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안 빌려줘, 꺼져…….
허영월은 바깥 대청에서 식사 시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며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 오라버니는요?”
큰 오라버니는 평소 이때쯤이면 이미 탁자에 앉아 밥상을 기다리며 허영음을 골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위험할 정도로 흔들곤 했다.
혹은 어머니와 말씨름을 하기도 했다. 숙모와 조카 둘은 서로를 미워했다.
“오늘 휴가라 교방사에 간 모양이구나.”
허평지가 고개를 숙이고 패도를 닦다가 말했다.
“아버지는 허튼소리만 하시네요. 큰 오라버니는 기루조차 가지 않는다고요.”
허영월은 입을 쭉 내밀었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기루에 안 가는 줄 알았던 네 큰 오라버니가, 지금은 교방사 기녀들이 앞다투어 추앙하는 인물이란다.’
허평지는 속으로 탄복하며 말했다.
“그는 지금 연기경이니 정절을 지킬 필요가 없단다. 교방사에 가는 건 인지상정 아니니. 어느 남자가 안 가겠어…….”
갑자기 옆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허평지는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해서 패도를 닦으며 말투를 바꾸어 말했다.
“……그렇지만 네 아버지와 신년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단다. 칠안이도 접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했을 뿐이었어. 말하자면 우리 허씨 집안의 남자들은 기녀들이 있는 곳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
허영월은 아버지의 말을 믿었다. 그녀는 자랑스러운 둘째 오라버니와 성실한 큰 오라버니는 기녀들 있는 곳에 미련을 두지 않는 남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허영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곤 탁자에 앉았다.
“어머니, 저 계월루에 갈래요.”
허영음이 탁자 아래에서 뚫고 나와 숙모를 놀라게 했다.
숙모는 그녀에게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허평지가 의미심장한 말로 딸을 가르쳤다.
“영음, 계월루는 자주 갈 수 없단다. 은자가 있어야 해.”
“큰 오라버니가 어제 데리고 갔어요.”
하지만 허영음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럼 네 큰 오라버니를 찾아가려무나.”
허평지는 손을 내저으며 딸 교육을 포기했다. 이 딸은 너무 단순해서 운록서원의 선생도 그녀를 교육할 수 없었다.
숙모는 탄식했다.
“듣자 하니 계월루의 요리사는 궁 출신이라, 경성에서 제일가는 솜씨라고 하더구나. 우리 집에 이런 요리사를 불러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냄새 완전 좋아…….”
허영음이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더니 문밖을 쳐다봤다.
1초 뒤, 연기경 전봉 허평지도 그제서야 짙은 향기를 맡았다.
잠깐 사이에 취사부들이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허칠안도 뒤따라 들어왔다. 그런데 큰 오라버니를 가장 좋아하는 허영월조차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음식에 시선을 고정했다.
번들거리는 돼지고기 죽순 볶음, 식초로 절인 배추, 산약탕, 부추계란볶음, 연뿌리 갈비찜, 고추기름으로 볶은 어린줄기…… 그리고 허칠안이 직접 튀긴 돼지 족발까지.
“오늘 음식 냄새가 아주 향기롭구나.”
허평지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는 손짓했고, 겉껍질이 바삭하며 부드러운 돼지 족발 위에 잿빛 양념을 발랐다. 허평지는 침이 고이게 하는 냄새를 맡자니 그대로 음식을 입속에 넣어 음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렇게나 향이 좋다고?”
그가 놀라며 말했다.
“너무 과장이시네요.”
숙모는 입을 삐죽거렸다. 취사부가 요리 접시를 다 올려놓자 그녀는 죽순을 한 젓가락 집어 몇 번 음미했다.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커졌다.
그 요리가 그 요리라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신선한 맛이 퍼져나가면서 미각에 충격을 주었다.
평소에 음식을 만들 때는 많아 봤자 육수 한 국자를 넣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육수도 천차만별이라 사실 좀 넣는다 해도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맛있어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시대의 육수는 조미료 등 별다른 양념을 곁들이지 않기 때문에, 맛을 향상시키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닭고기 국물이나 표고버섯 같은 재료만을 먹는 것만으로도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허칠안이 사용한 건 무려 표고버섯 두 광주리를 정제해 낸 정수(精髓)였으니, 그 충격은 극히 강렬했다.
숙모는 놀랍고도 묘한 기분이 되어 취사부들을 쳐다보며 반짝이는 눈을 하고 말했다.
“오늘 음식이 다른 날과 유난히 다른데, 너희들, 어떻게 만든 것이냐.”
허영월과 허평지도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그들 또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취사부의 대답을 기다렸다.
오직 허영음만이 그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얼마나 많이 자기 배 속에 채워 넣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큰공자님만의 비법이에요…….”
취사부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온 가족이 갑자기 허칠안을 쳐다봤고, 허평지가 놀라서 물었다.
“어디서 나온 비법인 게냐?”
허영월과 숙모가 궁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허칠안은 재빨리 젓가락을 내려놓은 다음 설명했다.
“집안 음식이 싱거운데 계월루의 음식은 또 너무 비싸잖아요. 제가 그냥 이것저것 해봤는데 맛이 꽤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허평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데 그는 머리를 돌려 탁자를 쳐다보고선 눈이 커졌다.
“허영음!”
허영음은 탁자 위로 기어 올라가 요리 접시를 자기 몸 쪽으로 옮겼다.
“다 제 거예요.”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낭랑한 목소리로 선포했다.
* * *
허칠안은 묘시에 관아에 도착해서 정오가 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옥고를 치르고 돌아온 동라, 은라들을 상대할 뿐이었다.
그들은 어젯밤에 동료들로부터 공부상서가 실각했다는 소식을 접했으며, 자신들의 거취가 정해진 그 사건도 들었다.
만약 허칠안이 중간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많은 이들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허칠안은 겨우 그들을 상대한 다음, 동라를 꽉 매고 패도를 찼다. 오후의 업무는 거리 순찰이었다.
“칠안, 자네 한동안 교방사에 가지 않았네.”
과묵한 주광효가 갑자기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요즘 착각이 들거든. 내가 기녀와 노는 게 아니라 그녀들이 나와 놀아주는 것 같다는……’
허칠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곧 연기경 전봉에 이를 것 같아. 그래서 연신경에 대적해 볼 계획이네.”
‘연기경 전봉…….’
주광효와 송정풍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 둘도 연기경 전봉이었으니 이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토납하기만 하면 됐다. 전봉에 이르는 일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어려운 건 공을 쌓아 관상도로 바꾸어 얻는 일이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야경꾼에 들어온 지 겨우 두 달이 됐는데 연기경 전봉이라니! 이건 무슨 재능이란 말인가?
“그럼 자네 열심히 공을 쌓아야겠구먼.”
송정풍이 질투하며 말하고는, 또 우울한 마음에 덧붙였다.
“허나 자네가 상백 사건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걸로 이미 충분한 것 같네.”
“그렇지.”
허칠안은 가뿐하게 화제를 돌렸다.
“나는 2주 동안 쌓고 그다음에 교방사에 갈 생각이네.”
교방사는 그들에게 있어 분위기를 띄우는 최고의 화제였다. 송정풍은 곁눈질하며 말했다.
“그럼 부향 낭자가 고통스러워하겠어.”
* * *
그들은 걸으면서 말하다 보니 어느새 관아 입구에 이르렀다. 세 사람의 시선이 푸른색 승복 차림의 체구가 크고 훤칠한 승려에게 꽂혔다.
그의 승복은 좀 낡아 보였다. 또 목에는 굵은 염주를 걸고 있었다. 민머리에는 흉터가 두 줄 있었으며, 표정으로 보건대 원한이 깊어 보였다.
그는 바로 항원 승려였다.
항원은 허칠안이 걸어오는 걸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와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며 말했다.
“허 대인!”
‘안 빌려줘, 꺼져…….’
허칠안은 그의 말을 끊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항원 대사, 제가 처리해야 할 공무가 있으니 저희 간단하게 대화하시죠. 본관도 한 달에 월봉이 은자 다섯 냥이라 주머니 사정이 곤란합니다.”
그는 말하는 동시에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슬쩍 보니 항원의 헝겊 신발은 이미 낡아서 발가락 두 개가 튀어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칠안에게 은자를 빌리러 온 모양이군…….’
송정풍과 주광효는 어두운 표정으로 항원을 주시했다.
허칠안이 똑 부러지게 거절하자 항원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몸을 굽히며 말했다.
“빈승, 알겠습니다.”
허칠안은 승려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까닭 없이 중학교 때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아주 먼 길을 달려와 그에게 음식을 주었지만, 아들은 제때 가져다주지 않았다고 짜증 섞인 얼굴을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서 불평불만을 들은 뒤에 고독하게 떠나는 뒷모습이 저 승려와 겹쳐졌다.
“저기…… 잠시만요.”
허칠안이 그를 불러 세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를 빌리실 건가요? 먼저 확실하게 말씀드릴게요. 너무 많은 돈을 제가 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도 요즘 돈이 정말 별로 없거든요.”
항원이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허칠안을 향해 합장하며 인사했다.
“나는 양생당에 좀 가보고 싶네.”
허칠안이 말했다.
“그러시게.”
“함께 가세.”
허칠안이 두 동료를 초청했다.
“자네 돈을 챙기지 않았나?”
송정풍이 그를 째려봤다.
허칠안은 웃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두 걸음을 더 걷다가 발밑에 딱딱한 뭉치가 밟히자 자연스레 그걸 주워 손바닥에 두고 말했다.
“보게. 돈이 생기지 않았는가.”
“돈?”
송정풍이 칙칙한 은자를 바라보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내가 방금 길을 걸을 때 바닥을 보지 않아 놓친 이 은자를 자네가 거저먹었군.”
‘사실 너는 적어도 은자 몇 냥은 놓쳤을 거다…….’
허칠안이 입을 삐죽거리며 은자를 품에 넣고 설명했다.
“항원 대사가 외성 동성에 있는 양생당에 사는데 듣자 하니 거기서 고아와 독거노인이 힘들게 살아간다고 하네.”
“세상에 힘들게 사는 사람은 여기저기 깔렸어.”
주광효는 조용히 말을 마치고 한숨을 쉬었다.
* * *
세 사람은 항원을 따라 내성에서 나와 동성 양생당 방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송정풍이 재미있는 일을 발견했다.
“자네, 이 스님을 보게. 우리가 빨리 걸으면 그도 빨리 걸어서 한결같이 고정적인 거리를 유지하지. 하지만 그는 우리와 속도를 맞추려고 고개를 돌려 쳐다본 적이 없네.”
당연히 항원의 머리 뒤에 눈이 달려서 그럴 리는 없었다. 세 사람은 속으로 감탄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영각(靈覺)이었다.
네 사람은 애써 발걸음을 재촉해 아주 빠르게 동성에 도착했다. 이곳은 빈민가로, 낮고 허름한 집과 여러 번 꿰맨 낡은 솜옷 차림의 백성이 도처에 있었다.
그들은 얼굴이 누렇게 뜬 데다가 몹시 수척했으며, 햇볕을 쬐고 있는데도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이곳 아이들의 눈빛은 여전히 날렵했다. 하지만 그들의 여윈 몸과 지저분한 얼굴, 그리고 늘 남의 지갑을 주시하는 눈빛은 왠지 혐오스러웠다.
허칠안의 마음속에도 강한 혐오감이 생겼다. 하지만 이는 그 빈민과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이곳 환경 때문이었다.
그는 전생에 전쟁 지역의 사진을 적잖이 봐 왔다. 빈곤, 기아와 혼란은 변하지 않는 기조였다. 매번 비슷한 사진과 장면을 볼 때마다 그는 증오심에 불탔다. 그는 마음속으로 행복을 동경했지만 이것들을 바꿀 힘은 없었다.
아마도 이는 소위 무능함을 향한 분노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