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저택 귀신 출몰 (1)
백의를 입은 사람이 ‘허’하며 냉소를 지었다.
“자네의 태도를 보니 나를 모르는 것 같군. 경성에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그는 마치 도발하는 것 같다……. 이 자와 사귀기는 쉽지 않겠군…….’
항원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백의를 입은 자는 무시하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러더니 발밑에 진문이 퍼지자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그는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항원 승려는 숨을 내뱉은 다음, 팽팽한 근육을 느슨하게 풀고, 경계를 늦췄다. 이내 그는 망연하게 나뭇간으로 걸어 들어가 등불에 불을 붙이고 아이의 몸 상태를 검사했다.
호흡이 안정적이었으며 심맥(心脈)은 정상적이었다. 낮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는 이때 등불의 빛 덕에 아이 곁에 놓인 도자기 병과 약방 한 장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약방…… 백의…… 그는 사천감의 술사였군.’
그제야 항원은 그놈이 진찰하러 왔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원래 항원은 이 사실을 몰랐으니, 그가 남의 집에 찾아와 싸움을 건다고 여겼다.
항원 승려는 약방과 도자기 병을 잘 챙겼다. 그리고 그 백의가 진법사이며 4품 술사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허 대인이 4품 술사를 움직여 이 아이를 치료하게 할 수 있다니…….’
항원은 크게 놀라면서도 약간은 감동받았다.
* * *
송경은 밤사이 성공적으로 사형수를 보내 환생하게 했다. 그런 다음 그는 다크서클을 드리운 채 내려와 먹을거리를 찾아 끼니를 해결하려 했다.
그는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안 돼. 접붙이기는 인체에 사용할 수 있어. 예를 들어 손상된 장기를 교체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좀 더 미세하게 할 수 없을까? 예를 들면 절단된 사지를 재생한다든가…… 음, 이는 3품 무사만의 능력이지.
만약 내가 연금술로 그 불가사의를 연구해낼 수 있다면 천하가 놀랄 것이다. 허칠안도 말한 적이 있었지. 생물 연금술은 더 세밀한 기술일 거야……. 허나 사람의 육안으로는 티끌처럼 미세한 걸 볼 방법이 없는데…… 아, 있다! 내가 망원경과 유사한 물건을 제작할 수 있어.’
망원경은 이때 이미 존재하는 물건이었다. 유리를 발견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요철경(凹凸境)이 연구 개발됐다. 망원경은 군대에 많이 보급되어 통상적으로 일반 병사에게 배분된다.
정예 병사는 망원경을 정찰하는 데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연기경 이후에는 무사의 시력이 극도로 향상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력이 강할수록 오감도 강해진다. 망원경은 계륵과 같았다.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거지?”
송경이 코를 킁킁거렸다.
그가 맛있는 냄새를 따라 아래층의 부엌으로 걸어 내려갔다.
* * *
마침 저채미가 백의 몇몇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솥 안에서는 무언가가 끓고 있었다.
“어이구, 닭고기 탕이 있네. 채미 사매가 마음이 깊어.”
송경은 화로에 푹 삶고 있는 닭을 보자 단숨에 기분이 좋아졌다.
“저리 가세요.”
저채미가 그를 한바탕 나무랐다.
“이게 바로 허칠안이 제게 가르쳐준 연금술이에요. 만약에 성공한다면 온 천하에 맛있는 음식을 널리 퍼뜨릴 수 있어요.”
저채미가 치킨스톡과 조미료의 원리에 관한 설명을 마치자 송경이 잠시 읊조리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허칠안은 정말 기인이야.”
맞다. 이 역시 연금술이다.
약재에서 정수를 추출하여 단약으로 응고시킨다. 그런 다음 광석에서 철강을 추출하여 무기를 제조하고, 지금은 표고버섯에서 신선한 맛을 추출해 조미료를 제조한다.
이는 그와 그날 수업을 들었을 때 얻은 지식과 일치한다.
연금술은 아주 다양한 영역을 포함한다. 그 오묘한 이치는 바로 보이지 않는 것에서 무언가를 추출해 내는 데 있다.
“저는 그가 말한 조미료에 관해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그가 과정을 제시하는 대신, 곡물에서 추출한다는 원리만 간단하게 설명했거든요.”
저채미가 말했다.
“사형이 도와줄게.”
송경이 저채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새 저택의 수리는 이틀이나 앞당겨 끝났다. 허칠안은 관아에 휴가를 내고 숙부와 숙모를 도와 함께 이사했다.
숙모는 짙은 청색의 비단옷을 입고 같은 색의 상의를 걸친 채, 한 손을 허리춤에 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수건을 휘두르며 으스댔다. 그녀는 마치 군대를 이끌며 싸움을 치르는 장군이 하인에게 물건을 옮기라고 지시하는 듯했다.
만약 분위기가 평범한 부인이라면 이런 자태를 취했을 때 시정 바닥의 기운이 물씬 풍겨 사람들이 반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숙모는 서른 초반의 젊은 부인처럼 잘 가꾼 서른여섯 살에 아리땁고 정교한 얼굴, 매력적이고 유연한 몸매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 자세조차 아름다운 경치처럼 보기 좋았다.
허칠안은 그 곁에 있는 청아하고 수려한 미모에 이목구비의 입체감이 살아 있는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가 20년 뒤에 제 어머니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는 그녀가 어머니보다 한 수 위의 미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아, 영월이도 시집갈 나이가 됐네. 어느 자식이 운 좋게 이리 예쁜 여자아이에게 장가들지는 모르겠지만…….’
허칠안은 딸은 나이가 차면 시집 보내야 한다는 말에 개탄하며 숙부와 묵묵히 짐꾼 노릇을 했다.
마차를 넉넉히 고용해 두 번만 왔다 갔다 하여 저택의 물건을 다 옮겼다.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숙모가 내성에서 구입할 계획이었다. 마침 이 기회에 새로 바꿀 생각이었다.
저택을 허칠안이 샀다 해도 숙모와 숙부는 웃어른이었다. 그래서 동쪽의 안채는 두 사람이 살도록 내어 주었다.
허영월은 언제나 상냥한 사람이었지만, 뜻밖에도 방을 안배할 떄는 숙모와 언쟁이 났다.
세 채의 저택은 컸지만, 핵심적인 안뜰에는 사실 방이 한정되어 있었다. 객실과 저택의 하인들이 묵을 수 있는 구역에는 당연히 주인이 살지 않기 때문이었다.
숙모의 뜻에 따라 서쪽 사랑채와 연결된 방은 허칠안의 것으로 했다. 어쨌거나 그도 나중에는 장가를 들 테니까.
하지만 허영월이 염치없이 큰 오라버니와 맞닿아 살겠다고 했다.
숙모는 너처럼 다 큰 소저가 남자 형제와 이렇게 가깝게 지내려 들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냐고 말했다.
그러자 허영월은 갑자기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다가 어머니와 다투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도 서쪽 사랑채에 살기로 했다. 하지만 숙모는 신년의 방도 서쪽 사랑채로 배정했다. 그리고 숙모는 허칠안과 상의하여 그가 나중에 아내를 맞이하면 영월과 신년을 북쪽 방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허칠안은 이 결정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너무 가깝게 살면 그가 교방사에서 외박할 때 여동생이 눈치챌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가면 또 원망하겠지.’
허영음은 숙부와 숙모 방 안으로 배정받았다. 어린아이는 잠자리와 환경을 가리는 편이라, 어린 딸이 저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악몽을 꿀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동쪽 행랑채는 아주 커 세 개의 방이 이어져 있었다.
* * *
허칠안은 아주 빠르게 자신의 방을 꾸몄다. 그가 원래 살던 곳에는 장식품이 거의 없었기에 장식해야 할 물건이 많지 않았다.
그가 햇볕을 쬐러 방에서 나오니 혼자 우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허영음이 보였다. 허영음은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했지만 도망치지 않으려고 꾹 참고 있었다.
“너 뭐 하는 거니?”
허칠안이 물었다.
“큰 오라버니…….”
허영음은 능력이 뛰어난 큰 오라버니가 오는 걸 보더니 한시름 놓았다는 듯, 겁에 질린 채 우물 어귀를 가리켰다.
“여기에서 귀신이 나왔어요.”
“근데 우물 어귀에 쭈그리고 앉아서 뭘 하는 거야?”
허칠안은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귀신이 나왔다는 걸 알았으면 무서워서 멀리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우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계속 무서워하기만 하지?’
“언니가 그러는데 귀신은 어린아이만 먹는대요.”
허영음이 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녀는 갑자기 수상쩍게 굴었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뛰어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귀신한테 나오라고 속이는 거예요. 쉿…… 귀신이 들으면 안 돼요.”
“뭐라고?”
허칠안은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나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음식을 잘 아는 자가 바로 뛰어난 인물이구나.”
사람은 모두가 꿈이 있다. 허영음은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을 찾았다. 이 세상에 먹을 수 없는 건 없다. 다만 자기가 먹고 싶은지 먹고 싶지 않은지의 문제다.
맛있는 음식을 위해 자신을 미끼로 삼을 수도 있다니……. 이 결심과 끈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천재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 계속해서 노력하렴. 귀신을 꾀어내면 큰 오라버니가 네게 맛있는 걸 만들어 줄게.”
허칠안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허영음은 두려움과 동경이 섞인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 * *
황혼 전이었다. 온 가족이 새 저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주루에 특별실을 잡고 가서 더없이 만족스럽게 식사했다. 비록 그 맛이 계월루에 비하지는 못했지만 싸고 거리가 가까워 앞으로도 자주 외식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허칠안은 널찍하고 편안한 새 방에 누워 머리 위의 대들보를 바라보며 문득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이사한 일을 신년이에게 서신으로 알리지 않은 것 같은데?’
“됐어, 이 일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잠이나 자자.”
* * *
숙모는 허영음을 재우고, 동쪽 방의 침상 머리맡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관상하는 남편을 바라보다가 문득 걱정이 들었다.
“나리, 나중에 칠안이 장가들어서 집안을 관리하는 권한을 놓고 저와 다투지는 않겠죠? 우리한테 서쪽 사랑채로 옮기라고 하지는 않겠죠? 제가 듣자 하니 며느리들은 다 악독해서 항상 시어머니와 싸울 궁리만 한대요.”
숙모는 행복했다. 그녀는 숙부에게 시집갔던 그해 허씨 집안의 부모가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셔서 못된 시어머니의 압박을 받은 적이 없었다.
덕분에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어도 보고 들은 건 많았다. 더욱이 이 저택은 허칠안이 산 것이니 그녀는 ‘시어머니’로서 명분이 서지 않았다.
허평지는 눈을 뜨고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당신의 성질과 성격으로는 틀림없이 당해내지 못할 것이오.”
“흥!”
숙모는 대꾸할 말이 없어 툴툴거렸다.
허평지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칠안이가 나중에 어리석은 아내를 들일지도 모르는 일이잖소.”
숙모는 듣더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조카가 나중에 어리석은 마누라에게 장가들기를 남몰래 기도했다. 그러면 그녀가 며느리를 실컷 괴롭힐 수 있으니 말이다.
“맞다, 아직 우리 새 저택으로 이사했다고 신년이에게 서신을 쓰지 않았어요. 그는 이 일을 여태 모르니 외성에 갔다가는 우리를 찾지 못할 거예요.”
숙모는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이 일은 당신이 신경 쓸 필요 없소. 아는 글자도 몇 개 없으면서.”
허평지 역시 마찬가지로 글을 잘 모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숙모가 대답했다.
“칠안이 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