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90화 (190/712)

190화. 이 작은 대인이…….

의논하는 와중에 포정사사의 한 하급 관리가 말을 타고 부아에 도착하여 뛰어 들어왔다. 그는 머지않은 곳에 서서 읍을 올리며 말했다.

“포정사 대인, 경성에서 순무 한 분이 오셨는데 이미 포정사사 관아에 도착하셨다 합니다.”

‘순무? 올해 순무가 빨리 왔네? 경자년은 경찰의 해이니 관례에 따르면 경성의 경찰 결과가 나온 뒤에야 순무를 파견할 텐데.’

여기에는 관리 사회의 암묵적인 관행이 연관되어 있었다. 경성 쪽에서 경찰이 끝났다는 건 각 당파의 투쟁도 결과가 나왔다는 의미였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 확실시된 후다.

그러고 나서야 순무를 파견하여 패자 진영의 관원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며칠 앞서 서신을 전달받은 양공이 설명했다.

“청주에 온 것이 아니라 운주에 가는 길에 우리 청주를 들렀다 가는 것뿐이지.”

‘운주…….’

모든 관원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공은 하급 관리를 보며 말했다.

“본관이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어서 만나지 않겠다고 순무께 전하게. 뭐 필요한 게 있으시면 좌우참정을 찾으라 전하고.”

양공은 운록서원의 대유로 제당 제공들과는 마음이 맞지 않았다. 친분 같은 건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는 안 그래도 비문 일로 머리가 아픈 마당에 친분도 없는 순무를 상대하기 귀찮았다.

“네!”

하급 관리는 우선 대답한 뒤 이어 덧붙였다.

“순무 대인께서 소인에게 몇 마디 대신 전하라 이르셨습니다.”

양공과 모든 관원이 쳐다봤다.

하급 관리는 말했다.

“동라 허칠안도 동행했다 합니다.”

‘동라 허칠안이 누구야?’

모든 관원이 순간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양공은 반응이 왔다. 그는 시종일관 경성의 동향을 주시했고, 늘 운록서원의 대유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왕래했기 때문이다.

“가마를 대령하거라. 속히 포정사사로 돌아간다.”

양공의 태도는 180도 변했고, 말투 속에는 급박함과 기쁨이 묻어 나왔다.

“빨리 가마를 몰거라.”

그는 말을 마친 후 관원들을 내팽개치고 곧장 부아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

청주의 모든 관원이 서로 쳐다보며 양공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동라 허칠안이 누구인가? 이름이 꽤 귀에 익기는 하네만.”

청주 지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차라리 같이 포정사사로 가서 보는 게 낫겠군. 경성에서 온 순무도 접대하고 말이야.”

“일리 있네. 가세, 가.”

관원들은 한패가 되어 부아를 나왔다. 그들은 가마를 타고 포정사사로 향했다.

* * *

허칠안이 포정사사에서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붉은 피풍을 입은 대인이 왔다. 이자는 소박한 용모에 반짝반짝 생기가 도는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중‧노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염소수염을 기른 모습에서는 위엄이 풍겼다.

그는 기개가 넘치는 대인이었다.

‘가슴에 수놓은 금계(錦鷄)……. 2품 고관이다. 포정사는 종2품인 듯해.’

허칠안은 의관만 알아봤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다만 기개 넘치는 이 붉은 피풍이 아마 청주의 포정사이자 운록서원의 대유, 자신의 송별시에 무임승차한 자양거사라는 점을 추측해 냈다.

자양거사는 장 순무와 읍을 올리며 인사한 뒤 검은색 차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가슴에 법기 동라를 동인 허칠안을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이때 그는 도리어 흥분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그는 온화함 속에 위엄을 내비쳤다.

‘……생각해 보니 이 동라가 허신년의 사촌 형이라고 했지……. 외모만 봤을 때는 형제 둘이 전혀 닮은 점이 없군……. 신년과 비교했을 때 좀 차이도 나고 말이야…….’

양공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바로 허칠안?”

허칠안은 황급히 읍했다.

“소직 맞습니다.”

“내 앞에서는 지나치게 조심할 필요 없네. 학생이라 자처해도 되네.”

양공의 얼굴에 미소가 점점 번졌다.

“역시 훌륭한 인재로군. 신년에 지지 않아.”

‘자양거사가 안목이 아주 좋군…….’

허칠안이 기뻐하며 말했다.

“대인, 과찬이십니다.”

양공은 한 차례 인사치레를 한 후, 경성의 근황을 물었다. 설령 그가 서원의 전서를 통해 어느 정도 내막을 이해하기는 했더라도 말이다.

‘허칠안을 데리고 방문한 일은 역시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포정사 대인이 이런 태도일 리 없지…….’

장 순무는 탄식하며 말했다.

“경성의 정세는 혼란하고 당쟁은 여전히 치열합니다…….”

그는 즉시 상백 사건부터 공부상서의 운주 사건까지 다 이야기했다.

자양거사는 들으면서 냉소가 끊이지 않았지만, 장 순무가 자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조당의 정세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만약 허칠안만 이곳에 있었다면 그는 직접적으로 얘기했을 터였다.

해가 지자 자양거사는 격조 높은 뜰에서 연회를 베풀어 장 순무를 초대했다. 강율중도 참석하라는 초청을 받았고, 이외에 청주 지부 등 고관들도 참석했다.

* * *

관원들은 등불이 환하게 켜지고 장막이 아래로 드리워진 뜰 안에서 관례대로 앉아 술을 든 채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

교방사에서 데려온 악대와 무희가 추운 정원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며 대인들의 흥을 돋웠다.

사실 최초의 교방사는 순수한 문화 오락부였다. 관리 사회의 술자리에서 전문적으로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 점차 관청에 주최하는 기원으로 변천했다.

연회의 중심인물은 포정사 양공 및 순무 장항영이었다. 강율중은 비록 능력이 뛰어난 금라지만 야경꾼과 문관은 천성적으로 적대 관계라 그를 상대하길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허칠안은 본래 자신도 마찬가지로 여유롭게 즐기면서 관리 사회의 접대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누가 알았겠는가.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수놓아진 붉은 피풍의 관원이 허칠안을 향해 잔을 들며 떠보았다.

“이 작은 대인이 ‘소영횡사수청천, 암향부동월황혼’ 시를 지은 자인가?”

청주 지부가 물을 때, 다른 관원들은 대화와 음주를 멈추고 미소를 머금은 채 이쪽을 지켜보았다.

‘크면 크고 작으면 작은 거지, 크면서도 작은 건 여의봉인데…….’

허칠안은 속으로 이 4품 관원이 자신을 부른 호칭을 비아냥거렸지만, 겉으로는 미소로 답했다.

“소직 대인이라는 호칭은 과분합니다. 그 시는 소직이 지은 게 맞지만요.”

‘아, 역시 그였군…….’

모든 관원들은 문득 깨달은 눈치였다.

그들은 막 허칠안의 이름을 들었을 때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 이름이 귀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러모로 생각해 보니 이 이상한 동라의 신분도 조금은 짐작이 갔다.

허칠안의 몇 수가 후세에 전해질 만한 명작이라는 말은 세상에 널리 퍼졌다. 관리 사회와 유림에서는 그의 명성을 굳이 알리지 않았지만,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 한 주(州)의 고관으로 암암리에 알아보았다.

오죽하면 포정사 대인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달려왔을까.

《면양정에서 양공을 송별하다-청주행》은 이미 강남, 강북에 두루 퍼졌다. 이 대유가 막 관직에 취임하자마자 이 명작이 선봉을 맡았으니 그 화합을 잘 이용했다고 할 만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눈앞에 있는 허칠안이라는 이 동라 덕분이었다.

“말씀 많이 들었소. 역시 훌륭한 용모에 뛰어난 인재구려.”

청주 지부가 하하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는 거리낌 없는 자태로 치켜세우는 말을 했다. 과연 사람을 띄우는 수준이 아주 뛰어났다.

‘과찬이십니다, 과찬……. 뭇사람 중의 훌륭한 인재일 뿐만 아니라 남자 중에서도 훌륭한 인재죠.’

허칠안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위치를 바꿔서 자신이 이슈가 된다면, 사람들이 혐오하는 관리 사회의 접대가 단숨에 생동감 넘치고 재미있어질 터였다. 그리고 이 상황이 계속 이렇게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청주 지부는 술을 다 마신 뒤 주인석의 포정사 양공을 곁눈질로 힐끗 보았다. 이 대유는 술책과 능력이 전부 일류였기에, 이때는 압박감을 주는 관리의 위엄을 거두고 편안한 태도를 보였다.

이 순간 청주 지부는 갑자기 골치 아픈 경계비가 떠올랐다. 사실 시사를 쓰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간단하고 눈에 띄며 깊이 생각하게끔 할 수 있으니까.

다만 시재를 얻기 어려워 고려하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허칠안이 오지 않았는가.

아주 때맞춰 잘 왔다.

‘허칠안 이 자는 시적 재능이 출중하지……. 포정사 대인이 마침 비문으로 고민이 많아 우리까지도 골치 아프지 않은가……. 이 재주꾼이 우리를 대신해 머리를 써줄 수 있을까? 음, 포정사 대인 역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명색이 한 주(州)의 고관으로 체면 때문에 말을 꺼내기 곤란할 수 있다…….’

청주 지부는 머리가 잘 돌아갔다.

지부 대인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

“허 대인이 경성에서 지은 걸작이 또 있소?”

그는 본래 되는대로 묻고 만약 상대가 핑계를 대며 없다고 하면, 이 기회에 허칠안을 몰아세우고 관원들과 연합해서 약을 올리며 그가 이 자리에서 시를 짓게 부추긴 후 자연스럽게 ‘제목’을 제시할 셈이었다.

이 같은 수법은 술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은 방식이었다. 평소에는 이를 술을 권하는 데 썼다면, 지금은 시를 짓는 데 쓰니 목적만 다를 뿐이다.

‘……또 내 시에 무임승차하고 싶니?’

허칠안은 ‘없다’라고 발뺌하고 싶었다. 그런데 장 순무가 한 발 앞질러 말을 가로채더니 웃으며 말했다.

“정말 있네.”

자양거사를 포함한 자리에 있는 관원들이 흥미진진해하며 돌아봤다.

지식인 중에 시사를 잘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장 순무는 수월하게 이슈를 되찾아 왔고,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웃으며 말했다.

“허나 반 수밖에 없네. 경성에 퍼진 지 오래되지 않아 다들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거라 확신하네.”

“엇? 반 수뿐이라고?”

“순무 대인 빨리 말씀하십시오. 소직 귀담아 듣겠습니다.”

관원들은 반 수라고 해서 무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점점 더 궁금해했다. 이 반 수는 분명 최고로 뛰어난 작품이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반 수만으로 어떻게 경성에 널리 퍼질 수 있겠는가.

좋지 않다면, 순무 대인이 모두의 앞에서 이 말을 꺼낼 가치도 없었을 터였다.

‘반 수라…….’

양공은 저도 모르게 허칠안을 쳐다봤고, 다시 장 순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장 순무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위엄을 세운 뒤에야 모든 이를 돌아보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취후불지천재수(*醉后不知天在水: 술에 취하면 하늘이 물속에 있다는 것도 모르네), 만선청몽압성하(*滿船淸夢壓星河: 조용한 꿈에 가득 찬 배가 은하수로 인도하네).”

이때 마침 춤사위가 끝나면서 음악 소리가 서서히 사라졌다.

술자리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모든 관원은 이 반 수를 음미했다. 그들은 부귀영화를 고려하지 않고 득실을 따지지 않는 속세를 벗어난 초연한 소탈함이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듯한 기분에 잠겼다.

그들은 한껏 취한 후 검은 돛단배에 누워 머리 위의 은하수를 바라보았다. 칠 척 단신의 몸이 다른 은하수와 맞대고 있으니 소탈한 기운이 저절로 생겨났다.

어떤 이는 취한 듯 넋이 나가 고개를 저었으며, 어떤 이는 저도 모르게 뜰 안의 작은 연못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새빨간 연꽃이 자라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연못이 너무 작았다.

자양거사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 시는 그 구상이 심원하네. 근 200년 본조의 시사 전성기라 해도 되겠어. 훌륭해, 훌륭해.”

그는 연거푸 석 잔의 술을 마셨다. 술로써 시와 함께하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다 마신 후 그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허칠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시가 유명한가?”

‘쒯…… 너 한 번 한 걸로는 부족하니? 이 몸은 존엄도 없단 말인가?’

허칠안은 그의 얼굴에 탄산수를 뿌리고 싶었으나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자양거사는 좀 실망하여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취한 듯 넋이 나가 혼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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