 갓 입성한 패기와 정기가 넘치는 젊은 서생처럼 보였다.
“올해 내가 만약 조당에서 이 시로 가슴에 맺힌 울분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어찌 한 해 동안 의기소침했으랴? 허칠안아, 허칠안. 자네는 진정한 학문쟁이구나.”
뜰 안에서 찬바람을 견디던 무희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을 깜박거리며 술자리에 있는 유일한 젊은이를 관찰했다.
‘이런 기개가 있으니 은라를 칼로 베는 행동을 할 수 있었겠지……. 이 시가 얼마나 많은 이를 놀라게 할지 모르겠군…….’
장 순무는 감탄하며 탄식했다. 그는 술자리가 좀 어색해진 듯하자 얼른 화제를 돌렸다.
“포정사 대인 말씀으로는 칠안 자네가 애당초 글을 공부하지 않은 게 안타깝다더군.”
허칠안은 딸꾹질을 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숙부께서는 제가 무예를 연마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 여기시어 계속해서 글공부를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관원은 이 말을 듣고 매우 화가 나서 속이 끓었다.
‘자네 숙부 놈이 사람 구실을 못 해서 학문 혈통을 헛되이 낭비했군. 허칠안이 만약 지식인이라면 대봉 문단이 적막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 * *
밤늦게 술자리가 파했다. 허칠안은 다소 취한 채 연못가로 와서 선홍색의 아름다운 연꽃을 따고 있었다.
이 연꽃은 품종이 아주 특이했다. 꽃잎이 6개뿐인데 꽃잎 하나하나가 영롱하게 반짝여 그가 여태껏 본 적이 없는 품종이었다.
“그 연꽃은 홍련이라고도 하며 한련이라고도 하네. 청주에만 있는 연꽃이지.”
자양거사가 걸어와 손을 뒷짐 진 채 한쪽에 서서 말했다.
“10월에나 꽃이 피어 이듬해 봄이 오면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네. 열린 연밥은 따뜻한 성질이라 약으로 쓰일 수 있지.”
‘……겨울에 피는 연꽃, 전생에서는 본 적이 없다.’
허칠안은 웃으며 말했다.
“엄동설한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데 그 성질이 따뜻하다니 계절과 정반대군요. 이 홍련은 중원에 옮겨 심을 수 없겠네요?”
“살아남지 못하네.”
자양거사는 의미하는 바가 있는 듯 말했다.
“운주 비적의 난 역시 운주에만 있는 일이지. 다른 어떠한 주(州)로 옮겨가면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을 걸세. 이 결증(結症)이 어디에 있는지 자네는 아는가?”
‘이건 역사가 남긴 문제 아니야……?’
허칠안은 마음이 움직여서 읍을 올리며 말했다.
“선생님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는 대인이 아닌 선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학생의 신분을 자처했다.
* * *
한밤중, 찬바람이 불어와 연못 가득 수놓은 홍련이 흔들거렸다. 그것은 마치 용솟음치는 불바다처럼 매우 아름다웠다.
허칠안은 소리 없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그윽한 향기를 맡았다.
“운주에는 산이 많지만 남강처럼 푸르른 초목이 우거지고, 장기가 널리 퍼지진 않았지. 산속에 약초가 많이 나고 산물이 풍부하네.”
자양거사가 연못 가득한 홍련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운주 역시 비옥한 양전(良田)을 가지고 있고, 수량(水量)이 풍부하네. 매년 생산되는 곡식이 대봉의 곡식 창고라 불리는 두 지역 예주(豫州), 장주(漳州)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매년 운주에서 나는 곡식으로 두 주(州)의 백성이 먹기에는 아주 넉넉하네.”
‘……듣자 하니 운주는 아마도 구릉 지형이겠군.’
허칠안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5대 육지의 기본 지형 중 구릉은 가장 비옥하고 산물이 풍부한 곳이었다. 전생에 소위 살기 좋은 땅이라 하면, 바로 강남에 위치한 구릉이었다.
대봉의 곡식 창고인 예주, 장주 이 두 지역은 평원에 속했다. 하지만 남강은 산맥 지형으로 도처가 다 높은 산이라 양전이 적었다.
자양거사는 나지막이 말했다.
“운주는 또 지리적 이점이 있네. 남해와 인접해 있어서 앞뒤로 적의 공격을 받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지. 한발 물러서서 말해, 정 안된다면 배를 띄울 수 있다네. 무신교와 대봉은 국경 지대에서의 마찰이 나날이 심해지는 중이지. 그들이 만약 내란을 조장하고 대봉을 곤란에 빠지게 하고 싶다면, 운주를 선택하는 일은 현명한 행동일세.”
‘네 말을 들으니 어째 이번 운주행이 팀킬하는 여행이라는 느낌이 든다? 퉤퉤퉤, 재수 없는 말은 개의치 말아야지…….’
“걱정 마시게.”
자양거사가 마치 허칠안의 근심걱정을 간파한 듯 웃으며 말했다.
“대봉은 문제가 심각하긴 해도 대체로 평온한 편이고, 조정의 위엄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가. 설령 무신교가 운주에서 일을 꾸미고 있다 해도 어둠 속에 숨어서 행동하지 드러내 놓지는 못하지 않는가. 그동안 별일 없이 한가로워 매를 몇 마리 길들였네. 이따가 자네에게 한 마리 선물할 테니 만약 운주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진다면 매를 통해 서신을 보내게. 역로(驛路)보다 빠를 걸세.”
‘아무리 빨라 봤자 갔다가 돌아오는 데만 며칠 걸리겠지……. 역시 휴대 전화가 없는 세상은 안정감이 없어. 한 사람당 지서 파편 하나씩 있으면 좋을 텐데…….’
허칠안은 개탄하며 말했다.
“스승님의 깊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운주에 가면 저는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고 장항영을 잘 보호하시게. 관리 사회의 친분 쌓기는 상관할 필요 없네.”
자양거사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위연이 장항영을 순무로 위촉한 거라면 이 자는 분명 평범하지는 않을 걸세.”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적인 일에 관해 얘기를 마친 후 자양거사가 잠시 주저하더니 말했다.
“내가 근언과 서신으로 자주 왕래를 하는데 서신에서 늘 자네를 언급하더군. 자네도 반은 운록서원의 서생이라 할 수 있어……. 내가 듣자 하니 수개월 전에 서원의 청기가 충천했다지?”
‘근언이 누구지? 아아, 신년의 스승 대유 장진…….’
허칠안은 자(字)로 호칭하는 일이 익숙지 않아 몇 초 후에야 ‘근언’이 누구인지 반응이 왔다.
‘자양거사의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운록서원에서 그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은 건가? 아니면 내가 한 일이라는 걸 알고 내게 암시하기 위해서 한 말인가? 하지만 암시할 필요 없는데……. 왕래하는 서신을 비밀에 부칠 수가 없어서 운록서원의 대유들이 서신에서 언급만 하고 진실을 알리지 않았나?’
그는 헤아리며 말했다.
“이 일은 서원에서 가장 큰 기밀에 속하는 듯한데 아성학궁이 지금까지 봉쇄되어 있어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허칠안은 이쯤 되자 저도 모르게 사실을 호도하는 그 아성이 떠올랐다. 정말 위대한 남자다. 그는 영원히 마누라 뒤에 서 있지 않은가.
자양거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 더는 묻지 않았다.
허칠안은 오히려 이 대유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먼저 첫 번째 질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스승님, 그동안 상백 사건 때문에 제가 야학에 도전하고 사서를 뒤지다가 당초 저희와 한패인 재상께서 멸불하기 전에 ‘불문을 멸하지 않으면, 천하가 다 불문이 될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치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어 그 재상께서는 입명경으로 승직하셨죠. 소생이 생각하기에는 불문이 설사 여러 가지 폐단이 있다고 해도 어쨌거나 명문 정통입니다. 불문을 멸하지 않으면 천하가 다 불문이 된다는 건…… 너무 극단적이지 않습니까?”
허칠안은 이 세계의 불문과 전생의 불문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몰랐다. 다만 이 세계에는 불조(佛祖)는 없고 불타(佛陀)만 있었다.
그래도 어찌 됐든 불문이 사이비 종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일은 비밀과 연관된지라 나도 모르네.”
자양거사가 말했다.
‘모른다면서 비밀과 연관된 건 어떻게 알아?’
허칠안은 이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양거사가 ‘허’하더니 말했다.
“원장은 알고 있네.”
허칠안의 두 번째 궁금증은 남강 극연에 왜 유가 성인의 돌조각상이 있는지였다. 하지만 그는 질문하겠다는 생각을 단념했다.
경성에 있는 허칠안은 극연 아래에 유가 성인의 조각상이 있는지 몰라야 했다. 설령 ‘제게 친구가 한 명 있는데’와 같은 구실도 안 됐다.
이 일은 야경꾼 관아조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