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사자후(獅子吼)
“그들이 감히 은자를 훔쳐 갈 능력이 없다 해도 여러분은 지갑을 잘 살피십시오.”
항원의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곳에서는 은덕을 베푸는 행위를 하면 안 됩니다. 그럼 스스로를 곤란한 처지에 빠트리는 거예요.”
그는 그것이 어떤 곤란한 처지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알지. 내가 선의를 보이기만 하면 그들의 눈에 나는 살찐 양이 되는 셈이다……. 그랬다가 우리가 수치심으로 부아가 치밀어 이곳의 빈민들을 다치게 할까 봐 그러나?’
허칠안은 속으로 그의 말뜻을 헤아리며 말했다.
“제가 이런 곳에 온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데, 왜 일하지 않는 거죠?”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작지가 없는 유민입니다. 예전에 그랬거나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죠. 하지만 다들 강도 높은 부역을 견디지 못하여 경작지를 버리고 성으로 와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에는 그들이 살아갈 공간이 없었죠. 대신 시도 때도 없이 이곳에 와 손쉽게 이익을 얻을 대상을 찾는 포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살아남기 위해 못된 짓을 하며 법을 어기는 놈들도 드물지 않습니다.”
항원 대사는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 * *
네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양생당에 도착했다. 양생당은 세월의 흔적이 있는 곳이었다. 특히 대문 위의 편액은 이미 풍상에 씻겨 색이 바래진 뒤였다.
“얼마 전에 관아 사람이 와서 이곳을 수리했는데 제가 새 편액을 예전 걸로 다시 바꿨습니다. 너무 밝고 선명한 건 양생당에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니까요. 세 분, 들어오십시오!”
항원은 양생당에 들어가 그들을 안쪽으로 데리고 가며 말했다.
“허 대인, 빈승은 대인께 애로사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돈을 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대인께서 사천감 술사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습니다. 백의 술사들을 찾아가 아이 하나를 구해 달라고 해 주시길 청합니다.”
그들은 앞마당을 지나 어수선한 뒷마당으로 들어가 나뭇간에 도착했다.
나뭇간 안에는 두꺼운 건초와 솜이불이 깔려 있었으며, 구석에는 화로와 사발이 놓여 있었다. 바싹 마른 검둥개가 솜이불 위에 몸을 오므린 채 앉아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자 검둥개는 몸을 움직였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검둥개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검둥개는 낯선 사람이 들어오자 무의식적으로 까만 눈동자에 아부의 눈빛을 띠더니, 애처롭게 비위를 맞추며 떠듬떠듬 말했다.
“복여(福如)…… 동해(東海), 대길(大吉)……대리(大利).”
송정풍과 주광효는 본래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얼어붙었다.
허칠안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육호 항원을 구할 때 그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이, 이건…… 그 아이?”
허칠안이 웅얼거렸다.
“그는 이 여덟 글자밖에 말할 줄 모릅니다.”
항원이 자비로운 얼굴로 검둥개를 응시했다.
“제가 사제 항혜를 찾을 때 그를 구했습니다. 그는 아주 비참한 대우를 받아 오래 살 수 없었는데, 그동안 제가 기기로 그의 몸을 온양하여 간신히 살아남게 했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몸이 아주 엉망이라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삼일 안으로 죽을 것입니다. 보통의 의원은 그를 구할 수 없고, 사천감 술사만이 가능합니다. 빈승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허 대인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고요.”
송정풍이 입을 벌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어쩌면 그에게 죽음이야말로 가장 좋은 결말일 수도 있습니다.”
항원이 그 동라를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를 때마다 그의 눈도 빛납니다. 저는 그 안의 갈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건 순수하게 살아남고 싶다는 희망입니다. 여러분 눈에 그는 어쩌면 마당의 잡초처럼 보잘것없겠지요. 하지만 그는 설령 잡초라 해도 단단하고 질기게 살고 싶어 합니다.”
송정풍은 침묵했다.
허칠안은 ‘검둥개’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사천감 술사에게 봐 달라고 청하겠습니다. 대사…… 앞으로 은자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십시오.”
그는 말을 마치고 덧붙였다.
“하루에 많게는 은자 3전을 드리겠습니다.”
‘하루에 3전?’
송정풍과 주광효는 약간 동요했다. 8전이 1냥이다. 녹미(*祿米: 녹봉으로 주던 쌀)를 제외하고 허칠안이 손에 쥘 수 있는 월봉은 기껏해야 네다섯 냥의 금은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내성에 있다 해도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매일 3전, 삼일이면 1냥인데 그가 어디서 이렇게 많은 돈이 난단 말인가? 아, 그는 폐하께서 하사하신 황금이 천 냥 있지. 그럼 문제없겠군.’
그 말을 듣자 항원은 고개를 저었다.
“안심하십시오. 정직하게 얻은 돈입니다. 공짜로 주운 것처럼.”
허칠안이 안심시켰다.
항원 대사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 다음 ‘검둥개’를 어루만졌다. 그는 세 사람을 데리고 앞마당으로 돌아와 말했다.
“두 분 대인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허 대인과 나눌 말이 있습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둘 중 한 사람은 방 안에 숨어 손님을 몰래 지켜보던 아이들을 놀렸고, 다른 한 사람은 마당의 돌탁자에 앉아 햇볕을 쬐는 노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 * *
항원이 허름한 집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합장하며 말했다.
“허 대인께서는 기운이 충만하고 활력이 넘치시는데 곧 연신경에 이르시는 겁니까?”
‘아주 정확하게 봤는데? 나는 육호가 8품 무승인 줄만 알지, 실력이 어떠한지 장단점이 뭔지 아직 알지 못하는데. 그는 이미 내 깊이를 안다니…….’
허칠안은 표정을 바로잡고 물었다.
“대사께서 무슨 가르침이 있으십니까?”
“관상도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항원 대사는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빈승은 출가한 몸이라 허 대인의 은자를 갚지 못하니 본래는 대인께서 연기경 전봉에 이르렀을 때 관상도 한 폭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허나 대인께서 이미 가지고 계시니 그럼 빈승이 다른 학문으로 바꾸겠습니다.”
‘나는 이미 <천지일도참>에 조예가 깊고, 이 학문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확실히 다른 학문을 공부해 내 몸의 단점을 보충할 때가 됐다…….’
허칠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대사께 감사드리겠습니다.”
항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8품 무승으로 불문의 현오법술(玄奧法術)은 하나도 할 줄 모르고 공벌(功伐) 수법만 조금 알 뿐입니다. 가장 잘하는 건 불문의 사자후(獅子吼)이지요. 이 법술은 관상법이자 학문입니다.”
‘세트냐…… 전적으로 포효에 의지하는 법술인가…….’
허칠안은 듣자마자 순간 좀 실망했다. 사자후는 무식한 사람만 쓰는 기술 같아서, 격이 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육호 항원은 허칠안의 눈빛에 스치는 실망감을 보더니 말했다.
“빈승이 대인께 사자후의 위력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내 귀가 먹을 만큼 울부짖지 않기만 하면 돼…….’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는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일깨웠다.
“이곳의 노인과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죠?”
항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위력을 이 방 안으로 통제할 것입니다.”
육호는 말을 마친 뒤, 원한이 깊어 보이는 모습으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런 다음 정상적인 자세로 주먹을 날렸다.
‘이 주먹은 지극히 평범하며 힘과 속도도 약해서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군…….’
허칠안의 머릿속에 막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때였다. 귓가에 웅장하고 우렁찬 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허칠안은 머리가 뒤흔들리면서 무의식적으로 현기증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자아를 되찾은 후에는 자신의 코끝에 닿은 뚝배기만 한 주먹이 보였다.
항원 승려는 주먹을 거두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 법술은 원신을 뒤흔들어 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듭니다. 높은 경계까지 수련하면 설사 도문의 최고 음신이라도 피하기 어렵죠.”
‘이 방법을 나의 천지일도참과 매치하면 그야말로 완벽하다……. 나의 가장 큰 고민이 헛스윙인데 사자후의 통제 효과가 생기면 필살기가 물거품이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허칠안은 기뻐하며 말했다.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 한 가지 의문이 스쳤다.
‘이 승려가 정말 단순한 8품 무승이라고?’
항원은 돌아서서 침상 옆으로 걸어가더니 침상 밑에서 낡은 나무 궤짝을 끄집어 냈다. 그러고는 그림첩 한 권을 신중하게 꺼내 허칠안에게 건넸다.
“이 책에 행기법문(行氣法門)과 수련으로 얻은 저만의 깨달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칠안은 손을 뻗어 책을 받았다. 이에 항원 대사는 겉표지를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돌려주셔야 합니다.”
‘왜 이 말을 덧붙이는 거지? 설마 내 허 색마의 명성을 들은 것인가?’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사.”
* * *
그는 방에서 나와 앞마당에서 동료 두 명과 합류했다. 세 사람은 의논을 거친 후 은자 한 냥을 모아 양생당에 기부했다.
그들이 항원과 작별인사를 하고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송정풍이 갑자기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시게.”
그는 뛰어 돌아가서 아무 말 없이 늙은 하급 관리를 쳐다보며 무서운 얼굴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대, 대인?”
늙은 하급 관리는 약간 겁에 질렸다.
송정풍은 이를 악물고 모진 마음을 먹은 뒤, 돈주머니를 떼어 내던졌다. 그러고선 차마 다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건 그가 오늘 밤에 교방사에 가서 쓸 은자 다섯 냥으로 그의 한 달 치 녹봉이기도 했다.
“칼 맞아 죽을 허칠안, 이 몸이 앞으로 자네와 이런 곳에 다시 오면 자네 성을 따르겠네.”
송정풍이 허칠안을 발로 찼다.
허칠안은 공격을 피하며 냉소를 지었다.
“이 몸도 자네가 내 성을 따르는 게 탐탁지 않으니 나중에 자네 아들이 내 성을 따르면 되겠군.”
송정풍은 칼집을 빼서 그를 쫓아가며 때렸다.
* * *
허칠안은 내성으로 돌아온 뒤 길거리를 순찰하는 업무를 두 동료에게 내팽개치고 관성루로 향했다.
“허 공자.”
백의 술사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무도 그가 올라가는 걸 막지 않았다.
허칠안은 한 바퀴를 돌았지만 저채미도 송경도 찾지 못하여, 연금술사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채미 소저는요?”
“장공주마마께서 오셔서 채미 사매가 공주마마를 모시고 팔괘대에서 감정 스승님을 뵙고 있습니다.”
연금술사가 말했다.
허칠안이 방향을 바꾸어 물었다.
“송 사형은요?”
“…….”
허칠안은 송경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물었다.
“부엌이 어디에 있습니까?”
* * *
허칠안은 국수를 삶아 본 경험이 드문데 이유는 이러했다. 하나, 조립 라인에서 생산한 국수는 맛이 없다. 둘, 국수는 누구라도 삶을 수 있지만 맛있게 삶는 일은 사실 어렵다.
그리고 99%의 사람들이 삶는 국수는 맛이 없다.
“적어도 내가 직접 손으로 쳐서 만든 국수 정도는 돼야 면이 탱탱하겠지…….”
허칠안은 부엌에서 밀가루를 주무르고, 비비고, 꼬집었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임했다.
그는 면을 다 반죽하여 우선 한쪽에 두었다. 그런 다음 비곗살을 썰어 기름에 튀긴 뒤 건져 올려 접시에 두었다. 그리고 튀길 때 나온 돼지기름을 이용해 달걀을 부쳤다.
그는 수타면을 펄펄 끓는 물에 넣고 끓였다. 그런 뒤 그는 품속에서 도자기 병을 꺼내 부글부글 끓는 육수에 조촐한 버전의 치킨스톡을 넣었다.
부엌 전체에 짙은 냄새가 가득 퍼지자 구미가 당길 지경이 되었다. 허칠안도 밥을 먹지 않아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