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저택 귀신 출몰 (2)
어느덧 이틀이 지났다. 허칠안의 생활은 아주 평온했다. 그는 매일 거리를 순찰했으며, 수련하고 틈틈이 호기루에 가서 위연과 친분을 나눴다.
공부상서가 실각한 일로 각 당 사이에 싸움이 한풀 꺾였다. 그래서 당분간은 야경꾼을 겨냥하는 당파가 없었다.
이날 저녁 허칠안은 집에 돌아가 숙부가 계시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오늘 야간 순찰이셔.”
숙모가 대답했다.
‘교방사에 갔을 수도 있고…….’
허칠안이 속으로 빈정댔다.
숙부는 낮에 거리를 순찰하거나 밤에 거리를 순찰하는 어도위 백호였다. 때문에 업무의 성격이 야경꾼과 같았다. 만약 허칠안이 많은 사건에 계속해서 말려들면 그를 기다리는 것 역시 밤낮없는 근무일 터였다.
그래서 예전에 허칠안도 숙모처럼 숙부를 믿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저번에 교방사에서 숙부를 ‘우연한 마주치고’나서, 나중에 귤껍질로 향수 냄새를 제거하는 행위를 통해 내막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의 입은 사람을 속이는 귀신의 것과 같았다.
‘나도 숙부를 비아냥거릴 자격은 없는 것 같지만…….’
허칠안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
* * *
밤이 되었다. 허칠안은 갑자기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손을 뻗어 침상 머리맡의 흑금장도를 쥐었다.
그가 마당에 이르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영월의 여종과 땅에 떨어진 촛대가 보였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우물 어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바들바들 떨며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너 뭘 본 것이냐?”
허칠안이 나지막이 물었다.
뒤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허영월이 겉옷을 걸친 채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폈다.
동쪽에서도 숙모 방의 촛불이 켜졌다. 그녀는 녹아를 데리고 소동이 일어난 곳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니?”
숙모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사람이 많아지자 여종은 마음속의 공포가 많이 줄은 듯했다. 그녀는 우물 어귀를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 우물 안에 머리가 있어요.”
여러 비명이 한꺼번에 터졌다.
허영월은 안색이 창백해져 허칠안의 뒤에 움츠린 후, 그의 옷깃을 꽉 잡았다. 숙모도 두려워하며 다가왔다.
“너, 네가 분명히…….”
숙모가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마음에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귀신을 이미 몰아냈다며’라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이 일을 저택의 하인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됐다.
‘우물 안에 머리가 있다고?’
허칠안은 흑금장도를 단단히 쥐고는 여동생과 숙모에게 당황하지 말라고 손짓을 보냈다. 그러고는 느린 걸음으로 우물 어귀에 다가갔다.
‘우물 속의 원령은 확실히 제거했고, 도둑 소굴에 있던 귀신을 기르는 우물도 정화됐으니, 이치대로라면 원령 같은 게 다시 나타날 수는 없다. 설마…….’
허칠안이 성큼성큼 걸어가 우물 뒤쪽으로 돌아가니 아니나 다를까 콩알이가 우물가에 앉아 잠에서 덜 깬 채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있었다.
“뭐하니…….”
콩알이는 허칠안의 딱밤을 맞고 잠에서 깼다. 그러면서 콩알이는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너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허칠안은 속으로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배가 고파서 먹을 걸 찾으러 나왔어요.”
콩알이가 우물 어귀를 보더니 심란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잘 숨더라고요. 어린아이가 집 앞까지 왔는데도 나오지 않아요.”
아마도 여종이 본 머리는 허영음이 우물가에 엎드려 두리번거리는 모습일 터였다. 그는 배 속에 무언가 가득하여 게워 낼 수 없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 좀처럼 겪어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큰 오라버니가 부엌에 일러 간식을 가져오라고 할게.”
허칠안은 그녀를 안고 돌아갔다.
“영음?”
숙모가 깜짝 놀라며 버들눈썹을 치켜세웠다.
“너 이것아, 한밤중에 몰래 기어 나와서 사람 놀라게 만들기나 하고……!”
그녀는 그제서야 영음이 방 안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칠안은 언짢아하며 숙모의 포효를 끊고 말했다.
“영음이는 단지 배가 고픈 거예요.”
물론 그녀는 저녁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지만 그래도 배가 고팠다.
숙모가 당장은 기력이 딸리는지 ‘흥’하더니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커다란 눈을 부릅뜬 채 어린 딸을 째려보았다.
허칠안은 여동생과 숙모 그리고 여종들을 달래서 자러 가게 했고, 주방에 가서 간식을 좀 가져와 허영음을 배불리 먹였다.
콩알이는 따로 달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먹다가 잠이 들었다.
* * *
허칠안은 그녀를 녹아에게 돌려주고 방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잠을 청했다. 그가 잠이 들려던 찰나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큰 오라버니…….”
문밖에서 허영월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허칠안은 문을 열지 않은 채로 물었다. 한밤중에 오빠가 돼서 여동생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저, 저 잠이 안 와요. 무서워요…….”
허영월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덧붙였다.
“어머니도 잠이 오지 않는대요. 방금 녹아가 물어보니 어머니께서 저택에 귀신이 나온 일을 얘기하셨는데 얘기하다 보니 그 둘도 무서워졌나 봐요. 아버지도 집에 계시지 않으니 다들 잠을 청할 엄두가 나지 않나 봐요.”
‘다들 잠을 자지 못하는 거랑 내가 무슨 상관이지.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마작을 하며 밤이라도 새자는 말인가?’
허칠안은 당초 숙모가 자신을 거둬준 일을 회상하며 고마운 마음에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
“무서워하지 말렴. 저택에 귀신은 없어.”
허영월이 대꾸 없이 몇 초 망설이더니 말했다.
“큰 오라버니 저희와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
“같이 있어 달라고?”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안 되지. 만약 너만 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데, 악독한 숙모까지는 안 돼.’
“저도 과분하다는 거 알아요. 큰 오라버니는 내일 관아에 근무하러 가셔야 하잖아요. 하지만 어머니께서 저한테 꼭 큰 오라버니를 설득해서 문 앞을 지키고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허영월도 제대로 들여다보면 고약한 점이 있다. 그녀는 자기도 무서워서 잠을 못 자면서 어머니에게 책임을 돌렸다.
‘문 앞에서 지키고 있어라……. 숙부는 틀림없이 교방사에서 풍류를 즐기는 중이겠지. 그 처자식을 위해 문을 지키는 건 나고…….’
허칠안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했다.
“알겠어.”
* * *
그는 옷을 챙겨 입고 숙모와 여동생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특별히 흑금장도를 들고 나왔다.
“내가 밖에 앉아 있을 테니 얼른 자렴.”
허칠안이 손가락으로 방문을 걸었다.
“네, 큰 오라버니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큰공자님.”
방안에서 여동생과 녹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숙모는 고집스럽게도 아무 말이 없었다.
허칠안은 가부좌를 튼 채 좌선했다. 그는 기기를 운행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관상을 했다. 잠시 뒤 귓가에 숙모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지는 않겠지? 칠안이 자면 어떡하니?”
“……어머니, 쓸데없는 말 마세요. 큰 오라버니가 칼도 가지고 있다고요.”
숙모는 조카가 칼을 쥔 채 밖에서 지키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순간 마음이 한결 놓였다.
방안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고, 허영음의 코 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는 침대에 벌렁 나자빠져 입을 벌린 채 후하후하 단잠을 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한참 뒤 숙모가 소리쳤다.
“칠안?”
허칠안이 불쾌한 듯 답했다.
“저 여기 있어요.”
결국 그는 일정 시간마다 기침을 한 번씩 해야 했다. 방안의 여자들은 자성이 충만한 그의 기침 소리를 들으면 겁을 내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 이런 두려움은 자연히 잊힐 터였다.
그런데 얼마 뒤 숙모의 푸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월아, 너무 가깝게 붙지 마라. 덥다.”
“어머니!”
허영월이 억울하면서도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
숙모는 아무래도 딸을 아끼기는 하는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잠시 뒤,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영월아, 너 이미 다 커서 시집갈 나이란다.”
허칠안의 귓바퀴가 움직였다. 그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가만 듣자하니 숙모의 말투가 참 이상해서 제대로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여동생이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어머니, 저는 아직 어머니 곁에 더 있고 싶어요.”
“엄마가 네 나이였을 때는 이미 네 아버지와 가정을 이루었단다. 다른 집 아가씨들도 설령 시집을 가지 않았어도 이미 정혼을 했는데 너 좀 보렴?”
숙모는 말하면서 감정에 북받쳤다.
“네가 나이 들어서 시집가고 싶어도 가지 못할까 봐 그러지.”
허영월은 잠자코 있었다.
‘……사실 아직 괜찮은데. 17살이면 내가 있던 그 시대에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물론 학생들이 남자친구를 바꾸는 건 다른 일이지만.’
허칠안은 입꼬리를 올리다가 하마터면 자신의 빈정거림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문을 지키는 것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숙모가 다시 말했다.
“네가 큰애 옆에 사니 목욕할 때 주의해야 하는 걸 잊지 말거라. 무사의 눈과 귀는 예민하니 경계를 늦추면 안 돼.”
“어머니, 큰 오라버니가 제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본다는 말씀이에요?”
어둠 속에서 허영월의 눈이 번쩍거렸다.
‘안 그래, 그런 적 없어. 나 억울하게 하지 마……. 넌 동생이잖아. 게다가 난 교방사에서 부향과 같이 목욕하는데 몰래 훔쳐볼 이유가 없지…….’
그는 숙모가 전과 다름없이 악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니 몰래 수작을 부려, 그와 영월 사이의 순수한 남매의 정을 이간질하는 것이다.
“큰 애가 훔쳐보지 않으면 너는 아무것도 대비하지 않을 생각이니?”
숙모는 딸을 한 마디 나무란 후 고개를 돌려 방문 쪽을 쳐다보았다. 그런 뒤 그녀는 조카가 수시로 내는 기침 소리를 듣더니 안심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 *
허칠안은 밤새 한숨도 자지 않았다. 그는 기기를 토납하고 원신을 연마하여 동틀 무렵에도 여전히 혈기왕성했다.
그가 아침밥을 먹을 때 허평지가 돌아왔다. 허칠안은 군장을 맨 허평지가 손에 청귤을 들고 있지 않은 걸 보았다. 그제야 그는 숙부가 어젯밤에 교방사에 간 것이 아니라 정말 당직을 섰다는 사실을 믿었다.
“어제 영음이 밤중에 뛰쳐나와서 우물가에서 잤지 뭐예요…….”
숙모가 어젯밤의 일을 숙부에게 알렸다.
“저택에 칠안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걔도 없었으면 정말 귀신이 나와서…….”
겁쟁이 숙모는 말을 하다가 또 겁을 냈다. 순전히 자업자득이었다.
허평지는 조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영음이 한밤중에 우물가에서 왜 잔 것이냐?”
허칠안이 말했다.
“숙모가 귀신을 기름에 넣고 튀기면 어떠한 음식보다도 맛있다고 영음을 속여서 그래요. 영음이 몹시 먹고 싶어 했어요.”
“아.”
허평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어린 딸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딱히 놀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