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75화 (175/712)

175화. 말하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당쟁은 양날의 검입니다. 폐하의 지위를 지킬 수도 있지만, 조정의 형세를 어지럽힐 수도 있죠. 당파가 많을수록 다툼은 격렬해지고, 장기화되면 정무를 돌보는 사람은 없어지겠죠. 다들 그저 머릿속에 온통 어떻게 음모를 꾸며 상대를 무너뜨릴까 하는 생각만 가득 찰 것입니다.”

허칠안은 말하면서 줄곧 회경공주의 표정을 관찰했다. 허칠안은 만일 그녀가 불쾌해하거나 반감을 드러낼 경우, 바로 멈추려 했다.

바꿔서 말하면, 허칠안은 가짜 역사학자의 지식으로 이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쌓았고 더욱 중시를 받기도 했다.

회경공주는 사서를 속독한 터라 눈을 가늘게 뜨고 일부러 떠봤다.

“바로 당쟁을 근절하면 영원히 뒤탈을 없애는 것이 아니야냐?”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조내무당, 천기백괴(*朝內無黨 千奇百怪: 조정에 당이 없는 건 괴이하다)입니다.”

‘조내무당, 천기백괴라…….’

회경공주는 이 말을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이내 그녀는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허칠안은 그 모습을 보고 즉시 말했다.

“소직 미천한 식견이 있사온데 장공주께서 듣고 싶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회경공주는 이 말을 듣자 앉은 자세를 슬쩍 바로잡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해도 무방하다.”

허칠안은 헤아리며 말했다.

“사실 폐하께서 조당을 상호 제어하시는 방식이 다소 적절치 않습니다…….”

회경공주는 눈을 가늘게 떴지만, 말을 끊지는 않았다. 그녀는 단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하여 허칠안은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조당을 상호 제어하려면 그렇게 많은 당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힘이 서로 필적하는 당파 3개만 있으면 되지요. 어떤 분야든 삼각형이 가장 안정적입니다……. 음, 혼인을 제외하고요.”

“삼각형?”

회경은 낯선 어휘를 들었다.

허칠안은 손으로 삼각을 만들어 보였다. 그러자 회경이 문득 깨달은 듯 말했다.

“이런 구조는 궁전 건축에 자주 등장해.”

‘장공주는 역시나 월등히 총명해…….’

허칠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만약 당파가 2개뿐이라면 그들은 몰래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겉으로야 섞이지 않는 기름과 불처럼 행동하겠지만 암암리에 의기투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만약 3개의 당파가 세력 균형을 이루며 대립한다면, 그들 사이에 이익이 일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조정의 형세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상호 제어하기에 용이할 것입니다.”

회경공주가 한참 동안 깊이 생각하더니 무언가 납득했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이내 그녀는 다시 재빠르게 웃음을 거둔 다음 도도한 자태로 되돌아갔다.

“운록서원의 대유가 자네는 학문을 즐기는 혈통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 본 공주는 자네가 시를 잘 쓰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고견이 있을 줄이야. 온 세상 서생 중 너처럼 할 수 있는 자는 손꼽을 정도야. 운록서원의 대유가 안목이 있네. 본 공주가 자네를 과소평가했어.”

‘아니, 그들도 내가 시를 잘 짓는다고만 생각하고, 너도 나를 과소평가하지 않았어……. 나는 키보드 워리어이니까. 국가 대사를 논하고, 악을 배척하고 선을 권하는 글은 내가 천하무적이거든.’

허칠안은 절제된 미소로 답했다.

“사실 당파가 너무 많은 것 외에도 조정에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전하, 미리 용서를 구하옵니다. 소직의 어휘 선택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회경공주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는 내 사람이니 문 닫고 얘기하자꾸나. 너무 많은 걸 고려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한랭한 연못처럼 차갑고 맑은 눈으로 허칠안을 지그시 응시하며 간절히 듣고 싶은 욕구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허칠안은 문득 안심이 되었다.

“폐하께서는 조당 제공들의 승직과 강등, 해직 등을 손쉽게 조종하실 수 있지만, 하층 관원과 하급 관리를 조정하실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후자의 경우 민생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흉이지요.”

이 문제는 회경공주의 허를 찌른 듯했다. 그녀는 대뜸 심각해져서 말을 가로챘다.

“본 공주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사실 대봉 하급 관리들의 폐해가 지금까지 누적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조당 당쟁이 격렬해지면서 관리가 소홀해진 탓이지. 한 마디로 싸우기만 하고 일은 하지 않은 셈이야. 둘째, 아바마마께서 도를 닦은 지 이미 21년이군. 조정에서 하층을 장악하는 힘이 심히 떨어졌고, 결국 하급 관리의 무법천지를 초래했지.”

회경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와 본 공주의 견해가 일치해. 본 공주도 이 문제에 대해 한두 번 고민한 게 아니지만, 해답이 없었다.”

‘황제도 아닌 당신이 이 일을 고민해서 뭐 하려고…….’

허칠안은 말했다.

“하급 관리에 관한 소직의 제안은 중앙 집권입니다.”

“중앙 집권.”

회경공주는 자기도 모르게 가르침을 청하는 말투가 되었다. 이 역시 낯선 단어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폐하께서는 조당의 정세를 확실히 장악하고 계시지만 그가 각 당의 혼란한 국면을 유지하시려면 상응하는 권력을 쥐고 계셔야 하는데 폐하의 권력은 지나치게 분산되었습니다…….”

허칠안은 이어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장공주의 지혜로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같은 맥락으로 어떻게 현상을 바꿀까? 결자해지라는 말처럼, 방탕한 황제 원경제가 돌아와서 부지런히 국사를 돌보든가 물러나든가 해야 한다.

허칠안이 말을 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계속해서 말하다가는 이 금기된 화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참을 더 얘기했다. 회경공주는 이 동라를 다시 봤고, 허칠안도 마찬가지였다. 이 공주는 총명할 뿐만 아니라 학식도 깊었다. 경전의 구절을 인용하여 그녀와 얘기하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힘겨웠다.

허칠안은 얼추 다 대화를 나눈 것 같아 작별을 고했다. 더는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정말 화제가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더 얘기했다가는 사회주의를 논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회경공주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눈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흥이 남아 있었다.

* * *

허칠안은 회경공주의 궁원을 나서서 임안을 찾으러 갔다. 그는 아주 빠르게 통지를 받고 시위의 인솔하에 저택으로 들어갔다.

현재는 사시 이각(*오전 9시 반)이었으며, 임안은 새빨간 치마 차림으로 궁녀와 제기를 차고 있었다.

허영음이 먹는 분야에 소질이 있다면 임안공주는 노는 방면으로 천부적인 소질과 비범한 재능을 지녔다. 현재 그녀는 무예를 연마한 허칠안보다도 제기를 더 잘 찼다.

그녀가 다리를 움직이니 새빨간 치마가 펄럭였다. 그리고 그녀의 늘씬한 다리는 마치 GPS를 단 듯 제기를 정확하게 받아 다시 허공으로 찼다.

‘이 시대의 치마는 과하게 보수적이다. 아래에 바지까지 입고 말이야…….’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읍을 올렸다.

“마마.”

그녀는 허칠안이 찾아온 걸 보더니 제기를 궁녀에게 차 버렸다. 그런 다음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말했다.

“사건이 다 끝나면 매일 와서 인사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황궁이라는 곳이 소직이 들어오겠다고 하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허칠안이 정자 쪽으로 걸어가자 임안공주도 따라왔다.

그는 여종이 건넨 땀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은 다음, 원래도 정교한 눈썹을 가다듬었다.

“본 공주가 요즘 출궁해서 놀고 싶으니 네가 함께하거라.”

임안이 땀수건을 여종에게 다시 건네고 손을 닦았다.

허칠안은 그녀를 슬쩍 쳐다봤다.

“싫습니다.”

임안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후레자식.”

두 사람은 또 매를 길들이는 행위를 시작했다. 임안공주는 자신의 어여쁘고 다정한 도화안으로 허칠안을 굴복시키려 했다. 하지만 허칠안은 동태눈으로 이에 맞섰다.

역시 그녀가 이번에도 먼저 패배를 인정했다. 그녀는 동글반반한 달걀형 얼굴로 주저주저하며 시선을 떼고 화를 냈다.

“만약 회경이라면 네가 절대복종했겠지?”

‘회경은 화를 자초하는 일을 하지 않겠지. 공주를 꾀어내 출궁하는 건 목을 잘릴 일이라고…….’

허칠안이 품속에서 도자기 병을 더듬어 꺼냈다.

“제가 최근에 만들었는데, 음식을 만들 때 좀 넣으면 맛을 돋울 수 있답니다. 치킨스톡이라고 해요.”

그는 임안공주 앞에서 비교적 제멋대로라 소직이라고 칭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둘째 공주는 지금껏 그런 점들을 개의치 않았다.

“치킨스톡……. 아주 이상한 이름이구나.”

임안이 해죽이 웃었다.

“또 은자를 다 쓴 게로구나? 본 공주가 네게 그림 한 폭을 더 하사하지. 음, 창고에 선물 받은 상아 붓이 있는데 듣자 하니 아주 값어치가 있다고 하더구나. 내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네게 주겠다.”

허칠안이 즉시 대답했다.

“마마, 오해하셨습니다. 소직은 상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소직은 공주마마를 위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임안은 감언이설을 좋아하는 터라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뭘 원하는데?”

“마마께서 은자로 환산하여 주십시오.”

“은자를 달라 해도 되는데…….”

임안은 손으로 턱을 괴고 빙그레 웃으며 그를 주시했다. 도화안은 흐리멍덩한 것이, 마치 사랑하는 남자를 쳐다보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본 공주가 답답하구나. 제기 차기는 질렸으니 네가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렴. 지난번의 그 서유기가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전하. 이번에는 삼차파초선(三借芭蕉扇)에 대해 얘기해 드릴게요.”

허칠안은 궁녀가 받쳐 든 차를 마시며 의례적으로 목을 축였다.

“어느 날, 당승과 사제가 화염산에 도착했는데 큰 불길이 치솟아 날려고 해도 날아갈 수 없었습니다. 토지공(土地公)이 손대성(孫大聖)에게 화염산의 불길을 끄려면 철선(鐵扇)공주에게 파초선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철선공주는 우마왕(牛魔王)의 아내입니다.”

“우마왕? 손대성의 의형제구나.”

기억력이 좋은 임안이 크게 소리쳤다.

“맞아요. 그래서 손대성과 우 부인 사이에는 남모르는 연원이 있습니다.”

“무슨 연원?”

“공주마마, 제 말을 끝까지 들어 주세요…….”

허칠안이 궁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정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궁녀는 얌전하게 떠났다.

허칠안은 바로 마음을 놓고 계속해서 말했다.

“손대성은 파초동(芭蕉洞)에 이르렀고, 철선공주는 친절하게 맞이했지만 파초선을 빌려주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입니다. 손대성은 벌레로 변해 철선공주의 배에 들어가서 말해요.

<형수님, 저 이미 형수님 안에 있어요.>

철선공주는 너무 아픈 나머지 바닥에서 뒹굴다가 굴복하고 맙니다. 손대성이 나오기만 하면 파초선을 바치겠다고 하죠. 손대성이 말합니다.

<형수님, 입 벌리세요. 이 몸이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마왕이 문밖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는 누굴 구했어?”

임안이 고민하며 말했다.

“하나는 결의를 맺은 의형제이고 하나는 머리를 쪽진 아내잖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네.”

“아니요, 우마왕과 철선공주는 헤어졌어요.”

* * *

그는 둘째 공주 저택에서 너무 오래 머물지 않았다. 허칠안은 오후에 순찰해야 했기에 작별을 고하고 나왔다.

임안공주가 몹시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허칠안, 내가 아바마마께 너를 입궁시켜 본 공주의 시위로 삼으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

‘네 시위가 되면 무슨 전망이 있다고? 진짜로 너를 위해 열심히 일하길 바라는구나…….’

허칠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마마, 소직이 그래도 좀 포부가 있사옵니다.”

임안공주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봤자 위연에게 충성을 다하여 얻는 것보다 전망이 있지 않다는 건 명백했다. 원경제가 임안공주를 총애하는 이유는, 그녀가 애교가 많고 순진하고 귀여우며 영악하지 않아서였다.

회경공주처럼 심복을 위로 올라가게 하고 싶으면, 상백 사건처럼 때를 잡아야 했다. 이는 다른 황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임안공주가 원경제에게 그의 죽을죄를 면해 달라고 청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때 허칠안은 원경제라는 인간을 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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