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원신의 한계
‘불문을 멸하지 않으면, 천하가 다 불문이 될 것이니 내 목숨 바쳐 불문과 단절된 길을 걸을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지?’
허칠안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오: 어쩌면 민심을 고무시키는 선전일 뿐일지도.]
‘오호 추측 잘했어!’
허칠안이 웃었다.
[일: 아닐세. 유가의 3품은 입명경이네. 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은…… 절대 우스갯소리가 아니야. 사호의 말 덕에 나는 세부적인 일들이 더 많이 떠올랐네. 두중서(杜中書)라고 하는 그 재상이 불문을 멸한 뒤 그는 3품 입명경에 이르렀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입명’이 바로 멸불인 것이지.]
‘불문을 멸한 뒤 3품 입명경에 이르렀다고?’
허칠안은 장진, 장 대유가 우연히 그에게 언급했던 정보가 떠올랐다. 유가의 입명경은 ‘인생의 목표를 찾는’ 과정이라서 입명이라고 칭한다고 했다.
‘<입명>은 필연적으로 밝고 힘찬 목표다……. 불문을 멸한 뒤 입명경에 이르렀다니 이거 아주 재미있군……. 확실히 멸불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목표라는 걸 설명하는 건가?’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하며 문자를 보냈다.
[삼: 입명경은 불문에서 대망을 비는 것과 유사하네. 불문을 멸함으로써 입명경에 이르렀다는 건 멸불이 옳은 일이었다는 걸 의미하지.]
모든 사람이 유가 서생 삼호의 진술을 이상하게 여겼다. 불문을 멸하지 않으면, 천하가 다 불문이 될 것이다……. 이는 어쩌면 우스갯소리가 아닐지도 몰랐다.
배후에 더 깊은 내막이 연관되어 있다면, 이 일은 ‘땅따먹기’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터였다.
한참 동안 말하는 이가 없었다. 다들 이 일 배후에 감춰진 진상을 생각하는 듯했다. 이호가 십여 분이 지난 뒤 말했다.
[이: 삼호, 이번에 운주로 가는 순무 대오에 고수가 얼마나 있는가?]
[삼: 표면적으로는 금라 한 명뿐이지만, 이면적으로는 모르네.]
‘한 명일 뿐이다? 단어를 잘 선택했군…….’
이호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무릇 야경꾼 관아를 잘 아는 자라면, 금라가 4품 무사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4품 무사는 전장에서 하나같이 천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최고봉 고수였다.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는 ‘의(意)’가 응집한 4품이 최고봉이었다.
더 위로 올라가면 3품이 있었다. 하지만 3품은 끊어진 지체(肢體)를 다시 살리는 능력이 있어 더는 보통 사람이라 볼 수 없었다.
‘……내 대오에 나까지 포함한다 해도, 4품 금라와 맞서면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결말일 것이다.’
이호는 탄식했다.
한참 동안 말이 없어 교양 없는 채팅 친구들이 오프라인 상태인 게 확인됐다. 허칠안은 그제야 거울을 거두고 방을 나왔다. 갑판 가장자리에 서서 강을 향해 방광의 부담을 쏟아 냈다.
그런 뒤 그는 허리띠를 잘 매고 방으로 돌아왔다.
* * *
이튿날, 날이 어슴푸레 밝았다. 허칠안이 깨어나서 좌우를 둘러보니 두 명의 동료가 기기를 운행하며 연기를 토납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아주 열심이군. 매일 이렇게 원기가 충만하다니…….’
허칠안은 몸을 일으켜 앉아 기지개를 켰다.
정신력, 기력, 체력 삼위가 하나가 되어 기기가 상‧중‧하 세 개의 단전에 가득 찼을 때 정신력이 뛰어오른다. 이는 관상할 수 있다는 걸 의미였다. 또한 연신경을 돌파할 준비를 하는 셈이기도 했다.
허칠안의 기기는 일찍이 단전에 가득 차 곧 넘쳐흐를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는 나날이 지속한 관상 덕에 정신력도 날이 갈수록 뛰어올라 계기만 생기면 연신경에 이를 수 있었다.
허칠안은 이 계기가 어떻게 오는지 아직 몰랐다. 위연도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는데 이는 허칠안의 수련 정진이 이렇게 빠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중시하는 동라가 아직 기기를 운행하는 단계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주광효와 송정풍은 허칠안이 깨어난 걸 눈치채자 토납을 멈췄다. 이내 주광효가 말했다.
“운주 여정을 마친 후에 관아에서 상으로 은자를 주면 나는 장가들 은자를 충분히 모을 수 있다네.”
주광효에게는 소꿉친구인 여동생이 있다. 당연히 친여동생이 아니라 이웃집 여동생이었다. 두 사람은 정이 두터워 서로 눈이 맞았다.
하지만 여동생의 아버지가 주광효에게 은자 일백 냥의 예물을 가져오지 않으면 어림없다고 엄포를 늘어놓았다.
주광효는 월봉이 다섯 냥이었으며, 부수입까지 더하면 일 년에 대체로 팔십여 냥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접대도 해야 하고, 일상적인 지출에 기루에도 가야 했다……. 하여 매년 삼십여 냥 정도 저축할 수 있었다.
이미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기루에 가서 하는 소비도 비탄력 수요에 속했다. 보통 사람조차 수요가 있는데 하물며 혈기 왕성한 무사는 어떻겠는가.
‘씨…… 너 너무 열내지 마. 너 같은 사람 나 전생에 TV에서 숱하게 봤어…….’
허칠안은 눈을 뒤집어 깠다.
“축하하네, 축하해. 광효, 자네 조만간 가정을 꾸리겠구먼.”
송정풍이 말을 마치고 허칠안의 허리춤에 걸린, 흰 연꽃이 수놓인 자색의 고운 향낭을 힐끗 보며 말했다.
“칠안, 부향이 선물한 것인가?”
“아니네!”
허칠안은 그가 향낭을 떼도록 내버려 두었다.
“너 이 자식 약혼녀가 있는 건 아니겠지?”
송정풍이 그의 실눈을 살짝 뜨고 시샘하여 말했다.
“아니네.”
허칠안이 향낭을 빼앗아 다시 누웠다. 이내 그는 자색의 향낭을 코끝에 매단 채 곡조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단지 내 여동생이네. 여동생이 자색은 아주 정취가 있다고 말했지.”
“칠안은 왜 장가들지 않는가?”
주광효는 궁금해했다.
그의 눈에 비친 허칠안은 위 공의 총애를 받을 뿐만 아니라 폐하에게 황금 천 냥을 하사받았으니 앞날이 창창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장가들어 아이를 낳을 나이가 되었다.
“그는 나처럼 한량이야.”
송정풍이 평가했다.
“꺼져, 우리는 다르네.”
허칠안이 침상에 누워 두 손으로 뒤통수를 베며, 탄식했다.
“좀 더 적응해 보고.”
그는 대봉에 온 지 3개월째라 아직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또한 완전히 적응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교방사에 빠져 부향의 따뜻한 미소에 빠진 것이다. 그는 아직 장가들어 가정을 꾸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주광효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조언했다.
“자네가 미래의 아내에게 바라는 바가 뭔지 알아야 해.”
“바라는 바라…….”
허칠안이 읊조렸다.
“큰 물결에 긴 머리 여자(*大波浪长头发: 표면적인 의미는 큰 물결에 긴 머리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슴이 크고 잘 노는 긴 머리의 여자를 뜻함).”
“자네 그 바라는 바가 아주 이상하구먼.”
송정풍이 눈살을 찌푸렸다.
허칠안이 그를 보며 말했다.
“이건 바라는 바가 세 가지인 셈이네.”
* * *
허칠안은 세수하고 양치질을 한 후, 아침밥을 먹고 강율중의 방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
강율중이 탁자에 앉아 운주 지도를 보며 물었다. 매의 눈처럼 날카로운 그의 눈빛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주었다.
“수련 관련 문제로 강 금라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허칠안이 간식을 집어 입에 넣으며 물었다.
“어떻게 연신경으로 승급하셨습니까?”
예전의 허칠안은 이 점에 관해 차례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터득하리라 여겼다.
그는 상응하는 정도까지 수련이 쌓이면 자연스레 연신경으로 승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저채미가 연금술사로 승직하기 위한 요구 조건을 들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무사 체계를 되돌아보다 연정경에서 연기경으로 승직할 때도 ‘동정을 떼면 안 된다!’라는 요구 조건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강율중은 웃으며 말했다.
“간단하네. 자네의 정신력이 일정한 정도까지 강해졌을 때 양미간이 부풀어 통증을 느끼는데 그때가 바로 자네가 연신경으로 승직하는 때이네. 승직하는 방법에 관해서라면 음, 열흘간 잠을 자지 않는 것이네.”
‘잉? 열흘간 잠을 자지 않는다니 진심이야? 급사하지 않을까?’
강율중이 망연자실한 표정의 허칠안을 보더니 설명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네. 열흘간 잠을 자지 않고 버텨야 연신경으로 승직할 수 있네. 버티지 못하면 가볍게는 의식이 불명해지고, 심하게는 신경 쇠약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지. 무사 체계의 모든 품계는 하나하나가 사활을 건 시험이네.”
“……왜 열흘간 잠을 자지 않아야 합니까?”
허칠안은 궁금해했다.
“자네가 연정경일 때 틀림없이 육신의 한계를 자주 마주했을 것이네. 매번 한계를 뛰어넘을 때마다 체력이 증가했을 것이야. 그럼 자네는 원신의 한계를 아는가?”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자지 않는 것이네. 열흘은 단지 대략적인 기준일 뿐이네. 사람마다 한계는 다르니까 말이야. 앞으로 자네가 연신경으로 승직하려면 자네는 절실하게 터득해야 할 것이야.”
“몸이 못 버티지는 않겠죠?”
“그래서 연정과 연기도 연신을 위해 기초를 닦지 않나. 또한, 자네가 평소에 하는 관상 역시 원신의 강도를 가다듬는 것이야. 마찬가지로 연신경으로 승직할 수 있는 확률을 높여 주지.”
강율중은 말을 마치고 허허 웃었다.
“자네는 아직 이르네. 무사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생스러운 길을 가겠다는 의지야.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서도 안 되네.”
“강 금라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허칠안은 긍정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이미 연기경 전봉입니다.”
그는 믿기 어렵다는 눈빛으로 허칠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가 그렇게 몇 초 동안 쳐다보더니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농담하지 마시게. 자네가 야경꾼에 들어왔을 때 연정경이었다고 기억하는데 3개월도 안 돼서 연기경 전봉에 오르는 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사실이 아니지?”
허칠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금라께 이걸 뭐 하러 묻겠습니까. 음, 저는 먼저 물러가 보겠습니다.”
허칠안이 강율중의 방을 떠났고, 금라 대인은 홀로 탁자에 앉은 채 중얼거렸다.
“이건 말이 안 돼.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위 공, 그도 아는 건가?”
* * *
어느덧 6일이 지났다. 허칠안의 생애 처음으로 배를 타고 먼 항해를 한 소감은 ‘뭐 같다!’였다.
송정풍이 갑판 위에서 맥없이 강을 멀리 내다보았다. 그러다 그는 지나가는 조운 선박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이면 우주(禹州)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네. 강 금라께서 우리에게 하루 쉬도록 허락해주었으니 이 몸은 토할 때까지 생선을 먹겠네.”
“우주(禹州)는 철광이 많이 나기 때문에 부유하기로 유명하고 인재도 많이 배출되지. 틀림없이 미인도 생기발랄할 거야.”
한 동라가 맞장구쳤다.
허칠안은 우주(禹州)의 미인이 생기발랄한지 아닌지는 관심 없었다. 그는 빨리 배에서 내려 맛있는 한 끼를 먹으러 가고 싶을 뿐이었다.
엄동설한의 계절에 채소와 과일은 본래 부족했다. 하물며 그들은 물 위에서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매끼 생선을 먹었더니 그는 지금 생선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고, 거식증에 걸릴 것 같았다.
이때 허칠안은 난간에 엎드린 채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려, 정면에서 오는 관선 한 척을 힐끗 바라보았다.
갑판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하급 관리가 몇 명 있었는데 그들도 마찬가지로 허칠안이 있는 이 관선을 주시했다. 하급 관리들은 갑판 위에 야경꾼 제복을 입은 동라 몇몇을 보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그런 후, 재빠르게 마음을 다잡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했지만, 이쪽으로는 다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우리를 본 후 정신없이 당황하는 건 제 발 저린다는 뜻인데……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한 것처럼 보이지만 곁눈질하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더 켕기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연스레 야경꾼을 두려워하는 건가?’
노련한 형사 허칠안은 속으로 의심스러워하고 있었다.
맞은편 관선 위의 하급 관리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그가 심리학을 공부할 때 배웠던 가장 고전적인 심허(心虛)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