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치킨스톡
“궁에서 시중드는 궁녀가 말하길 어마마마께서 확실히 요즘 음식을 입에 잘 대지 않으신다고 하더군요.”
회경이 말했다.
“오랫동안 병을 앓은 후에 음식을 먹지 않으면 지병이 될 것입니다.”
위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회경공주 앞에서는 자신의 근심 어린 얼굴빛을 잘 감춘 채 신하로서 해야 하는 걱정만 드러냈다.
회경공주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전혀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았다. 깨질 듯 차가운 목소리에는 아주 묘한 질감이 있었다.
“마침 허 동라를 부르려 했는데 기왕 이곳에서 위 공을 마주쳤으니 저택의 시위에게 한 차례 더 다녀오라고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위연이 놀라서 말했다.
“마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요?”
회경공주가 말했다.
“허칠안에게 음식의 맛을 100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특제 비법이 하나 있는데 오랫동안 잊기 어려운 맛입니다. 어마마마께서 식욕이 없으시니, 때마침 이 비법을 한번 써 보면 좋을 듯합니다.”
* * *
허칠안은 자신의 돈주머니를 털어 송정풍과 주광효가 기루에서 노래를 듣게 해 주었다. 두 동료는 노래를 들으며 편안히 즐겼다.
이는 허칠안이 그들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더욱이 송정풍은 무려 은자 다섯 냥을 양생당에 기부한 참이었다. 그는 방탕하게 지내느라 가정을 이루지 않았으며, 생활 소비는 늘 뒷전이었다. 그러다 그는 교방사에 갈 돈이 없으면 근심이 생긴 듯 괴로워했다.
주광효와 송정풍은 기루를 나오자 매우 만족했다. 세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말을 타고 있는 한 동라에게 가로막혀 불평불만을 들었다.
“자네들 어디에 가서 한몫 잡는 건가? 한참 동안 찾지 못했네그려.”
“무슨 일인가?”
허칠안이 물었다.
“위 공께서 찾으시네.”
그 동라가 말했다.
그가 찾는 사람은 당연히 허칠안이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자신들의 무게를 알고선 선행을 잘 베푸는 동료와 손을 흔들고 작별했다. 그런 뒤 그들은 계속해서 거리를 순찰했다.
* * *
허칠안은 관아에 돌아와 호기루에 들어간 뒤, 탁자 가장자리에 앉아 독서하는 위연을 보았다.
대환관은 책을 내려놓고 말했다.
“회경공주마마께 자네에게 요리의 맛을 향상시키는 특제 비법이 있다고 들었네.”
‘회경이 이렇게 가십을 좋아했던가? 이런 작은 일도 여기저기 다 말하다니……’
허칠안은 잠시 깜짝 놀랐지만 즉시 대답했다.
“보잘것없는 재주입니다. 위 공께서 마음에 두실 가치는 없어요.”
“황후마마께서 근래에 식욕이 없고 몸이 허약하시다 하여 본좌가 자네의 요리법을 시도해 보고 싶네만.”
위연이 온화하게 말했다.
‘황후는 회경의 생모, 회경이 위연에게 내 치킨스톡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군…….’
허칠안이 문득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는 다실에 아무도 없는 걸 보곤 옥석경을 꺼내 뒷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윽고 머리 크기만 한 단지가 떨어져 나오자 그는 안정적으로 손을 뻗어 잡았다.
저채미와 송경의 노동의 성과가 모두 여기에 담겨 있었다. 그는 저채미에게 치킨스톡 한 병만을 남겼다.
위연은 단지를 열고 냄새를 맡더니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코를 찌르는 냄새를 맡았다.
“이건 치킨스톡이라고 합니다.”
허칠안이 과학을 보급하듯 말했다.
치킨스톡은 혼합산물로 그 핵심 성분은 조미료와 구아닐산이었다. 이 두 가지를 한데 합치면 서로 보완하여 효과를 발휘한다.
말하다 보니 치킨스톡이라는 단어는 심오하다고 할 만했다. 이 단어는 세 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눈앞에 보이는 조미료였다.
또한 닭이 요괴가 되었을 경우, 계정(鷄精)이라고 불리는 이 요괴를 가리킬 때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남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산물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위연은 뚜껑을 닫고 단지를 허칠안에게 돌려준 다음 하급 관리를 불렀다.
“주방장에게 국수 한 그릇을 삶으라고 일러라.”
허칠안은 이해하고 하급 관리를 따라 나갔다.
* * *
일각의 시간이 흐른 뒤, 허칠안은 달걀 고기 국수를 한 그릇 받쳐 들고 돌아와 위연의 탁자에 놓았다.
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가 한 입 먹어 독이 있는지 없는지 보게.”
“…….”
허칠안은 젓가락이 하나뿐이라 반대편으로 한 입 먹었다.
위연은 잠시 기다리다가 동라가 스스로 들고 온 국수에 독살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에야 젓가락을 들었다.
허칠안이 조그맣게 말했다.
“젓가락에 독이 묻었을지도 모릅니다.”
위연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화를 내며 말했다.
“꺼지거라.”
허칠안은 꺼지는 대신 입을 삐죽거렸다. 그는 위 아빠와 오랫동안 함께 했다. 위연은 진정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위연은 기를 다스리는 솜씨가 무서울 정도로 깊었다.
아니나 다를까, 위연은 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국수를 먹었다.
그는 쫄깃쫄깃한 국수를 음미했다. 국수의 식감이 좀 의외였다. 그는 처음으로 치킨스톡에 의해 미뢰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을 때는 눈이 번쩍 뜨였다.
“어떠십니까?”
허칠안이 기대에 차 물었다.
“아무리 주방장이 심혈을 기울여도 이런 맛은 내지 못하네.”
위연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는 궁 안의 진수성찬에 익숙해져 있었다. 입맛이 없는 것도 있지만, 궁 안의 요리에 싫증이 난 것도 식욕이 부진한 이유 중 하나였다.
허칠안은 위 아빠의 눈에서 찬양이 어려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위연은 상자에서 도자기 병을 하나 꺼내 허칠안에게 건넸다. 허칠안은 이를 받아서 단지 안의 치킨스톡을 도자기 병에 부었다.
그리고 그는 도자기 병을 위연에게 돌려주었다.
위연은 고개를 저을 뿐 받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단지를 보며 말했다.
“병은 자네에게 남겨 줄 것이야. 그게 내 몫이네.”
허칠안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 * *
해 질 무렵이 되어 궁녀가 맛있는 음식을 겹겹이 받들어 올리니, 짙은 음식 냄새가 실내에 가득 찼다. 하지만 황후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언짢아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본궁이 말했을 텐데, 맑은 죽 한 그릇만 준비하면 된다고.”
궁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 공께서 방금 특제 비법을 보내오셨습니다. 꼭 마마께 좋은 걸 만들어 드리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다른 궁녀가 희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드셔 보세요.”
그녀들은 이미 음식을 먹어 보았다. 이는 잊을 수 없는 색다른 맛이었다. 그녀들은 황궁에 여러 해 동안 살면서 모시는 주인들을 대신해 각종 산해진미를 다 먹어 본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이 오늘 먹은 음식은 전에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제 그녀들은 예전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이 그저 그랬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황후는 위연이 음식을 마련했다는 얘기를 듣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좀 내키지 않다는 듯 국을 한 그릇 뜨고 눈살을 찌푸리며 맛보았다.
강렬한 맛이 혀끝에서 터졌다. 꼬르륵……. 가늘고 긴 목 안의 목구멍이 구르면서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삼켰다.
이어 황후는 국을 한 입 먹고 또 한 입 먹었다. 그녀는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국물을 다 마셨다.
“본궁이 갑자기 좀 배가 고프구나. 밥을 퍼라.”
황후는 궁녀에게 그릇을 건넸고 식탁 가득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 *
이튿날, 묘시가 막 지났을 때 황후 궁의 태감이 금은 옥기 한 무더기를 챙겨 야경꾼 관아에 왔다.
위연은 호기루에서 환관을 접견했다. 이 자는 위연과 오래 알고 지낸 공공임이 분명했다. 그는 편하게 탁자에 앉아 위연이 직접 내린 차를 마시며 웃고 있었다.
“어디서 구한 비법이오? 황후마마께서 어젯밤에 아주 즐겁게 식사를 하셨소.”
위연이 그를 쳐다보며 다소 긴장한 듯 물었다.
“음식에 싫증내지는 않으셨소? 얼마나 드셨소?”
공공이 웃으며 말했다.
“전보다 많이 드셨소. 몸이 좋으셨을 때보다 많이 드셨지.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황후마마께서 처음으로 점심 식사가 무엇인지 물으셨다는 것 아니오.”
위연은 진심으로 웃었다.
* * *
허칠안은 오후가 막 지났을 즈음 회경공주의 부름을 받아 궁으로 갔다. 그는 밝고 깨끗한 아실에서 회경공주를 보았다.
그녀는 지난날과 다름없이 도도하고 고귀하고 아름다웠다. 요염한 외모만 아니었다면 공주 전하는 설산의 백련처럼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듯한 인상이었다.
“오늘 본궁이 어마마마와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네 그 비법이 좀 개량된 것 같더구나?”
회경공주가 물었다.
“모두 송 사형과 채미 소저 덕분입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회경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 공주도 그 맛이 좀 그리운데 어마마마가 인색하게도 주지 않으시더구나. 더 있느냐?”
“없습니다.”
허칠안이 즉시 고개를 저었다.
“음식이 가득 찬 단지를 위 공 편에 황후마마께 보내드렸습니다.”
사실 그에겐 작은 병이 하나 더 있었지만, 그걸 회경에게 줄 수는 없었다. 이건 임안공주에게 남겨 줘야 했다.
그의 마음속에 임안공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너무 소란을 피우는 스타일이라 그랬다. 황제의 내궁이 크든 크지 않든 치킨스톡처럼 신기한 건 조만간 임안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이건 상관없었다, 어쨌거나 이는 위연이 보낸 것이니까.
하지만 회경공주가 진정으로 이 음식을 ‘최초로 배포한 자’가 누구인지 알고, 회경이 이를 의뭉스럽게 여긴다면……. 그때 가서 임안은 질투에 눈먼 사람처럼 모든 화를 허칠안에게 쏟을 것이다.
어쨌거나 임안공주의 마음속에서 허칠안은 이미 개과천선한 휘하의 부하였으니까.
회경공주는 아름다운 눈썹을 살짝 찌푸리곤 말했다.
“허나 본 공주가 듣기로 위 공이 어마마마께 보낸…… 치킨스톡은 반 통이라고 하던데.”
“네?”
허칠안이 어리둥절해하며 회경을 쳐다봤다.
회경도 그를 쳐다봤고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위연, 이 조작은 좀 경솔했다……. 중간 상인이 뗀 수수료였다고만 하기엔 너무 과한데……. 하지만 이 역시 치킨스톡을 대량 생산하기만 하면 무조건 거액을 벌 수 있다는 걸 의미해. 내가 뜻밖에도 소박하면서 꾸밈없는 부잣집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역시 배워야 할 점이 있군요. 진작 알았더라면 괜히 저 혼자 만지작거리지 않고 사천감의 술사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저는 뒤에 앉아서 성과급만 챙길 걸 그랬습니다……. 안타깝게도 너무 늦었네요…….”
허칠안이 아무 말 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세은 사건부터 상백 사건 그리고 지금까지. 그는 너무 많은 조당 두령들에게 미움을 사서 이미 위연과 한 밧줄에 꽁꽁 묶인 채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수련과 위연의 보좌였다. 위연의 지위가 확고하고 권력이 커질수록 허칠안이 얻는 이득도 많아질 터였다. 그는 실질적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연금술에 쏟을 여력이 없었다.
‘……음, 시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나중에 한가해지면 다시 얘기해 봐야지. 지금으로선 우선 연신경에 이르러야 한다.’
회경은 차를 한 모금 마셔 입술을 적신 다음 아주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근래에 조당에서 각 당 사이의 다툼이 별안간 시들해졌다. 그 이유는 위연과 왕 재상이 손을 잡고 조당의 크고 작은 당파를 한 번 싹 정리하려 하기 때문이지.”
“이는 좋은 일이죠.”
허칠안이 눈을 반짝였다.
회경이 고개를 저었다.
“아바마마께서 저지하셨다. 조당 정세가 혼란스러워지면 그에게 유리하거든. 각 당파 간의 싸움이 격렬할수록 아바마마께서는 마음 놓고 도를 닦을 수 있기 때문이지. 만약 한 세력만 커지거나 두 세력이 대등해지면 조당의 정세는 아바마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테니까.”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회경이 나를 자기 사람으로 여긴다는 뜻……. 한데 어째 나를 너무 과신하는 듯하다……. 비록 내가 잘 핥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몇 번 핥지도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