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77화 (177/712)

177화. 바둑

위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밀서가 경성에 전해진 후 그 첩자가 아무런 까닭 없이, 소리 소문 없이 죽었네. 그의 진짜 신분은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로 경리사(經曆司)의 경리(經曆) 중 한 명이지. 사람이 죽었으니 증거도 캘 방법이 없네. 내가 이미 이 일을 폐하께 아뢰었고, 폐하께서는 도찰원의 순무(巡撫)를 운주로 보내 이 일을 조사하라 명하셨네. 자네가 할 일은 순무를 잘 보호하고 증거를 찾는 것이야.”

허칠안은 난처해하며 말했다.

“왜 제가 운주를 가야 합니까?”

‘별로 내키지 않는데…….’

위연이 말했다.

“이 일은 강율중이 책임진다. 자네도 따라가 경험을 쌓으시게.”

허칠안은 순간 마음이 놓였다.

“한 가지 더 있는데요……. 위 공, 치킨스톡은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쉽게 갈증이 나니 요리사에게 음식을 만들 때 좀 적게 넣으라고 하십시오.”

이는 위연이 방금 자신을 훈계해서 앙심을 품은 게 아니라, 좋은 마음에 일깨워 준 것이었다. 허칠안은 스스로 정말 아주 착하다고 생각했다.

위연은 아무 말 없이 입구를 가리켰다.

“소직,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허칠안은 즉시 자리를 빠져나왔다.

* * *

허칠안은 내일 경성을 떠나 운주로 먼 여정을 떠나야 했으므로, 즉시 관아에서 나와 집에 인사하러 갔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은자, 금자, 은표 등 귀중한 물품을 옥석경 안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숙부와 숙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순무 대인을 따라 운주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허칠안은 이렇게 자랄 때까지 경성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자연히 숙모조차도 참지 못하고 이번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에게 물건은 다 챙겼는지 묻고, 은자 말고도 옷과 일상 용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일렀다.

“내가 듣기로는 운주 그쪽에 장기(*瘴氣: 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한 기운)가 그득하고, 일 년 내내 장마라고 하더구나. 해독환(解毒丸)을 챙겨야 하고, 습기를 제거하는 고약도 좀 챙겨야 하는데……. 허칠안, 얘기하고 있잖니.”

숙모가 탁자를 내리쳤다.

“알겠어요, 알겠어.”

허칠안은 그녀에게 짜증을 내며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숙모가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그냥 알리러 온 것뿐이라고요.”

‘나는 전생에 남방 사람이었다고. 일 년 내내 낮은 체감 온도를 견디고, 온몸의 정기로 추위를 막았단 말이야. 남방의 으슬으슬함과 습함이 뭐라고…….’

허칠안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 * *

교방사, 영매소각.

침상이 흔들거리는 소리가 서서히 멈췄다. 허칠안은 두 팔로 받친 자세를 취한 뒤, 얼굴이 붉어진 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내일 경성을 떠나서 운주에 다녀와야 해. 며칠 뒤에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부향은 그 말을 듣더니, 바로 하얀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꽉 조이며 걱정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운주에 비적의 난이 아주 심해서 위험하다고 들었어요.”

“아무리 위험해도 조정의 땅이야.”

허칠안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부드러운 뺨을 꼬집었다.

“오랜만에 오신 건데 오자마자 이 일을 얘기하시다니요.”

부향이 원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나는 미인이 걱정할까 봐 그런 거지, 너를 홀대하는 게 아니야.”

허칠안이 말했다.

두 사람은 잠시 얘기를 나눴고, 이윽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 * *

허칠안은 교방사에서 나와 관성루에 가서, 자신이 운주에 간다는 소식을 저채미에게 전했다.

노란색 치마의 미인은 그 말을 듣더니 마음이 동요했는지 가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하지만 지금은 치킨스톡을 아직 개량하여 정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치킨스톡을 널리 보급하여, 이를 계기로 6품으로 승직해야 하기 때문에 경성을 떠날 수 없었다.

이번 여정에 분명 술사가 동행할 테지만, 허칠안은 사심이 생겨 부질없이 달려왔다. 그는 출장에 저채미를 데려가 여행하는 셈 치고 싶었다.

허칠안은 저채미를 데리고 갈 수 없어서 그녀가 고생해서 제련해 낸 치킨스톡을 챙겼다. 달걀형 얼굴을 지닌 노란색 치마의 미인은 화가 나서 관성루 밖까지 쫓아와 미친 듯이 말을 모는 허칠안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허칠안 이 개새끼!”

* * *

이어 그는 황궁에 가서 회경공주에게 회견을 요청했다. 그는 명색이 장공주의 맹우였으므로 응당 여정을 보고해야 했다. 또한 그는 그 김에 총명하기 그지없는 장공주와 운주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시위가 장공주의 대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공주마마께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돌아가세요.”

‘응? 나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어제 잘 얘기하지 않았나? 어제 잘 다뤄서 회경이 나를 더 중시해야 맞는데…….’

허칠안은 영문을 모른 채 떠났다.

허칠안은 누나에게 잔인하게 거절당한 뒤, 바로 돌아서서 동글반반하고 어여쁘면서도 다정한 임안을 찾아갔다.

임안은 황궁이 아니라 황성의 임안부에 있었다.

“실행력이 대단하군.”

* * *

허칠안은 즉시 방향을 바꿔 임안공주의 저택으로 갔다.

그는 임안의 요옥으로 황성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궁성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임안이 궁성에 없으니 오히려 더 잘된 일이었다.

얼마 후에 그는 임안의 저택 밖에 도착했다. 시위가 통지한 후 저택에 들어갔다.

허칠안이 걸으면서 보니 그곳에는 화원, 다락방, 소사(小榭) 심지어 공연하는 연극 무대까지 있었다. 그는 역시 임안이 황제가 총애하는 딸답게 기품 있다고 생각했다.

임안은 허칠안이 방문한다는 말에 아주 기뻐했다. 그녀는 정자에 앉아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궁에서 나오니 역시 훨씬 자유로워. 다만 저택에 있으면 너무 무료하지만 그래도 궁에 사는 것보다는 나아.”

그녀의 속뜻은 명확했다.

‘너 뭐 하고 놀 작정이야?’

‘나는 놀러 온 게 아니라, 작별인사를 하러 왔어…….’

허칠안이 말했다.

“제가 내일 경성을 떠나 운주에 갑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주마마와 약속한 일이 떠올라 작별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녀는 듣자마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실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그럼 내가 공주 저택으로 돌아와 사는 것도 헛수고 아닌가?’

그녀는 어머니가 길게는 3일 동안 바깥에 머물 수 있게 허락해서 은근히 신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는 이 동라가 자신을 데리고 내성에 놀러 갈 거라 짐작했다.

“그럼 소직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허칠안은 돌아서서 떠났는데 몇 걸음 가다가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임안은 적막한 화원을 배경으로 정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불처럼 빨간 옷 입어 아주 아름답고 고우면서도 굉장히 고독하고 쓸쓸해 보였다.

‘짜증나…….’

그는 속으로 불평하면서 되돌아갔다.

그러자 임안의 도화안이 갑자기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 그녀는 게슴츠레 그를 주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주마마 바둑 좋아하셔요?”

“아니.”

“왜요?”

“귀찮아.”

‘멍청해서 그렇겠지…….’

허칠안이 말했다.

“소직, 신선한 놀이를 하나 압니다. 공주마마께서도 해보세요. 무료하고 따분하면 궁녀들과 함께 하셔도 됩니다.”

임안이 입을 삐죽거리며 좀 실망한 듯이 물었다.

“이게 다야?”

‘이따가 너무 재밌어하지만 말아라.’

허칠안이 궁녀를 불러 바둑판을 가져오게 하더니 정자의 돌탁자에 두었다.

“둘째 공주마마, 제가 가르쳐 드릴 건 오목이라고 하는데요, 규칙이나 수법이 많지 않고 아주 간단해요. 세로든 가로든 비스듬히든 먼저 바둑알 다섯 개를 이어 붙이는 사람이 이겨요.”

“이렇게 간단하면 더 재미없어.”

임안이 고개를 저었다.

“서두르지 마시고, 저희 우선 한 판 두어요.”

허칠안이 태연하게 말했다.

“좋아.”

임안이 바둑알 하나를 집더니 ‘탁’하며 바둑판 중앙에 두고선 허칠안을 향해 새하얀 턱을 치켜들었다.

허칠안은 무작위로 두었다.

임안은 그렇게 바둑을 두다가 보니 이내 몸과 마음을 다해 몰입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탁탁탁탁 소리와 함께 날아갈 듯 바둑알을 두었다. 허칠안이 한 판 이겼다.

“다시 해, 다시!”

임안이 발을 동동 구르는 바람에 빨간색 치맛자락이 펄럭였다.

두 번째 판, 세 번째 판, 네 번째 판…… 임안은 계속해서 졌지만 오히려 둘수록 정신이 또렷해졌고 점점 집중했다.

그녀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이 바둑은 분명히 아주 간단하고, 두는 방식도 몇 가지뿐이었다. 그런데도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 바둑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도저히 헤어 나올 수도 없었다.

그녀는 지면 질수록 계속해서 하고 싶었으며 강렬한 투지가 불타올랐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바둑 고수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둑알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죽였다.

결국 허칠안은 일부러 한 수 져 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빠짐없이 일렬로 늘어선 오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선사했다.

“이겼다!”

임안은 기쁜 나머지 환호했다.

허칠안은 웃으며 모든 걸 장악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오목을 만약 회경공주와 했다면 회경공주는 순식간에 이기고, 코웃음을 쳤을 터였다. 너무 쉬웠으니까.

하지만 임안처럼 단순한 여자아이에게 오목은 아주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단순한 게임도 거대한 유입량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허칠안은 일찍이 게임에 빠진 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도일도(跳一跳), 연연간(連連看), 2048 등등.

한 번 하면 몇 시간은 기본이었다. 뇌에서는 끊임없이 말했다. 더 하면 안 돼, 더 하면 안 돼…….

몸은 참 성실했다.

“허칠안, 너 정말 대단해.”

임안이 가늘고 매끄러운 손으로 바둑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시도 지을 줄 알고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도 많이 할 줄 알고 말이야. 참, 그 시의 나머지 반수는 생각해 봤어?”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취후불지천재수(*醉后不知天在水: 술에 취하면 하늘이 물속에 있다는 것도 모르네), 만선청몽압성하(*滿船淸夢壓星河: 조용한 꿈에 가득 찬 배가 은하수로 인도하네).”

임안공주도 더는 묻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이 반수를 읊었다.

“정말 아름다워. 나도 언젠간 배에 누워서 하늘에 있는 무수한 별을 볼 수 있기를 꿈꿔. 내 곁이 무수한 별로 가득했으면 좋겠어. 그때의 나는 자유로울 수 있겠지.”

이때 그녀는 임안공주가 아니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여자아이였다.

“둘째 공주마마, 제가 공주마마께 치킨스톡을 드린 일을 장공주마마께 말씀하셨나요?”

허칠안이 불시에 물었다.

“아니.”

임안은 곱고 다정다감한 눈을 깜박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천진난만한 여자아이 임안에서 오만한 임안공주로 바뀌었다.

“아!”

허칠안은 다시 묻지 않았다. 그는 하늘을 보고서야 벌써 황혼이 되었음을 알았다. 황성은 이미 문을 닫아 나갈 방법이 없었다.

황성의 순찰은 은라들의 일이라 그의 요패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임안공주의 요옥도 마찬가지였다.

황성의 야간 통행 금지가 엄격하여 조정의 빙서(憑書)는 그 자체로도 얻기 어려웠다. 게다가 빙서는 통상적으로 며칠 전에 신청해야 했다. 바로 써서 바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황성 안의 관아 사람들은 진작 퇴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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