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81화 (181/712)

181화. 일호의 신분? (1)

허칠안은 그다음으로 강율중의 추측을 인정했다.

어떤 살해 수법도 분명한 흔적을 남기는 법이었다. 단서를 남긴다는 게 아니라 직관적이면서도 사람들이 봤을 때 그자는 ‘살해된 것’이 명확하다는 인상을 남길 터였다.

설령 그가 뛰어난 수법으로 영혼을 때려 부쉈어도, 죽은 자는 굳어지거나 두려워하는 안면 특징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사람을 마치 자는 것처럼 죽이는 건 도문과 무신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는 아주 간단한 추리였다.

“대인께서는 저희가 운주에 도착한 후 어떻게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허칠안이 겸손하게 가르침을 청했다.

그도 사건 수사에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관리 사회에서의 교제 활동은 문외한이었다.

“주민은 경험이 풍부한 첩자로 중요한 증거를 곁에 남기지 않았을 것이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가 은밀하게 숨겨 놓은 증거를 찾는 것이네. 이 점은 허 대인 자네가 중‧고수이니 그때 가서 많이 신경 써 주길 바라네.”

순무 대인이 정중하게 말하면서 허칠안의 업무 능력에 신뢰를 보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칠안은 문득 한 가지 문제가 떠올라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양천남은 운주 도지휘사라 군권과 정권을 장악했는데 그를 몰아세우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되면 저희가 먼저 공격을 받아 제거될 것입니다.”

병권(兵權)을 장악한 관원과 경성의 관원은 달랐다. 경성의 육위, 3대 금군영은 모두 황실이 장악하고 있어 문관은 근본적으로 항쟁할 힘이 없었다.

하지만 명색이 한 주의 도지휘사, 그것도 병권을 장악한 도지휘사를 어느 누가 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이네. 나와 강율중이 중간에서 중재하고 처리할 테니 그때 자네가 실행 명령을 듣기만 하면 되네.”

장 순무가 부담을 이어받았다.

“운주에 도착해서 제가 어쩌면 조력자를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조력자?”

장 순무는 의심하는 말투였다.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시죠.”

허칠안이 단언하기는 어려웠다.

장 순무는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 대인, 대인께서는 운주를 얼마나 아십니까?”

허칠안이 숙고하며 말했다.

“제가 가리키는 건 비적의 난입니다.”

장 순무는 약간 망설이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운주가 비주로 불리는 것도 이유가 있네. 이는 역사에 한 획을 그었지. 오백 년 전의 ‘청군측’에서 비롯되네…….”

허칠안은 무종 황제가 황위를 찬탈한 역사도 원래 몰랐다. 하지만 그도 상백 사건을 겪으면서 좀 알 수 있었다.

“그해 무종 황제가 군사를 이끌고 경성을 공격했지……. 이후 신속하게 각 주를 평정했지만 운주에서 수비 장수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네. 당시의 운주 도지휘사는 한 명장이었는데 용병술에 능하고 더욱이 수비에 능했지. 아무리 무종 황제의 책략이라 해도 한순간에 운주를 함락시킬 방법이 없었네.

양군이 대치하여 수년간의 장기전을 치렀고, 백성들은 안심하고 생활할 수가 없었네. 백성들은 빈고에 시달렸고 차라리 산속으로 들어가 산적패가 되었지. 운주는 산맥이 아주 많아 수비에는 용이하고 공격은 어렵네. 게다가 토지가 비옥하여 산적들이 자생할 수 있는 온상이네. 무종 황제가 운주를 수복하고 난 후에야 이미 운주 곳곳이 산적투성이라는 사실을 알았지.

수년간의 고전을 거듭하면서 대봉군의 사기가 꺾여 비적을 토벌할 힘이 없었네. 무종 황제는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철수시키고 조정으로 돌아왔고, 국력을 재정비한 후에 숙청할 계획이었네. 그 후에 조정에서 몇 차례 비적 토벌단을 조직해 보냈지만, 매번 거대한 사상자만 나올 뿐이었지. 게다가 운주 도적 떼를 한 무리 없애면 다시 한 무리가 나타났어. 봄바람이 불어오면 다시 생겼고, 결국 조정의 중범인 강호의 불순분자 낙원으로 변했네.”

장 순무는 개탄하며 말했다.

“고질병은 없애기 어렵네.”

‘알고 보니 역사적으로 남은 문제였군……. 이런 일은 개국 황제가 해결하지 않으면 후대 황제가 다시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첫째로 능력이 미치지 않고, 둘째로는 향락에 안주하기 마련이니까.’

허칠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이해했음을 알렸다.

세 사람은 한참을 교류한 뒤 각자 떠났다.

* * *

허칠안은 방으로 돌아오자 아니나 다를까 시끄럽게 굴어 주광효와 송정풍을 또 깨웠다. 연기경 고수는 오감이 예민하여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도 놀랬다.

그러나 두 동료는 개의치 않고 금세 달콤한 잠에 빠졌다.

허칠안은 자는 대신 등잔에 불을 붙이고 탁자에 앉아 옥석경을 꺼냈다.

[삼: 이호, 내가 방금 소식을 접했는데 조정에서 순무를 운주로 파견했다고 하네.]

한밤중에 단체 채팅방에 문자를 보내는 일은 사실 좀 도덕적이지 않았다. 지서 채팅방의 구성원들은 진동 소리에 깨 각자 다른 감정을 품은 채 지서 파편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오: 삼호, 자네 얄미워 죽겠네. 한밤중에 내 잠을 방해하지 마시게.]

남강의 소녀가 문자를 보내 항의했다.

다른 이들은 문자를 보내지 않았고 묵묵히 정탐했다.

[이: 제당과 관련이 있는가?]

[삼: 똑똑하군. 야경꾼에서 도지휘사사에게 심어 놓은 첩자가 운주 도지휘사 양천남이 은밀히 산적을 지원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네. 군수 물자를 보내고 화근을 길러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한 거지. 참, 이 양천남이 바로 운주에 있는 제당 대변인이라네.]

[이: 불가능해. 나는 양천남이 제당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내가 아는 건 그는 절대로 화근을 길러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산적에게 군수 물자를 수송할 자가 아니네.]

‘이호의 반응이 좀 격렬한데……. 그녀가 양천남과 서로 아는 사이고 사이도 좋은 편인가?’

허칠안은 자신이 장 순무 앞에서 단언하지 않은 일을 다행으로 여겼다. 하마터면 말을 번복할 뻔했다. 그는 동시에 자신이 운주에 도착하면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남몰래 경계했다.

우선 이호가 누구인지 확실시한 후에 그녀(그)와 양천남의 관계를 관찰한다. 이호가 나쁜 놈인지 평민인지 확인한다.

[사: 불가능할 일은 없네. 공부상서가 실각했으니 인계받을 누군가가 나와야 하지 않겠나. 이호, 자네 생각해 보게. 제당과 무신교가 결탁하여 암암리에 산적을 돕는데 그들이 천 리 밖에 떨어진 경성에서 일을 처리하려면 대변인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양천남이 제당의 사람인지 증명하기만 하면, 그는 절대 결백할 수 없을 것이야.]

[이: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네. 양천남은 그런 자가 아니네.]

‘……이호가 이렇게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던가? 여인이려나? 편견으로 빗대어 보자면 여인은 감정적이고 주관이 강하지.’

허칠안은 속으로 빈정댔으나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이호가 만약 여권사(女拳師)라면 지금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터였다.

[오: 삼호, 자네는 왜 항상 그렇게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자네, 정보를 사서 파는 중개인인가?]

오호는 참지 못하고 비아냥거렸다. 그녀는 좀 맥이 빠졌다. 자신은 어렵사리 고신이 회생한다는 정보를 ‘팔아서’ 모든 이가 자신에게 빚을 하나씩 지게 했다.

하지만 삼호는 시도 때도 없이 단체 채팅방에 비중 있는 정보를 마구 팔았다.

오호의 이런 영양가 없는 말에 모든 이가 손발을 맞춰 무시하기로 했다.

허칠안은 문자를 보내 비아냥거렸다.

[삼: 에이, 이 소식은 일호가 진작 알았을 걸세. 일호가 자네들에게 알리지 않은 건가? 쯧쯧, 일호 자네가 잘못했네.]

일호는 꾀가 많은 편이었다.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항상 가장 음흉하고 가장 으슥하다.

[일: 꺼지게.]

허칠안은 본래 일호가 상대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반응이 이렇게 격할 줄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는 입을 떼기만 하면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내가 일호의 미움을 사지는 않았잖아?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빈정댄 건데 이렇게 반응이 격할 필요가 있나?’

허칠안은 다소 망연해하면서도 좀 화가 나 일호에게 대꾸하지 않은 채 문자를 보냈다.

[삼: 이호, 만약 자네가 믿지 못하겠다면 조정의 순무가 도착한 후에 그들과 협력하여 함께 조사해볼 수도 있네. 만일 양천남이 누명을 쓴 거라면 그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좋네.]

그는 이렇게 이호를 작전 차량에 탑승시켰다! 허칠안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맞다, 원경제는 몸 상태가 어떠한가?]

[삼: 아주 좋을 걸세. 이건 왜 묻나?]

[이: 쳇, 도존무한(道尊無限)이군. 늙은 황제가 어쩜 아직도 죽지 않는 것인가.]

‘도존무한? 이호는 염세주의자군. 나는 점점 그(그녀)의 신분이 궁금해진다. 만약 네가 벼슬아치임을 안다면…….’

허칠안은 ‘헤헤헤’하고 세 번 소리를 냈다.

허칠안은 이호와 성공적으로 ‘인사를 나눈’ 뒤 이번에 단체 채팅방을 연 두 번째 목적을 떠올렸다.

[삼: 맞다, 내가 자네들에게 상백 밑 봉인물의 실체를 말하지 않은 것 같네.]

‘상백 밑 봉인물의 실체?!’

이번에는 천지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둘째치고, 오호조차 졸음이 싹 가시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 * *

상백 사건이 끝난 후 그 일에 연루된 육호도 경성에 있는 삼호, 일호 및 구호 금련 도사도 모두 봉인물의 어떠한 정보도 천지회 내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단지 육호가 야경꾼 관아의 지하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후로 이 사건에 관해 발설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모두들 육호가 불문 출신이라, 육호가 야경꾼 관아에 대해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여겼다.

사실 육호는 이 마음 아픈 일을 다시 언급하길 원치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금련 도사는 방관자 같았다.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이끄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가끔 대화에 참여할 뿐이었다.

일호는 정탐하는 걸 좋아하며 생각이 깊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에 희망을 품지는 않았다. 그(그녀)는 침묵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오늘 드디어 결국 삼호가 이 일을 허심탄회하게 공개하여 얘기를 나누길 원하는 날이 왔다.

‘……상백 사건은 야경꾼이 처리했다. 설령 야경꾼 내부에서도 일급 기밀이라 해도 삼호가 이제야 말하는 이유는 아마 그가 최근에 상백 사건의 경위를 진정으로 파악하고 그 속의 은밀한 비밀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겠지.’

사호는 본능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삼호는 정보를 공유하길 원하는 자다. 그는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지식인으로 양천남을 의심하는 것도 그가 분석한 정보에 근거했기 때문이지, 개인의 호불호가 섞여서가 아니다.’

이호는 마음속의 불만이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 자네가 이 정보와 교환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오호는 무의식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이 멍청한 놈아!’

사호와 이호는 동시에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삼: 보수는 필요 없네. 명색이 천지회 구성원으로 매번 득과 실을 따질 수는 없지. 이번 정보는 여러분에게 무료로 알려 주겠네.]

‘내가 이 일을 언급하는 이유는 신수 승려의 신분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여기서 한 몫 챙기는 건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닌 것 같다……. 음, 다음번에 진귀한 정보가 있으면 돈을 받을 거야.’

허칠안은 속으로 덧붙였다.

‘삼호는 정말 대범하다. 나는 종일 정보를 팔 생각만 하는데…….’

오호는 부끄럽게 생각했다. 이어 그녀의 마음속에 한 가지 의혹이 스쳤다.

‘하지만 이게 바로 삼호가 먼저 시작하는 방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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