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규탄
손 상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상태로 사무실로 돌아와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들이부었다. 그런데 그의 엉덩이가 채 데워지기도 전에 하급 관리가 황급히 들어와 보고했다.
“상서 대인, 궁에서 말씀 전합니다. 폐하께서 소견하십니다.”
손 상서가 구석에 있는 물시계를 보았다. 이 시간이라면 조회는 이미 끝났을 것이다. 폐하께서 소견하시는 건 일이 있거나 소조회(小早會)가 있다는 의미였다.
‘폐하께서 무슨 일로 이리 근면하시지? 사흘이 멀다 하고 신하들을 불러 모아 국사를 논하시니…….’
형부상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마를 준비해라!”
* * *
손 상서가 어서방에 도착했다. 높은 황좌(皇座)에 앉은 원경제, 노련하고 용의주도한 왕 재상,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위청. 이렇게 세 사람만이 넓고 화려한 공간에 있었다.
상서 대인은 습관적으로 재상 형님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는 표정이 엄숙하고 눈빛이 어두워, 단순히 평범한 소조회라 여겼던 손 상서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위연이 또 무슨 농간을 부리는 거지…….’
그는 순간 고개를 기울여 위연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 대환관은 재능과 지혜가 출중했지만, 성격이 온화하고 아주 내성적이여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티가 나지 않았다.
손 상서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인사를 올린 뒤 자신의 위치에 잠자코 서 있었다.
일분일초 시간이 흘렀고 대신들이 잇따라 들어와 읍을 올리고 자리에 섰다. 원경제는 공부상서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내내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원경제는 눈을 뜨고 모든 신하를 내려다보았다. 소조회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두령급으로 보통의 고관들은 그 자격이 없었다.
“위 경, 모든 경들에게 말해 보시오.”
위연이 큰소리로 답한 후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어젯밤 야경꾼이 내성에서 미동과 사창을 키우는 민가를 발견했습니다. 그 여인들은 본래 좋은 집안의 규수고, 소년들 역시 평범한 집의 아이입니다. 그들은 인신매매 상인에게 납치당해 그곳에 갇혔고, 밤에 저택에 오는 술손님을 상대하라고 강요당했습니다……. 어젯밤에 야경꾼이 출동하여 이 도둑놈들을 토벌하고 열세 명의 매춘객을 잡았습니다. 그중 열 명은 관직에 있는 인물이고, 세 명은 경성의 거상입니다. 이외에도 야경꾼이 뒷마당 우물에서 사십 구의 유골을 건져 올렸는데 모두 잔인하게 살해된 여인이나 소년입니다.”
위연의 말은 어서방에 거대한 풍랑을 일으켰다. 이에 대신들은 큰 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숙해야 하는 조회의 규칙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인신매매, 사창 매수, 권력과 여색의 거래…… 이 일 중에 하나라도 관련된 관원은 영원히 조당에 발붙일 수 없었다. 더욱이 경찰 기간에는 그 일을 덮으려야 덮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위연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 다른 큰 특종이 까발려졌다.
“조사에 따르면 사택의 주인은 무신교의 주술사와 관련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우물에 새겨진 양귀(養鬼) 주문이 그 증거입니다. 사택 주인은 공부 유 상서를 위해 일을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 사택은 패거리를 조직하여 쾌락을 좇는 장소이자 무신교와 은밀히 연락하는 거점이었습니다.”
모든 신하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나마 어떤 규칙적인 이미지는 유지됐다. 하지만 지금은 채시구나 다름없었다. 어떤 이는 위연더러 남을 물어뜯으면서 명예를 더럽힌다고 책망했으며, 어떤 이는 위연의 머리를 베어야 한다고 제의했다.
대태감이 원경제 곁에 시립한 채 정숙하라고 세 번을 연달아 외쳤지만, 여전히 혼란은 진정되지 않았다.
관원들이 작당하여 사리사욕을 꾀하고, 인신매매하여 매춘부 노릇을 강요한 이 모든 일은 법을 어기고 범죄를 저지른 범주 안에 들었다. 하지만 무신교와 결탁한 건 차원이 달랐다. 이는 나라를 배반하는 행위였다.
대봉의 율법에 따라 적과 내통한 반역자는 구족을 멸한다.
탁!
원경제가 탁자를 치자 어서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모든 신하를 훑어보다가, 재상 왕정문에게 시선이 멈췄다.
“왕 경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재상이 대열 앞으로 나서 나지막이 말했다.
“이 사건은 철저하게 조사하고,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언뜻 사건을 두리뭉실하게 수습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형부 손 상서는 큰 형님이 위연을 두둔한다는 걸 예리하게 알아차렸으며, 그는 즉시 큰 형님의 뜻을 이해했다.
공부상서의 편에 선다 해도 이는 기껏해야 짐짓 선심을 쓰고, 위연의 체면을 깎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위연의 편에 서서 진상을 조사하면 공부상서는 끝장이다. 제당은 지도자 한 명을 잃는 격이 된다.
상백 사건 때는 왕당이 공부상서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제당에 중상을 입히려 했다. 비록 그때는 실패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기회였다.
원경제가 위연을 보며 물었다.
“범인이 어디에 있소?”
위연이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범인은 어젯밤에 이미 주술사의 저주를 받아 죽었고 증거도 같이 소멸했습니다.”
원경제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어서방이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대신들은 묘한 눈빛으로 위연을 쳐다봤다. 마치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재상 왕정문은 수련에 조예가 깊기에, 고개를 기울이고 미간을 찌푸리며 위연을 쳐다봤다.
공부상서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찬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폐하, 소신 억울하옵니다. 위연이 소신을 중상모략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결정해 주시옵소서.”
원경제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위연, 할 말이 있는가?”
위연은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한 태도로 우렁차게 말했다.
“소신 동라 허칠안을 부르시길 폐하께 청하는 바입니다.”
‘동라 허칠안…….’
대신들의 이 이름을 듣자 낯빛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지난번 주적웅 사건을 계기로 결정적인 시기가 된 지금, 허칠안을 부른다는 건 대신들로 하여금 아직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는 위연이 숨겨 왔던 계책이었다.
더욱이 왕당 구성원들은 ‘허칠안 호출’이라는 말에 약간은 트라우마가 생겼다.
공부상서는 안색이 약간 변했지만 빠르게 감정을 숨기고 침착함을 유지했다.
원경제가 몇 초 침묵하더니 말했다.
“부르거라.”
* * *
십여 분 후에 허칠안이 검은색 도포에 동라를 걸고 피풍을 걸친 채 어서방으로 들어왔다. 그가 허리 뒤춤에 차고 있던 흑금장도는 압수됐다.
저채미와 사천감의 백의 두 명이 그와 동행했다.
“소직, 허칠안. 폐하를 뵙습니다.”
허칠안이 몸을 굽히고 읍을 올렸다.
원경제는 무관심하게 동라를 쳐다봤고, 위연이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자네의 발견을 폐하께 아뢰게.”
허칠안은 즉시 폐하께서 하사하신 은자로 부동산을 사들이려 했다가 귀신이 나오는 저택을 발견했으며, 공정을 통해 그 사택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말했다.
공부상서는 들을수록 안색이 나빠졌다가 서서히 침착해졌다.
‘사람은 이미 죽였다. 어젯밤에 야경꾼들이 분명 이 일로 아주 격노했겠지……. 허나 본관을 공갈 협박하고 싶어도 그들은 증거가 없다…….’
공부상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속으로 비웃었다.
‘본관이 벼슬길에 오른 지 반평생, 온갖 시련을 다 겪었는데 이까짓 잔꾀쯤이야, 하.’
허칠안은 말을 마친 뒤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무표정한 원경제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원귀가 사천감 저채미 소저의 풍수반에 잡혀 있습니다. 폐하께서 검증하고 싶으시다면 믿을 만한 자를 선택하셔서 원귀와 공정하게 하시옵소서.”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발칙한 생각을 했다.
‘반드시 남자를 찾아서 공정해야지.’
원경제는 잠시 주저하다가 곁에 있는 대태감을 쳐다봤다. 만약 이 자리에서 가장 그의 신임을 얻는 사람을 꼽자면 당연히 어릴 때부터 곁에서 시중을 든 환관일 터였다.
“폐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간뇌도지(*肝腦塗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애를 씀)하길 원하옵니다.”
대태감이 몸을 숙이며 말했다.
“공공께서는 당황하지 마십시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허칠안은 대태감이 약간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상대방은 공정이 무엇인지 모를 터였다. 그래서 위안하는 말을 건넸다.
공정은 마음을 놓아도 되었다. 공정 내내 허칠안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아 구체적으로 실감이 되지는 않았다.
허칠안은 이는 환관에게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저채미가 풍수반을 꺼내 대태감 앞으로 왔다. 풍수반이 청광을 내뿜고 태극어가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거기서 검은 안개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가볍게 움직여 검은 안개를 대태감의 미간으로 밀었다. 대태감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젖혀 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검은 안개가 상대의 원신에 침투했다.
저채미는 옥 손가락으로 그의 미간을 찔러 그와 여귀가 융합하도록 도왔다. 그러지 않으면 대환관의 원신 강도로는 그대로 원령에 동화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분간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원경제와 어서방 내의 모든 신하가 대태감을 관찰했다. 그는 겁을 먹었다가 흉악해졌다가 절망스러워했다가 고통스러워했다.
저채미는 이 과정을 일각 동안 지속한 후, 옥 손가락을 꺼내 검은 안개를 빼냈고, 풍수반을 다시 거두었다.
대태감은 가냘픈 소리를 내며 눈을 뜨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통곡하였다.
“폐하, 폐하께서 노비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는 울다가 갑자기 흠칫했다. 자신은 남자였다. 적어도 예전엔 그랬다. 하지만 그가 방금 몸소 느낀 갖가지 사건은 자신이 아니라 여귀의 기억이었다.
대환관은 이 단계까지 깨달은 후 눈물을 닦았고 안색이 조금씩 살아났다. 그리고 여전히 애잔한 어조로 말했다.
“폐하, 노비가 다 보았나이다.”
원경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거라.”
그는 뒤이어 저채미를 포함한 세 명의 사천감 백의를 보았다. 그는 그들의 눈에 청기(淸氣)가 감도는 걸 보더니, 안심하고는 시선을 다시 대태감에게 돌렸다.
“그녀는 납치당해 경성으로 보내졌고, 매일 밤 쾌락을 사는 손님들의 시중을 들라고 강요당했습니다……. 아니, 손님들은 모두 은자를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렇게 보니 위연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이는 양갓집 자녀를 팔아넘겨 매춘을 강요한 사택이었다.
“나중에 그녀는 탐라하라는 손님의 시중을 들게 됐는데 그의 눈에 들어 그의 정부가 되었습니다.”
탐라하…… 이는 다른 민족의 이름이었다.
원경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공부상서를 힐끗 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그녀가 뜻하지 않게 밀담을 몰래 들었습니다. 그녀는 ‘화포’, ‘무기’ 등의 단어를 들었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살해되었으며, 그 시체는 우물 속에 내던져졌습니다. 노비가 탐라하와 밀담을 나눈 자를 봤습니다…….”
어서방이 발칵 뒤집혔다. 형세가 급변하자 모든 신하가 화살을 돌려 공부상서를 공격했다. 특히나 대리사경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진부한 말로 공부상서는 사람 새끼가 아니라고 호통쳤다.
규탄이 이어지면서 공부상서의 얼굴은 생기 없는 꼭두각시처럼 흙빛이 되었다.