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다 (2)
위 공자는 우주 지부(知府)의 조카였다. 그는 경서를 많이 읽은 서생으로 용모가 뛰어나며 기품이 넘쳤다.
홍수는 고운 비단 치마로 갈아입고, 머리에는 옥비녀와 금보요를 했다. 그녀는 그렇게 화려한 차림을 한 채 주실(酒室)로 들어와 사뿐하게 인사를 올렸다.
“홍수, 공자님들을 뵙습니다.”
그녀는 자연스레 흰 피풍 차림의 위 공자 곁에 앉았다. 젊은 선비가 격앙된 문자로 천하를 논하는 일이야말로 그녀가 좋아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럴 때면 일면식은 없지만 명성이 자자한 경성 제일의 명기가 매우 부러워지곤 했다.
얼마나 운이 좋길래 재능이 출중한 서생을 만나 시를 선물 받고 후세에 길이길이 전할 수 있었을까.
“방금 경성 대인 몇 분이 오셨는데 야경꾼인 듯했어요.”
홍수가 위 공자에게 술을 따르고는 이 얘기를 꺼내면서 웃었다.
“누가 그러던데, 경성의 부향 기녀가 그의 정부랍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는 지식인들이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정말 재밌군. 부향 낭자가 어찌 저속한 무사를 마음에 두겠나?”
“위 형이 보름 전에 경성에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부향 기녀의 꽃다운 자태를 보셨습니까?”
“부끄럽네, 부끄러워. 다도회에 세 번 갔었지만 부향 기녀는 한 번밖에 보지 못했네.”
흰 피풍의 위 공자가 말을 마치더니 무언가에 매료된 표정을 보였다.
“암향부동월황혼……. 이름 그대로 절세미인이네.”
한 귀공자가 바로 물었다.
“부향 기녀에게 사귀는 자가 있는가?”
위 공자가 문득 깨달은 듯 말했다.
“몇 가지 일이 떠오르기는 하네. 그날 다도회에서 내가 술손님과 한담을 나눴는데 그가 말하길 부향은 손님을 맞지 않은 지 오래라고 했네. 매일 다도회의 손님이 끊이지 않는데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기 위함이지. 하지만 어느 한 사람만이 영매소각을 빈번하게 출입한다고 하네……. 음, 부향의 뜰을 영매소각이라고 해. 이자가 바로 부향의 연인이라 들었네.”
자리에 있는 귀공자들은 마음이 동요했다.
‘그 ‘암향부동월황혼’을 지은 시인인가?’
위 공자는 개탄하며 말했다.
“그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모든 사람을 둘러보며 비밀을 공유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 자의 신분이 보통이 아니네. 이 시가 세상에 널리 퍼져 대봉 유림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왜 시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심지어 언급하는 이도 없다니. 자네들이 보기에는 이상하다지 않은가?”
이 말은 모든 이의 호기심을 끌어당겼고 추측이 거듭됐다.
“신분이 민감하여 말을 할 수 없나?”
홍수 기녀는 눈을 반짝이며 옆에서 귀를 기울였다. 그 시인의 신분이 가장 궁금한 건 바로 그녀였다. 그는 교방사의 여자를 환골탈태시킬 수 있는 재주꾼이었다.
동행자들은 이러쿵저러쿵 잠시 토론을 나눴고, 위 공자가 손으로 저지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자의 정체는 지식인이 아니라 야경꾼이네.”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이가 크게 놀랐고, 이내 문득 깨달은 듯했다.
어쩐지 유림은 그 시인의 신분을 조금도 퍼뜨리지 않았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잊어버리기로 선택한 이유는, 알고 보니 그가 지식인이 아니라 야경꾼이어서였을지 모른다.
‘야경꾼이라…….’
무심코 던진 말에 홍수의 마음이 갑자기 가라앉았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름이 뭔가요?”
위 공자는 곁눈으로 미인을 쳐다본 뒤 말했다.
“허칠안, 자는 칠안이네.”
쾅……! 술잔이 탁자 위에 떨어졌고, 바닥으로 미끄러지면서 깨졌다.
모든 이가 잇달아 홍수를 쳐다봤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시선이 멍해진 이 미인은 마치 생기가 없는 종이꽃 같았다.
실의에 빠진 모습의 홍수는 갑자기 탁자 위에 엎드리더니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상태로 그녀는 슬픔에 겨워하며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모든 사람의 기회는 다 다르다. 놓치면 놓친 것일 뿐,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홍수 낭자는 단숨에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탓에 숨이 찰 만큼 울었다. 아마 그녀는 며칠이 지나야 이 이치를 깨닫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시름 속에서 자신을 달래야 할 것이다.
홍수가 이렇게 울음을 터트리자, 공자 일행도 다도회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위 공자와 그 일행은 교양 있는 지식인답게 홍수를 원망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그들은 도리어 그녀더러 잘 쉬라고 위로했다.
위 공자 일행은 홍수를 떠나보낸 후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교방사 같은 곳은 본래 사교와 접대의 장소니까.
미인이 옆에 있으면 금상첨화였으나 없어도 무방했다.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 됐다.
“방금 야경꾼이 다도회에 왔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위 공자는 마음이 동하면서 자세한 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곁에서 술시중을 드는 여종에게 물었다.
“방금 홍수 낭자가 말하길 그중에 부향이 그의 정부라고 자칭하는 자가 있었다던데?”
“있었던 듯합니다.”
여종이 말했다.
위 공자는 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는 술을 더 마시는 대신, 진지하게 여종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 동라의 이름이 무엇인가?”
“공자님, 저는 모릅니다.”
여종이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말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아서 모르지.’
다른 귀공자들은 모두 총명했다. 그들은 방금 전 홍수 낭자의 이상한 태도와 이 상황을 연관 짓다가 깜짝 놀랐다.
“그, 그 허칠안이 우주에 왔는가?”
강운사 사건은 오늘 발생한 일이라 우주에는 아직 퍼지지 않았다. 이 서생들 중에는 위 공자만이 관리 사회 배경이 있었는데, 이 일을 잘 파악하려면 하루 이틀은 지나야 했다.
“내일 역참(驛站)에 좀 가 봐야겠군. 만약 그 야경꾼이 역참에 머문다면 한 번 찾아가 보지 않을 수 없지.”
* * *
역참에 왔다!
마차가 속도를 줄여 역참 밖에 멈췄다.
장 순무는 마차에서 내렸고, 진지한 표정으로 수행하는 강율중과 함께 역참으로 돌아갔다. 때는 이미 보름달이 높이 떠 있는 밤이었다.
장 순무는 다소 먼 곳에 있는 마구간을 쳐다봤다. 말 몇 필만이 그곳에 묶여 있었다. 그가 역참에 들어가 역졸(驛卒)에게 물었다. 그 결과 그는 야경꾼들 대다수가 바깥으로 놀러 나가 역참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 순무는 가뜩이나 마음이 무거웠으므로 분노에 차 말했다.
“황당하기 그지없구나. 나는 황명을 받들고 있는데 어찌 이리 태만하고 향락만을 탐한단 말인가.”
강율중이 웃으며 말했다.
“배에서 오랫동안 참았으니 긴장을 좀 푸는 것도 인지상정입니다. 순무 대인께서 무사하시니 다른 이들은 어찌해도 상관없지요.”
두 사람이 계단을 올라가자 캄캄한 복도 맞은편에서 잠방이 차림의 사람 하나가 걸어왔다. 그는 추운 날에 어깨를 감싼 채로 몸을 벌벌 떨었다.
강율중은 야간 관측 능력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주시하며, 갑갑한 마음에 물었다.
“자네 무슨 꿍꿍이인가.”
“방금 냉수로 목욕했습니다.”
교방사에서 묵지 않은 허칠안이 대답했다.
“그래서?”
“이곳은 남쪽입니다.”
그는 두서없이 한마디 내뱉은 후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의 감각을 찾는 중입니다……. 강 금라와 장 순무께서 돌아오셨군요. 다른 이들은 교방사에 묵으러 갔습니다.”
장 순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망설임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자네는 어째서 교방사에서 묵지 않았나?”
강율중이 허칠안을 주시했다. 그가 알기로는 이놈도 꽃밭 전문가니 말이다.
“은자와 관련된 거래는 전부 저속하고 죄악이지요. 이런 행위를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허칠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마치고 곧바로 멀어져 갔다.
강율중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놈 과음한 거 아니야? 얼토당토않은 소리만 늘어놓다니. 게다가 연정경의 무사는 더위와 추위를 느끼지 않는데 춥고 배고픈 척을 하다니.’
* * *
허칠안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일부러 몸을 떠는 자신의 모습을 즐기며 재빠르게 침상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이불을 말아서 자신이 한랭하고 습한 남방에 사는 척했다.
지리적 위치로 보면, 우주가 바닷가 근처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방 지역이다. 경성의 살을 에는 추위와 달리 우주의 추위는 피부에 닿아 모공을 파고든다.
허칠안은 이 때문에 전생에 남방에서 생활하면서 한겨울에 목욕할 때 뜨거운 물을 틀지 않은 채 비누칠을 하면서 벌벌 떨던 상황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목욕을 다 하고 옷을 입을 때면 입다가 콧물이 흘렀다.
애석하게도 연정경 무사는 신체와 정신이 강인하여 공연히 추워하는 일이 없었다. 설령 냉수에 몸을 담근다 해도 기껏해야 차다고만 느낄 정도였다.
허칠안은 이불을 몸에 휘감은 채 편안히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 * *
콩 같은 촛불이 해 질 무렵의 모호한 빛에 아른거렸다.
장 순무는 탁자 앞에 앉아 붓을 들고 접본에 글을 썼다.
“신이 우주를 지나치던 중 본의 아니게 횡령 사건을 감지했습니다. 우주의 조운 관아 강운사 엄해가 현지 파벌 황기방에 호선위대를 살해하고 철광을 독직하여 몰래 운주로 운송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신이 우주 조운 관아의 침선(沈船) 권종을 살펴보니 10년 동안 배가 침몰한 횟수가 총 43건이며, 이백만 근의 철광을 잃었는데 그 수가 어마어마하여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적(國賊)이 소리 소문 없이 대봉 황제의 보좌를 노리며 악랄하게 착취하는 데에 치가 떨립니다.
우주 한 주(州)에서만 10년 동안 이백만 근의 철광을 잃었습니다. 대봉의 열여섯 주(州)를 합하면 얼마나 방대한 액수가 될까요? 소신 폐하께 청합니다. 대봉 각 주(州) 조운 관아의 돈선 전복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전(前) 공부상서가 무신교와 결탁해 암암리에 운주 비적의 난을 도와 반역을 꾀할지 모릅니다. 이외에 동라 허칠안은 매우 기민하고 능력이 출중해 나라의 기둥입니다. 이번에 돈선 사건을 적발한 것도 이 자의 공이 가장 큽니다. 운주행의 위험성을 헤아릴 수는 없으나 소신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 나라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바칠 것입니다.”
* * *
이튿날 해 질 무렵, 일행은 우주를 떠나 계속해서 배를 타고 운주로 향했다.
허칠안은 낮에 호분위와 야경꾼 동료들을 데리고 성에서 제철 채소, 술, 식량 등의 물자를 샀다.
조운 관아 장부에 올렸으니 공짜로 산 셈이었다.
그날 밤, 배의 취사부들이 흠차 대오에게 풍성한 저녁 식사를 차려 주었다. 허칠안은 배불리 잘 먹은 후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토납하였다.
“칠안, 자네 어제 우주 교방사의 기녀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으니 정말 아쉽겠군.”
송정풍이 동료를 대신해 안타까워했다.
“이봐, 그 홍수 낭자는 우리처럼 저속한 무사를 무시한다고.”
허칠안이 말했다.
“그건 자네가 신분을 드러내지 않아서야. 만약 자네가 그녀에게 ‘암향부동월황혼’을 지은 재주꾼이라고 알렸다면 그녀가 잠자리를 하겠다고 달려들었을걸.”
송정풍이 대답했다.
허칠안은 좀 답답했다.
“기왕 이렇게 얘기할 거면 자네가 왜 나 대신 얘기하지 않았는가?”
송정풍이 냉소를 지었다.
“개자식, 이 몸이 질투해도 모자를 판에 자네 대신 명성을 떨쳐 주고 자네가 또 기녀와 자는 걸 눈 뜨고 지켜보라는 말인가?”
“자네도 매일 풍류를 즐기지 않는가.”
“같은가?”
“불 끄면 다 똑같네.”
“불을 부는 거겠지.”
송정풍이 정정했다.
‘등잔불은 부는 건데 불을 끈다는 건 무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