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여동생과 숙모를 데리고 새 저택을 보다
허칠안은 황궁을 나선 다음 말에 올랐고, 위연의 마차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위 공, 공부상서는 제당의 지도자 중 하나인데, 그를 손안에 낚았으니 제당을 뿌리째 뽑을 수 있겠습니다.”
허칠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찻간에서 위연의 실소가 들려왔다.
“지금은 제당의 뿌리를 뽑을 시기가 아니네. 제당이 사라져도 가장 큰 수혜자는 우리가 아닐세.”
허칠안은 정쟁(政爭)에 있어서는 백은 수준이라 이 화제에 얽매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방향을 바꾸어 위연을 떠봤다.
“저 공을 세워 죄를 상쇄한 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위연이 ‘그래’라고 말했다.
“형부에서 더는 자네를 체포하지 않을 걸세. 다른 야경꾼들은 폐하의 뜻을 봐야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접본을 궁에 건넬 것이야.”
‘음, 이 일은 위연이 처리하게 두고…… 내가 은라로 승직하는 일은 따놓은 당상이군……. 먼저 집에 가서 숙부와 숙모를 위로해 드려야겠다.’
* * *
허칠안은 즉시 휴가를 내고 위연과 작별인사를 한 뒤, 말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기세등등하게 외성으로 내달려갔다.
숙부는 근무 중이라 저택에 없었다. 집에는 숙모와 두 여동생뿐이었다.
숙모는 바깥 대청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콩알이에게 수시로 한 입씩 간식을 먹여 줬다.
그녀는 짙은 청색의 비단옷을 입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위로 틀어 예쁜 금보요(金步搖)를 꽂았다. 아리따운 얼굴은 정교하게 화장을 했다.
숙모는 재수 없는 조카가 돌아오는 걸 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깔며 다급하게 말했다.
“네가 돌아와서 뭘 하려고? 네 숙부가 말하길 근처가 모두 형부의 암자라더라. 썩 꺼져라.”
“큰 오라버니, 큰 오라버니…….”
허영음은 반갑게 맞이하다가 그의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아 작은 몸뚱어리가 흔들거렸다. 그녀는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얼굴을 들어 올렸다.
“맛있는 거 챙겨 왔어요?”
“아니.”
허칠안은 어린 여동생의 간절한 기대를 냉랭하게 깨부쉈다.
“아.”
허영음도 현실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그 대답을 듣자마자 큰 오라버니를 바로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는 냉정하게 혼자 놀러 갔다.
허칠안은 숙모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탁자 가장자리로 걸어가서 손을 뻗어 간식을 들었다가 아름다운 부인한테 손바닥으로 한 대 얻어맞고선,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말씀드릴게요.”
허칠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했다.
“사건이 이미 해결됐다고 말씀드리러 왔어요.”
일이 이미 수습됐다고 하니 숙모는 얼굴이 잠시 환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재빨리 웃음을 거두고 허칠안을 꾸짖었다.
“하루 종일 사고만 칠 줄 알지. 조용하게 살게 해줄 수는 없는 거니?”
세은 사건부터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 번씩 소동이 생겼다. 숙모는 맨 처음에는 몹시 염려되고 두려웠지만, 지금은 이미 좀 익숙해진 상태였다.
좋은 일은 아니었다.
허칠안은 숙모의 달달 볶는 잔소리에 달리 대꾸하지 않고 말했다.
“저 이미 저택을 골랐어요. 영월과 영음을 데리고 한번 보러 가고 싶은데 숙모도 가실래요?”
저택을 골랐다는 말에 숙모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반짝이더니 어색하게 말했다.
“별일이 없긴 하니 너 따라서 보러 가지 뭐.”
* * *
허칠안이 말을 타는 동안, 늙은 중개인은 마차를 몰았다. 찻간에는 허영월과 숙모 그리고 흥분하여 머리를 창밖으로 내민 허영음이 있었다.
장남이 함께 있으니 여종과 사내종을 거느리지 않았다. 사람이 많을수록 방해만 되니까.
허칠안은 도중에 허영월과 허영음에게 먹을거리를 사준 다음, 차창에 대고 말했다.
“숙모도 드실래요?”
숙모는 거절했다.
* * *
저택에 이르러 그녀들이 마차에서 내렸다. 허칠안은 숙모가 입 주변을 닦는 모습을 보았다.
“지역이 나쁘지 않네. 중심가에서도 멀지 않고 옆에 강도 흐르고…….”
숙모는 아주 만족스럽다고 평가하다가 저택 입구에 서서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 좀 낡아 보인다.”
‘안 낡을 수 있겠어? 여기는 귀신 나오는 집인데…….’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늙은 중개인에게 문을 열라고 손짓했다.
숙모가 두 딸을 데리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눈에 들어오는 건 저택의 스산하고 낡아빠진 모습이었다. 그곳은 여러 해 동안 휑하니 버려져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던 티가 났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다야?”
“이 저택은 여러 해 동안 사는 사람이 없었어요. 세 들어 사는 사람도 없었죠. 거간꾼이 사천 냥에 팔려면 팔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집주인이 한사코 동의하지 않아서…….”
‘사천 냥?’
숙모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이 저택은 얼만데?”
“오천 냥입니다.”
늙은 중개인이 말했다.
숙모는 아무 말 없이 딸들을 데리고 저택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고서는 가는 곳마다 트집을 잡았다. 하지만 늙은 중개인도 경험이 풍부하며 낯짝이 두꺼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리땁고 농염한 부인과 청아하고 속되지 않은 소녀들이 안뜰로 향했다. 그러자 늙은 중개인이 깜짝 놀라 황급히 허칠안을 바라봤다.
“괜찮소.”
허칠안이 말했다.
‘대낮인데 별일 없겠지…….’
늙은 중개인은 매력적인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손님께서는 정말 이 저택을 사시려고요?”
“그렇소.”
‘정말 죽는 일이 두렵지 않나 보군.’
그는 탄식했다.
늙은 중개인은 성의를 다했기 때문에 더는 권하지 않았다. 대신 허칠안에게 슬며시 물었다.
“저 두 분은…….”
허칠안은 그를 골려 주고 싶은 마음에 역으로 물었다.
“영감 생각은 어떻소?”
늙은 중개인은 침묵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좀 난처해졌다.
‘어머니와 여동생? 아니, 그렇게 젊지는 않아. 게다가 그들 사이에는 모자(母子) 간의 정이 전혀 보이지 않아. 결별한 부부? 음, 굳이 따지자면 저 소저가 아마 이 나리의 아내고 아리따운 부인은 장모님일 거야……. 그럼 어제 노란색 치마의 소저는?’
늙은 중개인은 눈치가 꽤 빠른 편이었지만 양측의 관계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나이가 많은 분은 내 숙모고, 나이가 어린 둘은 내 여동생이오.”
허칠안이 말을 마치자, 늙은 중개인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시오?”
늙은 중개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심 집을 사면서 여동생과 숙모를 데리고 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숙모는 숙부나 큰아버지의 아내이니, 가족이 아니라 부계(父系)의 일족(一族)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숙모와 사촌 여동생을 데리고 같이 집을 보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 * *
숙모는 비록 말로는 저택에 좋은 점이 없다고 냉혹하게 악담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아주 만족했다. 똑같이 세 채 딸린 대저택이지만 외성의 허부보다 면적이 훨씬 컸고, 구조도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허부는 구조상 이곳만큼 수준이 높고 기품 있으며 고급스럽지 못했다. 굳이 구분하자면 농촌의 택지와 도시의 고급 별장만큼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었다.
모두 여러 층으로 된 독채이지만 등급이 달랐다.
일행은 한 시간 동안 저택 전체를 꼼꼼하게 봤다. 숙모와 허영월은 흥분했다. 심지어 허영월은 남몰래 자기 방도 찜해 두었다.
숙모가 떠봤다.
“이 지역은 오천 냥으로도 못 살 것 같은데?”
그녀가 흠을 잡는 이유는 값을 깎기 위해서였다. 영리한 숙모는 다 둘러본 후에 갑자기 오천 냥은 과하게 싸다는 데 생각이 미쳐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허칠안은 멀지 않은 곳의 그 우물을 가리키며 솔직하게 말했다.
“우물 안에서 귀신이 나왔어요. 음, 진짜 귀신이 있어요. 저와 채미 소저가 이미 검증을 마쳤고요.”
깜짝 놀라 소리치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허영월과 숙모가 놀라서 허칠안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허영월은 두 손으로 큰 오라버니의 옷깃을 꽉 잡아당겼다.
‘귀신?’
허영음도 겁이 나서 짧은 다리로 큰 오라버니 곁으로 달려가 가랑이 밑으로 숨었다. 그녀는 우물 어귀를 보면서 겁이 나 침을 삼켰다.
숙모의 아름다운 얼굴은 다소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곳에 한시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안 사겠다. 돌아가자.”
그녀는 한 손으로 딸의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저택 밖으로 걸어갔다. 너무 빨리 걸어서 걸음이 흔들거렸다.
늙은 중개인은 우거지상을 한 채 허칠안을 쳐다봤다.
“지금 저 놀리시나요?”
허칠안이 손을 내저었다.
“쓸데없는 소리 마시게. 가서 계약금을 내겠네.”
그는 거간꾼이 가격을 올릴까 봐 자신이 원귀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집문서와 땅문서를 손에 넣기 전까지 여기는 여전히 귀신의 집이어야 했다.
* * *
마차가 아항(牙行) 밖에 멈춰 섰고, 안에는 숙모와 두 여동생이 앉아 있었다. 숙모는 허칠안이 계약금을 내러 간다는 말을 듣자 화가 났다.
“나는 살지 않을 거야. 혼자서 귀신의 집에 살라고 해. 망할 놈이 우리 모녀 셋이 이득을 얻는 일이 보기 싫은 거야.”
숙모는 화를 내며 말했다.
“큰 오라버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허영월이 어머니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던 중에 허칠안이 나왔다. 그는 마부 자리에 뛰어올라 발을 젖힌 다음 고개를 반쯤 내밀었다.
“정오가 다 됐으니 계월루에 가서 밥 먹어요.”
숙모는 외면했다.
허칠안이 설명했다.
“저택 안의 여귀는 이미 해결했어요. 저는 안 믿어도 사천감 술사는 믿죠?”
허영월이 방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모는 의심을 거두지 않으며 허칠안을 노려봤다.
“정말이니?”
“제가 숙모를 속여서 뭐해요.”
* * *
그들은 마차를 몰아 계월루에 도착해서 방을 내어 달라고 했다. 허칠안은 옥석경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삼: 이호, 자네가 운주에서 발생하는 비적의 난의 배후 조종자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네.]
그는 문자를 보낸 다음 거울을 탁자 위에 엎어 놓았다. 그런 뒤 그가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먹다 보니 문자 알람이 왔다.
[이: 맞네. 도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곳곳에 쳐진 울타리에 비축되어 있는 군수품을 많이 발견했네. 이 물건들은 산적이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나는 배후에 돕는 세력이 있다는 의심이 들었네.]
허칠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소위 군수품이라고 하면 군용물자로 장비, 무기 등을 포함한다.
한편 이 화제는 사호의 흥미를 끌었다. 그는 일찍이 대봉 관원이었던 터라 대봉조의 상황에 꽤 신경 쓰는 편이었다.
[사: 운주 현지 관아부터 착수해 볼 수 있지. 참, 내 기억에 운주는 번왕(藩王)이 있었어.]
[이: 귀왕(貴王)은 실권이 없는 왕일 뿐이네. 내가 그를 조사해 봤는데 문제없었네.]
[삼: 어떻게 조사한 생각인가?]
[이: 사람을 보내 왕부를 감시했네.]
‘……그것도 조사라고 합니까? 참 볼품없네요.’
허칠안이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문자를 보냈다.
[삼: 나는 운주 비적의 난의 배후 지지자를 알고 있네.]
“?”
이호와 사호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물음표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