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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70화 (170/712)

170화.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한편 저채미와 회경공주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내려왔다. 장공주가 치맛자락을 계단에 끌고 가다 저채미를 쳐다보고 편하게 내뱉었다.

“너희는 어떻게 그 귀신 저택을 발견했니?”

저채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장공주의 말뜻을 깨닫고 경쾌한 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허칠안이 저택을 사려고 해서 제가 함께 풍수를 보러 갔어요.”

“그건 나도 안다. 내가 묻는 건 그 귀신 저택을 어떻게 발견했는지야.”

장공주가 물었다.

“공주마마 말씀이 이상한데요. 늙은 중개인이 저희더러 발견하게 했어요.”

저채미가 말했다.

‘늙은 중개인?’

장공주는 아름다운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순간 많은 것들이 떠올라 저채미를 떠봤다.

“그 늙은 중개인은 뭐가 특별한데?”

“아주 양심 있었어요.”

저채미가 사슴 가죽 허리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냈다. 그녀는 간식을 희고 보드라운 손바닥에 올려 두고 장공주에게 건넸다.

‘아주 양심 있다고?’

장공주는 손을 내저으며 먹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물었다.

“어떻게?”

“허칠안이 귀신 저택이 싸다고 생각하니까 그는 사달이 날까 봐 시종일관 저희를 말렸어요.”

저채미는 오히려 기뻐하며 작은 입에 간식을 쑤셔 넣었다. 회경과 친구를 하면 이렇게 좋았다. 그녀는 어떤 맛있는 음식도 뺏어 가지 않았다.

반면 허칠안, 그 밉살스러운 놈이라면 가짜로만 인사치레하면서 진짜 먹을지도 모른다.

“…….”

장공주는 오랫동안 잠자코 있다가 탄식하였다. 그녀는 이지적이지 못하게도 이 바보의 입에서 소식을 알아내려 했다.

이런 일은 시각 장애인에게 윙크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회경공주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녀는 친한 친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요즘 허칠안과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 같다.”

“그래요?”

저채미가 멍하니 되물었다.

“너 다른 남자와 이렇게 빈번하게 왕래하니?”

장공주가 덧붙여 말했다.

“사천감의 사형들을 제외하고 말이야.”

저채미가 생각해 보더니 뒤늦게 깨달은 듯 ‘아’하고는 말했다.

“그러네요. 그는 항상 방법을 바꿔서 저한테 놀자고 찾아와요.”

회경공주는 입을 오므린 채 생각에 잠겼다. 이때, 그녀는 은은한 냄새를 맡았는데 침 분비를 참을 수 없는 맛있는 냄새였다.

“와, 너무 냄새 좋다……. 어느 사형이 맛있는 걸 산 거지? 와우, 맛있는 냄새. 내가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야.”

저채미는 침을 삼켰다. 그녀의 두 눈에는 갈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 *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갑자기 부엌 안에서 나지막이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허칠안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그를 등지고 선 백의 술사가 보였다.

‘정신병인가, 진짜. 하마터면 놀라서 심장병 걸릴 뻔했네…….’

허칠안은 얼굴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오셨습니까.”

무미건조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는 마치 반평생을 알고 지낸 오랜 친구와도 같았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인생은 변화무쌍한 법이었다.

그 어리둥절해진 뒷모습 너머로, 역시나 나지막하고 무미건조한 어조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나 왔네.”

그는 말을 마치고 뒤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대답할지 좀 기대했다.

이내 긴 한숨이 들려오더니 그가 쉰 목소리로 개탄하며 말했다.

“생각지 못하게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대인께서는 여전히 중생을 등지는 걸 좋아하시는군요그래.”

‘중생을 등진다고?!’

단순한 한 마디에 백의의 뒷모습이 크게 움찔했다. 그에게서는 자신의 절봉 위에 있는 강자의 힘이 느껴졌다. 고독과 차가움 그리고 무적은 영원히 변치 않는 기조였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설령 이런 나라도 자네를 매료시켰나 보구먼.”

‘이마저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니……. 이 허세왕은 물건이다.’

허칠안은 울적해하며 말했다.

“이 화로에서 금단(金丹)을 아홉 차례 제련할 때 대인이 나서는 날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대인께서는 여전히 저를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군요.”

“흥, 보물은 덕이 있는 자가 차지하는 법이네.”

“허, 양 대인, 당신은 패배한 적이 있습니까?”

김이 모락모락 둘 사이에서 나부끼면서, 부엌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형세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때 낭랑한 목소리가 분위기를 깼다.

“둘이서 뭐 하는 거예요?”

저채미가 문 앞에 서서 멀뚱멀뚱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 냄비 안의 국수를 휘저으며 마음속에서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어색함을 감추려 했다.

그러나 양천환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뒷짐을 지고 섰다. 그는 모두를 등지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설령 사매가 자네를 위해 사정한다 해도 나는 절대로…….”

저채미가 말했다.

“양 사형이 부엌에는 뭐 하러 오셨습니까?”

양천환이 말했다.

“……아, 국수를 먹으러 왔네.”

저채미는 기분 좋게 부뚜막 옆으로 달려가 군침을 흘리며 냄비 속의 국수를 주시했다. 그러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밥을 안 먹었는지는 어떻게 알았대.”

‘내가 시간을 맞춰서 왔으니까 그렇겠지…….’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약속했잖소이까. 국수 삶아서 드리겠다고.”

마침 냄비 안에 있는 면이 익었다. 허칠안은 뒤에 분홍색 치마 차림의 미인을 바라보며 떠보았다.

“장공주마마, 한 그릇 드릴까요?”

도도한 회경공주는 약간 주저했지만 이내 흔들리던 눈길을 냄비에 두었다. 그러고는 좀 내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허칠안은 저채미의 식사량을 고려하여 국수를 많이 삶았다. 네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한 사람당 딱 한 그릇이 되었다.

그는 면을 건져 올려 차가운 물에 담근 뒤 육수를 떠서 네 그릇에 부었다. 그리고 면을 균등하게 그릇에 배분한 후 부친 달걀을 얹고 잘게 썬 파와 튀김 부스러기를 뿌렸다.

“양 사형, 와서 같이 먹읍시다.”

허칠안이 손짓하여 불렀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마침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좀 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막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양천환의 발밑에 진문(陳紋)이 퍼졌다가 이내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는 그 와중에 한 그릇을 챙겨 갔다.

저채미는 그릇을 받쳐 들고 탁자에 앉아 먼저 튀김 부스러기를 먹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더 기다릴 새도 없이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눈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녀는 전에 없던 충격적인 맛을 감지했다.

그녀는 몸 안의 모든 세포가 미친 듯이 아우성치는 듯했다.

맛있다!

맛있다!

맛있다!

‘조미료를 첨가한 음식을 처음 먹은 사람에게는 확실히 잊지 못할 식감이지……’

허칠안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장공주를 쳐다봤다.

장공주는 아주 우아하게 먹지만 식사 속도는 빠른 편이었다. 그녀는 허칠안이 쳐다본다는 걸 알아차리자 식사를 멈추고 무표정하게 뒤를 돌아봤다.

허칠안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 채 국수를 먹었다.

장공주도 즉시 고개를 숙이고 조금씩 국수를 먹었다. 그녀는 시간을 낭비하기도 싫고 잠깐 기다리기도 싫은 듯했다.

양천환은 아무도 없이 조용한 방에서 중생을 등지고 있었다. 그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그릇을 받쳐 들고 키득거리며 국수를 흡입했다.

‘이 녀석 정말 재미있어. 연금술도 할 줄 알고, 말도 예쁘게 하는데 국수까지 맛있다니…….’

양천환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이렇게 만인에게 주목받는 대우가 바로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 녀석…… 강적이다!’

* * *

허칠안이 국수를 다 먹은 뒤 저채미를 보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맛있어.”

저채미가 고개를 늘어뜨렸다.

“이건 나만의 비법으로 나만의 연금술로 제조해낸 정수입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이게 바로 제가 소저께 가르쳐 드리려는 것이오. 연금술사로 승직할 수 있는 것.”

회경공주는 마침 명주 손수건으로 불그스름한 입술을 닦다가, 아름다운 눈을 색다르게 반짝였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를 닦던 손을 멈췄다.

“어려워?”

저채미가 가장 먼저 관심을 두는 부분은 이 문제의 난이도였다.

“어렵습니다. 저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 뿐이에요.”

저채미는 허칠안의 말을 듣자 낯빛이 바로 어두워졌다. 그는 엄숙하게 덧붙였다.

“소저가 제조해 내지 못하면 앞으로는 이런 국수를 먹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더 맛있는 음식도 먹지 못하겠지요.”

달걀형 얼굴의 미인은 살구 눈을 크게 뜨더니 갑자기 강렬한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자네가 독창적으로 만들었는가?”

회경공주가 물었다.

“네. 제가 채미 소저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창작했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이런 말은 장공주 앞에서 하면 안 됐다.

아니나 다를까 회경공주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채미에게 엄청 마음 쓰네.”

“채미 소저는 제 은인이니 당연히 마음을 써야죠.”

허칠안이 말했다.

“얼마나 마음을 쓰는데?”

달걀형 얼굴의 미인은 이 말을 듣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원하시는 만큼?”

허칠안이 자중하며 말했다.

이어 그는 회경공주도 은인임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공주마마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경공주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 * *

회경공주는 일이 있어 잠시 앉았다가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허칠안은 미리 준비해 둔 <연금비적(練金秘籍)>을 꺼냈다. 그 안에는 치킨스톡의 제작 과정 및 조미료의 개념이 기록되어 있었다.

허칠안이 채미 소저와 한참을 토론한 뒤 말했다.

“내 사천감 사형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소.”

그는 사천감의 술사들을 찾아가 양생당의 그 가엾은 아이를 치료해 달라면서 도움을 청하려 했다. 그가 송경을 찾지 않은 이유는, ‘인수(人獸)’라는 개념이 송 사형의 광기 어린 뇌 신경을 자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치료를 명목으로 이 아이를 연구할지도 몰랐다. 출발점은 분명 악의는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는 송경 이 팔푼이의 생물 연금술이 일을 망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가 미처 실험해보기도 전에 항원 승려에게 저지당해 불쾌한 일이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양천환의 뒷모습이 나타나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일인가?”

허칠안은 천진난만한 먹보 아가씨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장소를 옮겨 얘기하시죠.”

* * *

그와 양천환은 실내로 자리를 옮겼고 가엾은 아이 일을 상대에게 알렸다.

“양 사형, 그 아이는 3일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사천감의 사형께 치료를 도와달라 청하고 싶습니다.”

“좋네!”

양천환이 응하면서 물었다.

“왜 채미 사매를 피한 것이냐?”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왜 그녀에게 알려야 합니까?”

양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자네는 나만큼 고귀한 인품을 가지고 있구먼.”

* * *

깊은 밤, 항원은 양생당에서 좌선하다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는 영감이 발동하자 방을 나서 축지법으로 아주 빠르게 뒷마당에 도착했다.

그가 나뭇간 문을 활짝 열었다. 어두운 나뭇간 안에 백의를 입은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흐릿한 달빛에 비쳐 어렴풋이 보였다.

항원은 멈춰 서 귓바퀴를 살짝 움직여 그 아이의 평온한 숨소리를 들었다. 그런 뒤 그는 안심하는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귀하께서는?”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나 같은 이 없네.”

백의를 입은 사람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오만하다니…….’

설령 출가한 항원 승려라 해도 이런 말을 들으니 미간이 저절로 치켜올라가며 저자와 싸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런 감정을 통속적이고 알기 쉬운 말로 묘사한다면 ‘이 몸이 건방진 네 꼴을 못 봐주겠구나’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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